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1350) 고승 나옹화상이 중국 원나라 고승 몽산화상을 찾아 보고 그의 법어를 약록(略錄)하여 와서 엮은 《몽산법어약록》을 조선 세조 때 신미대사가 왕명을 받아 한글로 번역하여 펴낸 책.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달았다. 간행 연도는 미상이나 세조 13년(1467)이나 성종 3년(1472)으로 추정됨.
김무봉 교수
∙충북 추풍령 출생
∙동국대 학사․석사․박사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연구 실적〉
“중세국어의 동명사 연구”(1987)
“석보상절과 정음”(1991)
“고어사전 미수록어휘에 대하여”(1992)
“금강경언해 주해”(1993)
“금강경언해 해제”(1993)
“몽산화상법어약록 언해의 국어사적 고찰”(1993)
“금강경언해의 서지 및 어학적 고찰”(1993)
“몽산화상육도보설 언해본 해제”(1993)
“선종영가집언해 권 상에 대하여”(1995)
“반야심경언해의 국어학적 연구(문법)”(1995)
“중세국어의 선어말어미 ‘-ㅅ’에 대한 연구”(1996)
“조선 전기의 불경언해 사업”(1996)
“염불보권문의 국어학적 연구”(1996)
“상원사어첩 및 중창권선문의 국어사적 고찰”(1996)
“아미타경언해의 국어학적 연구”(1997)
“아미타경언해의 비교연구”(1997)
“고행록의 문법”(1998)
“세종문화사대계 1”(1998)
“15세기 국어사 자료 연구”(1999)
“한산 이씨 고행록의 어문학적 연구”(1999)
“아미타경언해(일산문고본)의 국어사적 고찰”(1999)
“조선시대 불전언해 연구”(1999)
“불교언어연구-국어사 자료와 관련하여”(2000)
“장수경언해 연구”(동악어문론집 36, 2000)
“장수경언해(동국대 도서관 소장본) 연구”(2001)
역주위원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 김무봉
윤문위원
편집위원
간행의 말씀
고어고전주해사업은 우리 회가 1990년에 착수, 1991년부터 그 성과물을 내고 있는 사업으로, 그동안 역주하여 간행한 문헌은 「석보상절」·「월인석보」·「능엄경언해」·「법화경언해」 등이다.
올해는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원각경언해」·「남명집언해」 등의 한글 고전을 역주 간행하기로 하였는데, 그 가운데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의 주해가 완료되어 이번에 간행하게 되었다.
「몽산화상법어약록(蒙山和尙法語略錄)」은 고려 말의 명승(名僧) 보제존자(普濟尊者)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충정왕 2년(1350) 여름에 중국 평강(平江) 휴휴암(休休庵)에 있던 원(元)나라 고승(高僧) 몽산화상(蒙山和尙) 덕이(德異)를 찾아보고 돌아왔는데, 나옹화상이 몽산화상의 법어(法語)를 약록(略錄)하여 온 것을 추후 엮은 책으로, 보통 「몽산법어약록(蒙山法語略錄)」이라 부른다.
「몽산화상법어약록」에 대한 언해는 조선 세조 때 명승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가 왕명을 받들어 한글로 한자 밑에 동국정운 표기 형식의 음을 달고, 입겿(토)을 달고, 또 역해(譯解)하였으며, 월인석보식의 비점형(批點形) 방점을 한글 글자의 왼쪽에 찍었다. 한글 글자의 자형은 「홍무정운역훈」 및 「월인석보」의 자형과 비슷하면서도 「석보상절」 및 「월인천강지곡」의 자형을 다소 유지하고 있다고 하겠으나, 홀소리〔中聲〕 「·」자는 「월인석보」의 자형과 같이 권점(圈點)에서 비점형의 사선(斜線)으로 되었다.
이 법어(法語)는 본문인 몽산화상의 법어 6편(篇)과 나옹화상의 법어 1편을 합해 모두 7편으로 엮어졌는데, 끝에 김수온(金守溫)의 발(跋)이 붙어 있다. 이 책은 여러번 중간(重刊) 및 복각(覆刻)되어 세상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런데 초판의 간행 연대는 간기가 없어 확실히 말할 수는 없으나, 글자의 사용(순경음 과 후음 ᅙ), 방점이 찍힌 입겿, 한자 독음의 위치 등이 「월인석보」와 같으므로 세조 초 내지 중기경의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어의 음운 변천과 우리 말 연구 및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문헌이다.
현존 원간본(후쇄본 포함)은 거의 성종 3년(1472)의 인출본이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동국대학교 도서관, 이겸로(李謙魯)님, 고려대학교 만송문고, 성암고서박물관, 조명기(趙明基)님이 소장하고 있다.
이번에 우리 회에서 역주하여 내는 책인 「역주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는 우리 회 소장본을 대본으로 하여 역주한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을 우리 회에서 역주하여 간행함에 있어 해제와 주해해주신 동국대학교 김무봉 교수님과 본 주해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인적자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책이 발간될 동안 여러모로 수고하여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02년 7월 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 6세기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 이외의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이 이를 읽어 해독하기란 여간 어려운 실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며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리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 국어 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갖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책은 보물 769호로 지정된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을 대본으로 하여 역주한 것이다.
(2) 이 책의 편집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한자원문·언해원문 띄어쓰기(방점은 줄임)·현대말풀이·옛말과 불교용어(고딕체) 주해’의 차례로 조판하였으며, 또 원전과 비교하여 찾아 보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각 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장(張)·앞 뒤 쪽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보기〉
제7장 앞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니
7ㄱ 이 …제9장 뒤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디라 近
9ㄴ世옛…
(3) 현대말로 옮기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하는 데 기준을 두었다.
(4) 현대말 풀이에서, 옛글의 구문(構文)과 다른 곳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보충한 말은 ( ) 안에 넣었다.
다만, 인용문 “……” 다음 생략된 인용동사는 여기에 따르지 않았다.
(5) 언해문 가운데 분명히 오각(誤刻)으로 보이는 것은 [ ] 안에 수정한 글자를 써넣었고, 협주(夾註) 표시 【 】는 [……]로, 주석부분은 〈……〉로 나타냈다.
(6) 찾아보기 배열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순 : ㄱㄲ ㄴᄔ ㄷㄸㄹ ㅁᄝㅂㅃᄢᄣᄩ ㅅㅆᄮ ㅇᅇ ᅙ ㅈㅉ ㅊ ㅋ ㅌ ㅍ ㅎ
② 중성순 : ㅏㅐㅑㅒㅓㅔㅕㅖㅗㅘㅙㅚㅛㆉㅜㅝㅞㅟㅠㆌㅡㅢㅣㆍㆎ
③ 종성순 : ㄱ ㄴ ㄷㄹ ᄚㅁ ㅯ ㅰ ㅂ ㅄ ㅅ ㅺ ㅼ ㅿ ㆁ ㅈ ㅊ ㅋ ㅌ ㅍ ㅎ
(7) 원문의 장 앞쪽은 ‘ㄱ’, 뒤쪽은 ‘ㄴ’으로 표시하였다.
김무봉(金武峰)
목 차
Ⅰ. 서언
Ⅱ. 간행 연도 추정
Ⅲ. 현전본 및 원간본 비정
Ⅳ. 어학적 고찰
Ⅴ. 원간본과 중간본(송광사본)의 비교
Ⅵ. 결어
I. 서언
〈몽법〉은 선(禪) 수행자(修行者)의 자세를 설(說)한 불가(佛家)의 선(禪) 수행 지침서인데, 이 책 속에는 몽산화상의 법어 6편(示古原上人, 示覺圓上人, 示惟正上人, 示聰上人, 無字十節目, 休休庵主坐禪文)과 보제존자(普濟尊者) 나옹의 법어 1편(示覺悟禪人法語) 등 모두 7편의 법어가 실려 있다. 이 외에 중간본 중 일부에서
이 책은 원간본 계통의 판본 중 어느 것에서도 초인(初印)의 간기(刊記)를 볼 수 없어서 그 정확한 간행 연도는 미상이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언어 사실로 간행연도를 추정하기도 하고, 〈몽법〉 중간본에 합철된 〈사법어〉의 원간본 간행 연도인 1467년을 〈몽법〉 간년으로 다루기도 하였다.
