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벽온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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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의(御醫) 안경창(安景昌) 등이 편찬 언해서. 1653년(효종 4)에 교서관(校書館)에서 간한 책으로, 돌림병 퇴치 방법을 기록한 의서. ≪벽온신방(辟瘟神方)≫(1613), ≪간이벽온방≫(1525. 1613) ≪신찬벽온방(新纂辟瘟方)≫(1613) 등 ≪벽온구방≫을 바탕으로 다시 편찬한 책

김문웅(金文雄)

∙1940년 경상남도 울주군 출생

∙경북대학교 학사, 석사

∙계명대학교 박사

∙한글학회 대구지회장 역임

∙국어사학회장 역임

∙한국어문학회장 역임

∙현재 대구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저서 및 논문〉

≪편입 대학국어≫(1977)

≪15세기 언해서의 구결 연구≫(1986)

≪역주 구급방언해 하≫(2004)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권3≫(2008)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권6≫(2008)

≪역주 구급간이방언해 권7≫(2009)

“접두사화고”(1977)

“불완전명사의 어미화”(1979)

“「ᅙ」의 범주와 그 기능”(1981)

“‘-다가’류의 문법적 범주”(1982)

“근대 국어의 표기와 음운”(1984)

“근대 국어의 형태와 통사”(1987)

“옛 부정법의 형태에 대하여”(1991)

“한글 구결의 변천에 관한 연구”(1993)

“활자본 ≪능업경 언해≫의 국어학적 고찰”(1999)

“설총의 국어사적 고찰”(2001)

“구결 ‘’의 교체 현상에 대하여”(2003)

“방송 보도 문장의 오류 분석”(2004)

역주위원

  • 벽온신방 : 김문웅

  • 교열·윤문·색인위원

  • 벽온신방 : 박종국 홍현보
  • 편집위원

  • 위원장 : 박종국
  • 위원 : 강병식 김구진 김석득
  • 나일성 노원복 박병천
  • 오명준 이창림 이해철
  • 전상운 정태섭 차재경
  • 최기호 최홍식 한무희
  • 홍민표

역주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우리 회는 1990년 6월 “한글고전 역주 사업”의 첫발을 내디딘 이래로, 〈석보상절〉 권6·9·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그 성과물을 간행하여 왔다. 이제 우리 회는 올해로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을 추진한 지 스무 해가 되는 뜻깊은 해를 맞게 되었으니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한글 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 역주하여 간행한 문헌과 책수는 ≪석보상절≫ 2책, ≪월인석보≫ 8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10책, ≪남명집언해≫ 2책,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1책, ≪구급방언해≫ 2책, ≪금강경삼가해≫ 5책, ≪선종영가집언해≫ 2책, ≪육조법보단경언해≫ 3책, ≪구급간이방언해≫ 4책, ≪진언권공, 삼단시식문언해≫ 1책, ≪불설아미타경언해, 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묶어 1책 등 모두 53책이다.

그동안 정부의 지원에 굴곡이 심하여 애태울 때도 있었으나 우리 회의 굽히지 않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역주자의 노력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원동력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가장 깊은 정신은 두말할 나위 없이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이다. 그것은 세종의 철저한 애민정신과 자주정신이며 그 마음을 이어간 선각자들의 헌신적 노력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가 추진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은 15세기 문헌을 대부분 역주하고 16세기 문헌까지 역주하는 데 이르렀다. 올해는 ≪월인석보≫ 권23·25, ≪구급간이방언해≫ 권7, ≪반야심경언해≫, ≪목우자수심결·사법어 언해≫,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우마양저염역치료방·분문벽온역이해방≫, ≪언해 두창집요≫ 등 8책을 역주하여 간행할 계획이다.

