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번역소학 권6·7·8·9·10

  • 역주 번역소학 권6·7·8·9·10
  • 번역소학 제8권
  • 외편(外篇)○제5편 가언(嘉言)○광경신(廣敬身)
  • 중유(仲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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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유(仲由)


번역소학 권8:4ㄴ

○仲듕由유 喜희聞문過과ㅣ라 令령名명이 無무窮궁焉언더니 今금人은 有유過과ㅣ어든 不블喜희人規규논디 如護호疾질而忌긔醫의야 寧녕滅멸其기身신而無무悟오也야니 噫희라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仲듕由유 주001)
중유(仲由):
중유(仲由, BC542~BC480). 춘추 말엽의 노국인(魯國人)으로 성은 중(仲), 이름이 유(由)이며 자는 자로(子路)나 계로(季路)로 쓰기도 한다. 출신이 한미 하였으며, 공자보다 9세가 아래인 공자의 문하생이다. 자로는 젊었을 때 웅계(雄鷄: 용병을 상징하는 수탉 깃으로 장식한 관)를 쓰고 가돈(豚: 용맹을 상징하는 수퇘지 가죽으로 된 띠)을 차며 공자를 기롱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공자가 예를 차려 가르치자 마침내 유자로서 그의 제자가 되기를 간청하였다. 공자를 따라 노나라에 있으면서 벼슬을 할 때, 계씨의 비읍(費邑)의 재상이 되었으며, 뒤에 노나라를 떠나 위(衛)나라에 이르러서는 위국의 포읍령(蒲邑令)이 되었다. 공자가 14년간의 주유를 마치고 노나라로 돌아올 때에 자로도 함께 돌아왔으나 위국 포읍령의 직책은 버리지 않았다. 노 애공 15년에 위국에서 내란이 일어나자 몸소 그 난리에 뛰어들어 죽었으니 나이 63세였다. 자로는 위인이 용맹하였고 의리를 숭상하였다.
 허므를 즐겨 듣논디라 어 일후미  업더니 이제 사믄 허믈이 잇거든 사믜 경계호믈 즐겨 아니 호미 병을 앗겨 의원을 여 주002)
여:
숨겨. 기본형은 ‘그다’인데 음 절도치를 따르고 경음화되면서 굳어진 형으로 보인다.
하리 모미 주거도 디 주003)
디:
깨닫지. 기본형은 ‘다’이고 부사형 어미 ‘-디’가 통합된 형임. 어원은 ‘닫힌 것을 깨고 나온다[啐啄]’는 개념이다.
몯 욤 

번역소학 권8:5ㄱ

니 슬프도다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중유는 허물을 즐겨 들었다. 어진 이름이 그지없더니 이제 사람은 허물이 있거든 사람의 경계함을 즐겨 아니함이 병을 삼가 의원에게 숨기기를 차라리 몸이 죽어도 깨닫지 못함과 같으니 슬프구나.
Ⓒ 역자 | 정호완 / 2011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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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중유(仲由):중유(仲由, BC542~BC480). 춘추 말엽의 노국인(魯國人)으로 성은 중(仲), 이름이 유(由)이며 자는 자로(子路)나 계로(季路)로 쓰기도 한다. 출신이 한미 하였으며, 공자보다 9세가 아래인 공자의 문하생이다. 자로는 젊었을 때 웅계(雄鷄: 용병을 상징하는 수탉 깃으로 장식한 관)를 쓰고 가돈(豚: 용맹을 상징하는 수퇘지 가죽으로 된 띠)을 차며 공자를 기롱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공자가 예를 차려 가르치자 마침내 유자로서 그의 제자가 되기를 간청하였다. 공자를 따라 노나라에 있으면서 벼슬을 할 때, 계씨의 비읍(費邑)의 재상이 되었으며, 뒤에 노나라를 떠나 위(衛)나라에 이르러서는 위국의 포읍령(蒲邑令)이 되었다. 공자가 14년간의 주유를 마치고 노나라로 돌아올 때에 자로도 함께 돌아왔으나 위국 포읍령의 직책은 버리지 않았다. 노 애공 15년에 위국에서 내란이 일어나자 몸소 그 난리에 뛰어들어 죽었으니 나이 63세였다. 자로는 위인이 용맹하였고 의리를 숭상하였다.
주002)
여:숨겨. 기본형은 ‘그다’인데 음 절도치를 따르고 경음화되면서 굳어진 형으로 보인다.
주003)
디:깨닫지. 기본형은 ‘다’이고 부사형 어미 ‘-디’가 통합된 형임. 어원은 ‘닫힌 것을 깨고 나온다[啐啄]’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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