주005)
그러나 언어 사실에만 비중을 두어 간행 연도를 추정한다면 언해 연대의 간행 연대가 서로 다른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고, 〈사법어〉와 합철된 〈목우자수심결〉의 간기에 보이는 「성화 3년(成化三年, 1467)」과 〈사법어〉 뒤에 누군가 붓으로 써놓은 간기(최현배:1942, 1961 고친판 참조)의 「성화 3년(成化三年, 1467)」만을 근거하여 〈몽법〉의 간년을 1467년으로 삼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이런 이유로 그 동안 행해진 간행 연도의 추정이나 원간본의 비정(比定), 그리고 언어 사실의 해명에 대해 새로운 논의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국어사 연구는 문헌에 수록된 언어뿐만 아니라 그 문헌의 판식 및 언해 체재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올바른 해명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 〈몽법〉이 가지는 국어사 자료로서의 위치와 가치를 구명하고자 한다. 제Ⅱ장에서는 체재 및 불교 용어의 한자음 표기에 근거한 간행 연도의 추정, 제Ⅲ장에서는 각 간본의 비교를 통한 원간본의 비정, 제Ⅳ장에서는 언어 사실에 대한 고찰로 〈몽법〉의 국어사적 가치 구명, 제Ⅴ장에서는 Ⅲ장에서의 논의로 밝혀진 원간본과 전면 개찬 중간본인 송광사본(1577년 간)과의 비교 연구 등의 방법으로 논의를 진행하겠다.
Ⅱ. 간행 연도 추정
〈몽법〉의 체재가 간경도감 판본의 그것과 일치한다고 하여 〈몽법〉을 간경도감본으로 단정한 경우가 많았으나, 우리는 몇 가지 점에서 이에 동의할 수 없다. 판식 및 체재만을 놓고 볼 때 〈몽법〉은 간경도감본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오히려 〈훈민정음언해〉나 〈월인석보〉 권두에 실린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의 서문
주006)
1) 〈몽법〉의 판심은 내향흑어미(內向黑魚尾)이고 행관(行款)은 유계(有界) 팔행(八行), 주(注) 쌍행(雙行)인데, 대자(大字)인 법어(法語)의 본문(本文)은 1행(行)이 17자(字)로 되어 있다. 법어의 본분에 한글 소자(小字)로 구결을 단 후, 행을 달리하여 1자(字) 공격(空格)을 두고 한자와 한글 중자(中字)로 언해를 하였다. 주목할 점은 한글로 된 구결에도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점 표시 방식은 〈훈민정음언해〉,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의 서문, 활자본 〈아미타경언해〉(?1461)
주007)
간경도감본은 쌍행인 한글 구결에 방점을 찍지 않았고, 언해문은 한자·한글 모두 소자(小字)로 되어 있다.
2) 한자는 법어 본문이나 언해문을 막론하고 글자마다 동국정운 한자음이 주음되어 있다. 이러한 주음 방식을 취한 정음 초기 문헌은 〈훈민정음언해〉,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의 서문 등이 있고, 활자본 〈아미타경언해〉나 간경도감본은 언해문의 한자에만 동국정운 한자음이 주음되어 있다.
3) 협주에 아무런 표시가 없다. 간경도감본은 대체로 협주의 시작과 끝에 흑어미(黑魚尾)가 놓인다. 협주에 아무런 표시가 없는 문헌은 〈훈민정음언해〉·〈석보상절〉·〈월인석보〉·활자본 〈아미타경언해〉 등이 있다.
4) 〈몽법〉은 본문이 끝나면 행을 달리하여 언해문이 시작된다. 그러나 간경도감본은 본문 바로 밑에 언해문이 이어지고 본문과 언해문 사이에는 O표시를 두었다. 〈몽법〉과 같은 형식을 취한 문헌은 〈훈민정음언해〉,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의 서문, 활자본 〈아미타경언해〉 등이 있다. 또 전(前) 이자(二者)는 본문 다음에 협주가 올 경우에도 본문과 협주 사이에 아무런 표시가 없으나 〈월인석보〉 서문의 경우에는 O표시가 있다.
주008)
5) 초기 불서 언해에서 간년 추정의 유력한 근거가 되는 불교 용어(안병희:1974, 1980 참조) 「阿難, 解脫, 藐, 般若」 중 〈몽법〉에는 「解脫」 한 단어만이 한 번(48ㄴ) 눈에 띈다. 「解脫」에서 「解」의 동국정운음은 몇 차례 변개가 있었다.
주009)
① ·〈석보 23:16ㄱ〉
② :갱〈월석 서:8ㄱ〉, 활자본〈아미타경언해:13ㄱ〉, 활자본〈능엄6:64ㄱ〉, 목판본〈능엄6:24ㄴ〉 cf.〈몽법:48ㄴ〉
③ :〈법화 6:17ㄴ〉 〈금강:25ㄱ〉
〈몽법〉 「28ㄱ, 49ㄴ, 57ㄱ」에서 다른 어휘를 구성하는 데 쓰인 「解」자의 동국정운음은 모두 「:」이다. 이는 「解脫」에서 「解」의 음이 의도적인 변개를 입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몽법〉의 간년 추정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몽법〉 1장 앞면 3행 역기(譯記)의 「譯解」에서 「解」의 주음이 다른 예와는 달리 「:갱」로 되어 있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解脫」에서 영향을 입은 듯하다.
위 1)-4)항을 살펴보면 훈민정음 창제 초기의 문헌에서도 오늘날과 같이 독자들의 독서 능률 제고를 위한 여러 방면에서의 시도가 눈에 띈다. 이러한 독서 능력의 고려는 판식 및 체재의 변개를 가져왔고, 이러한 변개가 간년 추정에 근거가 됨을 배제할 수 없다. 후술할 언어 사실 외에 체재만을 통해 〈몽법〉의 간년을 추정한다면 목판본인 〈몽법〉의 간행이 〈월인석보〉(1459)와는 비슷한 시기, 활자본 〈아미타경언해〉(?1461)나 간경도감본(1461이후)보다는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주010)
Ⅲ. 현전본 및 원간본 비정(比定)
현재 전해지는 〈몽법〉의 간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주011)
[갑류] 원간본이나 그 후쇄본으로 보이는 일군(一群).
[을류] 원간본의 복각본 일군(一群).
[병류] 원간본과 언어 사실은 같으나 체재를 달리한 개간(축쇄)본 일군(一群).
[정류] 체재는 [병류]와 비슷하나 언어 사실이 달라진 전면 개찬본 일군(一群).
[갑류] 원간본이나 원간본 계통 (〈사법어〉) 없음).
1) 동국대 도서관 소장본 (보물 767호. 역기 있음. 간기 없음)
2) 조명기·이겸로(보물768호)·세종대왕기념사업회(보물769호)·심재완 소장본(김수온 발 있음. 刊記: 成化 八年 「1472. 성종 3년」. 역기 없음)
3) 고려대 만송문고 소장본 (역기 중 ‘역해’ 삭제. 간기 없음)
4) 성암문고·천리대 도서관 소장본.
[갑류] 중 2)항의 책들은 끝에 갑인자(甲寅字)로 된 김수온의 발문이 있다. 그 내용 중에 「…板本所在模印…法語二百件…以經計者凡二十九秩…」이라고 한 점으로 보아 초쇄본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런데 1954년 통문관에서 이겸로씨 소장의 이 책을 영인 배포할 때, 발문 1장(간기가 있는 부분)이 낙장인 원본 그대로 간행하여, 간기가 있는 같은 판본의 다른 책이 출현하기까지 초간본으로 오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김수온 발문을 가지고 간행된 〈몽법〉에는 역기(譯記)가 삭제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의 시대 상황과 관련된다(안병희:1979 주 14, 박병채:1980 참조).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을 영인한 책(세종학연구2:1987)에는 역기가 뚜렷한데 이는 다른 판본의 것으로 보완한 때문이다.
