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여소학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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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여소학언해
역주 여소학언해

1882년(고종 19) 박문호(朴文鎬)가 부녀자들의 도리와 덕행에 관한 글들을 「주역」·「좌전」·「국어」·「사기」·「내칙」·「예기」·「모시」·「소학언해」·「오륜행실」 등 수많은 고전에서 모아 언해한 책으로 6권 6책의 필사본이다. 원문의 한자에 일일이 한글로 새김[釋]과 음(音)을 달아 한자의 뜻과 음의 변천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권1·2·3을 묶어 1집(2014년) 및 권4·5·6을 묶어 2집으로 역주하였다.

이상규(경북대학교 교수)

1953년 경북 영천 출생
경북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대학 대학원을 졸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방언조사연구원 및 울산대학교 조교수
제7대 국립국어원장 역임
현재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교수
도쿄대학교 대학원 객원 연구교수
중국해양대학교 고문교수
남북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 동 이사.

〈저서〉

『훈민정음통사』(주해)
『한국어방언학』
『경북방언사전』(학술원우수도서)
『언어지도의 미래』(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
『한글고문서연구』(학술원우수도서)
『조선어학회 33인 열전』 등.

〈논문〉

「『훈민정음』 영인 이본의 권점 분석」(2009)
「디지털 시대에 한글의 미래」(2009)
「잔본 상주본 『훈민정음』(2012)
「Hangeul, The Greatest Letters」(2007) 등.

〈수상〉

일석학술장려상(1986)
외솔학술상(2011)
봉운학술상(2012)
대통령표창(2004).

역주위원

  • 여소학언해 권1·2·3 : 이상규(경북대학교 교수)
  • 교열·윤문·색인위원
  • 여소학언해 권1·2·3 : 박종국, 홍현보
  • 편집위원
  • 위원장 : 박종국
  • 위원 : 강병식 김구진 김무봉
  • 김석득 김승곤 김영배
  • 나일성 리의도 박병천
  • 성낙수 오명준 이창림
  • 이해철 임홍빈 전상운
  • 정태섭 조오현 차재경
  • 최홍식 한무희 홍민표

『역주 여소학언해』를 내면서

우리 세종대왕기념사업회는 1968년 1월부터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을 국역하기 시작하여 447책을 펴내 전체 실록을 완역하였고, 『증보문헌비고』 40책 완간 등 수많은 국학 자료의 번역사업을 벌여 오고 있다. 아울러 1990년 6월부터는 “한글고전 역주 사업”의 첫발을 내디디어, 『석보상절』 권6·9·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그 성과물을 간행하여 왔다. 이제 우리 회는 올해로써 한글고전 역주 사업을 추진한 지 24주년이 되었다. 그동안 600책이 넘는 국역, 학술 간행물이 말해주듯이,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한글 국역·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우리 회가 국역 사업을 벌이는 뜻은 바로 백성과의 소통을 통하여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한글) 창제 정신을 이어받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 역주하여 간행한 정음 문헌과 책 수는 다음과 같다. 『석보상절』 4책, 『월인석보』 17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10책, 『남명집언해』 2책,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1책, 『구급방언해』 2책, 『금강경삼가해』 5책, 『선종영가집언해』 2책, 『육조법보단경언해』 3책, 『구급간이방언해』 5책, 『진언권공, 삼단시식문언해』 1책, 『불설아미타경언해, 불정심다라니경언해』 1책, 『반야심경언해』 1책, 『목우자수심결·사법어 언해』 1책,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1책, 『분문온역이해방·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 1책, 『언해두창집요』 1책, 『언해태산집요』 1책, 『삼강행실도』 1책, 『이륜행실도』 1책, 『정속언해‧경민편』 1책, 『상원사중창권선문‧영험약초‧오대진언』 1책,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1책, 『두시언해』(권10, 11, 14) 3책, 『여씨향약언해』 1책, 『번역소학』(권6·7·8·9·10) 1책, 『소학언해』 4책, 『논어언해』 2책, 『대학언해』 1책, 『중용언해』 1책, 『맹자언해』 3책, 『연병지남』 1책, 『병학지남』 1책, 『화포식언해·신전자취염소방언해』 1책,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 1책, 『사리영응기』 1책, 『백련초해』 1책, 『칠대만법·권념요록』 1책 등 모두 99책에 달한다.

이제 우리가 추진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은 15세기 문헌을 대부분 역주하고 16세기 이후 문헌까지 역주하는 데 이르렀다. 올해는 그 가운데 『여소학언해』 등 지난해에 이어 16세기 ~18세기 문헌을 역주할 예정이다. 특히 선조들의 여성을 위한 교훈서를 중점적으로 발간할 것이다.

