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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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
역주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

원나라 세조(1271~1394) 때의 고승(高僧) 몽산(蒙山) 덕이(德異)가 찬술한 『육도보설(六道普說)』을 조선 선조 원년(1567) 가을에 전라도(全羅道) 순창(淳昌) 취암사(鷲岩寺)에서 원전에 구결(口訣)을 달고 우리말로 번역[諺解]한 자료이다. 중생으로 하여금 성인(聖人)의 지위에 들어가기를 권면하는 내용이다.

정우영(鄭宇永)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 (문학 석사·박사)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어사학회 부회장

한국어문학연구학회 편집위원장

(사)훈민정음학회 연구이사

한국어학회 감사

〈저서〉

역주 원각경언해, (사)세종대왕기념사업회서(2002), 5(2006), 8(2007), 10(2008)

초발심자경문언해, 신구문화사 (2005)

역주 목우자수심결언해·사법어언해 (2009)

염불보권문, 동국대출판부 (공저, 2012)

한국 고전번역학의 구성과 모색 (공저, 2013)

〈논문〉

『훈민정음』 한문본의 낙장 복원에 대한 재론 (2001)

국어 표기법의 변화와 그 해석 (2005)

『훈민정음』 언해본의 성립과 원본 재구 (2005)

〈서동요〉 해독의 쟁점에 대한 검토 (2007)

순경음비읍(ㅸ)의 연구사적 검토 (2007)

영남대본 『발심수행장』 연구 (2011)

중기국어 불전언해의 역사성과 언어문화적 가치 (2012)

역주위원

  •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 : 정우영(동국대 교수)

  • 교열·윤문·색인위원

  •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 : 박종국, 홍현보
  • 편집위원

  • 위원장 : 박종국
  • 위원 : 강병식 김구진 김무봉
  • 김석득 김승곤 김영배
  • 나일성 노원복 리의도
  • 박병천 성낙수 오명준
  • 이창림 이해철 임홍빈
  • 전상운 정태섭 조오현
  • 차재경 최홍식 한무희
  • 홍민표

『역주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를 내면서

우리 세종대왕기념사업회는 1968년 1월부터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을 국역하기 시작하여 447책을 펴내 전체 실록을 완역하였고, 『증보문헌비고』 40책 완간 등 수많은 국학 자료의 번역사업을 벌여 오고 있다. 아울러 1990년 6월부터는 “한글고전 역주 사업”의 첫발을 내디디어, 『석보상절』 권6·9·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그 성과물을 간행하여 왔다. 이제 우리 회는 올해로써 한글고전 역주 사업을 추진한 지 23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를 맞게 되었다. 그동안 600책이 넘는 국역, 학술 간행물이 말해주듯이,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한글 국역·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우리 회가 국역 사업을 벌이는 뜻은 바로 백성과의 소통을 통하여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한글) 창제 정신을 이어받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 역주하여 간행한 정음 문헌과 책 수는 다음과 같다. 『석보상절』 4책, 『월인석보』 17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10책, 『남명집언해』 2책,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1책, 『구급방언해』 2책, 『금강경삼가해』 5책, 『선종영가집언해』 2책, 『육조법보단경언해』 3책, 『구급간이방언해』 5책, 『진언권공, 삼단시식문언해』 1책, 『불설아미타경언해, 불정심다라니경언해』 1책, 『반야심경언해』 1책, 『목우자수심결·사법어 언해』 1책,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1책, 『분문온역이해방·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 1책, 『언해두창집요』 1책, 『언해태산집요』 1책, 『삼강행실도』 1책, 『이륜행실도』 1책, 『정속언해‧경민편』 1책, 『상원사중창권선문‧영험약초‧오대진언』 1책,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 1책, 『두시언해』(권10, 11) 2책, 『여씨향약언해』 1책, 『번역소학』(권6·7·8·9·10) 1책, 『소학언해』 4책, 『논어언해』 2책, 『대학언해』 1책, 『중용언해』 1책, 『맹자언해』(권1·2·3·4·5) 1책, 『연병지남』 1책 등 모두 90책에 달한다.

이제 우리가 추진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은 15세기 문헌을 대부분 역주하고 16세기 이후 문헌까지 역주하는 데 이르렀다. 올해는 그 가운데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 등 지난해에 이어 16세기 ~17세기 문헌을 중점적으로 역주할 예정이다.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蒙山和尙六道普說諺解)』는 중국 원(元)나라 세조(世祖) 때 활동한 고승 몽산화상 덕이(德異)의 『몽산화상육도보설』을 언해한 것으로, 조선 선조(宣祖) 즉위년(1567) 가을에 전라도 순창 취암사(鷲岩寺)에서 간행한 불서인데, 이 덕이의 『육도보설』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입장에서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 등의 육범(六凡)과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불(佛) 등의 사성(四聖), 곧 육범사성(六凡四聖; 十界)을 설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범부의 자리를 벗어나 성인의 지위에 들어갈 것을 권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16세기 후반의 자료로서 국어 표기법과 음운, 어휘 면에서 여러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전라도 순창 지역방언(서남방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문헌이라는 점이다. 둘째, 국어사의 측면에서 ‘ㄷ’구개음화 현상을 폭넓게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평가된다. 국어 표기법에서는 ‘ㅸ’과 ‘ㆆ’은 물론이고 방점도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형태·어휘 면에서는 다른 자료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소와 단어들이 여러 개 발견된다. 국어사(방언사) 연구를 위해 필독할 만한 기본 자료라 하겠다. 셋째, 이 책에서 전하려는 몽산화상의 “마음[心]을 알면 모두가 부처[佛]”라는 설법을 통해 반상(班常)의 구별이 뚜렷하던 16세기에 이 책을 정음으로 번역·간행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번에 우리 회에서 펴내는 이 역주본의 저본은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을 사용하였으며, 연구자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이 책 뒤에 부록으로 실었다.