≪신선태을자금단(神仙太乙紫金丹)≫은 이종준(李宗準)이 지어 1497년(연산군 3년)에 간행한 책으로 환약 자금단(紫金丹)의 약재와 제조법과 사용법에 대한 의서이고,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은 돌림병의 치료법과 예방법을 간단히 설명한 의서인데, 초간은 1525년(중종 20년)에 간행되었으나 전하지 않고 1578년(선조 11년)에 간행한 중간본이 전하며, ≪벽온신방(辟瘟新方)≫은 왕명에 따라 안경창(安景昌) 등이 편찬 언해해서 1653년(효종 4년)에 교서관(校書館)에서 간한 책으로, 돌림병 퇴치 방법을 기록한 의서이다.

이 책들은 의학사적 가치는 물론 국어학사적으로 볼 때에도 매우 중요시되는 자료이다.

이번에 역주한 ≪신선태을자금단≫은 성암고서박물관 소장본(1책 목판본)을, ≪간이벽온방≫은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을해자본)을, ≪벽온신방≫은 규장각 소장본(목판본)을 저본으로 하였다. 그리고 ≪간이벽온방≫과 ≪벽온신방≫은 홍문각에서 1984년 6월에 축소 영인 간행한 바 있다.

구급의 의방을 집성한 의서이다. ≪성종실록≫ 권제232, 성종 20년(1489) 음력 9월 21일(병자)조를 보면, 내의원에서 ≪구급간이방≫을 새로 편찬 완료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같은 달 26일(신사)조에 의하면, 성종이 이를 제도(諸道) 관찰사에게 글을 내리기를, “지금 ≪구급간이방≫을 보내니, 도착하는 즉시 개간(開刊)하여 인출해서 널리 펴라.” 하였다. 모두 8권 8책으로 되어 있는데, 현전본은 영본으로 권1, 2, 3, 6, 7의 복각된 중간본뿐으로 알려져 있다.

끝으로 이 한의서를 우리 회에서 역주 간행함에 있어, 이 책들을 역주해 주신 대구교육대학교 김문웅 명예교수님과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과학기술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 모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09년 12월 15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 16세기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 이외의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이 이를 읽어 해독하기란 여간 어려운 실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미어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리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국어 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역주본은 세 가지 책을 묶은 것이니, 원전의 분량이 적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간행 연대순으로 엮었으며 저본으로 삼은 자료를 부록으로 영인하여 붙였다.

(2) 이 책의 편집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한자 원문·언해 원문(방점은 없애고, 띄어쓰기함)·현대어 풀이·옛말과 용어 주해’의 차례로 조판하였으며, 또 원전과 비교하여 찾아보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각 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장(張)·앞[ㄱ]·뒤[ㄴ] 쪽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보기〉

제14장 앞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14ㄱ활셕  량과 한슈셕  과

제14장 뒤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셕듁화 14ㄴ여름  과 디허

(3) 현대말로 옮기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하는 데 기준을 두었다.

(4) 현대말 풀이에서, 옛글의 구문(構文)과 다른 곳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보충한 말은 〈 〉 안에 넣었다.

(5) 원문 가운데 두 줄로 된 협주는 편의대로 작은 글씨 한 줄로 이었으며, 한자 원문의 띄어쓰기는 원문대로 하였다.

(6) 찾아보기 배열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순 : ㄱ ㄲ ㄴ ᄔ ㄷ ㄸ ㄹ ㅁ ᄝ ㅂ ㅲ ㅳ ㅃ ㅄ ᄢ ᄣ ᄩ ㅸ ㅅ ㅺ ᄮ ㅼ ㅽ ㅆ ㅾ ㅿ ㅇ ᅇ ㆁ ᅙ ㅈ ㅉ ㅊ ㅋ ㅌ ㅍ ㅎ ㆅ

② 중성순 :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ㆉ ㅜ ㅝ ㅞ ㅟ ㅠ ㆌ ㅡ ㅢ ㅣ ㆍ ㆎ