『여소학언해(女小學諺解)』는 고종 19년(1882) 박문호(朴文鎬)가 부녀자들의 도리와 덕행에 관한 글들을 『주역』, 『좌전』, 『국어』, 『사기』, 『내칙』, 『예기』, 『모시』, 『소학언해』, 『오륜행실』 등 수많은 고전에서 모아 언해한 책으로 6권 6책의 필사본이다.

이 책의 체재는 다른 언해본보다 매우 특이하다. 원문의 한자 하나하나마다 아래에 일일이 한글로 새김[釋]과 음(音)을 달되, 새김과 음도 규범적인 것이 아니라 문맥에 따라 다르게 달고 있는 점과, 한문 본문 부분의 구두점과 난상에 입겿(토)를 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책은 1908년경에 다시 보완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원본은 현재 전하지 않고, 그 뒤 후손 또는 제자가 다시 필사한 두 이본이 전한다.

이번에 우리 회에서 펴내는 이 역주본의 저본은 홍윤표 교수의 소장본을 사용하였으며, 연구자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이 책 뒤에 부록으로 싣게 되어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을 올리는 바이다.

우리 회에서 이 책을 역주·간행함에 있어, 역주를 맡아주신 경북대학교 이상규 교수님과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주신 교육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 모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2014년 9월 15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된 것은 한글을 깨우침은 물론, 당시 오로지 한문으로만 이루어진 수많은 문헌과 학습서를 백성들이 쉽게 배워 익힐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으며 또한 그 문해 효과는 이미 조선시대에서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대마다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는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세기 훈민정음 창제 때부터 20세기까지 다양하게 변천한 우리말을, 전문가 이외의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이 읽어 해독하기란 여간 어려운 실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며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리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국어 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역주 여소학언해』의 저본으로는 홍윤표 교수의 소장본(필사본)으로 하였고 뒤에 영인을 실었다.

(2) 이 책의 편집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새김원문·언해문, 현대어 풀이·옛말과 용어 주해’의 차례로 조판하였으며, 원전과 비교하여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각 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권(卷), 장(張), 앞쪽[ㄱ]·뒤쪽[ㄴ]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보기〉

여소학 1권 2장 앞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正발을졍 矣1:2ㄱ어조의니라

여소학 1권 2장 뒤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1:2ㄴ에 왈 람이 운 거시 읍스면

(3) 현대말로 옮기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하는 데 기준을 두었다.

(4) 띄어쓰기는, 한자와 새김·음을 한 묶음으로 하고, 원문 줄마다 윗면에 적어놓은 입겿(토)을 문장 안에 넣어 연결하였다. 그리고 언해문은 현대문법에 따라 띄어 썼다.

(5) 이 책의 원문은 모두 새김[釋]과 독음을 한자 옆에 적었는데, 한자의 새김 표기가 당시의 해석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므로, 모두 전수 조사 방식으로 찾아보기에 모아 기록하였다. 또한 언해문의 옛말도 전수 조사 방식으로 모두 찾을 수 있도록 배열하였다.

(6) 한자 원문과 언해문은 네모틀에 넣어서, 현대문 풀이·주석과 구별하였다.

(7) 찾아보기의 배열 순서는 맞춤법에 따랐다.

『여소학언해』 해제

이상규 (경북대학교 교수)

1. 『여소학』 문헌 해제

『여소학』은 판본이 아니라 필사본이다. 이본은 3종류로 알려져 있는데 원필사본과 두 가지 이본이 있다. 현재 원필사본은 소실되었고(그 을 즈니 화예 와더라) 등초본 2종은 학계에 알려져 있다.

먼저 원필사본은 호산(壺山) 박문호(朴文鎬) 주001)

<정의>호산(壺山) 박문호(朴文鎬, 1846~1918)는 조선 말기 경학자이면서 문인이다. 본관은 영해이고, 자는 경모(景模), 호는 호산(壺山) 또는 풍산(楓山)이다. 주요 저술로 경전 주석서인 『칠서상설』과 『여소학언해』가 있다. 특히 그가 지은 『논어집주상설((論語集注詳說)』은 널리 알려져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 회북면 눌곡리에 풍림정사에서 후학을 지도하였다.
가 고종 19년(1882)에 부녀자들에게 필요한 글을 모아 언해한 6권 6책의 필사본 부녀자용 교육서이다. 호산은 헌종 12년(1846) 3월 1일에 충북 회인군(懷仁郡) 눌곡리(訥谷里)에서 태어났다. 서울을 비롯한 여러 곳에 다닌 적은 있지만 주로 눌곡리에서 생활하였다. 그의 문집인 『호산집(壺山集)』의 부록 권1에 나오는 연보에 임오년(37세 때) 4월 조에 ‘여소학성(女小學成)’이라 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책이 1882년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주002)
<풀이>홍윤표, 『여소학(女小學)』, 해제, 홍문각 영인본.

