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번역소학 권6·7·8·9·10

  • 역주 번역소학 권6·7·8·9·10
  • 번역소학 제6권
  • 외편(外篇)○가언(嘉言)○광입교(廣立敎)
  • 장횡거(張橫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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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횡거(張橫渠) 1


橫渠거 張댱先션生이 曰왈 敎교小쇼兒호 先션要요安안詳샹恭공敬이니 今금世셰예

번역소학 권6:2ㄴ

學不블講강야 男남女녀ㅣ 從죵幼유便변驕교惰타壞괴了료야 到도長댱益익凶흉狠니 只지爲위未미嘗샹爲위子弟뎨之지事ㅣ라 則즉於어期기親친에 已이有유物믈我아야 不블肯屈굴下하야 病병根근常샹在야 又우隨슈所소居거而長댱야 至지死只지依의舊구ㅣ니라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橫渠거先션生 주001)
횡거선생(橫渠先生):
장횡거(張橫渠, 1020~1077). 중국 북송(北宋) 중엽의 학자. 자는 자후(子厚). 이름 재(載). 장안(長安)에서 출생. 38세 때 진사시(進士試)에 급제, 기주(祁州)의 사법참군(司法參軍)으로 시작하여, 10여년간 관직에 있었다. 학자로서는 ≪경학이굴(經學理窟)≫, ≪정몽(正蒙)≫, ≪서명(西銘)≫ 등의 저술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정몽≫에서는 송나라 최초로 ‘기일원(氣一元)’의 철학사상을 전개, 우주의 존재는 기(氣)의 집산에 따라 생멸·변화하는 것이고, 이 기의 본체는 비어 있음, 곧 태허(太虛)로서, 이는 곧 기라고 하였다. 젊어서 범중엄(范仲淹)을 만나 ≪중용(中庸)≫을 읽도록 권유받았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불교와 노장(老莊)에서 깊은 뜻을 찾고자 하였다. 그 뒤 정명도(程明道)·정이천(程伊川)과 함께 ≪역경(易經)≫을 논하면서 그 학문의 깊이에 감복하여, 불도를 뒤로 하고 ≪역경≫, ≪중용≫에 따라 송나라 유학의 기초를 세웠다.
이 샤 혀근 아 주002)
혀근 아:
작은 아이를. 어린 아이를. ‘혀근’의 기본형은 ‘혁다’인데 관형형 어미가 통합된 형태다. 예) 혀근 션 보시고(引見小儒)〈용가 82〉.
쵸 몬져 모로매 안고 심며 

번역소학 권6:3ㄱ

케 홀디니 이 시져레 學問문을 講論논 아니 남진 겨지비 아 브터 곧 교만며 게을어 어딘 을 여려 라매 니르러 더욱 악고 퍅니 오직 일즉 子弟뎨의 욜 이 디 아니 곧 그 어버 거긔도 마 미며 내라  미 주003)
미:
마음이. 연철 ‘미’와 분철 ‘이’의 중간 형태로서 ‘ㅁ’을 중복하여 나타냈다.
이셔 구펴 호려 주004)
호려:
나직하려고. 몸을 낮게 낮추려고. 복종하려고.
디 아니야 그  불휘  이셔  간 마다 기러 주구매 니르러도 가지라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횡거 선생이 이르되, 어린 아이를 가르침에 있어 먼저 반드시 안정되게 살피고 어른을 공경하게 할 것이다. 이 시절에는 학문을 강론하지 않으므로 남자나 여자나 아이 때부터 교만하며 게을러 어진 성품을 살피지 않고 자라면서 더욱 흉악하고 빡빡해 진다. 오직 먼저 아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그러하니 곧 그 어버이 거기도
(=그쪽도)
이미 남과 나이다 하는 생각이 있어서 몸을 굽혀 복종하려 하지 아니하여, 그 병의 뿌리가 늘 있어 또 제 멋대로 자라서 죽음에 이르러도 매한가지다.
Ⓒ 역자 | 정호완 / 2011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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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횡거선생(橫渠先生):장횡거(張橫渠, 1020~1077). 중국 북송(北宋) 중엽의 학자. 자는 자후(子厚). 이름 재(載). 장안(長安)에서 출생. 38세 때 진사시(進士試)에 급제, 기주(祁州)의 사법참군(司法參軍)으로 시작하여, 10여년간 관직에 있었다. 학자로서는 ≪경학이굴(經學理窟)≫, ≪정몽(正蒙)≫, ≪서명(西銘)≫ 등의 저술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정몽≫에서는 송나라 최초로 ‘기일원(氣一元)’의 철학사상을 전개, 우주의 존재는 기(氣)의 집산에 따라 생멸·변화하는 것이고, 이 기의 본체는 비어 있음, 곧 태허(太虛)로서, 이는 곧 기라고 하였다. 젊어서 범중엄(范仲淹)을 만나 ≪중용(中庸)≫을 읽도록 권유받았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불교와 노장(老莊)에서 깊은 뜻을 찾고자 하였다. 그 뒤 정명도(程明道)·정이천(程伊川)과 함께 ≪역경(易經)≫을 논하면서 그 학문의 깊이에 감복하여, 불도를 뒤로 하고 ≪역경≫, ≪중용≫에 따라 송나라 유학의 기초를 세웠다.
주002)
혀근 아:작은 아이를. 어린 아이를. ‘혀근’의 기본형은 ‘혁다’인데 관형형 어미가 통합된 형태다. 예) 혀근 션 보시고(引見小儒)〈용가 82〉.
주003)
미:마음이. 연철 ‘미’와 분철 ‘이’의 중간 형태로서 ‘ㅁ’을 중복하여 나타냈다.
주004)
호려:나직하려고. 몸을 낮게 낮추려고. 복종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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