우리 회에서 이 책을 역주·간행함에 있어, 역주를 맡아주신 동국대학교 정우영 교수님과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주신 교육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 모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2013년 10월 1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 16세기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가 이외의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이 이를 읽어 해독하기란 여간 어려운 실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며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리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국어 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역주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의 저본으로는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으로 하였고 뒤에 영인을 실었다. 다만, 책 끝의 일부 훼손·낙장된 부분은 남권희 교수에 의해 소개된 다른 판본의 사본으로 보완하였다.

(2) 이 책의 편집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한자 구결원문·언해문·현대어 풀이·옛말과 용어 주해’의 차례로 조판하였으며, 원전과 비교하여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각 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장(張), 앞쪽[ㄱ]·뒤쪽[ㄴ]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보기〉

제7장 앞쪽(ㄱ)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시혹 7ㄱ賢현人인 欺긔弄며

제7장 뒤쪽(ㄴ)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 一일萬만 번7ㄴ 죽고…

(3) 현대말로 옮기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하는 데 기준을 두었다. 다만, 현대말 풀이에서, 옛글의 구문(構文)과 다른 곳은 이해를 돕기 위하여 〈 〉 안에 보충하는 말을 넣었다.

(4) 띄어쓰기는, 한자와 한글 혼용한 한자 원문은 토를 붙인 데만 띄었고, 언해문은 현대문법에 따라 띄어 썼다.

(5) 이 책의 언해문은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였는데 한자의 한글 표기가 당시의 발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므로 원문대로 표기하였다. 다만 이에 대한 현대문 주석의 올림말은 현대 발음대로 하고, 말밑 한자를 괄호에 넣었다.

(6) 한자 원문과 언해문은 네모틀에 넣어서 현대문 풀이·주석과 구별하였고, 원문이나 언해문 가운데 작은 글씨 2행의 협주는 편의상 【 】 표시로 묶어 나타내었으며, 이에 대한 현대문도 같게 하였다.

(7) 찾아보기는 언해문의 낱말을 전수 조사 방식으로 모두 찾을 수 있도록 하되, 한자 병용과 순 옛말 표기를 구분하여 배열하였고, 아울러 한자 용어 주석도 구분하여 배열하였다. 배열순서는 우리말 큰 사전의 순서를 따랐다.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 해제

정우영(동국대학교 교수)

1. 개요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蒙山和尙六道普說諺解)』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책의 원저자와 원제목을 이해하는 것이 바른 순서일 것이다. 이 책의 원래 저자는 원나라 세조(1271~1394) 때의 고승(高僧) 몽산(蒙山) 덕이(德異)이다. 이 스님이 찬술(撰述)한 책의 원래 서명(書名)은 『육도보설(六道普說)』이며, 이를 후대에 간행하면서 책의 제목(내제)을 『몽산화상육도보설(蒙山和尙六道普說)』이라고 하였다. 이 책이 조선 선조 원년(1567) 가을에 우리말로 번역되었는데, 이 책을 학계에서는 관례적으로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은 『몽산화상육도보설』로 되어 있어 한문본이든 언해본이든 책의 제목은 동일하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경우에 따라 편의상 한문본과 언해본을 구분·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 언해본(우리말 번역본)은 원전에 구결(口訣)을 달고 ‘언해(諺解)’라는 특수한 가공 과정을 거친 것이므로, 한문본의 제목 ‘몽산화상육도보설’ 말미에 ‘언해’라는 단어를 붙여 부르고 있다. ‘언해’는 “언문(諺文, 우리나라 고유의 글자 및 우리말이라는 뜻까지 포함함)으로 독자들이 알기 쉽게 풀이한 것”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므로, 한문 원전에 한국어와 한국문자 ‘훈민정음’을 이용해 특수한 가공을 한 문헌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몽산화상 덕이의 『육도보설(六道普說)』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입장에서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人間)·천상(天上) 등의 육범(六凡)과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불(佛) 등의 사성(四聖), 곧 육범사성(六凡四聖; 10界)을 설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범부(凡夫)의 자리를 벗어나 성인(聖人)의 지위에 들어가기를 권면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는 조선 선조 때 지방 사찰에서 독자적으로 간행된 목판본으로서, 현재 2본(本)이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수원 용주사 구장본으로 1980년대 이후 동국대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판본이다. 또 다른 하나는 1991년도에 남권희 교수에 의해 소개된 판본이다. 동국대 도서관 소장의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는 간기(刊記)가 있는 42장이 낙장(落張)이어서, 한동안 간행연도와 간행지(刊行地)가 ‘미상(未詳)’이었다. 그러다가 간기가 온전히 남아 있는 판본이 남권희 교수에 의해 학계에 소개됨으로써 “융경(隆慶) 원년(1567) 전라도(全羅道) 순창(淳昌) 취암사(鷲岩寺)”에서 ‘秋日’[가을]에 간행되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누가 이 책을 언해하였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가 없다.