주012)
〈甲類의 다른 판본〉
(30ㄴ) :이
(69ㄱ) 當··야
(70ㄴ) 아·니·면
(70ㄴ) :일리·라
[을류] 원간본의 복각본(간기 있음)
1) 유점사본(중종16, 1521년 간), 〈사법어〉 없음, 역기 있음.
동국대 도서관. 성균관대 도서관. 송석하 소장본.
2) 석륜암본(중종18, 1523년 간), 〈사법어〉 없음.
간송박물관 소장본.
3) 심원사본(중종20, 1525년 간) 〈사법어〉 있음, 역기 없음.
고려대 만송문고 소장본.
4) 중대사본(중종38, 1543년 간), 〈사법어〉있음.
연세대 도서관 소장본.
위 [을류]는 모두 지방 사찰에서 간행된 중간본인데 판본(板本)의 밑바탕을 어느 것으로 했느냐에 따라 역기 유무가 드러난다. 3), 4)항의 〈사법어〉는 〈목우자수심결〉에 합철된 것과는 달리 언해 체재가 바뀌어 있다. 〈목우〉의 것은 각편의 법어를 대문(大文)으로 나눈 후 언해하여 〈몽법〉과 체재를 같이 하였다. 다만 〈몽법〉과 달리 원문의 한자에는 한자음 주음이 없다.
[병류] 개각(축쇄)본 (판식 및 체재 바뀜)
1) 고운사본(중종12, 1517년 간), 성종조판(1472)의 중간(重刊), 역기란 없앰, 〈사법어〉 있음.
서울대 가람문고·고려대 화산문고·이병주 교수 소장본.
2) 빙발암본(중종30, 1535년 간), 역기란 없앰.
〈몽법〉 앞에 〈사법어〉가 있음. 1)항의 고운사본을 저본으로 한 복각본임.
고려대 만송문고 소장본.
위의 [병류]는 [갑류]·[을류]의 유계(有界) 팔행(8行)이 유계(有界) 7행으로 바뀌고 1장 앞면의 역기란은 없어졌다. 언해문은 소자(小字) 쌍행(雙行)으로 변개되면서 〈몽법〉 전71장(全71張)이 54장으로 줄어들었다.
[정류] 전면 개찬본
1) 송광사본(선조10년, 1577년 간), 현실한자음 주음, 체재는 [병류]와 유사하나 언어 사실은 바뀜, [〈사법어〉. 시각오선인법어. 〈몽법〉] 순으로 구성됨.
동국대 도서관·서울대 일사문고·국립도서관·고려대 도서관 소장본.
위 [정류]에 대해서는 Ⅴ장에서 상술할 것이다.
이상에서 〈몽법〉의 여러 간본을 고찰한 결과 어떤 판본에서도 원간본의 간기는 볼 수가 없다. 비슷한 시기에 간행된 활자본 〈아미타경언해〉나 활자본〈능엄경언해〉도 역시 간기가 없는데, 이는 간행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위의 책들이 간행될 당시에는 불서(佛書) 인행(印行)을 담당했던 출판 기관인 책방(冊房)이나 정음청(正音廳)이 폐지되어 불서 인행을 담당할 기관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주016)
이런 이유로 해서 비록 간기는 없다고 하더라도 역기와 김수온의 발문 유무(有無), 〈사법어〉와의 합철 여부 등을 검토하면 원간본의 체재를 갖추고 있는 유일본은 [갑류] 1)항의 동국대 도서관 소장본(貴.214.2-덕69ㅁ2)이다. 또한 [을류] 1)항은 동국대 도서관 소장본인 [갑류] 1)항의 복각본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갑류] 1)항의 〈몽법〉은 원간 초쇄본이거나 적어도 그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실제로 이 책은 방점 표시, 변란, 체재, 장정 등 모든 면에서 원간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제 우리는 [갑류] 1)항의 동국대 도서관 소장본을 〈몽법〉의 원간 완본으로 다루고자 한다.
Ⅳ. 어학적 고찰(考察)
중세국어의 언해서가 대부분 그러하듯 〈몽법〉도 원문에 충실한 번역, 이른바 축어역(逐語譯)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법어의 언해라는 특성, 본문과 언해문에 일일이 동국정운음을 주음해야 되는 번거로움, 독서의 편의
주017)
1) 境界及身心이 皆不同先已며 (4ㄴ) 주018)
방점 생략. 이하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원문의 방점을 생략한다.境界와 몸과 괘 다 녜 디 아니며
2) 捉敗佛祖 得人憎處야 (44ㄱ)
부텨와 祖師왜 사게 믜이샨 고 기자바
중세국어 자료 중 불경언해류는 소재언어(素材言語, source Language)가 불경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당시 언어 생활의 모습을 폭넓게 보여 주지는 못한다. 특히 〈몽법〉은 법어(法語)가 가지는 성격상 어미의 활용(活用)이 단조롭다. 대부분의 종결어미는 직설법이나 추측법 선어말어미와 결합한 평서형이고 간혹 의문형이 보일 뿐이다. 또 부정문은 일관되게 긴 부정문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다른 문헌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어휘가 몇몇 눈에 띄는데, 이것은 앞에서 말한대로 역해자가 한자어를 고유어로 바꾸려고 노력한 데서 결과된 것으로 보인다. 〈몽법〉의 표기법은 정음 창제 초기의 문헌, 특히 〈월인석보〉의 그것과 근사하다. 우선 그 표기법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1.
‘’은 훈민정음의 17자 초성체계에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해례(解例)〉 제자해(制字解)에서 순경음(脣輕音)으로 규정된 이후 〈해례〉·〈용가〉
주019)
1) 벽으로[礫](10ㄱ)
2) 조요미(23ㄴ), 비니[吐](31ㄱ) cf. 비와(능엄3:110ㄱ)
3) 갓가리라(4ㄴ,43ㄴ), 더러(5ㄴ), 누며(15ㄱ)
4) 두[眼皮](2ㄴ), 수(7ㄱ,24ㄱ), 더러디(46ㄴ)
5) 法(21ㄴ,33ㄴ) cf. 외-(27ㄴ,48ㄱ)
6) 가온(43ㄴ,64ㄴ) cf. 가(월석14:80ㄱ)/가온(석보6:31ㄱ)
니르와다(3ㄴ) cf. 니르다(석보23:54ㄴ)/니르와다(석보9:23ㄱ)
‘’의 쓰임은 체언, 용언 어간, 용언 활용형, 파생어 등에 두루 나타난다. 정음 초기 문헌 〈용가:98장, -〉에서 한 차례 용례가 보일 뿐 그 이후 단독으로 쓰임이 없는 ‘-’는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외-’ 또는 접미사로 ‘-’가 쓰였을 뿐이다. 6)의 ‘니르-/니르왇-’은 정음 초기 문헌부터 혼기되던 예인데 〈몽법〉에서는 ‘니르왇-’의 형태로 나타난다. ‘가’는 위의 용례 이외에는 모두 ‘가온’로 표기되었다.
2. ᅙ
‘ᅙ’은 훈민정음 초성체계에서는 후음(喉音)의 전청자(全淸字)로 영모(影母)에 해당하지만, 〈해례〉 용자례(用字例)에는 빠져 있다. 고유어 표기에서는 초성 뿐만 아니라 종성에서도 단독으로 쓰인 일이 없다. 주로 동국정운 한자음과 사이글자의 표기에 사용되었고, 고유어 표기에서는 동명사 어미 ‘-ㄹ’과 수의적으로 교체되던 ‘- ’에 사용되었다.
1) 그 갈히며(53ㄱ), 마디니라(58ㄱ), 제 보며(15ㄴ),
사(31ㄴ), 허 히미(5ㄴ)
2) 時節이니(10ㄱ), 三昧王(48ㄴ)
3) 起 (26ㄴ), 히니(10ㄴ)
4) 사롤 이(19ㄴ), 드롤 이(30ㄴ)
5) 이럴(2ㄱ), 從(6ㄴ)
6) 便論工夫홀디니라(33ㄱ), cf. 곧 工夫 닐옳디니라.
