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간이벽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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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5년(중종 20) 왕명에 의해 간행된 1권 1책의 의서

김문웅(金文雄)

∙1940년 경상남도 울주군 출생

∙경북대학교 학사, 석사

∙계명대학교 박사

∙한글학회 대구지회장 역임

∙국어사학회장 역임

∙한국어문학회장 역임

∙현재 대구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저서 및 논문〉

≪편입 대학국어≫(1977)

≪15세기 언해서의 구결 연구≫(1986)

≪역주 구급방언해 하≫(2004)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권3≫(2008)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권6≫(2008)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권7≫(2009)

“접두사화고”(1977)

“불완전명사의 어미화”(1979)

“「ᅙ」의 범주와 그 기능”(1981)

“‘-다가’류의 문법적 범주”(1982)

“근대 국어의 표기와 음운”(1984)

“근대 국어의 형태와 통사”(1987)

“옛 부정법의 형태에 대하여”(1991)

“한글 구결의 변천에 관한 연구”(1993)

“활자본 ≪능업경 언해≫의 국어학적 고찰”(1999)

“설총의 국어사적 고찰”(2001)

“구결 ‘’의 교체 현상에 대하여”(2003)

“방송 보도 문장의 오류 분석”(2004)

역주위원

  •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 김문웅

  • 교열·윤문·색인위원

  •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 박종국 홍현보
  • 편집위원

  • 위원장 : 박종국
  • 위원 : 강병식 김구진 김석득
  • 나일성 노원복 박병천
  • 오명준 이창림 이해철
  • 전상운 정태섭 차재경
  • 최기호 최홍식 한무희
  • 홍민표

역주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우리 회는 1990년 6월 “한글고전 역주 사업”의 첫발을 내디딘 이래로, 〈석보상절〉 권6·9·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그 성과물을 간행하여 왔다. 이제 우리 회는 올해로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을 추진한 지 스무 해가 되는 뜻깊은 해를 맞게 되었으니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한글 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 역주하여 간행한 문헌과 책수는 ≪석보상절≫ 2책, ≪월인석보≫ 8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10책, ≪남명집언해≫ 2책,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1책, ≪구급방언해≫ 2책, ≪금강경삼가해≫ 5책, ≪선종영가집언해≫ 2책, ≪육조법보단경언해≫ 3책, ≪구급간이방언해≫ 4책, ≪진언권공, 삼단시식문언해≫ 1책, ≪불설아미타경언해, 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묶어 1책 등 모두 53책이다.

그동안 정부의 지원에 굴곡이 심하여 애태울 때도 있었으나 우리 회의 굽히지 않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역주자의 노력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원동력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가장 깊은 정신은 두말할 나위 없이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이다. 그것은 세종의 철저한 애민정신과 자주정신이며 그 마음을 이어간 선각자들의 헌신적 노력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가 추진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은 15세기 문헌을 대부분 역주하고 16세기 문헌까지 역주하는 데 이르렀다. 올해는 ≪월인석보≫ 권23·25, ≪구급간이방언해≫ 권7, ≪반야심경언해≫, ≪목우자수심결·사법어 언해≫,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우마양저염역치료방·분문벽온역이해방≫, ≪언해 두창집요≫ 등 8책을 역주하여 간행할 계획이다.

≪신선태을자금단(神仙太乙紫金丹)≫은 이종준(李宗準)이 지어 1497년(연산군 3년)에 간행한 책으로 환약 자금단(紫金丹)의 약재와 제조법과 사용법에 대한 의서이고,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은 돌림병의 치료법과 예방법을 간단히 설명한 의서인데, 초간은 1525년(중종 20년)에 간행되었으나 전하지 않고 1578년(선조 11년)에 간행한 중간본이 전하며, ≪벽온신방(辟瘟新方)≫은 왕명에 따라 안경창(安景昌) 등이 편찬 언해해서 1653년(효종 4년)에 교서관(校書館)에서 간한 책으로, 돌림병 퇴치 방법을 기록한 의서이다.