③ 종성순 : ㄱ ㄴ ㄴㅅ ㄴㅈ ㄴㅎ ㄷ ㄹ ㄹㄱ ㄹㄷ ㄹㅁ ㄹㅂ ㄹㅅ ᄚ ㅁ ㅁㄱ ㅯ ㅰ ㅂ ㅄ ㅅ ㅺ ㅼ ㅿ ㆁ ㅈ ㅊ ㅋ ㅌ ㅍ ㅎ

《벽온신방》의 고찰

김문웅(대구교육대학교 명예교수)

Ⅰ. 서지적 고찰

1. 간행 경위

≪벽온신방(辟瘟新方)≫은 1653년(효종 4), 왕명에 의해 간행된 1권 1책의 의서(醫書)로 표지를 제외하고 전체가 39쪽으로 되어 있다. 간행 배경에 대해서는 ≪조선왕조실록≫과, 이 책의 맨 앞에 실려 있는, 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인 채유후(蔡裕後)의 서문에 나타나 있다. 먼저, ≪조선왕조실록≫에는 “黃海道 癘疫 禮曹請遣近侍 設祭祈禳 令醫司優送藥物 從之”(孝宗實錄 卷十 四年 癸巳 二月 乙卯條)라 하였고, 채유후의 서문에도 “癸巳春海西 癘疫大熾 民多死亡者 上聞而憂之 分出內局藥材 以濟之”라고 하여 계사년(1653) 봄, 해서지방(황해도)에 여역(전염성 열병의 통칭)이 크게 유행하여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던 당시의 위급한 상황을 알 수 있다. 이에 왕은 근시(近侍)를 파견하고 약물을 보내어 구제하도록 하였다.

다시 채유후의 서문을 보자. “趙復陽 以爲藥物不可以普濟 莫如備示其治法藥名 禮曺判書臣李厚源請令醫官 就攷辟瘟舊方而增減之 印布中外 上從之 遂命御醫臣安景昌等 重加究閱叅 以經驗量減其材料之難辦者 務增其俗方之易試者 仍諺釋其說 名之曰辟瘟新方 令校書館刊出”이라고 한 것을 보면, 조복양(趙復陽)은 약물로써는 많은 사람의 구제가 불가하므로 치료법이나 약명을 가르쳐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하였다. 그러자 예조판서 이후원은 의관들로 하여금 ≪벽온구방≫을 검토하고 내용을 증감하여 인포(印布)하게 할 것을 청하니 효종은 어의(御醫) 안경창 등에게 명하여 ≪벽온신방≫을 간행케 하였다. 이는 그 전의 ≪벽온구방≫에서 약재의 난해한 것은 빼고 속방(俗方, 민간에 전해지는 치료 방법) 중에 쓰기 쉬운 것은 더하여 간행한 책인데 그 간행 시기는 1653년 3월이고, ≪벽온신방≫의 언해본이 나온 것은 서문 마지막 부분의 기록대로 그 해 7월 기망(旣望, 음력 16일)이다.

결국 ≪벽온신방≫은 ≪벽온구방≫을 바탕으로 하여 다시 편찬한 책인데, 여기서 ≪벽온구방≫이라 함은 이전의 ≪벽온신방(辟瘟神方)≫(1613), ≪간이 벽온방≫(1525. 1613) ≪신찬 벽온방(新纂 辟瘟方)≫(1613) 등을 말한다.

2. 체재 및 형태

이 책은 단권으로서 서명(書名)은 ≪벽온신방(辟瘟新方)≫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첫 부분은 한문으로 된 채유후의 서문으로서 2장(張)에 걸쳐 있다. 서문 부분의 제목은 「辟瘟新方序」라 달고 있으며 판심제도 「辟瘟新方序」라 하였다. 서문이 끝난 다음 장부터 한문과 언해문으로 된 본문이 시작되는데 이는 모두 18장이며, 권수제는 「辟瘟新方」으로 붙여 놓았고 판심제도 「辟瘟新方」으로 되어 있다. 장차(張次)는 서문과 본문을 구분하여 서문이 1~2장, 본문은 1~18장으로 각각 차례를 붙여 놓았다. 그리고 언해문에는 한자가 일절 쓰이지 않았다.