1)은 ‘동명사어미 + 아·설·순·치음의 전청자형’으로 표기된 것이다. 다만 후음만은 초성에 ‘ᅙ’이 쓰인 적이 없어 차청으로 대신했다. 이러한 표기는 〈법화〉, 〈금강〉 등에서 ‘ㄹ+아·설·순·치음의 전탁자형’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는데, 〈원각〉 이후에는 각자병서가 폐지되면서 ‘ㄹ+전청자형’형태로 통일을 이루었다.
2)는 ‘ ’의 후행요소가 한자인 경우이다.
3)에서 후행요소가 병서이면 ‘ㄹ’과 ‘ ’이 다 쓰였음을 알 수 있다.
4)는 후행요소가 불청불탁자인 경우 ‘ㄹ’이 쓰인 예이다.
5)는 동명사 어미 ‘ㄹ’과 의존명사 ‘’의 통합형 어미인데, ‘ ’같은 대당형이 없이 정음 초기 문헌부터 ‘-ㄹ’로만 표기되었다.
주020)
6)은 정음구결에서의 ‘ㄹ+전청자형’과 언해서에서의 ‘ +전청자형’으로 서로 다르게 표기된 예이다.
3. 초성병서
〈몽법〉은 ‘ +전청자형’ 표기가 일반화되어 각자병서는 제한적으로 쓰였을 뿐이다. 정음 초기 문헌에 쓰인 8가지(ㄲ ㄸ ㅃ ㅉ ㅆ ᅇ ᄔ) 중에서 3가지(ㅆ ᅇ)만 나타난다. 합용병서는 10가지( ᄮ : ᄩ : ᄢ ᄣ) 중 3가지(ᄮ ᄣ)가 나타나지 않는다.
3.1. 각자병서
1) ·[引](57ㄱ), 두르·[廻](22ㄴ), 도·[還](62ㄱ)
2) 믜··고·[憎處](19ㄴ) cf. 믜·이샨·고·(44ㄱ)
3) :말·(47ㄴ); 이럴·(6ㄴ), 從(6ㄴ)
4) 녯 廟:쏘뱃 香爐ㅣ(41ㄱ)
정음 초기 문헌에서 어두음 표기에 사용되었던 ‘ ㅆ’ 중 어두음에서의 ‘ㅆ’의 용례는 여기서 발견되지 않는다. 2)는 피동의 파생접미사와 결합된 것인데 같은 책에서 혼기되어 나타난다. 3)의 ‘이럴, 從’는 동명사 어미 ‘ㄹ’과 의존명사 ‘’의 통합형인데, 전술한 대로 정음 초기 문헌부터 ‘-ㄹ’로만 표기되었다. 동명사어미 ‘ㄹ’과 의존명사 ‘’의 통합형은 활자본 〈능엄〉 이후 정음 구결에서 동명사어미 ‘ㄹ+전청자형’으로 먼저 시행되어 ‘ㄹ+전탁자형’인 언해문과 불일치(不一致)를 보이다가 [佛問圓通실~부톄 圓通 무르실(활자본, 능엄 5:68ㄴ-69ㄱ) / 取正果실시~正果 取실씨 (활자본, 능엄 6:7ㄱ-7ㄴ)], 〈원각〉(1465) 이후에는 ‘ㄹ+전청자형’ 표기로 완전히 바뀌었다. 구결과 언해에서 동명사어미 ‘ㄹ’과 의존명사 ‘’ 통합형 표기의 통일을 이루게 된 것이다. 4)는 사이글자를 내려 쓴 표기이다.
3.2. 합용병서
다음은 〈몽법〉의 합용병서 목록이다. 한 어사에 곡용형이나 활용형이 여럿 있을 경우에는 대표적인 용례 하나만을 제시한다.
〈〉 ·메[夢](4ㄴ), [悟](10ㄱ), 馬祖·(31ㄱ)
··며[寤](42ㄴ), ··야[甦](59ㄱ).
〈〉 ·[又](3ㄴ), ·히·라[地](10ㄴ)
〈〉 ·디[急](8ㄴ)
〈ᄮ〉 없음.
〈ㅳ〉 ·드·로[意], ·러·펴[抖擻](24ㄱ)
·리·니, ·러디[開](24ㄱ)·긔[落](31ㄴ)
〈〉 ··디[用](14ㄴ), ··러·리런·댄[撥無](47ㄴ), -로·[以](48ㄴ).
〈〉 없음.
〈ᄩ〉 :(44ㄱ), ·딜·씨·니[拆](44ㄱ).
〈ᄢ〉 ··라[時](15ㄱ), ·디·며[沈](37ㄱ), ·리·고[包](67ㄴ).
〈ᄣ〉 없음.
합용병서 10가지 중 ‘ᄮ ’이 쓰이지 않는 것은 이들이 출현할 만한 어사가 없었기 때문이고, ‘ᄣ’이 올 수 있는 환경에서 ‘ᄢ’이 쓰인 것은 역해자의 개인적인 취향에서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4. 종성표기
4.1. 〈몽법〉의 종성 표기는 〈해례〉의 종성규정에 충실했다. ‘ㄱㄷㄴㅂㅁㅅㄹ’의 8종성 외에 어떤 받침도 쓰인 예가 없다. 간경도감본에서 ‘ㅅ’과 수의적으로 교체되던 ‘’이 여기서는 쓰이지 않았다.
주021)
1) 桃花ㅅ곳 보고(10ㄱ), 늣도 아니며(7ㄱ); 디 몯며(12ㄱ)
긋디 아니면(1ㄱ); 흗디 아니며(43ㄱ) 터럭 귿매나 이시면(12ㄴ)
2) 짓와 괴요매(1ㄴ)
4.2. ‘’을 받침으로 가진 명사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와 만나면 반드시 분철했다.
주022)
1) 양로(3ㄱ,62ㄱ,70ㄴ). cf. 양로(월석1:18ㄴ), 양로(월석7:2ㄱ).
양로(능엄4:90ㄴ).
2) 즁이(11ㄴ). cf.즁이라(월석1:18ㄴ), 즁이(능엄1:29ㄱ)
3) 죵이라(20ㄴ), 죵이어뇨(22ㄴ). cf.죠이(월석9:33ㄴ), 죵이(능엄9:100ㄱ)
이익섭(1991:34-35)에 의하면 모음 조사 앞에서의 분철은 〈석보〉에 등장하여 〈능엄〉에서 활발해지고 〈두언〉에서 정착 단계에 이른다고 하였다.
5. 사이글자
사이글자는 체언이 결합할 때 음성적 환경에 따라 체언 사이에 끼어드는 자음 글자인데 〈용가〉에서는 ‘ㄱㄷㅂㅅᅙ’의 6가지, 〈훈언〉에서는 〈용가〉의 ‘’대신 ‘’이 쓰여서 ‘ㄱㄷㅂㅅᅙ’의 6가지가 쓰였고, 〈석보〉에서는 ‘ㅅ’으로 통일되었으나, 〈용가〉·〈훈언〉의 잔형인 ‘ㄱ,ㄷ’, 〈월석〉에서는 ‘ㅅ’과 잔형인 ‘ㄱㄷㅂᅙ’ 등이 나타난다(정우영:1992),(고영근:1993).
〈몽법〉의 사이글자는 주로 ‘ㅅ’이 쓰였으나 ‘ᅙ’이나 ‘ㄷ’이 나타나기도 한다. ‘ᅙ’은 무종성자(無終聲字)인 ‘무(無)’자와 ‘자(字)’의 사이에만 나타나고 ‘ㄷ’은 동일한 환경에서 ‘ㅅ’과 혼기되었다.