2. 문헌의 서지 사항

이 문헌의 서지(書誌)를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서명 : 몽산화상육도보설(蒙山和尙六道普說)

저자 : 몽산(蒙山)(중국 1230년경~1300년대 초반)

언해자 : 미상(未詳)

서지 : 목판본(木板本)

발행 사항 : 전라도 순창(淳昌) 취암사(鷲岩寺). 융경 원년(隆慶元年)(1567) 정묘 추일(丁卯秋日) 간(刊)

형태 : 1권(卷) 1책(冊), 사주단변(四周單邊), 반곽(半郭) 21.2×17.5㎝, 유계(有界), 반엽(半葉) 10행(行) 12~15자(子)[1~6장-12자, 7장-13자, 8장 이후-15자], 대체로 상하 백구(上下白口), 내향 흑어미(內向黑魚尾)[1장-상하 대흑구(上下大黑口), 6장-상하 대흑구(上下大黑口), 내향사변 화문흑어미(內向四辨花紋黑魚尾)] ; 31.4×22.3cm

표제(表題) : 몽산화상육도보설(蒙山和尙六道普說)

권두제(卷頭題) : 몽산화상육도보설(蒙山和尙六道普說)

판심제(版心題) : 보설(普說)(1,2장), 보(普)(3장 이후)

지질(紙質) : 저지(楮紙)

소장처 :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청구기호: 219.7-덕69ㅁ4)

이 문헌의 서지학적 특징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문헌에는 서문(序文)이나 발문(跋文)이 없다. 권두(卷頭) 제목인 『몽산화상육도보설』에 이어 다음 행부터 한문 본문이 제시되고, 한문에 이어서 원권(○)을 표시하고 한문을 우리말로 번역한 언해문을 실었는데, 국한혼용체로 되어 있다. 언해의 체재는 대체로 연산군 시대에 간행된 『육조법보단경언해(六祖法寶壇經諺解)』(1496)와 유사하다. 언해의 간행 동기 및 경위 등에 관련된 기록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제42장을 통해서 발행 사항 및 이 책의 간행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을 조금 알 수 있을 뿐이다. 80여 명의 시주질(施主秩), 그리고 사경자(寫經者)로 “현옥(玄玉)·현종(玄宗)·보언(寶彦)” 등과, 각수(刻手)로 “일훈(一訓)·인화(印花)”, 화사(化士)로 “현즙(玄楫)·천문(天文)” 등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시주의 이름에 나타나는 최수장(崔守長), 채중석(蔡仲石) 등은 명종 14년(1559) 전라도 순창 무량굴(無量堀)에서 중간(重刊)된 『월인석보(月印釋譜)』 권23과 『월인석보』 권21에서도 볼 수 있다. 화사 ‘현즙(玄楫)’은 중간된 『월인석보』 권23의 화주란(化主欄)에는 ‘현집(玄緝)’으로, 다른 한자로 되어 있다. 각수인 ‘일훈’과 ‘인화’는 같은 시기에 전라도에서 간행된 『불정심다라니경(佛頂心陀羅尼經)』, 『진언집(眞言集)』(1569. 安心寺) 등 여러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이 자료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지는 못한 편이다. 침식된 곳이 여러 군데이며, 판심(版心)이 마멸(磨滅)되어 판독(判讀)이 어려운 부분도 나타난다. 지방 사찰판으로서의 미흡한 점들이 나타나 있다. 이를테면 1행의 글자 수 및 어미(魚尾) 모양, 판심제(版心題) 등 서지학적 사실이 엄정하지 않고 장(張)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는 등 형식적인 면에서 정제되어 있지 않다. 그런 특징 중에서 동국대본 41장은 일부가 상당히 훼손되어 있고, 42장은 낙장(落張)까지 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판각(板刻)이 거칠고 목륜(木輪)이나 완결(刓缺)이 보이는 점으로 보아서는 초쇄본(初刷本)이 아닌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동국대본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는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간행하는 『국어국문학논문집(國語國文學論文集)』 제16집(1993년)에 김무봉(1993)의 해제를 붙여 영인되었다. 이 영인 자료의 저본은 동국대본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이 책 끝 부분의 일부 훼손·낙장된 부분은 남권희 교수에 의해 소개된 다른 판본의 사본으로 보완하였다.