현재 ≪벽온신방≫은 목판본과 활자본의 두 가지 이본(異本)이 전한다. 목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고, 활자본은 서울대학교 가람 문고와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두 이본 간에 차이는 거의 없고 다만 표기상으로 몇 군데 다른 곳이 있다. 또한 배자(排字)에 있어 목판본은 10행 20자(서문은 19자)인 반면에 활자본은 10행 17자가 되어 목판본은 전체가 20장, 활자본은 2장이 늘어난 22장인 점이 다르다.

표기에 차이를 보이는 곳은 다음의 예들이다. ‘먹으라’(목판본 4ㄴ)가 ‘먹이라’(활자본 5ㄱ)로, ‘엿쇄 닐웬만의’(목판본 6ㄴ)가 ‘엿쇄 닐헨만의’(활자본 7ㄱ)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목판본 5ㄱ에는 ‘슌마다☐냥식’으로 되어 있어 한 글자의 탈자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활자본 5ㄴ의 ‘슌마다냥식’을 통해 목판본에서 []이라는 글자가 빠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밖에 두 이본 사이에는 오자(誤字)가 일치하는 예도 보인다. ‘만히 어터[더]’(목판본 3ㄱ, 활자본 3ㄱ), ‘덥게 여 며[머]그라’(목판본 4ㄱ, 활자본 4ㄴ), ‘우믈믈 반 잔을 [] 머그라’(목판본 8ㄴ, 활자본 9ㄴ) 등과 같다.

위에서 소개한 두 이본 중에서 역주의 대상으로 삼은 판본은 홍문각에서 영인한 바 있는 목판본이다. 목판본은 1책 20장으로서 채유후의 서문이 2장, 본문이 18장으로 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세로가 30.6cm, 가로가 20.6cm이며 사주쌍변(四周雙邊)이다. 반곽(半郭)의 크기는 세로가 21.6cm, 가로가 16cm로서 계선(界線)이 있으며 앞에서 언급한 대로 10행 20자씩(서문은 19자)이다. 주(註) 쌍행(雙行)이며 판심은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서문은 매행 첫 두 자를 띄워 17자로 썼고, 본문에서 한문 부분은 각 항목의 제목에 해당하는 어구(語句)를 첫 간부터 쓰고, 제목 다음의 설명 부분은 첫 자를 띄워 19자를 배자하였다. 그리고 언해문은 제목 부분이나 설명 부분 할 것 없이 모두 두 자를 띄우고 매행 18자를 배자하고 있다.

3. 내용

≪벽온신방≫은 앞에서 소개한 대로 서문과 본문으로 되어 있다. 서문은 채유후가 쓴 것으로서 이 책의 간행 동기와 경위를 밝히고 있다. 그 다음의 본문은 내용이 오로지 온역(瘟疫, 급성 전염병의 하나)의 치료에 관한 것으로서 허준(許浚)의 ≪신찬 벽온방≫과 거의 같으나 이보다 기술이 간략하고 언해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제 ≪벽온신방≫의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본문에 있는 10개 항목의 제목을 모두 들어 보기로 한다.

온역병원(瘟疫病源, 1ㄱ), 온역표증의한(瘟疫表證宜汗, 1ㄴ), 온역반표반리의화해(瘟疫半表半裏宜和解, 5ㄱ), 온역이등의하(瘟疫裡등宜下, 6ㄱ), 온역발황(瘟疫發黃, 10ㄴ), 대두온(大頭瘟, 11ㄱ), 온역양법(瘟疫禳法, 12ㄱ), 온역벽법(瘟疫辟法, 13ㄱ), 부전염법(不傳染法, 15ㄱ), 금기(禁忌, 17ㄱ)