1) 믌겨리리라(27ㄴ), 祖師ㅅ關(10ㄴ) 後ㅅ일(10ㄱ)
2) 無ᅙ字(11ㄴ, 13ㄴ, 15ㄱ, 54ㄱ)
3) 두(2ㄴ), 光明(53ㄴ)/ 시우(24ㄴ), (25ㄱ)
6. 주격과 서술격 표기
6.1. 주격조사의 쓰임은 언해문에서는 ‘이,ㅣ,∅’로 실현되나 구결문에서는 ‘이,ㅣ’만 실현된다. 체언의 발음이 /i, j/일 때도 ‘ㅣ’를 거듭 적었다.
1) 이: 各各 일후미 잇니(39ㄱ)/ 身心이 輕淸야(39ㄱ)
2) ㅣ: :제(⇐저+ㅣ) :보리·라(15ㄴ), :녜(⇐너+ㅣ) 어·듸이·셔(53ㄴ)/ 工夫ㅣ(38ㄱ)
3) ∅/ㅣ: 리 이 第一 니(40ㄴ), 그 害 나히 아니니라(45ㄱ)/ 澄秋野水ㅣ(27ㄴ), 一切疑碍ㅣ(29ㄴ), 如秋天相似時ㅣ(40ㄴ), 正眼開ㅣ(43ㄴ)
2)의 ‘제’와 ‘네’는 체언 말음이 /i, j/이외의 모음일 때 주격조사 ‘-ㅣ’와 결합하여 하강이중모음을 이룬 예이다. 체언 말음절이 평성(무점)이면 주격조사와 결합시 상성(2점)으로 성조가 바뀐다. 그러나 체언 말음절이 거성이거나 상성이면 성조에 아무런 변동도 일어나지 않는다.
6.2. 서술격 조사도 음운론적 조건에 따른 교체형이 대체로 주격조사와 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다만 위 3)의 뒷부분과 같은 환경(체언의 음절말음이 /i, j/로 끝날 때)에서 서술격조사는 주격조사와는 달리 ‘ㅣ-’가 생략되었다.
1) 이-: 三昧ㅅ일후미라(48ㄴ)/ 常光現前이 謂之禪이오(63ㄴ)
2) ㅣ-: 有ㅣ라 無ㅣ라(14ㄴ)/ 不搖ㅣ 謂之坐ㅣ오(64ㄱ)
3) ∅ -: 가지라(42ㄴ)/ 非眞心 發疑라(1ㄴ), 大悟ㅣ 近矣리니(27ㄴ),
極爲大害니라(47ㄱ), 骨髓시며(51ㄴ)
3) 에서 주격의 경우와는 달리 ‘ㅣ-’가 생략되어 나타난다. 이는 주격의 경우 ‘-ㅣ’가 생략되어 구절 표시가 없어지면 문맥 파악이 늦어지고 가독성이 낮아지는 것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서술격의 경우는 ‘ㅣ-’가 생략되더라도 활용어미가 있기 때문에 능히 구절 표시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수(髓)’에 서술격어간 ‘ㅣ-’가 없는 것으로 보아 당시 동국정운음의 반영을 엿볼 수 있다.
7. 희귀어
〈몽법〉에는 다른 문헌에서 용례를 찾을 수 없는 희귀어가 더러 눈에 띈다. 이는 한자어를 고유어로 바꾸려는 노력에서 결과된 것으로 역해자의 언어 수행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대부분 고어 사전에 수록되어 있으나 미진한 부분에 설명을 보탠다.
1) ·하·다
〈동사〉 급박하다. 급하다. 다가 미 가면(若用心이 急면)〈7ㄴ〉
〈구급방: 상24, 하79〉에 부사 ‘가기[卒](갑자기)’가 보이고 신간 증보(新刊增補)〈삼략직해: 상 31〉에 ‘급박며 가고[急刻고]’가 보인다. 또 〈정속언해:3〉에 ‘가[顚沛之頃]’이 쓰인 점으로 보아 용례는 드물지만 ‘급하다’의 의미를 가진 말임을 알 수 있다. 어기(語基)는 ‘가’으로 생각된다.
2) ·대·수
〈명사〉 대숲 벽으로 대수 툔 소리예(10ㄱ)
〈월인 8: 99)와 〈법화1:155〉 등에 보이는 ‘대숲’과 역시 앞의 〈월석〉과 같은 장에 보이는 ‘대수ㅎ’의 변이형으로 생각된다.
3) :비·다
〈동사〉 뱉다 곧 혀 비니 (便吐舌니)〈31ㄱ〉
‘:비왙·다’의 고형(古形)이나 다른 용례는 문증(文證)되지 않는다.
4) 살·기잡·다
〈동사〉 옭아매다. 옭아 잡다 사게 믜이샨 고 기자바 (捉敗得人憎處야)〈44ㄱ〉
〈몽법〉이외의 다른 용례는 없으나 〈법어:2〉에서 같은 원문에 대한 풀이로 ‘사게 믜 고 올자보리니’가 있는 것으로 봐서 위의 풀이가 타당할 것 같다.
5) ·서의·히
〈부사〉 성기게. 엉성하게 서의히 디위 야 [淡一上야]〈38ㄴ〉
〈몽법:16ㄴ〉에 ‘서의호’이 있고 ‘서의-’의 활용형이 산견되는 점으로 보아 파생어임을 알 수 있다.
6) ·쇠·뷔
〈명사〉 쇠비 쇠뷔라 야 디 몯리며 (不得作鐵掃箒야 用이며)〈14ㄴ〉
·쇠(鐵)와 ·뷔(箒)의 합성어이다. 이러한 유(類)의 합성어로는 쇠붑[鍾]〈석보6:38〉, 쇠(鐵船)〈금삼2:2〉가 있다.
7)
〈부사〉 설설(절절) 活潑潑 흐르는 믌겨레 비췬 비츨 닐온 마리니(43ㄱ)
‘’은 위 문장에서의 쓰임으로 미루어 힘차게 흐르는 물결을 표현한 의태어로 생각되는데 다른 용례는 보이지 않는다.
8) 올긔
〈명사〉 올가미 趙州의 올긔 자바 (捉敗趙州야)〈12ㄱ〉
〈법어:2〉에 보이는 ‘올잡-’의 어기 ‘올’의 변이형으로 생각된다.
9) 저·즈리·다
〈동사〉 점쳐 헤아리다(짐작하다. 재다) 혜아리며 저즈리디 말며 (不要思量卜度며)〈28ㄴ〉
10) 족
〈명사〉 조각. 쪽 조기 뮈여 (則動肉團心야)〈7ㄴ〉
‘’의 변이형으로 보이는데 유일한 용례이다.
11) ·저·즐·다
〈동사〉 저지레하다. 저즈로미 俗子ㅣ 야 〈作爲似俗子야〉(47ㄴ〉
〈고어사전〉·〈이조어사전〉에는 ‘저즈르다’를 기본형으로 하였으나 〈66ㄱ〉의 ‘저즈로’로 보나 ‘저즐다’와의 관련성으로 보나 ‘저즐다’로 해야 할 것이다. 〈우리말큰사전〉에는 ‘저즐다’이다.
12) 흐워기
〈부사〉 흡족히. 두텁게 흐워기 디위 고(濃一上)〈38ㄴ〉
‘흐웍-’에서 온 파생부사이다.
13) ···다
〈형용사〉 한결같다 話頭ㅣ 면 〈話頭ㅣ 純一면)〈69ㄴ〉
‘다’〈소언5:97〉의 고형(古形)인데 〈고어사전〉·〈이조어사전〉·〈우리말큰사전〉에는 기본형을 모두 ‘다’로 하였다. 그러나 파생부사 ‘티’가 널리 쓰인 점으로 보아 ‘다’로 해야 될 것 같다.
8. 기타
〈몽법〉은 인출 과정에서 고도의 정확성을 기한 듯 위에서 본 대로 표기법은 대체로 일관된 규칙을 유지하고 있다. 또 전(全) 71장 중 뚜렷하게 오류로 보이는 부분은 (59ㄴ)의 두 곳뿐으로
주023)
모음조화는 대체로 지켜졌으나 언해문의 조사에서 양성모음의 출현이 우세하다. 특히 ‘ ’이 그러하고 한자어 어간 뒤에서 두드러진다.