이 책들은 의학사적 가치는 물론 국어학사적으로 볼 때에도 매우 중요시되는 자료이다.

이번에 역주한 ≪신선태을자금단≫은 성암고서박물관 소장본(1책 목판본)을, ≪간이벽온방≫은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을해자본)을, ≪벽온신방≫은 규장각 소장본(목판본)을 저본으로 하였다. 그리고 ≪간이벽온방≫과 ≪벽온신방≫은 홍문각에서 1984년 6월에 축소 영인 간행한 바 있다.

구급의 의방을 집성한 의서이다. ≪성종실록≫ 권제232, 성종 20년(1489) 음력 9월 21일(병자)조를 보면, 내의원에서 ≪구급간이방≫을 새로 편찬 완료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같은 달 26일(신사)조에 의하면, 성종이 이를 제도(諸道) 관찰사에게 글을 내리기를, “지금 ≪구급간이방≫을 보내니, 도착하는 즉시 개간(開刊)하여 인출해서 널리 펴라.” 하였다. 모두 8권 8책으로 되어 있는데, 현전본은 영본으로 권1, 2, 3, 6, 7의 복각된 중간본뿐으로 알려져 있다.

끝으로 이 한의서를 우리 회에서 역주 간행함에 있어, 이 책들을 역주해 주신 대구교육대학교 김문웅 명예교수님과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과학기술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 모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09년 12월 15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 16세기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 이외의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이 이를 읽어 해독하기란 여간 어려운 실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미어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리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국어 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역주본은 세 가지 책을 묶은 것이니, 원전의 분량이 적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간행 연대순으로 엮었으며 저본으로 삼은 자료를 부록으로 영인하여 붙였다.

(2) 이 책의 편집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한자 원문·언해 원문(방점은 없애고, 띄어쓰기함)·현대어 풀이·옛말과 용어 주해’의 차례로 조판하였으며, 또 원전과 비교하여 찾아보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각 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장(張)·앞[ㄱ]·뒤[ㄴ] 쪽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보기〉

제14장 앞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14ㄱ활셕  량과 한슈셕  과

제14장 뒤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셕듁화 14ㄴ여름  과 디허

(3) 현대말로 옮기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하는 데 기준을 두었다.

(4) 현대말 풀이에서, 옛글의 구문(構文)과 다른 곳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보충한 말은 〈 〉 안에 넣었다.

(5) 원문 가운데 두 줄로 된 협주는 편의대로 작은 글씨 한 줄로 이었으며, 한자 원문의 띄어쓰기는 원문대로 하였다.

(6) 찾아보기 배열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순 : ㄱ ㄲ ㄴ ᄔ ㄷ ㄸ ㄹ ㅁ ᄝ ㅂ ㅲ ㅳ ㅃ ㅄ ᄢ ᄣ ᄩ ㅸ ㅅ ㅺ ᄮ ㅼ ㅽ ㅆ ㅾ ㅿ ㅇ ᅇ ㆁ ᅙ ㅈ ㅉ ㅊ ㅋ ㅌ ㅍ ㅎ ㆅ

② 중성순 :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ㆉ ㅜ ㅝ ㅞ ㅟ ㅠ ㆌ ㅡ ㅢ ㅣ ㆍ ㆎ

③ 종성순 : ㄱ ㄴ ㄴㅅ ㄴㅈ ㄴㅎ ㄷ ㄹ ㄹㄱ ㄹㄷ ㄹㅁ ㄹㅂ ㄹㅅ ᄚ ㅁ ㅁㄱ ㅯ ㅰ ㅂ ㅄ ㅅ ㅺ ㅼ ㅿ ㆁ ㅈ ㅊ ㅋ ㅌ ㅍ ㅎ

≪간이 벽온방≫의 고찰

김문웅(대구교육대학교 명예교수)