위의 항목들을 보면 특히 온역의 증상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표(表), 반표반리(半表半裏), 이(裏)로 나누어, 각각 온역이 밖으로 나타나는 증상, 반은 밖으로 나타나고 반은 속에 있는 증상, 속에만 들어 있는 증상을 언급하고, 그 증상별로 여러 가지 상세한 처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 밖에 온역양법과 온역벽법 부분에서는 어떤 글자 4자를 써서 문에 붙이라든지, 사해(四海) 신령의 이름을 외우라든지 하는 무속적인 방법이 제법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부전염법 부분에서는 환자가 있는 집에 가더라도 전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Ⅱ. 국어학적 고찰

1. 표기 및 음운

(1) 연철·분철

중세 국어의 정서법이던 연철법(連綴法)이 17세기에 오면 정서법의 자리를 분철법(分綴法)으로 서서히 넘겨야 할 단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이 문헌에서도 체언의 경우에는 이미 분철의 시대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체언 중에서도 유독 ㅅ 종성의 경우에는 모음의 조사가 연결될 때 하나의 예외도 없이 연철 표기만 나타난다.

오(3ㄱ), 그(4ㄱ), 그(7ㄴ), 낼 거시니라(2ㄱ), 더온 거스로(3ㄴ), 블근 거로(13ㄱ).

조심 거시니라(17ㄴ).

명사의 종성이 ㄱ인 경우에 분철과 연철, 분철과 중철(重綴)이 각각 혼용된 예가 하나씩 발견된다.

속에(6ㄴ), 으로(15ㄱ).

cf. 소게(6ㄱ, 6ㄴ), 그로(13ㄱ).

그러나 동명사의 ㅁ 다음에 모음의 조사가 연결될 경우에는 연철이 절대적이다. 단 하나의 분철 예가 보일 뿐이다.

더우락 호(2ㄱ), 이시미니(2ㄱ), 몯(5ㄱ), 열믈(12ㄴ). cf. 셩이니(6ㄴ).

다음으로, 용언의 경우에는 아직도 연철의 시대가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중에서도 분철을 시도한 예가 몇 개 나타난다. ‘삼으라’의 경우에는 세 번 등장하는데 모두 분철 표기만 보여 준다. 그 외에 연철과 분철을 함께 보여 주는 예도 있다.

삼으라(2ㄴ, 5ㄱ, 10ㄱ).

먹으라(4ㄴ), 코 안 불어(11ㄱ).

cf. 머그라(4ㄴ, 6ㄱ, 7ㄱ, 8ㄱ), 코희 부러(11ㄴ), 코 굼긔 부러(12ㄱ).

(2) 병서자(並書字)

합용병서는 ㅅ계, ㅂ계만 보이고(ㅶ의 용례는 없음), ㅴ과 ㅵ은 각각 ㅺ과 ㅳ으로 교체된 예가 있어 ㅄ계의 합용병서는 폐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각자병서는 ㅆ만이 나타난다.

싸흐라(2ㄴ, 3ㄱ, 6ㄱ), 쑤고(3ㄴ), 써(12ㄴ).

(7ㄱ), (2ㄱ), 디오고(17ㄴ).

기(9ㄴ), 라(5ㄱ), 거나(10ㄱ).

(9ㄴ, 10ㄱ), 아므 (2ㄴ).

cf. 티(월인석보 1:42ㄱ),  (월인석보 7:9ㄴ).

(3) 종성의 ㅅ, ㄷ 및 자음군

중세 국어의 8종성법이 근대 국어에 오면 표기에서 ㄷ종성이 사라짐으로써 7종성법의 체계가 된다. 이 문헌에서도 앞 시대에 ㄷ종성이던 낱말에서 ㅅ으로 교체된 예가 나타난다. 그렇다고 ㄷ종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한 쪽에선 ㅅ종성을 오히려 ㄷ으로 역표기한 예가 나타나고 있다.

굿고(6ㄴ), 못여(1ㄱ), 못게(13ㄱ), 못니라(14ㄴ), 못니(17ㄴ), 져근덧(3ㄱ).

cf. 몯(5ㄱ), 굳다 샤(월인석보 14:59ㄴ), 져근덛(법화경 언해 2:129ㄴ).