1) 衲僧(62ㄴ: 구결문 衲僧은); 뎌(29ㄱ), 境界(5ㄴ);
定(25ㄴ); 어듸(13ㄴ), 話頭(2ㄴ)
어간 ‘-’와 어미의 결합에서 어미의 초성이 ‘ㄱ, ㄷ’으로 시작되면 반드시 축약형으로 실현되었다.
2) 녯 聖人냇 보라 보미 맛당컨뎡(20ㄱ)
定 貪코(25ㄴ:구결문 貪定고)
아티 아니호리라(26ㄱ)
話頭 擧티 아니야도(4ㄱ)
장형사동을 만드는 보조적 연결어미의 사용례는 얼마 되지 않으나 수의적 교체형 ‘-긔’와 ‘-게’가 함께 실현되었다.
주024)
3) 護持야 샹녜 닛게 야(9ㄱ)
러디긔 우리틸씨라(31ㄴ)
여격 표시어 ‘/의그’의 쓰임은 보이지 않고 모두 ‘/의게’로 나타난다.
주025)
4) 모 게 穿鑿히 求티 말며(28ㄴ)
곧 常 무릐게 디리라(47ㄱ)
명사 ‘막다·히/막:대’ 중에서 ‘막다·히(51ㄴ,62ㄴ)’만 쓰였고, 부사 ‘반·기/반·시’ 중 ‘반기(4ㄱ,34ㄱ)’만 쓰인 점도 주목할 만하다.
또 진리의 문답에 쓰이는 꾸짖는 소리 「엑!」[喝](31ㄴ,55ㄱ)과 얼결에 저절로 내는 소리 「화!」(18ㄴ,29ㄴ) 등의 감탄사도 보인다.
5) 喝고 니샤(55ㄱ)
문득 화논 소리예(18ㄴ)
Ⅴ. 원간본과 중간본(송광사본)의 비교
Ⅱ장에서 추정(推定)한 바와 같이 〈몽법〉 원간본의 간년을 1459년(?)이라고 하면 중간본(重刊本)인 송광사본(1577년 간)과는 약 110여 년 차이가 난다. 송광사본(松廣寺本)은 원간본(原刊本)과는 체재와 언어사실이 다른 전면 개찬본이다. 이 책은 임진란 직전 지방 사찰에서 간행된 국어사 자료
주026)
5.1. 송광사본 〈몽법〉은 앞 부분에 〈사법어〉와 나옹화상의 「시각오선인법어(示覺悟禪人法語)」가 있고, 그 뒤에 〈몽법〉이 합철되어 있다. 〈몽법〉 중 유일하게 나옹화상의 법어가 〈사법어〉 뒤에 옮겨져 장철된 것이다. 판심제는 다른 판본들과는 달리 〈사법어〉 부분은 「법(法)」, 〈몽법〉부분은 「육(六)」이라 되어 있다. 장차도 각각이다. 어미(魚尾)는 세화문어미(細花紋魚尾)가 주로 이용되었으나 간혹 흑어미도 보인다.
주028)
5.2. 그러면 송광사본 〈몽법〉의 언어 사실은 어떠한가. 원간본이 정음 초기의 표기법에 충실한 자료인데 비해 송광사본은 임진란 직전, 곧 16세기 후반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지방 사찰 간본으로서 간행지역의 방언형까지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두 판본의 언어 사실 비교는 15세기 중엽 국어에서 16세기 후기 국어로의 변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만 송광사본을 다룰 때에는 원간본의 언어가 그대로 옮겨진 점, 탈각이나 오각이 적지 않다는 점 등에 유의를 요한다. 원간본과 송광사본과의 차이를 몇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그러나 이 두 판본에서 언어 사실의 차이는 주로 표기법과 음운 변화에 국한되어 있고, 형태·어휘면에서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중간본은 대체로 원간본에서 많은 영향을 입기 때문이다.
1.
원간본의 ‘’은 송광사본에서는 예외 없이 ‘ㅂ’으로 바뀌었다. ‘’의 일반적인 변화는 ‘〉오/우,ㅇ’인데, 후자에서의 이러한 표기는 방언형의 반영으로 보인다. (이하 앞쪽은 원간본, 뒤쪽은 송광사본의 용례임.)
1) 으로(10ㄱ)
벽으로(7ㄴ) 2) 조요미(23ㄴ)
조요미(18ㄱ) 3) 도(17ㄱ)
도보(13ㄱ) 4) 수(24ㄱ)
수비(18ㄴ) 5) 法다(33ㄴ)
法다비(25ㄴ)
2. ᅙ
동명사어미 ‘-ㅭ’은 모두 ‘-ㄹ’로 바뀌었으며, 동국정운 한자음의 폐지로 한자음에서의 용례도 사라졌다. 다만 ‘무(無)’와 ‘자(字)’ 사이의 사이글자 ‘ᅙ’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는 원간본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1) 잡드디니(17ㄱ)
잡드롤디니(13ㄱ), 時節이니(10ㄱ)
時節이니(7ㄴ), 히니(10ㄴ)
갈 히니(8ㄱ) 2) (1ㄴ)
일(1ㄱ) 3) 無ᅙ字(11ㄴ)
無ᅙ字(9ㄱ)
3. 초성병서
각자병서는 모두 단일자형(單一字形)으로 바뀌었으나 합용병서는 그대로 표기되었다. 각자병서 중 ‘ㅆ’은 ‘-ㄹ’과 의존명사 ‘’의 통합형 ‘-ㄹ씨니’가 그대로 쓰인 예와 사이글자 ‘ㅅ’을 내려 쓴 예가 각각 한 차례 보인다.
1) 두르(22ㄴ)
두르혀(17ㄴ), 말(47ㄴ)
말(37ㄴ), 믜(19ㄴ)
믜인(15ㄱ) 2) 들씨니(30ㄴ)
들씨니(23ㄴ) cf.씨니(31ㄴ) 시니(24ㄱ) 녯 廟쏘뱃(41ㄱ)
녯 廟쏘뱃(32ㄱ) cf.氣韻이 소배 드러(44ㄱ→34ㄴ) 3) 며[寤](42ㄴ→33ㄱ), 히라[地](10ㄴ→8ㄱ),
디[急](8ㄴ→6ㄴ), 러디긔[落](31ㄴ→24ㄱ),
디[用](14ㄴ→11ㄴ), (44ㄱ→34ㄴ),
디며[沈](37ㄱ→28ㄴ).
4. 사이글자
원간본에 쓰였던 ‘ㄷㅅᅙ’중 ‘ㅅᅙ’은 그대로 쓰였으나 ‘ㄷ’은 쓰이지 않았다.
1) 眞實ㅅ疑心(1ㄱ→1ㄱ), 桃花ㅅ곳(10ㄱ→7ㄴ), 비치(43ㄱ→33ㄴ)
2) 無ᅙ字(15ㄱ→12ㄱ)
3) 시우(24ㄴ), 눈시우(19ㄱ)
그러나 구 구성의 속격 ‘ㅅ’중에는 쓰이지 않은 경우도 있다.
4) 햇(27ㄴ)
햇(21ㄱ)
5. ‘’, ‘’ 표기는 원간본의 모습 그대로 아무런 변화가 없다.
6. 한자음 표기
1) 원간본의 동국정운 한자음 표기에서 현실 한자음 표기로 바뀐 송광사본에서는 일모(日母)//자는 유모(喩母)/ㅇ/화하였으나, //이 그대로 쓰이기도 하고 혼기(混記)의 예도 곳곳에 보인다.
