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번역소학 권6·7·8·9·10

  • 역주 번역소학 권6·7·8·9·10
  • 번역소학 제10권
  • 외편(外篇)○제6편 선행(善行)○실경신(實敬身)
  • 도간(陶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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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간(陶侃)


번역소학 권10:7ㄱ

陶도侃간이 爲위廣광州쥬刺史야 在州쥬無무事ㅣ어든 輒텹朝됴運운百甓벽於어齋外외고 暮모運운於어齋內더니 人인問문其기故고대 答답曰왈 吾오ㅣ 方방致티力력中듕原원노니 過과爾이優우逸일이면 恐공不블堪감事노라니 其기勵려志지勤근力력이 皆此類류也야라ㅣ러라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陶도侃간이 廣광州쥬ㅅ고을刺史ㅣ란 벼슬엿더니 골 이셔 일 업슨 저기어든 믄

번역소학 권10:7ㄴ

득 아 벽돌 일을 손 드러 집밧긔 옴기고 나조 도로 드려 집안해 옴기더니 사미 그리 주 무러 답호 내 보야호로 中듕原원  히믈 드려 도로 앗고져 노니 주001)
도로 앗고져 노니:
도로 빼앗고자 하느니. ‘앗고져’의 기본형은 ‘앗다’인데 의도형 어미 ‘-고자’가 통합된 형임.
너모 편안히 놀면 이를 이긔여 디 몯 가 저허노라 주002)
몯가 저허노라:
못 할까 두려워하노라. ‘저허노라’의 기본형은 ‘젛다’이고 부사형 어미 ‘-어’와 통합된 형임.
니 그  닐와 다 힘 브즈런호미 다 이 더라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도간(陶侃)광주 자사(廣州刺史)로 벼슬하였다. 고을에 일이 없을 때는 아침에 벽돌 일백장을 손수 집 밖으로 옮기고, 저녁에 이것을 다시 집안으로 옮겼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묻으니 그가 대답했다. 나는 이제 중원(中原)을 회복하는 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너무 편안하게 놀면 그 일을 이겨내지 못할까 두렵다. 그는 뜻을 가다듬고 부지런함이 이와 같았다.
Ⓒ 역자 | 정호완 / 2011년 3월 20일

後후에 爲위荊형州쥬刺史니 侃간이 性셩聰총敏민야 勤근於어吏리職직며 恭공이 近

번역소학 권10:8ㄱ

근禮례라 愛好호人인倫륜더니 終죵日일斂렴膝슬危위坐좌야 閫곤外외多다事千쳔緖셔萬만端단을 罔망有유遺유漏루며 遠원近근書셔䟽소를 莫막不블手슈答답호 筆필翰한如여流류야 未미嘗샹壅옹滯톄며 引인接졉䟽소遠원야 門문無무滯뎡客더라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後후에 荊형州쥬ㅅ고올 刺史 니 侃간의 본셩이 총명고 민달야 소을 브즈러니 며 온공호 례법에 마자 人인倫륜엣 이를