3. 저자 및 발행 사항

몽산(蒙山)은 원나라 세조(世祖) 때 활동했던 선승(禪僧)으로, 생몰 연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속성(俗姓)은 려씨(廬氏)이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의 시양(時陽) 고안현(高安懸)에서 태어났다. 지원(至元) 27년(1290)에 쓴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檀經)』의 서문에 따르면, 그가 어릴 때 그 책을 한 번 보고 30여년이 지난 1290년에 통상인(通上人)으로부터 전문(全文)을 구하게 되어 오중(吳中) 휴휴선암(休休禪庵)에서 책을 간행하게 되었다고 하므로 ,적어도 그의 출생연도는 1230년대와 1240년대 사이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298년에 상인을 통해 고려 승려 만항(萬恒, 1249~1319)에게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을 보냈다는 기록으로 추정해 볼 때, 입적은 그 이후인 1300년대 초반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가 이후 ‘조주무자(趙州無字)’의 화두(話頭)로 입참(入叅)하여 환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 등 여러 고승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았고, 이후에 정응(正凝)의 뒤를 이어 선종(禪宗) 5가(家)의 하나인 임제종(臨濟宗)의 법맥을 이었다. 그는 거처를 여러 번 옮김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본명(本名)은 ‘덕이(德異)’이며, 여릉도(廬陵道)의 몽산(蒙山)에 기거하였으므로 그곳 지명을 따서 주로 ‘몽산’이라고 불렸다. 그의 고향 시양(時陽)이 당나라 때는 균주(筠州)였으므로 ‘고균(古筠)’이라 불리기도 했고, 득도 후에는 강소성(江蘇省)의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에 머물었으므로 ‘전산화상(殿山和尙)’, 평강현(平江縣)의 휴휴암(休休庵)에 거처하였으므로 ‘휴휴암주(休休庵主)’, 또는 ‘절목수(絶牧叟)’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몽산의 찬술 중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편찬 연대 미상의 『육도보설(六道普說)』을 비롯하여 『직주도덕경(直註道德經)』(지원(至元) 24년, 1287), 재편한 『육조단경(六祖檀經)』(지원 27년, 1290), 『몽산법어(蒙山法語)』·『몽산화상수심결(蒙山和尙修心訣)』·『증수선교시식의문(增修禪敎施食儀文)』 등이 있다. 또 그가 쓴 글로는 『불설사십이장경 서(佛說四十二章經序)』(지원 23년, 1286), 『육조대사법보단경 서(六祖大師法寶檀經序)』(지원 27년, 1290), 『몽산화상시식의문(蒙山和尙施食儀文)』 등이 있다.

위의 찬술 중 『몽산법어(蒙山法語)』(『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蒙山和尙法語略錄諺解)』)는 나옹(懶翁)이 초록한 것을 조선 세조 때(1459~60년 추정)에 신미(信眉)가 언해하였고,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檀經)』 서(序)는 연산군 2년(1496)에 간행된 『육조법보단경언해』의 권두에 실려 있다. 몽산은 당대의 이름 높은 선승(禪僧)으로, 선(禪)과 관련된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고려 승려들과는 직·간접적으로 교류가 빈번하였다. 『익재난고(益齋亂藁)』와 『나옹화상 행장(懶翁和尙行狀)』에는 몽산이 고려 승려 혼구(混丘, 1249~1319), 만항(萬恒, 1249~1319), 나옹(懶翁, 1320~1376) 등과 교류한 내용이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 이후 국내 불교계에 꾸준히 영향을 미친 몽산의 저술은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중반까지 간경도감(刊經都監)이나 지방의 여러 사찰에서 집중적으로 간행되었다. 16세기에는 지방의 사찰에서 간행된 문헌이 많이 나왔는데, 그 중 『몽산화상육도보설(蒙山和尙六道普說)』의 한문본은 15세기부터 간행되기 시작하여 16세기에 와서는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간행되어 유통되었다. 그에 따라 언해본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전라도 순창 취암사에서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가 간행되었을 것이다. 당시에 신미(信眉) 대사가 언해한 몽산의 또 다른 저술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가 널리 유통되고 있었던 것도,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의 간행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4. 국어학적 특징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는 국어 표기법과 음운, 어휘 면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특성을 보여준다.

이 책은 16세기 후반의 국어사 자료로서, ‘ㅸ’과 ‘ㆆ’은 전혀 쓰이지 않았으며 방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또한 언해문의 한자 독음은 당시의 현실 한자음으로 제시되었다. 특히 한양에서 간행된 16세기 전반기 한자음과는 다른 한자음이 나타나는데, 이 지역에서 전해지는 한자음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불교 용어 한자어의 경우도 현실음을 따랐으나 어떤 것은 불교계의 전통적인 독법에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테면 ‘解脫’의 ‘解’는 ‘하’로 주음 표시된 것과 같은 것이다. ‘人인道도者쟈’〈12ㄱ〉, ‘菩보提뎨心심’〈11ㄴ〉 등에서 ‘人인, 提뎨’는 당시의 현실한자음을, ‘解하脫탈’〈5ㄴ〉은 불교계의 전통 독음으로 보인다.