호산이 이 책을 쓴 동기에 대해,

“집 뎨 칠팔셰예 언문을 강 통야 익히넌 거시 허탄 쇼셜이라 움과 괴이 닐이 규문에 하관이냐 고 이젼 셩현의 말심얼 뫼와 조고마치 얼 만드러 리치고 출가할 졔롱의 너허 보더니 근친 시에 그 을 즈니 화예 와더라”

라고 하여, 자기 집 매제가 7, 8세에 언문을 익힌 후 허탄한 소설이나 읽고 있으니 새롭게 성현의 말씀을 모아,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기록했던 책을 매제의 혼사 때 농에 넣어 보냈는데, 근친 왔을 때 물어보니 화재로 타버렸다고 했다는 것이다.

또 이 책을 언해한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 에 언문이 잇스니 그 글 지으시니 셩인이라 부인과 어린 희도 울만 니 로 침에도 가히 통할 거시라 그 글로 경셔를 번역야 부인덜노 우게 엿더니 셰샹이 리고 시쇽이 무너저셔 이젼 법이  어둡더라 부귀가 부인덜언 너머 편야 샤치 풍쇽만 날노 셩고 간난니 치산에 골몰야 언문얼 겨를치 못더라”

언문의 유용성을 인정하고 한글 소설 따위가 아닌 경서와 사서를 번역하여 부인들로 하여금 배우게 함으로써 시속의 풍화를 교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으로, “그 말과 그 닐이 경서에 잇고 긔예 잇넌지라 두루 외와셔 이 얼 만드러 녀의게 주노라”라고 하여 책을 만든 과정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한문 대문을 한자 한 글자마다 훈과 음을 밝히고, 구두점을 붉은색으로 찍은 다음, 난상에 한글 구결을 표시하고 있다. 그 다음 단락별 언해문을 제시하고 있어 다른 판본류 언해 방식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이본은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호산의 1차 친필본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그의 후손이 필사한 등사본으로 두 이본만이 남아 있다. 하나는 1987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출판한 『호산집』의 제4책에 영인되어 있다. 이 자료는 『여소학』을 저본으로 하여 등사한 것으로 호산의 후손이 현재 소장하고 있다.

또 하나는 홍윤표 교수의 소장본으로 홍문각에서 영인본으로 간행한 것이 있다. 홍윤표 교수는 이 두 이본이 거의 차이가 없으며, 필체까지도 동일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홍윤표 소장본은 한문 원문에 주서(朱書)로 점을 찍어 놓고, 그 난상에 한글로 구결을 써 놓았는데 비하여, 아세아문화사 영인본은 그러한 좌점(左點)과 구결이 없다는 점일 뿐이다.

책을 언제 누가 썼는가? 두 가지 등사본은 그 필사 연대가 각각 다르다. 아세아문화사 영인본은 1915년에 필사한 것으로 보이고, 홍윤표 소장본은 1906년에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홍윤표 교수 소장본의 〈여소학 끝에 쓰는 글〉에는, “병오 모츈 길일에 긔록노라(병오년(1906) 3월 길일에 기록하노라.)”라고 하고, 〈발문〉에는, “무신년(1908) 맹하(4월) 망조에 또 기록하노라.”라고 하였다. 〈글자의 훈이 같은 동음이의어 한자 고찰〉에서는 “임신년(1932) 7월 로봉 64세 늙은이가 옮겨 씀”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그 후에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등사의 기록이 『여소학』 본문의 등사는, “병오년(1906) 모춘(3월)”에 이루어졌고, 발문은 2년 뒤인 “무신년(1908) 맹하(4월)에 또 기록하노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본문 뒤편에 〈자훈방언동이고(字訓方言同異考)〉에서는, “임신년(1932) 7월 로봉 64세 늙은이가 옮겨 씀”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글을 쓴 ‘노봉’이라는 호를 가진 이가 호산과의 관계는 불확실하나 그 후손으로 보인다. 이 책의 최종 등사 시기는 “임신년(1932) 7월”이나 『여소학』 본문의 등사는 “병오년(1906) 모춘(3월)”에 이루어졌으며, 발문은 본문을 등사한 2년 뒤인 “무신(1908)년 맹하(4월)”이라고 할 수 있다. 곧 호산 박문호의 초고 필사 연대는 임오년(1882)이고, 이를 다시 재서한 것은 병오년(1906)이며, 후발을 쓴 것은 무신년(1908)이다. 그 후 노봉(魯峯)이라는 이가 발문을 덧붙여 정서한 것은 임신년(1932)이다.

홍윤표 소장본은 책 크기가 30.4cm×20.8cm이고, 반엽 광곽은 25cm× 16.5cm, 판심 어미는 없고 장차만 판심의 하단에 쓰여 있다. 무계 10행 22자. 모두 6책 328장으로 되어 있다. 제1책의 앞에 ‘제사(題辭), 목록’이 있고, 권1의 본문이 이어진다. 제6책의 뒷부분에 ‘여소학발(女小學跋)’과 ‘후발(後跋)’, 그리고 ‘자훈방언동이고(字訓方言同異考)’가 들어 있다.