ㄱ. 若(1ㄴ)
약(1ㄱ), 汝(32ㄴ) 여(25ㄱ) ㄴ. 而(36ㄴ)
(28ㄱ), 日(51ㄱ) (40ㄴ)
각 법어 제목의 ‘인(人)’음이 ‘’ 또는 ‘인’으로 주음되고, (12ㄴ)의 ‘연(然)’자도 본문에서는 ‘’이고 언해문에서는 ‘연’으로 주음되었다. 이러한 혼기(混記)현상은 동국정운 한자음이 주음된 다른 판본에 비해 처음 시행된 현실 한자음 표기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으로, 현실 한자음 표기에서 통일된 표기 준칙이 마련되지 않은 때문으로 생각된다.
2) 전술(前述)한 Ⅳ장 6.2.에서 동국정운음에 의해 서술격 어간 ‘ㅣ-’가 생략된 용례가 있었는데 송광사본에서는 현실음의 반영으로 ‘ㅣ-’가 실현되었다.
ㄱ. 骨髓시며(51ㄴ)
3) 간년 추정의 근거가 되었던 ‘解脫(38ㄱ)’이 ‘·하·탈’로 주음되어 있다. ‘해탈(解脫)’에서 ‘해(解)’의 현실음은 한자음 표기에서 현실음이 실현된 초기의 문헌인 〈六祖 상:73ㄱ〉(1496년)과 〈眞言勸供:11ㄱ〉(1496) 이후 ‘:하’로 주음되어 왔다. 송광사본 〈몽법〉의 ‘·하’와 방점만 다를 뿐이다. 그러나 다른 어휘를 구성하는 데 쓰인 ‘解’의 音은 모두 ‘·’로 실현되었다. 여기서도 불교 용어의 한자음에 변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ㄱ. 學解··〈몽법:46ㄱ〉
7. 중철표기
중철표기의 예는 ‘ㅁ’에서 고유어와 한자어 각각 1회씩 나타난다.
1) 열 거르믈 거러(3ㄴ)
열 거름믈 거러(2ㄴ) 2) 信心(7ㄴ)
信心(6ㄱ)
1)의 예는 송광사본에 앞서 고운사본(1517)과 빙발암본(1535)에도 보인다.
8. 구개음화
지금까지 t구개음화가 반영된 이른 시기의 문헌으로 중간본(重刊本) 〈촌가구급방(村家救急方)〉(1571-1572)과 〈계초(誡初)〉(1577)가
주029)
1) 고유어 구개음화
ㄱ. 發논디〈원간본 몽법:1ㄴ〉
發논지〈송광사본 몽법:1ㄴ〉 2) 한자어 구개음화
ㄱ. 護持〈진권:19ㄱ〉호디
〈몽법:20ㄴ〉호디/〈몽법:14ㄱ〉호지 ㄴ. 直〈훈몽 하:29ㄱ〉딕
〈육조 중:4ㄱ〉딕 〈몽법:16ㄱ〉 딕/
〈몽법:9ㄱ〉직 ㄷ. 昏沈〈몽법:14ㄱ〉 혼팀/ 〈몽법:1ㄴ〉혼침
3) hyperurbanism의 예
ㄱ. 가지라(원간본 몽법:18ㄴ)
가디라(송광사본 몽법:14ㄱ) ㄴ. 正〈진권:10ㄱ〉
〈몽법:30ㄱ〉/ ㄷ. 靜〈진권:20ㄱ〉
〈몽법:33ㄱ〉 / 〈몽법:31ㄱ〉
Ⅵ. 결어
〈몽법〉은 그 언어 사실과 추정된 간행 연도가 서로 달라서 국어사 연구자들에게 풀리지 않는 몇 가지 과제를 남긴 중세 국어 자료의 하나다. 이런 과제가 상당 기간 미해결인 상태로 남아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원간본으로 보이는 간본에 간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부 중간본 〈몽법〉에 합철되어 있는 중간본 〈사법어〉와의 관련성을 확대 해석하여, 또 다른 〈사법어〉와 함께 묶인 원간본 〈목우자수심결〉의 간행 연도인 1467년을 원간본 〈몽법〉의 간행 연도로 추정하고, 〈목우〉의 간기에 명기된 간경도감을 〈몽법〉의 간행처로 단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단정의 결과 〈몽법〉의 언어 사실이 간경도감본의 그것에 앞서서 자료 이용에 문제가 생기고, 국어사 자료로서 〈몽법〉의 위치 설정에 새로운 논의가 요구되어 왔다. 우리는 언어 사실은 물론 언해 체재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간행 연도는 1459년경으로 추정하고, 여러 판본의 비교를 거쳐 동국대 도서관 소장본을 원간본으로 비정하였다. 그리고 원간본과 중간본인 송광사본(1577)을 비교하여 언어 사실의 변천을 살펴보았다.
[1] 〈몽법〉의 언해 체재는 〈훈언〉, 〈석보〉와 〈월석〉 서문의 그것과 근사하고 활자본 〈아미〉와는 부분적으로 일치하며, 활자본 〈능엄〉이나 간경도감본에 앞선다. 그 근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구결문의 한글로 된 구결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러한 방식을 취한 정음초기 문헌에는 〈훈언〉, 〈석보〉와 〈월석〉의 서문, 활자본 〈아미〉가 있고 간경도감본은 쌍형인 구결에 방점을 찍지 않았다. 또 방점이 찍혀 있는 한글 구결이 쌍행인 점은 〈월석〉 서문, 활자본 〈아미〉와 같다.
2) 한자는 법어 본문이나 언해문을 막론하고 글자마다 동국정운 한자음이 주음되어 있다. 이러한 주음 방식을 취한 정음 초기 문헌은 〈훈언〉, 〈석보〉와 〈월석〉의 서문이 있고, 활자본 〈아미〉와 간경도감본은 언해문의 한자에만 주음되어 있다.
3) 협주의 시작과 끝에 아무런 표시가 없다. 간경도감본은 협주의 시작과 끝에 흑어미(黑魚尾)가 놓인다. 협주에 아무런 표시가 없는 문헌에는 〈훈언〉, 〈석보〉, 〈월석〉,활자본 〈아미〉가 있다.
4) 언해문에 한글 중자(中字)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방식의 문헌에는 〈훈언〉, 〈석보〉와 〈월석〉의 서문, 활자본 〈아미〉가 있고, 간경도감본은 모두 소자(小字)로 되어 있다.
5) 본문이 끝나면 행을 달리하여 언해문이 시작된다. 간경도감본은 본문 바로 밑에 언해문이 이어지고 본문과 언해문 사이에 O표시가 있다. 〈몽법〉과 같은 형식의 문헌에는 앞의 네 책이 있다.
6) 초기 불경 언해에서 간년 추정의 유력한 근거가 되는 불교 용어 중 〈몽법〉에는 「해탈(解脫)」만이 씌였는데 ‘해(解)’의 동국정운음이 ‘:갱’로 되어 있다. 〈석보〉의 ‘·’나 〈법화〉·〈금강〉의 ‘:’와도 다르고 같은 책의 다른 어휘구성에 쓰인 ‘:’와도 다르게 주음된 것이다. 〈몽법〉과 같이 ‘:갱’로 주음된 문헌은 〈월석〉, 활자본〈아미〉, 활자본〈능엄〉, 목판본〈능엄〉 등이 있다.
위의 언해 체재에 근거하여 우리는 〈몽법〉이 〈월석〉(1459년)과는 비슷한 시기, 활자본 〈아미〉(?1461), 활자본 〈능엄〉(1461)이나 간경도감본(1461이후)보다는 이른 시기에 간행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2] 현전하는 각 판본을 비교하여 동국대 도서관 소장의 〈몽법〉(貴 214. 2-덕 69ㅁ 2)이 원간본이거나 적어도 그에 손색 없는 자료임을 확인하였다. 간행처는 교서관이며 간기가 없는 이유는 간행처와 관련된 것으로 보았다.