Ⅰ. 서지적 고찰

1. 간행 경위

≪간이 벽온방(簡易辟瘟方)≫은 1525년(중종 20) 왕명에 의해 간행된 1권 1책의 의서(醫書)로서 표지를 제외하고 전체가 50쪽으로 되어 있다. 간행 배경에 대해서는 이 책의 맨 앞에 실려 있는 김희수(金希壽)의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조선 중종 19년(1524) 가을, 관서지방(평안도)에 전염병인 역질(疫疾)이 크게 퍼져 많은 백성들이 사망하게 되었고, 그 전염병은 이듬해 봄까지도 그칠 줄 모르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에 왕은 크게 걱정하여 약과 함께 의관을 파견하여 백성들을 구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면서 왕은 이에 그치지 않고 특별히 행 부호군(行副護軍) 김순몽(金順蒙), 예빈시 주부(禮賓寺主簿) 유영정(劉永貞), 전 내의원 정(前內醫院正) 박세거(朴世擧) 등에게 명하여 여러 의서에서 그 병에 대한 치료법과 대처하는 예방법을 가려 뽑아 한 책으로 편찬케 하였다. 그런 다음 한문 원문에 한글 번역을 붙여 중종 20년(1525)에 인출하여 반포케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간이 벽온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1525년에 간행된 초간본은 현재 전하지 않고, 중간본으로 보이는 1578년(선조 11)의 을해자본(乙亥字本)과 1613년(광해군 5)에 간행된 훈련도감자본(訓練都監字本)의 두 종류가 지금까지 전한다. 을해자본(1578)에는 내사기(內賜記)가 없는 고려대 도서관 소장본과, 내사기가 있는 고(故) 김완섭(金完燮) 소장본(현재는 고려대 만송김완섭문고에 소장)의 두 가지가 전하는데, 이 둘은 모든 면에서 동일하다. 다만 전자의 고려대 도서관 소장본은 비록 내사기가 떨어져 없지만 첫 장에 「선사지기(宣賜之記)」란 도장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책도 후자와 동일한 내사본이라 할 수 있다. 내사기는 “萬曆六年 正月 日 內賜行副護軍李仲梁簡易辟瘟方一件 云云”으로 되어 있어 을해자본의 간행 연대가 1578년(萬曆 六年)임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훈련도감자본은 을해자본의 중간(重刊)으로 보이는데 여기에도 1613년의 내사기와 함께 「선사지기」의 도장이 있고, 1525년에 쓴 김희수의 서문이 붙어 있다. 을해자본과 비교해 볼 때 훈련도감자본은 표기법에서 약간의 혼란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것은 몇 군데에 있는 ㅿ의 혼란(‘브’와 ‘브어’) 과 ㆁ의 혼란(‘’과 ‘병’)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 밖에 ‘’의 소실 예로서 ‘고올’( 〉올)이 나타난다. 이 판본은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번에 역주의 대상으로 삼은 판본은 고려대 도서관 소장의 을해자본으로 하였다. 이 판본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민족문화연구≫ 7호(1973)에 고 박병채 교수의 해제를 붙인 영인본이 수록되어 있는데다, 다시 1982년에 홍문각에서 홍윤표 교수의 해제를 붙여 영인한 바 있어 쉽게 접할 수 있어서이다.

여기서 잠시 ≪벽온방≫에 관련한 계통을 살펴보기로 한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13년 4월조에 보면,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이 언해한 ≪벽온방≫과 ≪창진방(瘡疹方)≫을 간행하기를 주청하는 기사에서 “≪벽온방≫은 세종조에 이미 이어(俚語)로 번역하여 중외(中外)에 반포하였으나 이제는 거의 없어져서 신(臣)이 언해를 붙이어 간행하였으며 …”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로써 조선 시대에 간행하였던 전염병 방역서(防疫書)의 계통은, 먼저 세종조에 간행하였다는 ≪벽온방≫에서부터 김안국이 언해한 ≪벽온방≫이 있었고, 그리고 중종 때 간행된 ≪간이 벽온방≫과 ≪분문 온역 이해방≫(1542)이 있다. 다음에 허준의≪신찬 벽온방≫(1613, 광해군5)이 간행되었는데, 이는 훈련도감자본의 ≪간이 벽온방≫이 인출된 시기에 새로운 벽온방서의 간행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 이후에 안경창(安景昌) 등이 편찬한 ≪벽온신방≫(1653, 효종4) 이 있다.