‘ㅿ’ 문자의 경우는 고유어와 한자어 표기에 모두 쓰였다. ‘아디거든’[碎]〈7ㄴ〉, ‘我아人’〈23ㄱ〉 등. 그러나 점차 사라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고유어에서 15세기 한글 문헌에서라면 ‘ㅿ’으로 나타났을 환경에서 ‘ㅇ’로 나타나거나 ‘ㅅ’으로 대체된 경우가 있고(‘지어니’[造]〈23ㄴ〉, ‘지스며’〈10ㄴ〉, ‘오사’[獨]〈18ㄱ〉 등), 한자어에서는 같은 뜻의 구성요소가 ‘ㅿ’과 ‘ㅇ’로 각각 다르게 표기되기도 하였다. ‘聖人’〈3ㄴ〉, ‘賤쳔人인’〈12ㄱ〉 등. 즉, ‘ㅿ’ 문자의 경우에 15세기~16세기 초기문헌에서였다면 이것이 반영되었을 만한 환경에서 ‘ㅿ’이 탈락되거나 ‘ㅅ’으로 바뀐 예가 보인다. 또한 이전 문헌에서 ‘ㅿ’이 사용되지 않았던 어휘나 문법 형태소에 ‘ㅿ’이 사용된 예도 나타나는데, 목적격 조사 ‘’이 ‘’로 표기된 경우가 있고(‘福’〈10ㄴ〉), ‘오-’[全]가 ‘오-’〈19ㄱ〉로, ‘므슥’이 ‘므글’〈23ㄱ〉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오-’의 경우는 〈악학궤범 5:12 처용가〉에 딱 하나의 예가 보였다.

목적격 조사가 ‘’이 아닌 ‘’로 나타난 것은 음운론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특이한 현상이지만, 그 외의 다른 예에 대해서는 당시 ‘ㅿ’의 음가와 관련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15세기에 실제 음소였던 ‘ㅿ’이 15세기 후반 이후 ‘ㅅ’, 혹은 ‘ㅇ’으로 변화하면서 소멸하였다고 설명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ㅿ’은 실제 음소가 아니었고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ㅅ’유지 방언과 ‘ㅅ’ 탈락 방언(후음 ‘ㅇ’형)에서 이를 절충하여 표기할 목적으로 사용한 문자였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전자는 ‘ㅿ’의 음가를 [z]이었다고 볼 때 ‘ㅿ〉ㅇ, ㅅ’으로의 통시적 변화를 음성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 한편, 후자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 15세기 문헌 전반에서 발견되는 ‘ㅿ’을 독립된 음소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따른다.

이 책에서 아음 불청불탁음 ‘

ㆁ’[ŋ]은 받침으로는 쓰였지만 초성에 사용된 예는 발견되지 않는다. 종성이 ‘
ㆁ’ 으로 끝난 명사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가 올 경우에는 항상 분철하였고, 훈민정음 창제 초기문헌 이래 ‘에’와 결합하여 ‘이’ 표기로만 쓰이던 지시대명사가 이 책에서는 ‘에’〈39ㄴ〉로 나타난다. 이 밖에도 ‘연’〈5ㄴ〉, ‘衆즁生’〈3ㄴ〉 등처럼 자형 ‘
ㆁ’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한편, 각자병서가 쓰일 만한 환경에서는 각자병서가 아닌 평음형의 표기가 발견된다. ‘말매’〈32ㄴ〉, ‘말솜’〈40ㄱ〉, ‘몯’〈31ㄴ〉, ‘홀디니라’〈33ㄱ〉 등. 이들은 15세기 중기 국어 표기에서는 ‘말, -ㄹ, -ㄹ띠-~-ㅭ디-’ 등으로 나타났던 것이었다. 이렇게 각자병서와 ‘ㅭ’이 ‘ㄹ’만 쓰여 ‘ㆆ’을 쓰지 않는 표기법은 1465년 『원각경언해(圓覺經諺解)』로부터 개정된 국어 표기법의 결과로 해석된다.