〈몽법〉 여러 판본 중 간기가 있는 복각본, 언해 체재를 달리한 개간본, 체재와 언어 사실을 달리한 전면 개찬본을 제외하면 원간본 계통만 남는다. 이번에는 원간본 계통의 책들을 역기(譯記) 유무(有無), 김수온(金守溫)의 발문(跋文)(1472년 간) 유무(有無) 등에 비추어 원간본과 그 후쇄본으로 나누고, 다시 장정, 변란, 표기 사실의 변화 유무, 방점의 정밀성 등을 고찰한 결과 동국대 도서관 소장본이 원간본이거나 적어도 원간본에 가장 가까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기가 없는 점으로 하여 확인할 길이 없는데, 이런 사정은 비슷한 시기에 간행된 활자본〈아미〉(?1461년)와 활자본〈능엄〉(1461)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에 착목하여 간기가 없는 이유를 위의 책들이 간행될 당시의 간행처와 관련시켜 해명해 보았다. 그 무렵에는 불서(佛書) 인행(印行)을 담당했던 책방(冊房)이나 정음청(正音廳) 같은 왕실(王室)의 출판기관이 폐지되어 간행처가 마땅치 않았을 것이고, 결국 국가 기관인 교서관(校書館)에서의 인행이 불가피하여 왕의 사례(師禮)를 받던 혜각존자(慧覺尊者)의 의지나 세조의 권위에 힘입어 인행(印行)을 달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신(儒臣)들의 항의를 피하기 위해 간기는 두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세 책의 간행 연도는 언해 체재나 언어 사실로 미루어 먼저 〈몽법〉(?1459)이 간행되고 이어서 활자본 〈아미〉, 활자본 〈능엄〉의 순으로 보인다.
[3] 〈몽법〉의 언해는 축어역에 충실하였으나 가능한 한 한자어를 고유어로 바꾸려고 노력한 흔적이 뚜렷하다. 언어 사실은 대체로 〈월석〉과 가깝다.
1) ‘’의 사용이 일반화되어 나타난다. 다만 〈용가:98장〉 이외에는 용례가 보이지 않는 ‘-’는 ‘외-’로 쓰였거나 접미사 ‘’가 보일 뿐이다. ‘’의 사용은 〈능엄〉 이후 거의 폐지되었다.
2) ‘ᅙ’은 동국정운 한자음과 사이글자의 표기에 사용되었고 고유어에서는 동명사어미 ‘-ㄹ’과 수의적으로 교체되던 ‘- ’에 사용되었다. ‘- ’은 ‘아·설·순·치음의 전청자형(全淸字形)’ 앞에서는 예외 없이 실현되고 후음에서는 초성에 ‘ᅙ’ 쓰인 적이 없어 차청인 ‘ㅎ’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후행하는 초성이 합용병서일 경우는 ‘-ㄹ’과 ‘- ’이 모두 나타나고 불청불탁자인 경우는 ‘-ㄹ’로만 실현된다. ‘- +전청자형’ 표기는 이후 문헌에서 ‘-ㄹ+전탁자형’, ‘-ㄹ+전청자형’ 표기로 혼기되다가 〈원각〉(1465) 이후 ‘-ㄹ+전청자형’표기로 통일된다. 또 동명사어미 ‘-ㄹ’과 의존명사 ‘’의 통합형은 ‘- ’같은 대당형이 없이 정음 초기 문헌부터 ‘-ㄹ’로만 표기되었는데, 여기서도 ‘-ㄹ’로 나타난다. 그러나 ‘-ㄹ’ 등의 통합형은 활자본 〈능엄〉(1461) 이후 정음 구결에서 ‘ㄹ+전청자형’으로 바뀌어 ‘ㄹ+전탁자형’인 언해문과 불일치를 보이다가 〈원각〉(1465)부터는 ‘ㄹ+전청자형’ 표기로 통합형 표기의 통일을 이루었다.
3) 초성병서는 ‘ +전청형’ 표기의 일반화로 각자병서에서는 그 쓰임이 한정적이다. 정음 초기 문헌에 쓰인 8가지 중 3가지 (ㅆ ᅇ)만 보이고, 합용병서는 10가지 중 7가지( ; ᄩ: ᄦ)가 쓰였다. ‘ᄮ ’이 쓰이지 않은 것은 출현할 만한 어사가 없었기 때문이고 ‘ᄣ’이 쓰이지 않은 것은 역해자 개인의 취향 때문으로 생각된다.
4) 종성표기는 〈해례〉의 종성 규정에 충실하여 8종성만이 쓰였고 ‘ㅅ’과 수의적으로 교체되던 ‘’은 출현 환경이 있음에도 실현되지 않았다.
5) ‘’을 받침으로 가진 가진 명사는 모음 조사와 만나면 반드시 분철했고, ‘’은 종성과 사이글자를 제외한 모든 출현 환경에 나타난다.
6) 사이글자는 ‘ㄷㅅᅙ’이 나타나나 주로 ‘ㅅ’이 쓰였다.
7) 주격조사는 언해문에서는 ‘이, ㅣ, ∅’로 실현되나 구결문에서는 ‘이, ㅣ’만 실현되었다. 구결문의 주격조사 표기에서 ‘i, j'로 끝나는 모음 뒤에도 ’-ㅣ‘가 실현된 것은 주격의 경우 ’-ㅣ‘가 생략되더라도 활용어미가 있기 때문에 능히 구절 표시 기능을 가지므로 굳이 ’ㅣ-‘를 적을 필요가 없어 이를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8) 서술격 조사는 구결문이나 언해문 모두 ‘이, ㅣ, ∅’로 실현되었다.
9) 모음조화는 대체로 지켜졌으나 언해문의 조사에서 양성모음의 출현이 우세하고, 어간 ‘-’와 어미의 결합에서 어미의 초성이 ‘ㄱ,ㄷ’으로 시작되면 반드시 축약형으로 실현되었다.
10) 장형사동을 만드는 보조적 연결어미는 ‘긔’와 ‘게’가 함께 쓰였고 여격표시는 모두 ‘/의게’가 쓰였다.
11) 특히 〈몽법〉에만 나타나는 희귀어가 상당히 보인다.
12) 명사 ‘막다히/막대’ 중 ‘막다히’만 쓰였고, 부사 ‘반기/반시’ 중 ‘반기’만 쓰였다.
[4] 중간본인 〈송광사본〉(1577)은 원간본과 110여 년의 차이를 두고 간행된 책인데, 체재는 원간본과 완전히 달라졌으나 언어 사실은 원간본의 언어가 그대로 옮겨진 것이 많고 탈각이나 오각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임진란 직전인 16세기 후반 국어의 모습은 간직하고 있고, 간행 지역의 방언형까지 제시하고 있어서 국어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1) 원간본의 ‘’은 모두 ‘ㅂ’으로 바뀌었다. ‘’의 일반적인 변화는 ‘〉오/우,ㅇ’인데 여기에서는 방언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2) 한자음은 동국정운 한자음의 폐지로 현실 한자음 주음으로 바뀌었으나 뚜렷한 표기 준칙이 없었기 때문인 듯 표기가 혼란하다. 일모(日母)//자는 대체로 유모(喩母)/ㅇ/화하였다.
3) ‘ᅙ’ 은 현실 한자음 주음으로 한자음 표기에서 폐지되었고, ‘- ’은 모두 ‘-ㄹ’로 바뀌었다. 다만 사이글자의 예는 남아 있는데 이는 원간본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4) 초성병서 중 각자병서는 한두 예를 제외하고는 모두 단일자형(單一字形)으로 바뀌었다. 합용병서는 그대로 씌었다.
5) 사이글자는 ‘ㅅ’으로 통일되었는데 ‘ᅙ’이 쓰인 예도 있다.(無ᅙ字).
6) ‘,’표기는 원간본의 모습 그대로 아무런 변화가 없다.
7) 한자어와 고유어에서 ‘ㅁ’중철 표기의 예가 나타난다.
8) 구개음화는 고유어에서는 하나의 예만이 발견되나 한자어는 상당히 두드러진다. 한자어의 구개음화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현실 한자음 초기 문헌인 〈진권〉(1496)과 〈육조〉(1496) 그리고 예산문고본 〈훈몽〉(1527) 등과 비교하는 방법을 취했다. 그런가 하면 ‘ㅈ’을 ‘ㄷ’으로 교정한 hyperurbanism의 예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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