그 편찬 형식은 매우 특이하여 앞에 원문인 한자를 쓰고, 그 한자 하나하나의 아래에 일일이 모두 한글로 훈과 음을 달고, 그 원문의 다음에 한글로 언해를 하였다. 원문에는 한자와 그 훈음을 달았지만, 언해문은 순수하게 한글로만 썼다. 이와 같은 형식은 동경대학본 『백련초해』와 거의 동일한 형식이 되는 셈이다. 이와 같은 형식의 언해 방식은 대개 부녀자를 대상으로 한 문헌에서 흔히 발견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에는 한자음만을 달아 놓는 것이 일반적인데(예컨대 『여훈언해』 등), 이 책은 한자 하나하나에 모두 석음을 달고 있어서 매우 특징적이다. 그런데 그 석음도 규범적인 석음을 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맥에 따라 다르게 달고 있는 점이 특히 주목된다.

이 책에 인용된 문헌은 ‘『주역(周易)』,『좌전(左傳)』,『국어(國語)』,『사기(史記)』,『내훈(內訓)』,『예기(禮記)』,『여계(女誡)』,『소학집해(小學集解)』,『모시(毛詩)』,『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소학언해(小學諺解)』,『오륜행실(五倫行實)』,『안씨가훈(安氏家訓)』,『논어(論語)』’ 등 고거제서(考據諸書)가 대단히 많다.

본고는 홍윤표 교수 소장본을 대상으로 하였다. 등사본인 관계로 오자나 오서가 엄청나게 많이 나타나 어학서로서의 가치는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여성 교육서로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주요한 자료이다.

2. 어문학적 특징

『여소학』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교체기에 등사된 것이지만 실재로는 19세기 후반 고종 19년(1882)에 호산의 표기법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충청 방언의 화자가 쓴 관계로 충청 방언의 요소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 책에 쓰인 한글 표기는 19세기 말의 충청도 회인 지역어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한글로 표기되어 있는 한자의 석음과 언해문은 19세기 말의 충북 방언을 반영하고 있어서, 국어사적인 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2.1 표기법상의 특징

첫째, 표기법이 분철표기로 정착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과도분철표기 현상과 더불어 문법의식의 확대로 형태소 재분석 표기법이 많이 나타난다.

일음을/이름을(제사1ㄱ)(2:33ㄱ), 올은/옳은(1:14ㄴ)(2:8ㄴ), 은/빠른(1:22ㄱ), 안즐안/앉으란(2:15ㄴ), 할우넌/하루는(2:38ㄴ).

형태소 경계 곧 곡용이나 굴절의 환경에서 과도 분철 표기형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어간의 기본형을 유지하려는 의도의 재분석 표기도 많이 나타난다.

직히여(2:7ㄱ), 식히면(2:19ㄴ), 족하를(2:20ㄱ), 끗희(4:24ㄴ), 것치(4:6ㄱ), 식혀(4:26ㄱ), 닷코(4:41ㄱ), 엽헐(4:41ㄱ), 맛흔(5:14ㄱ), 겻희(5:20ㄱ), 직힐세(5:43ㄴ)

분철의식과 함께 문법적 표기 의식의 발로로 재분석 표기형이 다량으로 나타나고 있는 표기법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둘째, 어말 ‘ㅅ’과 ‘ㄷ’은 거의 ‘ㅅ’ 표기로 통일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밧지/받지(1:15ㄱ), 낫슬/낯을(1:18ㄴ), 뻣고/뻗고(1:20ㄴ), 듯도/듣도(1:23ㄱ), 겻희서/곁에서(1:40ㄱ), 돗설/돝을(2:13ㄱ), 갓게/같게(3:2ㄴ), 밧세/밭에(5:24ㄱ)

위의 예에서처럼 어말 ‘ㄷ’과 ‘ㅅ’은 대부분 ‘ㅅ’으로 통일되었으며 ‘밧세[田]’처럼 어간 말음이 ‘ㅅ’으로 재구조화된 충청도 방언의 특징도 드러난다.

셋째, 자음동화 표기가 표기법에 반영되어 있다.