한편, 합용병서는 15세기 문헌에서 쓰이던 “ㅺ, ㅼ, ㅽ, ㅻ; ㅳ, ㅄ, ㅶ, ㅷ; ㅴ, ㅵ” 등 10가지 중에서 ‘ㅻ, ㅷ, ㅵ’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만 보인다. ‘’〈23ㄱ〉, ‘나모지’〈4ㄱ〉;‘’〈23ㄱ〉, ‘’〈39ㄴ〉;‘리’〈34ㄱ〉;‘디’〈11ㄴ〉, ‘건내여’〈38ㄱ〉; ‘리오’〈21ㄴ〉, ‘거슬’〈10ㄴ〉, ‘妙道로’〈26ㄴ〉;‘싀니’[苦]〈35ㄱ〉;‘’[孵]〈9ㄴ〉, ‘리며’〈31ㄴ〉, ‘그 ’[時]〈40ㄴ〉 등. 이 중에서 ‘거슬’은 15세기 문헌에서는 ‘거슬’형으로 나타나던 것인 점이 특이하다. 이 책에는 15세기 말 정도에 정착·사용되던 초성 합용병서 중에서 ‘ㅴ’가 ‘ㅺ’로 바뀐 예도 나타난다. ‘’〈40ㄱ〉~‘’〈26ㄴ〉. 이와 함께 ‘ㅂ’계통의 합용병서 ‘ㅷ’과 ‘ㅄ’계통의 ‘ㅵ’의 예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합용병서 ‘ㅷ’ 또는 ‘ㅵ’을 포함한 단어 - ‘① 다, , 다, 다, 다 등. ② 리[疱.수두], 다[溢.넘치다], 르다[刺], 리다[破] 등’이 이 문헌에 사용되지 않은 데 원인이 있을 뿐 이와 같은 표기방법이나 단어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문헌보다 후대에 간행된 다른 문헌에서는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초성 합용병서 중에서 특이한 사실로는, ‘ㅂㅍ’과 ‘ㅅㅋ’이 쓰인 용례가 발견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너비 ᄪᅧ’〈14ㄴ〉, ‘뫼  데’〈6ㄴ〉와 같은 예는 훈민정음(해례본)의 규정 어디에서도 예시된 적이 없는 표기로서, 다른 문헌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종성 표기는 훈민정음(해례본)의 ‘종성해’에 제시된 팔종성가족용(八終聲可足用)의 규정, 그리고 훈몽자회(1527) 범례의 ‘언문자모’에 나오는 초성종성통용팔자(初聲終聲通用八字)의 규정대로 적용하였으며, 그 외의 다른 받침 표기는 나타나지 않는다. ‘곳’[花]〈41ㄴ〉, ‘낫밤’〈15ㄱ〉,‘디’[具]〈41ㄱ〉 등. 이와 함께 사이시옷도 ‘ㅅ’으로 통일되어 나타난다. ¶‘바랏므레’〈10ㄱ〉, ‘ 光明’〈11ㄱ〉;‘손’〈11ㄱ〉, ‘믈긔’[水穴]〈10ㄴ〉 등.

형태소의 통합 표기에서 실질 형태소 다음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형식 형태소가 이어질 때는 대체로 연철(連綴)이 지켜졌으나, 분철(分綴)과 중철(重綴)도 나타난다. 분철은 한자어 뒤에 이어질 때에 한정되었으며, 중철은 한자에 한자음을 병기할 때 한자음의 말음이 ‘ㄱ, ㄴ, ㄹ, ㅁ, ㅂ’ 뒤에서, 고유어의 경우에는 ‘ㄹ, ㅁ, ㅂ’ 뒤에서 사용되었다. ¶‘神通力력글’〈30ㄴ〉, ‘帝釋셕기’〈39ㄴ〉, ‘人身신’〈25ㄴ〉, ‘四王天텬니오’〈14ㄱ〉, ‘얼굴’〈12ㄱ〉, ‘萬物믈’〈3ㄱ〉, ‘몸’〈15ㄴ〉, ‘正念념’〈25ㄴ〉, ‘비’〈5ㄴ〉, ‘業업블’〈8ㄱ〉 등.

이 책에 나타난 모음체계를 살펴볼 수 있는 증거 자료 중에서 모음 ‘’가 변화한 예도 드물기는 하지만 나타난다. ‘라미’〈15ㄱ〉는 ‘[風]〈〉람’으로 변화한 사실을 보여주는 예로, 국어의 역사상 비어두 음절에서 ‘’가 ‘아’로 변한 것 중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빠른 예가 아닌가 한다. 16세기 후기는 ‘’의 1단계 변화가 거의 완성되었던 시기로, 모음 체계의 대립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따라서 모음조화의 질서가 혼란스러운 양상을 보이는데 이 자료에서도 그러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산승’〈34ㄱ〉(cf. ‘산승은’〈29ㄴ〉), ‘인연’〈18ㄱ〉, ‘그 天텬’〈10ㄴ〉, ‘어리라’[得]〈36ㄴ〉, ‘道도를’〈17ㄱ〉 등.