2. 체재 및 형태

이 책은 단권으로서 서명(書名)은 ≪간이 벽온방(簡易辟瘟方)≫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첫 부분은 김희수의 서문으로서 언해문을 포함하여 3장(張)에 걸쳐 있다. 서문 부분의 제목은 「簡易辟瘟方序」라 달고 있는데 비해 판심제는 「辟瘟方序」라 하고 있다. 서문이 끝난 다음부터 본문이 시작되는데, 이는 모두 22장이며 제목은 「簡易辟瘟方」으로 붙여 놓았고 여기도 판심제는 「辟瘟方」으로 되어 있다. 장차(張次)는 서문과 본문을 구분하여 서문이 1~3장, 본문은 1~22장으로 각각 차례를 붙여 놓았다. 책의 크기는 세로가 32cm, 가로가 20cm이고 사주쌍변(四周雙邊)이다. 반곽(半郭)의 크기는 세로가 22.2cm, 가로가 15.2cm로서 계선(界線)이 있으며 9행 17자씩이다. 주(註) 쌍행(雙行)이며 판심은 내향삼엽화문어미(內向三葉花紋魚尾)이다. 본문에서 한문은 매행 첫 간부터 쓰는 17자 배자(排字)를 하였고 언해문은 첫 간을 띄어 매행 16자를 배자하였다.

3. 내용

서문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의 간행 동기와 경위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본문은 실제로 필요한 내용으로서 역병(疫病, 전염성 열병)의 원인을 기술하고 이에 대처하는 처방법과 처방에 필요한 약의 제조와 복용 및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역병의 치료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약의 효능과 제조, 복용 또는 사용법에 관한 설명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약명을 차례로 들면, 소합향원(蘇合香元), 향소산(香蘇散), 십신탕(十神湯), 승마갈근탕(升麻葛根湯), 도소주(屠蘇酒), 형화환(螢火丸), 호두살귀원(虎頭殺鬼元), 신명산(神明散), 핍온단(逼瘟丹) 등이다. 이 중에서 소합향원, 향소산, 십신탕, 승마갈근탕, 도소주 등은 먹는 약이고, 형화환, 호두살귀원, 신명산 등은 몸에 메어달거나 차는 약이며, 핍온단은 불로 피우는 약이라 하였다. 그 밖에 석웅황(石雄黃), 솔잎, 고삼(苦蔘), 마늘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단일한 약재들의 효능과 복용법, 사용법에 대해서도 후반부에 설명하고 있다.

Ⅱ. 국어학적 고찰

1. 표기 및 음운

(1) 연철·분철

자음으로 끝나는 체언이나 용언 어간 다음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나 어미가 연결될 때, 앞의 자음 곧 종성을 그 뒤의 조사나 어미의 초성으로 내려 적는 이른바 연철(連綴) 표기법이 중세 국어의 정서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서법이 ≪간이 벽온방≫에서도 철저히 지켜지고 있지만 그것은 용언의 경우에만 해당되었다.

니러나(서 2ㄱ), 머그며(1ㄴ), 마라(1ㄴ), 주근(2ㄴ), 다마(4ㄱ), 시슨(5ㄱ),

디그라(5ㄱ), 마면(5ㄱ), 어더(12ㄴ), 디허(16ㄱ), 라(17ㄱ)

그러나 체언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체언과 조사를 각각 본래의 형태대로 적는 이른바 분철(分綴) 표기가 상당한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중에서도 한 가지 주목되는 점은 체언의 종성에 따라 분철이 우세한 경우와 연철이 우세한 경우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이다. 먼저 분철이 우세한 경우는 체언의 종성이 ㄱ, ㄴ, ㅁ, ㅂ일 때이다.(ㄷ 종성은 전체를 통해 예가 하나뿐이어서 제외하였다.)

 복애(6ㄱ), 가락으로(13ㄱ), 東녁으로(15ㄱ), 으로(15ㄴ), 잡약을(16ㄴ).

cf. 잘 저긔(5ㄱ), 팀 구글(15ㄴ), 올녀긔(21ㄱ).