빅기(1:20ㄱ), 옹겨(1:27ㄱ), 낭겨(1:27ㄱ), 익게(1:29ㄴ), 성기고(1:39ㄴ), 빅기지(2:31ㄱ), 쪽껴서(5:35ㄴ)

어말 정지음은 ‘t+k 〉 k+k’, ‘m+k 〉 ŋ+k’와 같은 연구개 자음화 현상이 뚜렷하다. 그리고 [+obstruent] 자음은 [+sonorant]자음으로 동화하는 위계를 유지하고 있다. 자음동화를 그대로 음소론적 표기를 하면서 변자음화가 보인다.(‘쪽겨서, 씩기고, 코’ 따위)

넷째, 어말자음군의 단순화 현상은 현재의 충청도 방언의 현상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익되/읽되(1:12ㄴ), 밥지/밟지(1:20ㄴ)(2:32ㄱ), 발끼를/밟기를(1:23ㄱ), 극지/긁지(1:28ㄱ), 말꼬/맑고(2:7ㄱ), 담께/닮게(2:15ㄱ), 박지/밝지(3:4ㄴ), 측이/칡이(4:26ㄴ), 북히며/붉히며(5:42ㄴ), 말근/맑은(5:42ㄴ)

‘ㄺ’은 ‘ㄱ’과 ‘ㄹ’로 실현되고 있다. 중부 방언과 남부 방언이 교체하는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ㄼ’은 ‘ㅂ’으로 ‘ㄻ’은 ‘ㅁ’으로 실현되고 있다.

다섯째, o〉u 표기가 널리 확산되어 있다. 현재 중부 방언에서도 o〉u 표기는 확산 중에 있는 것인데, 19세기 말 이미 이러한 현상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서루(2:8ㄱ), 계우(2:15ㄴ), 한부루(4:58ㄱ), 함부루(4:32ㄴ) 루(5:12ㄴ), 도적랴구(5:14ㄱ), 루넌(3:22ㄴ), 일굽(5:20ㄱ)

2.2 음운 체계와 음운 현상

먼저 음운 체계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모음 체계에서 ‘으:어’의 대립이 무너져 있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은/는’과 ‘을/를’이 ‘언/넌’과 ‘얼/럴’로 표기된 예들이 매우 많이 보인다.

‘어:’은 예외 없이 ‘으:’로 표기되는데 장모음 ‘어’가 고모음 ‘으’로 상승되는 충청도 방언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중세어에서 상성조의 ‘어:’는 ‘으:’로 상승되었으며, 이를 표기법에 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계집〉기집’과 같은 ‘에〉이’ 현상과 ‘오〉우’ 현상이 통합적으로 모음 체계의 재조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원순모음화 현상이 나타나며 표기법상 의고적인, 곧 원순모음화에 이탈하는 예들도 나타난다.

어둡더라(제사:2ㄱ), 알움온(1:29ㄴ), 압푸더니(1:38ㄴ), 시푼(1:26ㄴ), 시푼(2:2ㄱ), 무면(1:40ㄴ), 베푸니(2:16ㄴ), 물(2:25ㄴ), 절문이(2:29ㄱ), 우룸으로(3:42ㄴ), 노푸니(4:14ㄱ), 분(4:44ㄱ), 무룹에(4:44ㄱ), 시무고(5:11ㄱ), 가풀(5:28ㄱ), 구술(5:29ㄱ), 푸지(5:32ㄴ)

원순모음화 현상은 어휘부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곡용이나 활용의 환경인 형태소 경계에까지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움라우트 현상도 보이며, ㅣ-모음 순행동화도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듸리여(1:8ㄴ),(2:2ㄴ), 듸리되(2:44ㄴ), 지픵이(1:27ㄱ), 길(1:30ㄴ), 기지(1:30ㄴ), 기니라(1:37ㄴ), 기럴(1:37ㄴ), 기씩(2:9ㄴ), 든(2:15ㄱ), 겨떠니(2:22ㄱ), 듸럽히니(2:34ㄱ), 끼리요(2:37ㄴ), 두루이(4:42ㄴ), 키니(5:19ㄴ), 오비(5:21ㄱ), 뵈일만치(5:33ㄴ), 듸럽피지(5:39ㄱ)

움라우트 현상은 개재자음 [+coronal]자음인 ‘ㄹ’이 있어도 이 현상이 적용되고 있다. 음운 환경에 별 구애를 받지 않고 확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넷째, 전설모음화 현상도 나타나며 아울러 과도 교정형이 많이 나타난다. 곧 전설모음화 현상은 치찰음 ‘ㅅ’, ‘ㅈ’, ‘ㅊ’과 모음 ‘으’가 직접 결합하면, 모음 ‘으’가 전부화 모음 ‘이’로 교체되는데, 그 역으로 ‘이’가 아닌 원래대로 ‘으’로 되돌리는 과도 교정형이 대량으로 나타난다. 19세기 후반부터 생겨난 이 현상은 음운 현상의 단순한 정착 과정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말심(1:7ㄴ)(2:3ㄴ), 반찜(1:21ㄴ), 거만시럽고(1:21ㄴ), 덕시럽고(1:22ㄴ), 기치기럴(1:29ㄴ), 거시리지(1:32ㄴ), 변덕시럽기도(1:37ㄱ), 침도(2:6ㄱ), 시린(2:31ㄴ), 시린(2:35ㄱ), 질기던(4:2ㄴ), 못하여씨면(4:3ㄴ), 시리넌(5:4ㄱ), 시려도(5:32ㄴ), 질기니(5:22ㄴ), 심얼(5:30ㄴ), 씨러지니(5:35ㄱ)

위의 예처럼 전부모음화는 어휘 내부뿐만 아니라 곡용이나 활용과 접사와 같은 문법 형태와 그 경계의 환경에까지 확대된 음운현상이다.