복(3ㄴ), 만치(11ㄱ),  두닐곱을(15ㄱ).

cf. 복애(구급 간이방 2:113ㄴ),  (구급 간이방 3:9ㄱ).

모음 사이에서는 원칙적으로 두 자음만이 허용되었으나, 종성으로 쓰인 ㄺ, ㄼ은 자음 앞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는데 그 전통은 이 문헌에도 이어지고 있다. ㄻ 종성도 15세기에는 자음 앞에서 그대로 쓰였으나 이 문헌에서는 ㅁ으로 교체된 것을 볼 수 있다.

굵게(4ㄱ), 츩 불휘(4ㄴ), 븕고(5ㄴ), 게(7ㄴ), 늙고(11ㄱ),  울 (13ㄴ), 븕나모(14ㄴ).

여 아홉이(11ㄴ).

옴니(11ㄴ, 16ㄴ), 옴디 아니니(11ㄴ, 15ㄴ), cf. 옮니로(능엄경 언해 10:19ㄱ).

(4) 자음동화

중세 국어에서 ㅅ, ㄷ 말음이 비음(鼻音) 앞에서 ㄴ으로 동화되지만 이를 표기에 반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문헌에 와서는 자음동화를 표기에 반영하여 ㅅ, ㄷ 말음을 ㄴ으로 표기한 예가 제법 등장하고 있다.

인(1ㄴ, 2ㄱ, 5ㄱ, 13ㄱ), 인니라(3ㄴ), 드런(6ㄱ), 닷쇈만의(5ㄴ), 닐웬만의(6ㄴ).

됸니라(3ㄱ, 4ㄱ, 7ㄴ, 9ㄴ), 됸니(3ㄴ, 11ㄱ).

그리고 ‘-’(炒)의 경우에 ㅅㄱ이 역행동화로 ㄱ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外), ‘-’(折)의 경우에는 ㄱㄱ으로 표기되지 않고 있다.

복가(4ㄴ, 10ㄴ, 11ㄱ), cf. 봇가(구급 간이방 6:12ㄱ).

밧긔(5ㄱ, 5ㄴ), 것거(4ㄱ).

(5) 모음 간의 유기음 표기

유기음 말음을 가진 체언이나 용언 어간 다음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나 어미가 연결될 때 중세 국어에서는 연철하는 방법만이 유일하였다. 그러다가 17세기에 들면서부터는 다음의 세 가지 표기법이 등장하여 그때마다 자의로 쓰였다. 그 첫째 방법은 전통적인 연철 방법이고, 둘째 방법은 선행 음절의 종성과 후행 음절의 초성에 이중으로 표기하는 중철 방법이며, 셋째 방법은 ㅊ, ㅋ, ㅌ, ㅍ을 각각 ㅅㅎ, ㄱㅎ, ㅅㅎ, ㅂㅎ으로 재음소화하여 표기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문헌은 체언과 용언의 경우에 표기법의 선택이 각각 달리 나타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먼저 체언의 경우를 보면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표기 방법이 다 나타난다.

첫째 방법(연철 표기) : 겨(傍, 11ㄴ), 치(面, 12ㄱ), 치며(面, 10ㄴ).

둘째 방법(중철 표기) : 닙플(葉, 8ㄱ), 낫(個, 10ㄴ).

셋째 방법(재음소화 표기) : 동녁로(東, 14ㄱ), 올흔 녁(右, 14ㄴ), 솟(鼎, 15ㄴ), 코 긋(端, 16ㄴ), 밋흔(底, 3ㄱ), 닙흔(葉, 3ㄱ), 닙(葉, 14ㄱ).

그러나 용언의 경우에는 오로지 첫째 방법인 연철 표기만이 나타난다.

더프면(蓋, 3ㄱ), 브(附, 3ㄱ), 더퍼(蓋, 7ㄴ), 마면(嗅, 16ㄴ).

(6) 어중(語中)의 경음화

선행 음절의 말음으로 인하여 경음화가 일어나는 경우에 이 문헌에서는 경음화 표기가 자의적으로 나타난다.