이 문헌에 반영된 가장 특징적인 음운현상은 ‘ㄷ’구개음화의 최초 출현 예가 다수 나타난다는 것이다(백두현 1991, 김무봉 1993). 지금까지의 국어사 연구에서 구개음화가 나타나는 가장 이른 시기의 문헌은 『촌가구급방(村家救急方)』(1571~1572)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 자료의 출현으로 그 시기가 앞당겨졌다. ‘부쳐’〈30ㄴ〉와 ‘부톄’〈30ㄴ〉, ‘弟졔子’〈40ㄱ〉(cf. 弟 아뎨〈훈몽자회, 상:16ㄴ〉) 등과 ‘帝졔釋셕기’〈39ㄴ〉와 ‘帝뎨釋셕기’〈40ㄱ〉, ‘天텬帝졔釋셕기’〈40ㄴ〉와 ‘天텬帝뎨釋셕’〈40ㄴ〉과 같은 용례에서 볼 수 있듯이, 15세기~16세기 초기까지만 해도 ‘부텨, 弟뎨, 帝뎨’ 등이었다. 그러던 것이 전자와 같이 변화한 예에서 ‘ㄷ’ 구개음화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 문헌에서는 과도교정의 예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세 가디’[三般]〈39ㄴ〉, ‘닐굽 가디’〈39ㄴ〉, ‘오딕’[唯]〈39ㄴ〉, ‘正法법’〈34ㄴ〉 등이 그것이다. 이들 ‘가디, 오딕, 正’은 16세기 전반까지의 문헌에서 각각 ‘가지, 오직, 正’으로 초성이 ‘ㄷ’이 아닌 ‘ㅈ’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를 ‘ㄷ’으로 교정한 것이니, 과도교정(hyperforeignism)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구개음화 경향이 확산·심화됨으로써 ‘ㅈ,ㅊ’과 같은 치음이 ‘i/j’ 앞에 올 경우에 본음 ‘ㄷ,ㅌ’에서 변화한 음으로 착각해 이와 같은 과도 교정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구개음화와 과도교정의 사례를 통해 1570년대 전라도 순창 지역에서는 ‘ㄷ’ 구개음화가 확산되어 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추가할 것은 ‘셧그티라’[舌頭]〈38ㄱ〉와 같은 예이다. 이것은 전라도 순창 지역에서 보여주는 구개음화의 범위가 ‘ㄷ’구개음화만이 아니라 ‘ㅎ’구개음화도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셔[舌]+ㅅ+긑[端/頭]+이+라’로 분석되며, 이 ‘셧긑’은 바로 ‘혓긑’의 구개음화형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국어 표기법 중에서 한자와 우리말을 섞어 쓸 경우에 한자음에 따라서 중성이나 종성을 보완해 쓰는 방식이 훈민정음 해례의 ‘합자해’에 다음과 같이 예시되어 있다. ‘孔子ㅣ魯ㅅ사’〈훈민정음해례: 합자해〉. 이 문헌에 쓰인 주격 표기는 16세기의 다른 문헌과 대체로 같아 모음으로 끝난(개음절) 한자어 뒤에 주격조사가 올 때 ‘ㅣ’는 선행 체언과 분리해 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문헌에서는 한자음에 붙여 쓴 경우가 나타난다. 즉 모음으로 끝난 고유어나 한자어 뒤에서 ‘ㅣ’가 쓰였으나 ‘이’로 분리해 표기한 경우도 있고(‘부텨이 니샤’〈40ㄱ〉, ‘業업報보이’〈7ㄱ〉), 한자음에 합용하여 쓴 경우도 발견된다(‘두 가짓 道되 업스니라’〈38ㄱ〉). 이것은 언해본의 역자(=표기자)가 훈민정음(해례본)의 ‘합자해’ 표기방식을 정확히 알지 못한 결과로도 볼 수 있고, 주격 ‘ㅣ(i)’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중모음에서 ‘ㅣ’하향중모음에 대한 발음이 뚜렷하게 인식됨으로써 표기 형태도 독립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자음(폐음절) 뒤에서는 주격 표지를 ‘이’로 표기하는 것이 정상인데 ‘ㅣ’가 쓰인 예도 나타난다. ¶‘萬만德덕ㅣ라 호’〈3ㄴ〉 등.

한편, 이 문헌은 어휘에 있어서 아주 흥미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다른 문헌에서 발견되지 않는 어휘가 여러 개 발견되는 것이다. 이 중에서 일부는 다른 문헌에서 발견되지 않거나 전라도 간행 문헌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어형으로 나타나므로 당시의 전라도 순창 지역어를 반영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지방 사찰판이 갖는 특성 중에서 이 책의 배포 범위와 지역 독자층을 고려한 결과로 해석된다. 명사의 경우에, ‘거슬다, 구령이, 굼더기, 안녁, 가모티, 멸오; 숟하다, 싀다’ 등이 그것이다. 다른 문헌에서는 ‘거슬다, 구렁이’로 나타나는 것이 이 책에서는 ‘거슬’〈10ㄴ〉, ‘구령이’〈10ㄱ〉로 나타난다. ‘굼더기’〈10ㄱ〉는 ‘귀더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 “아내, 부인”을 뜻하는 ‘안녁’[內便]〈11ㄱ〉, ‘일반 여자’를 뜻하는 ‘녀편’〈39ㄴ〉이 보인다. 오늘날 “가물치”를 뜻하는 ‘가모티’〈10ㄱ〉가 쓰였고, ‘멸오’(멸외 10ㄱ)는 ‘멸오’에 조사 ‘ㅣ’가 연결된 것으로 분석되므로 ‘멸구’의 방언형인 ‘멸고, 멸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숟하다’는 오늘날의 ‘숱하다’와 같은 의미로, ‘싀니’의 어간 ‘싀-’는 ‘싀-’(시고 짜다)의 이 지역 방언형으로 추정된다.