발즈고(1:2ㄱ), 리츠니(1:2ㄴ), 넘츠게(1:20ㄱ), 즈기럴(1:24ㄴ), 스려지(1:24ㄴ), 슬어고 (1:36ㄱ), 즈지(1:37ㄱ), 츠지(1:38ㄴ), 곤츠지(2:5ㄴ), 츠거던(2:14ㄴ), 츠며(2:19ㄱ), 즈게(2:28ㄴ), 미츠지(2:30ㄱ), 떠러즈면(4:3ㄴ), 측이(4:26ㄴ), 즌(4:30ㄴ), 이즈게(4:34ㄱ), 해츠랴(5:17ㄴ), 즈니(5:20ㄴ)

위의 예처럼 ㄷ-구개음화 결과 ‘디-〉지-’가 과도 교정에 의해 ‘디-〉지-〉즈-’로 바뀐 예들을 비롯한, 전부모음화에 역행하는 과도 교정형이 대량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사회언어학적 요인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사대부 층에서는 ㄷ-, ㄱ-구개음화형이나 전설모음화형을 소위 ‘뭇찌다’라고 하여 ‘상스러운 말씨’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과도 교정형이 많이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다섯째, ‘ㄷ’ 구개음화가 보이며(‘갓치, 그치지’ 등), ‘ㄱ’과 ‘ㅎ’ 구개음화도 보인다.

치(1:19ㄴ), 쥐즙고(2:3ㄴ), 끗철(4:42ㄱ)

집흔(1:31ㄱ), 지로(4:14ㄱ), 짓듸리여(5:34ㄴ)

심얼(1:35ㄱ), 심써(2:36ㄴ), 세려써(2:39ㄱ), 심이(5:20ㄱ)

길겁게(1:36ㄱ), 김성과(4:59ㄱ), 산김성에(4:5ㄴ), 기니고(5:3ㄴ), 기럼길노(1:34ㄴ)

위의 예에서처럼 ㄷ-구개음화와 ㄱ-구개음화, ㅎ-구개음화형이 보인다. 그와 더불어 ㄱ-구개음화의 과도 교정형이 많이 나타나는 것 역시 전설모음화와 같은 사회언어학적 요인의 결과가 아닌가 판단한다.

2.3 문법적 특징

근대 국어에서 문장의 종류와 구성 성분은 현대국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몇 가지 구성 성분의 형태나 기능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가령 주격조사 ‘가’가 중세국어 말에 등장하여 근대국어를 지나며 점차 세력을 넓혀 갔으며, 관형격 ‘ㅅ’은 관형어적 기능이 축소되면서 오늘날 합성어 형성에서 사이시옷 역할 정도로 남게 되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격조사가 대단히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었다. 특히 격조사의 기능이 흩으러져 있는 모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부인덜로(제사 2ㄱ), 혼일노(3:1ㄴ)”의 예에서처럼, ‘-로’가 여격의 기능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금슈에 갓갑기로(1:2ㄴ)”, “늑 터도”에서 처격 ‘-에’가 공동격 ‘-와’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처격은 ‘-에’와 ‘-의’가 혼용되고 있다.

례의를 둘 이 잇니라(1:1ㄱ)

럴 주도 말며(1:21ㄱ)

적장얼(5:36ㄴ)

위의 예처럼 대격 ‘-를’이 주격이나 여격 등의 기능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보조사 ‘-꺼지’, ‘-도’ 등이 실현되고 있어 현대 충청 방언과 일맥 상통하고 있다. 접속어미 가운데 의도를 나타내는 ‘-려면’에 대응되는 ‘-면’이 실현되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라고 꼽을 수 있다.

문장의 종결형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평서문 어미가 ‘-니라’에서 ‘-니다’로 바뀌어 가는 양상을 보이고, 의문문 어미 가운데 ‘-다’는 축소되고, ‘-ㄴ가’와 ‘-냐’가 활발해졌다. 부정문은 아직도 ‘NP+아니-’의 구조를 보이는 다양한 표현이 나타나며, 부정문에서만 쓰이게 된 ‘-디’는 점차 구개음화한 ‘-지’로 바뀌어 갔다.