번역소학 권10:8ㄴ

앗겨 즐겨 더라 져므도록 무루플 뎝수겨 주003)
져므도록 무루플 뎝수겨:
저물도록 무릎을 꿇어. ‘뎝수겨’의 기본형은 ‘뎝수기다’이고 부사형 어미 ‘-어’가 통합된 형임.
러안자셔 군문에 하나한 쳔만 가짓 이를 遺유漏루티 아니며 이러 뎌러셔 온 글워를 다 손 답호 주004)
손 답호:
손수 대답하되. ‘손’는 ‘손소’에서 유성음화를 거치면서 ‘손’가 되었다.
붇귿티 흐르 시 야 머믈우디 아니며 먼듸셔 온 사믈 즉재 졉야 문늬 머므런 소니 업더라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후에 그는 형주(荊州) 고을의 자사가 되었다. 도간(陶侃) 주005)
도간(陶侃):
중국 진(晉)나라 때의 장군(257~332). 영가의 난 때 무창을 지켜 공을 세웠고 명제 때 왕돈의 반란과 소준의 변을 평정하는 등 40여 년 동안 많은 공을 세웠다. 자 사행(士行). 장시성[江西省] 포양[鄱陽] 출생. 도연명(陶淵明)의 증조부. 서진(西晉)의 혜제(惠帝) 때 강하태수가 되고, 영가(永嘉)의 난 때 무창(武昌)을 지켜 공을 세웠다. 명제(明帝) 때는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으로서 왕돈(王敦)의 반란과 소준(蘇峻)의 난을 평정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워 진나라 왕실을 위하여 충성하였다. 벼슬이 시중태위(侍中太尉)에 이르렀고, 창사군공(長沙郡公)에 봉해졌음.
은 본성이 총명하고 명민하여 책임을 부지런히 하며, 태도가 공손하면서 예에 맞아 사람의 도리 지키기를 좋아했다. 온 종일 무릎을 모으고 꿇어 앉아 군사의 일을 천만 가지나 처리함에 소홀함이 없었다. 여러 곳에서 온 모든 글월에 대해 손수 답장을 썼다. 붓과 글이 물 흐르듯 막힘이 없었으며,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직접 만나서 문앞에 머물러 있는 손님이 없었다.
Ⓒ 역자 | 정호완 / 2011년 3월 20일

常샹語어人인 曰왈 大대禹우 聖셩人인이샤 乃내惜셕寸촌陰음시니 至지於어衆듕人인야 當당惜셕分분陰음이니 豈긔可가逸일遊유荒

번역소학 권10:9ㄱ

황醉취야 生생無무益익於어時시며 死無무聞문於어後후ㅣ리오 是시自棄기也야ㅣ라고 諸제參참佐좌ㅣ 或혹以이談담戱희廢폐事自쟈ㅣ어든 乃내命명取其기酒쥬器긔蒲포博박地지具야 悉실投투地지于우江강며 吏리將쟝則즉加가鞭편朴박고 曰왈 樗뎌蒲포者쟈 牧목猪뎨奴노戱희耳이오 老로莊장浮부華화 非비先션王왕之지法법言언이라 不블可가行也야ㅣ니 君군子當당正정其기衣의冠관

번역소학 권10:9ㄴ

며 攝셥其기威위儀의언뎡 何하有유亂란頭두養양望망야 自謂위弘홍達달耶야ㅣ리오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샹해 사려 닐오 大대禹우 聖셩人인이샤   치만 디나갈 저글 앗겨 노디 아니시니 샹햇 사믄   만 디날 이도 주006)
 만 디날 이도:
한 푼만 지날 사이도(잠깐이라도). ‘’은 어두자음군의 회피로 뒤로 오면서 ‘〉푼’으로 굳어졌음.
앗길 거시니 엇디 편안히 놀며 간대로 술 야 사라 이셔도 시절의 더은 일 업스며 주근 후에도 일리 업게 리오 이 제 모믈 제 리논 디라 고 모 아랫 관원이 부야 놀오 주007)
아랫 관원이 부야 놀오:
아래 관원이 희롱하면서 놀고. ‘부하야’의 기본형은 ‘부하다’이고, 부사형 어미 ‘-어’와 통합된 형임.

