번역소학 발문
위의 ≪번역소학(飜譯小學)≫ 10권을 깨끗하게 베껴서 올리니 교서관(校書館)에 넘기어 간행(刊行)할 것을 명하셨다.
이에 앞서 전하(殿下)께서 강합
(講閤; 경연(經筵))
에 거둥하시어 조용히 시신(侍臣)에게 말씀하시기를, “
≪소학(小學)≫ 한 책은 고정(考亭) 주 부자
(朱夫子; 송(宋)나라 때의 주희(朱熹)로, 부자는 그를 존칭하여 이르는 말임)
께서 어린 유생(儒生)들을 위하여 편찬한 것이다. 대체로 사람이 유아(幼兒)의 시기 때에 그 방심(放心)하는 것을 먼저 수습케 하여 뒷날의 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의 기본을 삼도록 하려고 한 것이니, 그 훈계함이 대단히 절실하도다. 내가 어렸을 적에 일찍이 이 책을 읽었었으나 그 때에는 오직 입으로 읽기만을 일삼았을 뿐이었지, 그 깊은 뜻을 깊이 연구하지 못하였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자못 시기를 놓쳐 학문을 그르친 후회스러움이 있어서 이에 경연(經筵)에 나아가 옛날에 배운 것을 다시 정리하려고 하노니, 거의 보탬이 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대들이 나를 위하여 강론하도록 하라.” 하시자, 시신(侍臣)이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여쭙기를, “주상(主上)께서 지시하심이 여기에까지 미치시니 성인(聖人)의 공부하심이 오로지 이 책에 있어서일 것입니다. 또 지금에 인심은 선량하지 못하여 완악하고 오만함이 고쳐지지 않았으니, 진실로 주상 시대의 사람이 그 나아갈 방향을 지시하지 않는다면 떳떳이 지켜야 할 도리(道理)가 혹시 거의 다 무너뜨려질 것입니다. 주상께서 이미 이 책을 높이 숭상하셨으니, 어찌 또한 사방의 백성들로 하여금 주상께서 좋아하신 줄을 알고서 떨쳐 일어나는 바가 있겠금 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가? 다만 온 나라 사람들 중에 문자를 해득함이 적어서 익히어 배우기가 아직도 좀 어려울까 걱정이 되기는 하오나, 우리말[方言]로 바꾸어 옮겨 풀이하여 책을 많이 찍어내어 널리 배포할 것같으면 비록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라 할지라도 책을 펴서 보자마자 문득 깨달을 것이니, 백성을 조화시키는 방도는 의당 이것보다 더 급한 것이 없습니다.” 하니, 전하(殿下)께서 그 말을 옳게 여기셔서 마침내 찬집청(撰集廳)에다 명을 내리시어 번역해서 올리라고 하셨는데, 대저 9개월을 경과하여 그 일을 끝마치게 되었다.
신(臣)은 듣건대, ‘높은 곳에 올라가는 자는 반드시 낮은 데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하고, 먼 곳에 가야 할 자는 반드시 가까운 데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라고 하니, 학문하는 것도 그것과 같아서 차례를 건너뛸 수 없으므로, ‘최후의 한 삼태기의 흙을 뒤엎어 쌓아 올려야만 아홉 길의 산을 완성하게 되며, 움푹 파인 구덩이마다 물이 가득 채워진 다음에야 동서남북의 바다에 도달하게 된다.’라고 함은 모두 성현(聖賢)께서 사람이 학문을 하는 데에 힘쓰도록 함의 적절한 비유이다. 중국의 옛 하(夏)‧은(殷)‧주(周)의 세 왕조를 거친 이후로 경적(經籍)이 침해당하여 없어지자 교육이 해이해져서 이른바 ‘8세 때 소학(小學)에 입학한다.’라는 법도가 죄다 폐지되었으므로 선비가 된 자는 어려서부터 들은 것이 없어 장성할수록 더욱 거칠어져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잠깐 사이에 갑작스레 이미 늙은 나이가 되었으니, 비록 공부를 더 하려고 할지라도 대개 미치질 못할 것이다. 선비도 오히려 이와 같을진대 하물며 인주(人主)에 있어서이겠는가? 구중 궁궐은 깊고도 엄하여 바깥 조정의 신하들이 나아와서 알현함은 때가 있고 수많은 정사(政事)는 번잡한데, 간사하고 요망스러움이 틈새로 파고들어서 ‘자라는 식물에 하루는 햇볕을 받아 따뜻하게 해주고 열흘 동안은 햇볕을 못 쬐게 차갑도록 해주는 것’처럼 되어 종말에는 혼란스러워 멸망하고 말 것이니, 어느 여가에 그 전의 하던 학업을 뒤쫓아 복습하여 새로운 공부에 더 힘쓸 것을 바라겠는가? 적막한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선정(善政)을 베풀어 잘 다스렸다는 것을 듣지 못함은 참으로 이러한 데에 연유한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 전하께서는 뛰어나고 현명하신 자질로서 〈연산군(燕山君) 때의〉 크게 혼란했던 그 뒤를 계승하셨으므로 나라의 기업(基業)을 세우고 그것을 유지하여 지켜 나가는 두 가지의 공적을 겸비하셨는데, 임금과 스승으로서의 할 일을 맡아 총관하시어 앞서서 이미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를 잇달아 편찬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떨쳐 일어나게 하셨고, 지금에 또 ≪소학≫을 풀어 해석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여기에 말미암아서 사람의 근본을 세우게 된 까닭을 알도록 하시어 간곡하게 가르쳐 깨우치게 하심이, 자애로운 아버지가 자식에게 명하는 것처럼 하시면서도 오히려 몸소 실행함이 미진하다고 여기시어, 먼저 스스로 강연(講筵)을 열어서 마음을 가라앉혀 깊이 생각하고 되풀이하여 듣지 못하셨던 바를 더 들으셨으니, 이것이 어찌 자신이 새롭게 하고 백성들을 선(善)으로 경신케 하여 모두 지극히 착한 곳에 그치어 옛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도록 해서 ≪소학≫의 성공을 거두시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장차 집집마다 예의를 지켜 겸양하는 풍속을 일으키고 사람마다 부모에 효도함과 형제간에 우애하는 도리를 알게 됨을 볼 것이니, 〈백성들이〉 아! 변화하여 착하게 되어 이에 〈온 나라가〉 화평을 이루게 되는 최상의 정치 그것이 모두 여기에 근본을 둘 것이다. 아! 이다지도 성대하심이여!
중종(中宗) 13년 무인(戊寅; 1518) 7월 상순(上旬)에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지경연사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판의금부사 지춘추관 성균관사(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兼知經筵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判義禁府事知春秋館成均館事) 신(臣) 남곤(南袞)은 삼가 발문(跋文)을 쓰노라.*
* 이 ‘번역소학 발문’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한국학연구원 권영창 국역위원이 번역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