한편, 다른 문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어휘가 발견되는데, ‘개옺, 곱다, 로다, 로이’ 등을 들 수 있다. ‘개옺’은 ‘개[浦]+곶[串]’의 합성어이며, ‘곱다’는 ‘다’[溜. 고이다]와 쌍형어로서 ‘고온’〈6ㄴ〉처럼 활용하는 ‘ㅂ’불규칙용언이었다. ‘로다’〈27ㄱ〉는 ‘[謀]+-로-’로, ‘로이’〈8ㄱ〉는 ‘+롭+이’로 분석되며 “교활하다, 꾀를 부리다”와 관련 있는 단어들로 파악된다. 그리고 한자어 ‘喝’이 특수한 의미로 굳어져 쓰인 ‘핵다’〈7ㄴ〉·‘액다’〈25ㄱ〉 등이 있다. ‘{핵/액}다’는 감탄사 ‘핵, 액’에 접미사 ‘-다’가 결합한 파생어이다. 또한 복합동사 ‘봇닷겨’〈8ㄱ〉는 ‘-+-+-이-’로 분석할 수 있다. 그 밖에 ‘어긔-’[差]의 영변화 파생어로 부사 ‘어긔’〈8ㄱ〉가 보이고, ‘헤부러’〈15ㄱ〉, ‘믜리부러’〈15ㄱ〉, ‘첫’[最始]〈26ㄴ〉, ‘퍼기’〈10ㄴ〉, ‘아쇠라’〈39ㄴ〉 등과 같이 이 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어휘들도 사용되었다. 이들 어휘의 의미는 분명히 드러나는 것도 있지만,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것도 있다. 반드시 본문의 주해 부분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지역 방언사 기술과 관련하여 국어학 연구자들의 관심이 기대된다.

5. 문헌적 가치와 특기 사항

『몽산화상육도보설언해』는 1567년 전라도 순창 지역어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문헌에는 15세기 말기에 정착된 국어 표기법 및 국어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16세기 후반 전라도 지역어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현재까지 발굴·소개된 국어사 문헌자료 중에서 구개음화(口蓋音化)가 폭넓게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문헌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언해본은 전라도 순창 취암사라는 지방의 한 사찰에서 독자적으로 간행된 문헌이다. 시주질을 살펴볼 때 대개는 이 지역 신도들을 대상으로 법보시(法布施)의 차원에서 간행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문헌에는 한양에서 간행된 관판문헌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언어현상들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그 시간적, 공간적 범위는 16세기 후반 전라도 순창 지역어일 것으로 추정되며, 그것이 음운·형태 및 어휘 면에서 폭넓게 확인된다.

국어학적 측면의 특징 몇 가지만 간략히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이 자료에서는 ‘ㄷ’ 구개음화와 ‘ㅎ’ 구개음화가 발견되는 최초의 자료로서, 그러한 예를 통해 1570년대를 전후로 전라도 북부 지역에서 구개음화가 확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5세기 중후반의 관판문헌에서였다면 ‘ㅿ’으로 표기되었을 만한 환경에서 ‘ㅅ’ 또는 ‘ㅇ’ 등으로 반영된 예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15세기 훈민정음의 국어 표기에서 ‘ㅿ’의 음가와 표기 의도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재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 문헌이 16세기 후반 전라도의 지역 방언과 그 변화하는 모습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그보다 이전 시대 문헌에 나타나는 ‘ㅿ’의 의도와 관련하여 근원적인 문제를 재고할 만하다. 또한 이 문헌을 통해 16세기 후반 전라도 순창 지역어로 추정되는 형태·어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지적할 수 있다. 비록 일부 어휘에 불과하지만, 이 지역 방언의 통시적 변화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국어학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어사 연구에서 특히 방언사 분야는 연구 업적이 영성한 편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방언사를 정밀하게 기술할 정도로 자료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데 원인이 있다. 그러나 자료의 부족에서만 원인을 찾기 전에 과연 연구자들이 해당 지역 방언사 자료를 적극적으로 찾아 면밀하고 철저히 분석해 보았는가 하는 점이다. 자료 부족의 탓으로만 돌리고 수수방관한다면 학문적 발전은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문헌을 역주하면서 면밀히 살펴본 관점에서 말한다면, 사실 이 해제는 이 문헌이 담고 있는 여러 문제를 모두 거론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즉 음운·형태·어휘의 측면에서 더 분석되어야 할 여러 가지 국어사적 사실이 이 문헌에 들어 있는 것이다.

이 해제는 그중에서 아주 일부만 거론했을 뿐이며, 따라서 이 문헌은 여전히 전라도 방언 연구를 위한 원석(原石)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문헌을 포함하여 전라도 지역과 관련이 깊은 여러 문헌자료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방언사 자료가 없다고들 말하지만, 16세기 전라 방언사 자료만 해도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예컨대, 전라도 고산 화암사 간행의 『법집별행록절요언해』(1522), 전주 완산 간행의 『부모은중경언해』(1545), 광주판 『천자문』(1575), 『백련초해』(1576), 전남 순천 송광사 간행의 『초발심자경문언해』(1577)와 개찬본 『몽산화상법어약록』(1577) 등이 있다.

미문이지만, 이 자료들에 나타난 국어와 16세기 당시 관판문헌에 나타난 국어, 그리고 현대국어 전라(서남) 방언을 다각도로 대조해 연구하였다는 소식을 아직 접하지 못하였다. 이 연구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이들 자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그것을 기초로 세밀한 역주 작업이 우선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국어사 ‘자료의 성격과 해당 자료에 나오는 글자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연구’ 과정을 거친다면, 16세기 중·후반기 전라 방언의 실상을 적잖이 발견해 국어사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방언사를 아우르는 한국어 역사 기술을 위해 전라(서남) 방언 연구자들의 애정 어린 관심을 기대한다. 이 문헌의 역주는 그런 연구를 위한 아주 작은 노력의 하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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