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목우자수심결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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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목우자수심결언해
역주 목우자수심결언해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는 고려의 승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이 지은 한문본 『수심결(修心訣)』을 조선 세조 때 신미(信眉)가 우리말로 언해하여 1467년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책이다.

정우영(鄭宇永)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1976)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 (문학석사·박사)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훈민정음학회 연구이사

한국어학회 편집위원

국어사학회·국어국문학회 감사

〈저서〉

염불보권문의 국어학적 연구, 동악어문학회(1996, 공저)

역주 원각경언해 서(2002), 5집(2006), 8집(2007), 10집(2008)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초발심자경문언해, 신구문화사(2005)

역주 속삼강행실도, 한국문화사(2008, 공저)

〈논문〉

〈훈민정음〉 한문본의 낙장 복원에 대한 재론(2001)

〈월인석보〉 권20의 어휘 연구(2002)

원각경언해 연구(2003)

국어 표기법의 변화와 그 해석(2005.2)

〈훈민정음〉 언해본의 성립과 원본 재구(2005.5)

경기체가 〈관동별곡〉의 국어사적 검토(2007.2)

〈서동요〉 해독의 쟁점에 대한 검토(2007.12)

순경음비읍(ㅸ)의 연구사적 검토(2007.10)

훈민정음 언해본의 정본 제작에 관한 연구(2007.공동연구) 외 다수.

역주위원

  • 목우자수심결언해·사법어언해 : 정우영

  • 교열·윤문·색인위원

  • 목우자수심결언해·사법어언해 : 박종국 홍 현 보
  • 편집위원

  • 위원장 : 박종국
  • 위원 : 강병식 김구진 김석득
  • 나일성 노원복 박병천
  • 오명준 이창림 이해철
  • 전상운 정태섭 차재경
  • 최기호 최홍식 한무희
  • 홍민표

역주 목우자수심결언해·사법어언해를 내면서

우리 회는 1990년 6월 “한글고전 역주 사업”의 첫발을 내디딘 이래로, 〈석보상절〉 권6·9·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그 성과물을 간행하여 왔다. 이제 우리 회는 올해로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을 추진한 지 스무 해가 되는 뜻 깊은 해를 맞게 되었으니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한글 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 역주하여 간행한 문헌과 책수는 ≪석보상절≫ 2책, ≪월인석보≫ 8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10책, ≪남명집언해≫ 2책,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1책, ≪구급방언해≫ 2책, ≪금강경삼가해≫ 5책, ≪선종영가집언해≫ 2책, ≪육조법보단경언해≫ 3책, ≪구급간이방언해≫ 4책, ≪진언권공, 삼단시식문언해≫ 1책, ≪불설아미타경언해, 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묶어 1책 등 모두 53책이다.

그동안 정부의 지원에 굴곡이 심하여 애태울 때도 있었으나 우리 회의 굽히지 않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역주자의 노력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원동력이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가장 깊은 정신은 두말할 나위 없이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이다. 그것은 세종의 철저한 애민정신과 자주정신이며 그 마음을 이어간 선각자들의 헌신적 노력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가 추진한 “한글고전 역주 사업”은 15세기 문헌을 대부분 역주하고 16세기 문헌까지 역주하는 데 이르렀다. 올해는 ≪월인석보≫ 권23·25, ≪구급간이방언해≫ 권7, ≪반야심경언해≫, ≪목우자수심결언해·사법어언해≫, ≪신선태을자금단·간이벽온방·벽온신방≫, ≪우마양저염역치료방·분문벽온역이해방≫, ≪언해 두창집요≫ 등 8책을 역주하여 간행할 계획이다.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는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지은 한문본 ≪수심결(修心訣)≫을 조선 세조 때 신미(信眉)가 우리말로 언해하여 1467년에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책이다. ≪수심결(修心訣)≫은 마음을 닦아 부처를 이루는 방법론을 9문 9답을 통해 제시한 선(禪) 수행 지침서이자 입문서인데, 작자인 지눌의 호(號) ‘목우자(牧牛子)’를 앞에 붙여 ≪목우자수심결언해≫라고 부르고 있다.

한편 ≪사법어언해(四法語諺解)≫는 환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晥山正凝禪師示蒙山法語),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등 4편의 법어에 한글로 구결을 달고 당시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다. 권수제는 ‘法語’이나 후대에 ≪몽산법어언해(蒙山法語諺解)≫와 합철된 책에서 권말서명이 ‘四法語’로 나타나므로 학계에서는 흔히 ‘사법어(四法語)’라고 부른다.