명사화 어미로 ‘-음’은 줄어들고, ‘-기’가 늘어나는데, 특히 ‘-음’ 명사화 표현 대신에 ‘~것’ 보문화 구문의 사용이 크게 늘었다. 인용의 보문소라고 할 ‘-고’는 근대국어 후기에 형성되었다.

사동법과 피동법을 각각 담당하는 사동사와 피동사는 그 생산성이 줄고, 간접 사동의 ‘-게 다’와 간접 피동의 ‘어지다’ 형은 사용을 확대해 나갔다. 시제는 새로운 체계를 이루었다. 즉 근대국어 초부터 현재형의 ‘--’가 ‘--’으로 바뀌고 과거형 ‘-엇-’의 쓰임이 늘며, 근대국어 후기에 미래 시제 ‘-겟-’이 형성되어, 새로운 형태의 시제 형태소를 갖추었다. 이들로 인하여 서법과의 관련성이 줄고 시제 중심적 성격의 문법 범주를 형성하게 되었다. 높임법에서는, 객체 높임은 특수한 몇 개의 단어 표현으로 축소되고, ‘--’이 객체 높임의 경계를 넘어 높임법의 모든 하위 범주로 기능을 넓혀 가는 변화를 겪어 현재에 이른다. 선어말 어미 ‘-오/우-’는 기능 부담이 약화되어 점차 소멸해 갔다.

마지막으로, 부정법이나 사동 및 피동 그리고 명사화 구절의 형성 등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으로, 접미사 등에 의해 개별화된 형태론적 표현에서 점차 통사적 복문 구조를 가진 장형 구조로 발달해 나가는 방향성을 지적할 수 있다.

“덜에 우지 못”에서 ‘덜에’은 ‘못하다’의 주어이나 관형격으로 실현된 의사주격형이다. 이와 같이 다음은 관형절 주어의 실현 양상을 보이기 위해 먼저 그 실례를 살펴 보자.

[거쳐의 편기럴] 구지 말고(1:24ㄱ)

[식과 며느리의 효고 공경넌] 니(1:28ㄴ)

[효의 집흔 사랑하넌] 맘이 잇넌 니난(1:31ㄱ)

[효의 부모 섬기](1:36ㄱ)

[남의 만무이 보는] 거슬 막으며(2:16ㄱ)

[부모의 식 랑기럴](2:18ㄱ)

[샹의 만넌] 거슬 보면 울고(2:19ㄴ)

[의 능] 걸로 능치 못니계(2:31ㄴ)

[범민의 덕을 일넌] 거슨(2:35ㄴ)

[남의 탈복] 곳을 동쳔의 려 노코(3:48ㄴ)

위의 예처럼 관형절의 주어가 관형격 ‘-의’를 취하고 있다. 중세어에서는 관형절의 주어가 높임의 자질을 갖는 경우 관형격 ‘ㅅ’을 취하기도 하였다.

현대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중세 한국어의 관형절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거쳐의 편기럴] 구지 말고(1:24ㄱ)”에서 관형절에는 목적어가 결여되어 있는데, 관형절의 수식을 받는 명사가 관형절 안의 결여된 목적어와 동일한 대상을 가리킨다. 곧 ‘구하다’의 목적어는 ‘거쳐’가 된다. 이처럼 관형절의 수식을 받는 명사가 관형절 안의 결여된 성분과 동일한 관형절을 ‘관계 관형절’이라고 부른다.

“[샹의 만넌] 거슬 보면 울고(2:19ㄴ)”에서처럼 관형절의 수식을 받는 명사가 관형절 안의 결여된 주어와 동일하지 않다. 이처럼 관형절의 수식을 받는 명사가 관형절 안의 결여된 성분과 동일하지 않거나, 관형절에 결여된 성분이 없는 관형절을 ‘동격 관형절’이라고 부른다.

[널을 무거워] 운동지 못하(5:30ㄴ)

또한 관형절의 목적어가 주어인 위의 예문이 있다. “널이 무거워 운동(움직이지) 못하므로”와 같은 뜻인데 이는 단순한 오류인지 불확실하다.

2.4 어휘적 특징

어휘는 대체로 ‘쟝은(4:43ㄴ)(길이는)’과 같은 한자어가 대량으로 나타나는 점이 하나의 큰 특징이다. 그리고 충청도 특유의 방언적 현상도 나타난다.

‘잘은 적우리와(4:34ㄱ)(짧은 저고리와)’, ‘반편이(1:18ㄱ)(반푼수)’, ‘노주어(4:26ㄱ)(나누어 주어)’, ‘여(4:45ㄴ)(뽀개어)’, ‘적겨(4:49ㄱ)(젖히어)’, ‘남저지와(4:58ㄱ)(나머지와)’, ‘뭇되 어지(5:27ㄱ)(묻되 어찌)’와 같은 충청도 방언어휘가 반영되어 있다.

