孝효芬분의 叔숙
振진애 旣긔亡망後후애
孝효芬분等등이 承승奉봉叔숙母모
李이氏시호 若약事所소生야 旦됴夕셕溫온凊정며 出츌入입啓계覲근며 家가事巨거細를 一일以이咨決결며 每兄형弟뎨出츌行애 有유
번역소학 권9:94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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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孝효芬분의 아자비
振진이 주근 후에
孝효芬분 이히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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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소학 권9:94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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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효분의 숙부 진(振)이 죽은 뒤, 효분의 형제들은 숙모 이씨(李氏)를 모시되 낳아 준 어머니처럼 섬겼다.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드리면서 겨울이면 따뜻한지, 여름이면 시원했는지 물어보았다. 나들이 할 때는 말씀을 드리고,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물어서 결정했다. 형제들이 나다닐 때마다 얻는 것이 있으면 한 자, 한 치 이상의 물건은 모두 이씨의 창고에 넣어두었으며, 철마다 나누어 줌을 이씨가 주관하여 결정했다. 이리 함이 스무 남은 해였다.
Ⓒ 역자 | 정호완 / 2011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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