맛이(2ㄱ) : 맛당이(5ㄱ), 밧(2ㄱ) : 밧긔(5ㄱ, 5ㄴ), 니라(5ㄱ) : 디라(5ㄴ),

섯(十二月, 7ㄴ).

cf. 섯래(구급 간이방 6:23ㄴ).

(7) 모음 간의 ㄹㄴ 표기

모음 사이에서 ㄹㄴ을 ㄹㄹ로 적은 예가 발견된다. 그리고 모음 다음에서 ㄹㅇ이 ㄹㄹ로 변한 표기도 보인다.

열라(發熱, 8ㄱ), 솔립(松葉, 14ㄱ).

cf. 아츤 설날밤(除夜, 15ㄱ).

리(粉, 12ㄱ), (粉, 16ㄴ), 뢰여(乾, 14ㄱ).

이(구급간이방 1:67ㄴ), (구급간이방 6:1ㄴ), 외여(간이벽온방 14ㄴ).

(8) 그 밖의 혼용례

이상에서 논의한 내용 이외에 동일한 낱말의 표기가 서로 다르게 된 예들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게(細, 14ㄱ) : 게(14ㄱ), 다(五合, 2ㄴ) : 다솝(3ㄴ, 6ㄱ, 7ㄱ),

더우락치우락(寒熱, 5ㄴ) : 더오락치오락(6ㄴ), 맛당이(當, 5ㄱ) : 맛당히(5ㄴ, 6ㄴ, 12ㄱ).

이(多, 3ㄴ) : 이(3ㄱ), 불휘(根, 3ㄱ, 9ㄴ) : 불희(5ㄱ) : 불(14ㄱ).

라(呑, 13ㄱ) : 고(15ㄱ) : 기면(15ㄱ), 알며(痛, 1ㄴ) : 알프며(3ㄱ, 11ㄴ) : 아프고(4ㄴ).

2. 문법

(1) 주격 조사 ‘-가’

이 문헌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이 주격 조사 ‘-가’의 등장이다. ‘-가’는 이미 16세기 후반의 국어에 존재했던 것으로 거론되지만 실제로 문헌에서 그 존재가 확인된 것은 17세기에 들어서이다. 그 문헌이 바로 이 ≪벽온 신방≫이다.

그 내가 병 긔운을 헤티니(其香能散疫氣, 15ㄴ).

위에서 보듯이 ‘-가’는 처음에 i, j로 끝나는 체언 뒤에서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렇더라도 아직은 주격 조사 ‘-가’의 사용이 생산적이지 못하였고 따라서 이 문헌에서도 ‘-가’의 사용은 위의 예가 유일하다.

(2) 재구조화

체언이나 용언 어간이 종전의 형태에서 새로운 형태로 재구조화한 예를 볼 수 있다. 15세기 국어에서 ‘솝’(裏)으로 쓰였던 말이 여기서는 ‘속’으로 재구조화하였고, ‘만-’(多)가 ‘많-’으로 재구조화하였다. ‘속’의 경우에는 재구조화 이후의 예만 보이지만 ‘만-’의 경우에는 재구조화 이전과 이후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속에(6ㄴ), 소게(6ㄱ). cf. 甁ㄱ소배(월인석보 1:10ㄱ).

만여(8ㄴ), 만하(1ㄴ, 5ㄴ, 9ㄴ).

‘만여’는 재구조화 이전에 사용되던 ‘만-’의 활용형이고, ‘만하’는 재구조화 이후의 ‘많-’의 활용형이다.

(3) 의도법 ‘-오/우-’의 소멸

15세기 국어에서 명사형 어미 ‘-ㅁ’과 연결 어미 ‘-’ 앞에는 의도법의 선어말 어미 ‘-오/우-’의 첨가가 필수적이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들면서 동요되기 시작하여 17세기가 되면 쇠퇴하기에 이른다. 이 문헌에서도 ‘-오/우-’가 거의 사라졌으나 아직 그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이시미니(2ㄱ), 몯믈(5ㄱ), 셩이니(6ㄴ), 열믈(12ㄴ), 머그되(2ㄴ, 5ㄱ, 10ㄱ), 되(13ㄱ).

cf. 호(2ㄱ), 게 호되(12ㄱ).