궁중어인 ‘수되(1:26ㄴ)(놓아)’, ‘수고(2:2ㄱ)(놓고, 올리고)’도 나타난다. 그리고 ‘어실미넌(1:30ㄱ)’, ‘허여즈미(5:16ㄱ)’와 같이 의미가 불확실한 예도 나타나며 ‘좀람한틔도(제사 1ㄱ), 일를(1:4ㄴ)’과 같이 희귀한 어휘도 보인다.

조어법에서 ‘-’가 생략되어 ‘닌(3:50ㄴ)(니{}ㄴ)’과 같은 어형이나 부사형의 축양형인 ‘너서(4:31ㄱ)(넣[入]-+-{어}서)’, ‘써(4:26ㄱ)(씻[洗]-+-어)’와 같은 축양형의 어휘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삽입모음을 넣어 음절을 늘인 ‘트되(4:16ㄴ)([如]-+-{으}-+-되), 이부되(입[着]-+-{으}-+-되)’와 같은 어형도 나타난다.

대명사 ‘어느’가 관형형어미 없이 그대로 관형어로도 사용되는데 ‘어는(4:59ㄱ)’과 같이 관형형어미 ‘-ㄴ’이 첨가된 예도 나타난다.

본문 대문의 한자에 대한 석과 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 대해 6권 뒤 〈발문〉에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얼 츰으로 졍셔 예 음과 톄에만 살피고 글 뜻선 시쇽얼 조서리 졍지 니 엿더니 이제 두 번 졍셔면서 샹고 즉 시 샹량 꺼시 읍지 못지라 메뎌 아국에 글 뜻설 젼혜 쇽담 방언얼 쓰고 혹 문도 써서 아담 것과 쇽된 거시 서로 석끼고 참과 그짓설 분간 쑤 업써서 닐과 물명언 르되 글 뜻선 튼 거시 허다 고로 이졔야 그 튼 거설 인야 조곰 르게 니 길도 긴영 질쟝와 일을실 이를지 일늘위 거튼류 그러허고 또 혹 억지로 르게 것도 잇쓰니 쓸뎨 써용 씰고와 날일난 날 늘샹 거튼류 그러허고 그 즁에 억지로 랴 여도 못넌 것도 또 잇쓰니”

위의 설명처럼 한자의 석(새김)은 시속을 쫓았으나, 동의적인 뜻을 가진 경우에는 임의로 바꾸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한자의 음도 시속을 따랐기 때문에, 현재의 음과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매우 많이 있다.

者적쟈(1:4ㄱ), 義글쯧의(1:6ㄱ), 曉알호(1:7ㄱ), 數조삭(1:8ㄱ), 后화후(1:8ㄱ), 諺시쇽말언(1:9ㄱ), 諺언문언(1:11ㄱ), 烈울렬(1:11ㄴ), 品픔수픔(1:13ㄱ), 季말계(1:16ㄴ), 論의론론(1:22ㄴ), 庭당뎡(1:24ㄴ)

위의 예에서처럼 글자의 자석이 시속을 쫓은 관계로 현대어와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解풀(1:4ㄱ), 曉알호(1:7ㄱ), 昭발글죠(1:8ㄱ), 召불을죠(1:8ㄱ), 便문듯변(1:12ㄴ), 革죽격(1:14ㄱ)

위의 예에서처럼 글자의 자음도 시속을 쫓은 관계로 현대어와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k/h의 대응은 당시 자서의 영향인지 실제 현실음의 반영인지는 불확실하다.

諺언무언(1:11ㄴ), 不안향불(1:16ㄱ)/不안햘불(1:16ㄱ), 陰그늘은(1:17ㄴ)

이 책은 필사본인 관계로 위의 예와 같은 오자가 매우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자료를 이용하는데 매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참고 문헌〉

안자추/김종완옮김, 『안씨가훈』, 푸른역사, 2008.

유향지음/이숙인 옮김, 『열녀전』, 글항아리, 2013.

이상규, 『여사서언해』 해제, 세종기념사업회, 2014.

이선영/이승희, 『내훈』, 채륜, 2011.

홍윤표, 『여소학』 해제, 홍문각 영인본, 1989.

주001)
<정의>호산(壺山) 박문호(朴文鎬, 1846~1918)는 조선 말기 경학자이면서 문인이다. 본관은 영해이고, 자는 경모(景模), 호는 호산(壺山) 또는 풍산(楓山)이다. 주요 저술로 경전 주석서인 『칠서상설』과 『여소학언해』가 있다. 특히 그가 지은 『논어집주상설((論語集注詳說)』은 널리 알려져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 회북면 눌곡리에 풍림정사에서 후학을 지도하였다.
주002)
<풀이>홍윤표, 『여소학(女小學)』, 해제, 홍문각 영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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