긔운이(1ㄱ), 가문이(1ㄴ), 네 환(4ㄱ), 문을(6ㄴ), 닐굽 분이어든(6ㄴ), 세닐굽 번을(13ㄴ), 얼운이며(15ㄴ),  돈을(20ㄴ), 남진(21ㄱ).

cf. 남지(11ㄴ-12ㄱ), 얼우니며(18ㄴ).

밤이야(서 2ㄱ), 사이(1ㄴ), 기름을(5ㄱ), 죠 심으로(15ㄱ-ㄴ).

cf. 모매(11ㄱ), 일후믈(13ㄴ), 바(19ㄱ).

법은(2ㄴ), 서 홉을(16ㄴ), 겨집은(21ㄱ), 즙을(22ㄴ).

cf. 지븨(4ㄱ), 겨지븐(12ㄱ).

단, ㅁ종성이라도 동명사의 ㅁ에 모음의 조사가 연결되면 용언의 경우에서처럼 연철 표기만을 보여 주고 있다.

주구믈(서 2ㄱ), 니러나(2ㄴ), 泄호미(3ㄱ), 답답호(20ㄴ), 져구믈(21ㄱ), 로(22ㄱ).

종성에 쓰인 합용병서로는 사이ㅅ을 제외하고 ㄺ, ㄼ 만 나타난다. 그리고 ㄺ을 종성으로 하는 명사의 경우에도 모음의 조사 앞에서 분철을 보여 주고 있다.

굵게(6ㄱ),  울 예(13ㄴ), 여듧 돈(9ㄴ), 앏(19ㄱ), (9ㄴ), 수의(10ㄴ).

cf. 알(10ㄴ).

다음으로, 체언의 경우에도 연철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경우는 종성이 ㄹ, ㅅ일 때이다. 특히 ㅅ종성의 경우에는 단 하나의 분철 예도 찾아볼 수 없다.

이스리(1ㄴ), 므레(5ㄱ), 수우레(9ㄴ), 를(15ㄴ), 레(18ㄴ), 冬至ㅅ나래(19ㄱ), 프레(20ㄱ), 므레(21ㄱ), 눈므른(22ㄱ).

cf. 두 말을(4ㄱ), 시졀에(8ㄱ), 사발이어든(16ㄱ).

귓거싀(1ㄴ), 모딘 거시(2ㄴ), 귓거슬(10ㄴ), 오(13ㄱ), 블근 거스로(14ㄱ), 왼 거슬(17ㄱ).

그 밖에 ㆁ종성의 경우에는 이미 15세기부터 아랫 음절의 초성으로는 쓰이지 않고 종성의 위치에서만 쓰였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체언의 종성이 유기음인 경우에는 전적으로 연철 표기만을 보여 준다. 그것은 8종성 제한 규칙으로 유기음을 종성의 자리에 그대로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4ㄱ), 벼츼(10ㄴ), (11ㄱ), 니플(14ㄴ), (14ㄴ), 나(18ㄴ), 로(19ㄱ).

이와 같이 유기음 종성인 경우에도 분철 표기를 시도하기 위한 전 단계로 보이는 체언의 종성을 체언과 조사에 이중으로 표기하는 이른바 중철(重綴) 표기가 등장하고 있다.

닙플(15ㄱ), 앏(19ㄱ).

(2) 자음동화의 표기

‘폐쇄음+비음’이 ‘비음+비음’으로 동화되는 규칙이 있었지만 표기에는 이러한 자음동화를 반영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이 문헌에는 용언의 활용형에서 자음동화를 반영한 표기가 등장한다.

인(3ㄱ), 됸니라(19ㄴ). cf. 업니(9ㄴ), 돕니라(19ㄴ), 잇(21ㄴ).

(3) 유기음화

유기음화가 일어난 낱말로 ‘ㅎ〉ㅎ’을 들 수 있다. 반면에 ‘고ㅎ(鼻)’는 아직 유기음화하지 않았다.