(4) 접속 조사 ‘-과’

중세 국어에서 접속 조사는 체언의 음운 조건에 따라 체언의 끝소리가 모음이거나 ㄹ인 경우에는 ‘-와’, 그 밖의 자음인 경우에는 ‘-과’가 쓰인다. 그런데 이 문헌에서는 체언의 말음이 모음인 경우에도 ‘-과’가 쓰인 예가 있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바르게 쓰인 예도 있어 혼기(混記)로 보인다.

머리과 치 장 븟거든(頭面腫盛, 12ㄱ).

cf. 나 닷쇈만의 머리와 몸이 아프며(四五日頭身痛, 5ㄴ).

3. 어휘

(1) ‘즉시’와 ‘즉제’

‘즉시’는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서부터 한자어 ‘卽時’로 많이 사용되면서 현대어에까지 이르고 있는 낱말이다. 반면에 고유어로는 ‘즉자히’와 ‘즉재’가 초기부터 공존하면서 함께 쓰였다. 그러다가 ≪구급 간이방≫(1489)에 오면 ‘즉재’ 일변도로 쓰인 가운데 유일하게 ‘즉제’(2:90ㄴ)와 ‘즉채’(3:70ㄱ)가 하나씩 나타난다. 이 문헌에는 전통적으로 써 오던 ‘즉시’와 ≪구급 간이방≫에서 첫 선을 보인 ‘즉제’가 함께 나타난다.

누론 믈 토면 즉시 됸니(吐黃水卽差, 11ㄱ).

사이 마면 즉제 머리 쉿굼그로 드러(聞之卽上泥丸, 16ㄴ).

(2) 다솝(五合)

곡식이나 물의 양을 재는 단위로 ‘홉’(合)을 쓰는데, 여기서는 ‘다섯 홉’을 이르는 말로 ‘다솝’이라 하고 있다. ‘다섯’과 ‘홉’이 축약된 형태로 보이는데, 다른 데서는 같은 용례를 찾을 수 없는 말이다. 이형태(異形態)로 ‘다’도 쓰였다.

니 다솝과 달혀 쥭을 쑤고(粳米半升煮成粥, 3ㄴ), 믈  되 다솝 브어(6ㄱ).

믈  되 다솝과 강 세 편 대쵸 둘 녀허(7ㄱ), 믈  되 다 브어 칠 홉 되게 달혀(2ㄴ).

(3) ‘알다’와 ‘앓다’

기원적으로 ‘알다’는 동사 ‘앓다’에서 파생된 형용사이다. 동사 어근 ‘앓-’에 접미사 ‘-/브-’가 통합되어 ‘앓-+-/브-→알/알프-’가 된 말이다. 그런데 이 문헌에서는 ‘알/알프-’와 ‘앓-’이 분화되지 않고 자의적으로 사용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예로서 ‘頭痛(두통)’을 번역하고 있는 구절을 보면 ‘알/알프-’와 ‘앓-’의 선택에 어떤 구분이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의 예는 모두 ‘頭痛’을 번역한 구절들이다. ‘알/알프-’와 ‘앓-’이 똑같은 비율로 나타나고 있다.

머리 알며(1ㄴ), 머리 알프며(3ㄱ), 머리 알프며(11ㄴ).

머리 알며(2ㄴ), 머리 알커든(3ㄴ), 머리 알코(4ㄴ).

〈참고 문헌〉

서울대 도서관(2001). 『규장각소장 어문학자료 - 어학편 해설』. 홍문각.

이철용(1991). 온역에 관한 의서의 국어학적 연구. 『한양 어문』 9권. 한양어문학회.

홍윤표(1982). ≪벽온신방≫ 해제. 벽온신방 영인본. 홍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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