번역소학 권10:10ㄱ

일 아니거든 제의 술 먹던 그릇과 저희 두던 상뉵 쟝긔흘 아 므레 드리티며 주008)
므레 드리티며:
물에 던지며. ‘드리티며’의 기본형은 ‘드리티다’이고 설명형 어미 ‘-며’와 통합된 형임.
아젼과 군히 그리 더니란 티고 닐오 상뉵 쟝긔란 거슨 돋치 노 노샛이라 주009)
돋치 노 노샛이라:
돼지 기르는 사람이나 하는 노릇이다. ‘노샛’의 형태분석은 ‘노+앳(애의)’과 같다.
老로聃담莊장周쥬의 붙턍 도 이른 녯 어딘 님금의 법다온 말이 아니라 디 아니 거시니 君군子 衣의冠관을 졍히 며 威위儀의를 려  거시니 엇디 머리 헏틀오고 어디다 요믈 길워셔 어위 크고 통달호라 리오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도간은 항상 사람들에게 말했다. 위대한 우(禹)임금은 성인(聖人)이었는데도 해가 한 치만큼 지나가는 시간을 아꼈다. 보통 사람들도 마땅히 짧은 시간을 아껴야 한다. 어찌 편안히 놀면서 마음대로 술 취한 듯 헛되이 보낼 수 있겠는가. 살아서는 보탬을 주지 못하고, 죽어서 일컬을 것이 없게 하리오. 이것은 스스로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여러 보좌관들 중에 잡담을 하거나 놀면서 일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술잔과 바둑이나 장기 등을 빼앗아 물에 던져 버리도록 했다. 그런 아전이나 군사들에게는 매를 치며 말했다. 노름은 돼지 치는 놈들이나 하는 노릇이다. 노자장자의 허황된 말은 옛 어진 임금의 법도에 맞지 않으니 행해서는 안 된다. 군자는 마땅히 자신의 의관을 정제하고 몸가짐에 위엄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머리를 풀어헤치고 할 바를 키우면서 스스로 크게 통달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 역자 | 정호완 / 2011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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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도로 앗고져 노니:도로 빼앗고자 하느니. ‘앗고져’의 기본형은 ‘앗다’인데 의도형 어미 ‘-고자’가 통합된 형임.
주002)
몯가 저허노라:못 할까 두려워하노라. ‘저허노라’의 기본형은 ‘젛다’이고 부사형 어미 ‘-어’와 통합된 형임.
주003)
져므도록 무루플 뎝수겨:저물도록 무릎을 꿇어. ‘뎝수겨’의 기본형은 ‘뎝수기다’이고 부사형 어미 ‘-어’가 통합된 형임.
주004)
손 답호:손수 대답하되. ‘손’는 ‘손소’에서 유성음화를 거치면서 ‘손’가 되었다.
주005)
도간(陶侃):중국 진(晉)나라 때의 장군(257~332). 영가의 난 때 무창을 지켜 공을 세웠고 명제 때 왕돈의 반란과 소준의 변을 평정하는 등 40여 년 동안 많은 공을 세웠다. 자 사행(士行). 장시성[江西省] 포양[鄱陽] 출생. 도연명(陶淵明)의 증조부. 서진(西晉)의 혜제(惠帝) 때 강하태수가 되고, 영가(永嘉)의 난 때 무창(武昌)을 지켜 공을 세웠다. 명제(明帝) 때는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으로서 왕돈(王敦)의 반란과 소준(蘇峻)의 난을 평정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워 진나라 왕실을 위하여 충성하였다. 벼슬이 시중태위(侍中太尉)에 이르렀고, 창사군공(長沙郡公)에 봉해졌음.
주006)
 만 디날 이도:한 푼만 지날 사이도(잠깐이라도). ‘’은 어두자음군의 회피로 뒤로 오면서 ‘〉푼’으로 굳어졌음.
주007)
아랫 관원이 부야 놀오:아래 관원이 희롱하면서 놀고. ‘부하야’의 기본형은 ‘부하다’이고, 부사형 어미 ‘-어’와 통합된 형임.
주008)
므레 드리티며:물에 던지며. ‘드리티며’의 기본형은 ‘드리티다’이고 설명형 어미 ‘-며’와 통합된 형임.
주009)
돋치 노 노샛이라:돼지 기르는 사람이나 하는 노릇이다. ‘노샛’의 형태분석은 ‘노+앳(애의)’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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