왼 해(12ㄱ), 올 해(12ㄱ). cf.  구필 예(석보상절 6:2ㄱ).

고해(5ㄱ), 곳굼긔(5ㄱ).

(4) 병서자(並書字)

합용병서는 ㅅ계, ㅂ계, ㅄ계가 다 사용되고 있으나 ㅄ계의 ㅴ이 ㅺ으로 교체된 예가 있어 ㅴ은 폐지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각자병서는 ㅆ만이 나타난다.

와(11ㄴ), 레(18ㄴ). cf.  半 되(능엄경 언해 7:16ㄴ).

次字 써(13ㄱ), 블근 거스로 써(14ㄱ).

(5) ㅿ의 유지

ㅿ의 표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단 한자음 표기에서 ㅿ이 소멸된 예가 있고, ㅅ과 ㅿ을 혼동한 표기가 하나씩 발견된다.

二이十십(서 3ㄱ), 十십二이月월(9ㄴ). cf. 二: 두 (훈몽자회 하:33ㄴ).

소 리예(17ㄴ).

가면 사(富人, 6ㄴ).

위의 예에서 ‘리’는 ‘서리(間)’의 오기(誤記)로 보이고, ‘가면’은 ‘가면’의 방언형 표기로 보인다.

(6) 사이ㅅ

사이ㅅ의 표기가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는 종성에, 둘째는 초성에, 셋째는 중간에 각각 ㅅ이 위치하게 하는 표기 방식이다.

 가온(12ㄱ), 가온 가락(13ㄱ), 수릿날(16ㄴ).

밤(12ㄱ), 臘享 (22ㄱ).

疫癘ㅅ(1ㄴ), 시긔ㅅ(8ㄱ), 冬至ㅅ나래(19ㄱ), 甘草ㅅ(20ㄴ).

사이ㅅ과 관련하여 ‘關西ㅅ 다해’(1ㄴ-2ㄱ)라는 표기가 나오는데, 이는 명사 ‘ㅎ[地]’의 어두에 쓰인 ㅅ을 사이ㅅ으로 잘못 분석한 결과에 기인하는 것이다.

(7) 방점

방점이 모두 폐기되었다.

2. 문법

(1) 처격 조사 ‘-예’

중세 국어에서 처격을 나타내는 조사로는 ‘-애/에, -/의, -예’가 쓰였는데, 이 중에서 ‘-예’는 선행 체언의 말음이 i j 인 경우에 한해서 연결되었다. 물론 이 문헌에서도 이들 처격 조사가 그대로 사용되었지만 ‘-예’의 경우에는 정해진 환경이 아닌 데서 사용된 예가 나타난다.

와 밀와예(11ㄴ), 시예(13ㄱ).

(2) 접속 조사 ‘-와/과’

접속 조사는 체언의 음운 조건에 따라 체언의 끝소리가 모음인 경우에는 ‘-와’, 자음인 경우에는 ‘-과’가 쓰이지만, 체언의 끝소리가 ㄹ일 경우에는 현재와 달리 ‘-와’가 쓰인다. 그런데 이 문헌에서는 체언의 말음이 모음인 경우에도 ‘-과’가 쓰인 예가 있다.

누른 과(10ㄴ).

(3) 선어말 어미 ‘-오/우-’

중세 국어의 독특한 문법 체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의도법 선어말 어미 ‘-오/우-’의 사용이 이 문헌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오/우-’는 뒤에 연결되는 어말 어미에 따라 사용이 필수적인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 예로 어말 어미 중에 명사형 어미 ‘-ㅁ’, 설명법 어미 ‘-’, 의도법 어미 ‘-려’가 쓰일 경우에는 반드시 선어말 어미 ‘-오/우-’를 앞세움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 문헌에 와서는 이 경우에 ‘-오/우-’의 첨가가 동요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미 ‘-ㅁ’과 ‘-’ 앞에서도 ‘-오/우-’의 첨가가 실현되지 않은 예가 다음과 같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3ㄱ), 되(15ㄴ), 져그믈(16ㄴ).

cf. 머고(4ㄱ), 업게 호(20ㄴ), 져구믈(21ㄱ).

