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번역소학 권6·7·8·9·10

  • 역주 번역소학 권6·7·8·9·10
  • 번역소학 제9권
  • 외편(外篇)○제6편 선행(善行)○실명륜(實明倫)
  • 방공(龐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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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공(龐公)


龐방公공이 未미入입府부고 夫부妻쳐ㅣ 相샹敬경호 如여賓빈더니 劉류表표ㅣ 候후之지니 龐방公공이 釋셕耕경於어壟농上상이어늘 而妻처子ㅣ 耘운於어前젼더니 表표ㅣ 指지而問문曰왈先션生이 苦고居거畎견畝묘而不블肯긍官관祿록니 後후世셰에 何하以이遺유子孫손乎호오 龐방公공

번역소학 권9:91ㄱ

이 曰왈 世셰人 皆遺유之지以이爲위어늘 今금獨독遺유之지以이安안노니 雖슈所소遺유ㅣ 不블同동나 未미爲위無무所소遺유야ㅣ라대 表표ㅣ 嘆탄息식이거다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龐방公공이 일즛[즉] 셩안히며 마애 드러가디 아니고 夫부妻쳐ㅣ 서르 공경호 손티 더니 劉류表표ㅣ 가보니 龐방公공이 받가리를 그치고 두던 우희 잇거를 주001)
두던 우희 잇거를:
밭 둔덕 위에 있었다. ‘우희’의 단독형은 ‘우’인데 히읗 종성 체언이므로 처소의 부사격 조사 ‘-의’와 통합되어 쓰인 것임.
겨집과 식은 앏픠셔 기 더니 주002)
기 더니:
김을 매더니. ‘기’은 밭의 잡초를 이른다. 방언에서는 ‘기심, 지심’이라고도 이른다.
表표ㅣ 치고 무러닐

번역소학 권9:91ㄴ

오 先션生이 슈고로이 받 가온대 살오 벼슬며 녹기를 즐겨 아니니 주근 후에 므스 거스로 손을 주리오 龐방公공이 닐오 시절 사은 다 바라온 일로 주거늘 이제 나 혼자 편안호모로 주노니 비록 주논 배 디 아니나 주 배 업다 몯  거시라 대 表표ㅣ 장 항복여 주003)
항복여:
감복하여. 기본형은 ‘항복다’이고 부사형 어미 ‘-어’가 통합된 형임.
가니라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방공(龐公)은 일찍이 성안과 마을에 들어가지 않았다. 부부가 서로 공경하기를 손님 대하듯이 했다. 유표(劉表)가 찾아가니 방공은 밭갈이를 그치고 둔덕 위에 있었다. 아내와 자식들은 앞에서 김을 매었다. 표는 방공에게 처자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선생은 고생스럽게 밭을 갈고 살면서 관청의 벼슬과 녹봉 따위는 좋아하지 않으니, 죽은 뒤에 자식들에게 무엇을 남겨주려 합니까. 방공이 대답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위태로움을 자손들에게 남겨주지만, 나는 편안한 것을 자손들에게 남겨주려고 합니다. 비록 남겨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겨줄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을 들은 유표는 탄식을 하며 가버렸다.
Ⓒ 역자 | 정호완 / 2011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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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두던 우희 잇거를:밭 둔덕 위에 있었다. ‘우희’의 단독형은 ‘우’인데 히읗 종성 체언이므로 처소의 부사격 조사 ‘-의’와 통합되어 쓰인 것임.
주002)
기 더니:김을 매더니. ‘기’은 밭의 잡초를 이른다. 방언에서는 ‘기심, 지심’이라고도 이른다.
주003)
항복여:감복하여. 기본형은 ‘항복다’이고 부사형 어미 ‘-어’가 통합된 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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