(4) 보조사 ‘-식’

15세기 국어에서 수사나 수와 관련된 체언에 연결되어 ‘-씩’의 의미를 가지는 보조사로 ‘-곰/옴’이 시용되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오면 ‘-곰/옴’이 쓰일 자리에 ‘-식’이 대신 등장하기 시작한다. ‘-식’은 ≪대명률 직해≫에 ‘-式’이 쓰인 것으로 보아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문법 형태이나 국어에서는 16세기가 되어서야 나타난다. 이 문헌에서도 ‘-식’의 사용이 활발한 가운데 ‘-곰/옴’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양상이다.

서 돈식(6ㄱ), 세 번식(6ㄴ), 너 돈식(8ㄴ),  술식(15ㄱ), 스므 낫식(15ㄱ),  붓식(15ㄴ).

 잔곰(4ㄴ),  환곰(12ㄱ), 세닐굽곰(18ㄴ).

(5) 세 : 서

수량을 나타내는 수사의 쓰임에서 ‘하나, 둘, 셋, 넷’과 같은 수사가 단위 명사 앞에 쓰일 때는 ‘한, 두, 세, 네’와 같이 형태 변이가 되면서 관형사가 된다. 이럴 경우에 특히 ‘셋’과 ‘넷’은 뒤에 오는 단위 명사에 따라 ‘세/서/석’과 ‘네/너/넉’으로 각각 분화되어 어느 한 가지 형태하고만 결합한다는 제약이 있다. 이러한 선택 제약 현상은 이 문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세 사(6ㄴ), 세 번식(6ㄴ, 15ㄱ), 세 (11ㄱ).

서 되(3ㄱ), 서 홉(16ㄴ, 20ㄴ).

석 자(3ㄱ), 석 셤(3ㄱ), 석 (20ㄱ).

네 환(4ㄱ), 네 모해(12ㄱ), 네 (14ㄱ), 네 를(15ㄴ).

너 돈식(8ㄴ).

넉 (7ㄴ, 12ㄴ).

그리고 ‘셋’이 다른 수와 복합해서 쓸 경우에는 ‘세’의 형태하고만 어울린다.

두세 번식(8ㄴ), 두세 소솜(9ㄴ), 세 닐굽 번(13ㄴ), 세 닐굽 나(18ㄴ).

이상과 같은 ‘세/서/석’ ‘네/너/넉’의 선택 제약 현상은 오늘날에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지금도 한편에선 ‘서 돈, 너 돈’을 ‘세 돈, 네 돈’ 식으로 말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 문헌에서도 이러한 제약 현상이 엄격하지는 않았음을 보여 주는 예가 발견된다.

서 돈식(6ㄱ), 세 돈식(16ㄱ).

동일한 단위 명사 ‘돈’ 앞에서 ‘서’와 ‘세’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

3. 어휘

(1) 소[松]

아래 예문에서 松間(송간)을 ‘소 리’로 번역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솔[松]’이 ‘소’의 형태로 쓰인 것이다. 다른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野人乾은 소 리예 치 됴니라(野人乾松間者佳, 17ㄱ~ㄴ).

(2) 벗기다

중세 국어에서 ‘脫(탈)’의 뜻으로 쓰인 동사에 ‘밧다’와 ‘벗다’가 유의어로 공존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쓰인 용례를 중심으로 검토해 보면 양자간에 미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즉, ‘밧다’는 “오란 밧고”(월인석보 1:5ㄴ)에서처럼 주로 구체적인 대상에 대하여 사용되었고, 더러는 “猜嫌을 바니라”(초간 두시언해 21:37ㄴ)에서와 같이 추상적인 대상일 때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벗다’는 “輪廻 벗디 몯”(월인석보 1:12ㄱ)에서 보듯이 추상적인 대상에 대해서만 쓰임으로써 ‘밧다’와 ‘벗다’사이에는 그 사용 영역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 대상이 ‘껍질[皮]’인 경우에 선택되는 동사는 ‘밧다’일까 ‘벗다’일까? 이를 위해 의서(醫書)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먼저, ≪구급방 언해≫(1466)에는 ‘밧다’가 사용되었다.

것 밧기고(去皮, 상:6ㄴ), 겁질 밧기니와(去皮, 하:2ㄱ).

다음으로, ≪구급 간이방≫(1489)에서도 역시 ‘밧다’로 쓰였다.

거플 밧기고(去皮, 2:2ㄱ), 거플 밧기니와(去皮, 2:7ㄴ), 거플 밧겨(去皮, 3:58ㄱ), 거플 밧겨(去殼, 6:46ㄱ).

위에서처럼 ≪구급 간이방≫에서도 ‘밧다’의 사용이 지배적인 가운데 ‘벗다’를 쓴 예도

나타난다.

거플 벗긴 닥나모(楮骨, 6:4ㄴ).

이는 ‘밧다’와 ‘벗다’ 사이에 사용 영역의 구분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후 이 문헌에 와서는 ‘去皮’가 2회 나타나는데 모두 ‘벗다’가 쓰였다. 이로 보아 이때는 ‘벗다’의 범위가 ‘밧다’의 의미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밧다’는 서서히 소멸의 운명에 접어들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겁질 벗겨(去皮, 간이 벽온방 12ㄴ).

(3) 주머니 : 

‘’에 대한 고어사전의 뜻풀이를 보면, ‘주머니’로 풀이하기도 하고 ‘자루’ 또는 ‘부대’로 풀이해 놓은 사전도 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 이 문헌의 한문 원문에 나타난 대응 한자를 살펴보기로 한다.

블근 (絳囊, 11ㄱ, 12ㄴ), 블근 깁(絳囊, 11ㄴ), 블근 (絳囊帶, 21ㄱ).

위의 용례에서 ‘’은 ‘囊’에 해당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囊’은 바로 오늘날의 주머니를 가리키는 한자이므로 그렇다면 ‘’은 곧 주머니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문헌에는 ‘주머니’도 동시에 쓰이고 있다. 다음의 예를 보자.

깁 주머니예(緋絹袋, 4ㄱ), 새 뵈 주머니(新布袋, 14ㄴ). cf. 깁 쟐(絳袋, 9ㄴ).

여기서 볼 때 당시의 ‘주머니’는 ‘囊’이 아니고 ‘袋’의 의미로 쓰였다. ‘袋’는 오늘날의 자루나 부대(負袋)를 뜻하는 한자이며, 더구나 ‘袋’를 ‘쟈’로 번역한 용례도 이 문헌에 나오므로 ‘袋’가 자루나 부대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따라서 당시의 ‘주머니’는 오늘날의 주머니와는 달리 자루나 부대를 의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주머니에 해당하는 말은 ‘’이었던 듯하다.

(4) 사

15세기에 三日을 뜻하는 명사는 ‘사’이었는데 이 문헌에는 ‘사’로 나타난다. ‘사〉사’은 15세기의 ‘아래, 열흘’ 등에 견인된 유추 현상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사 후에(9ㄴ). cf. 오 사리 디나니(월인석보 21:28ㄴ).

(5) 한설날 : 한섯날

元日을 뜻하는 낱말이 ‘한설날’로도 나타나고 ‘한섯날’로도 나타난다. 이는 15세기 국어에서 ‘이틀+날’이 ‘이틄날’(이틄나래, 월인석보 1:6ㄴ)로도 나타나고 ‘이틋날’(이틋나래, 석보상절 6:27ㄱ)로도 나타났던 것처럼 ‘설+날’이 ‘섯날’로도 쓰인 것이다.

한설날 기예(18ㄴ), 한섯날 아(15ㄴ).

〈참고 문헌〉

박병채(1973). ≪간이벽온방≫ 해제. 『민족문화연구』 7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서울대 도서관(2001). 『규장각소장 어문학자료 - 어학편 해설』. 홍문각.

안병희(1992). 『국어사 자료 연구』. 문학과지성사.

홍윤표(1982). ≪간이벽온방≫ 해제. 간이 벽온방 영인본. 홍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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