이 두 책은 1467년(세조13년)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처음 간행되었으며, 합철되어 있어서 판식(板式)이나 체재 등에서 거의 같은 양상을 보인다. 그러한 형태적 유사성은 국어학적 특성의 유사성으로까지 이어진다. ≪목우자수심결언해≫와 ≪사법어언해≫는 비슷한 시기에 간행된 다른 책들과 비교할 때 표기법이나 말본(문법), 어휘 면에서 흥미로운 양상을 많이 보여준다.

끝으로 이 원전을 우리 회에서 역주 간행함에 있어, 이 책들을 역주해 주신 동국대학교 정우영 교수님과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과학기술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 모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09년 12월 15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 16세기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 이외의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이 이를 읽어 해독하기란 여간 어려운 실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미어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리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국어 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역주본은 원간본인 간경도감판으로서 서울대학교 규장각본을 저본으로 하였고, 판본 비교를 위해 일본 동경대학(東京大學) 소창문고본도 참고하였다. 뒤에 영인한 것은 규장각본과 똑같은 일본 동경대학 소창문고본이다.

(2) 이 책의 편집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한자 원문·언해 원문(방점은 없애고, 띄어쓰기함)·현대어 풀이·옛말과 용어 주해’의 차례로 조판하였으며, 또 원전과 비교하여 찾아보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각 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장(張)·앞[ㄱ]·뒤[ㄴ] 쪽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보기〉

제14장 앞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14ㄱ활셕  량과 한슈셕  과

제14장 뒤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셕듁화 14ㄴ여름  과 디허

(3) 현대말로 옮기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하는 데 기준을 두었다.

(4) 현대말 풀이에서, 옛글의 구문(構文)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 〉 안에 넣어 보충하고, 현대말로 직역하더라도 이해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것은 (= ) 식으로 보충·설명하였다.

(5) 원문은 큰 단락으로 나누어 ‘한문(구결문):언해문’을 짝지어 놓았다. 그러나 이 역주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내용에 따라 다시 단락을 짧게 끊어 ‘한문(구결문):언해문’으로 제시하고 역주하였다.

(6) 찾아보기 배열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 순서 : ㄱ ㄲ ㄴ ᄔ ㄷ ㄸ ㄹ ㅁ ᄝ ㅂ ㅲ ㅳ ㅃ ㅄ ᄢ ᄣ ᄩ ㅸ ㅅ ㅺ ᄮ ㅼ ㅽ ㅆ ㅾ ㅿ ㅇ ᅇ ㆁ ᅙ ㅈ ㅉ ㅊ ㅋ ㅌ ㅍ ㅎ ㆅ

② 중성 순서 :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ㆉ ㅜ ㅝ ㅞ ㅟ ㅠ ㆌ ㅡ ㅢ ㅣ ㆍ ㆎ

③ 종성 순서 : ㄱ ㄴ ㄴㅅ ㄴㅈ ㄴㅎ ㄷ ㄹ ㄹㄱ ㄹㄷ ㄹㅁ ㄹㅂ ㄹㅅ ᄚ ㅁ ㅁㄱ ㅯ ㅰ ㅂ ㅄ ㅅ ㅺ ㅼ ㅿ ㆁ ㅈ ㅊ ㅋ ㅌ ㅍ ㅎ

『목우자수심결언해·사법어언해』 해제

정우영(동국대학교 교수)

1. 서론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는 고려의 승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이 지은 한문본 『수심결(修心訣)』을 조선 세조 때 신미(信眉)가 우리말로 언해하여 1467년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책이다. 지눌은 『수심결(修心訣)』의 서두에서 삼계(三界)의 고뇌를 ‘화택<세주>(火宅=불난 집)’에 비유해 괴로운 생사의 윤회를 벗어나는 길은 부처[佛]를 이루는 것인데, 사람들은 자기 마음[心]이 참 부처이고 자기 성품[自性]이 참다운 법임을 알지 못해 밖에서만 찾는다고 하고, 마음[心]을 닦아 부처를 이루는 방법을 9문 9답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또한 지눌은 이 책에서 정혜쌍수(定慧雙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체계화하였는데, 분량이 적고 문장이 간결·평이하여 선수행(禪修行) 지침서이자 입문서로 널리 읽히고 있다.

이 책의 이름은 작자인 지눌의 호(號) ‘목우자(牧牛子)’를 앞에 붙여 ‘목우자수심결’이라 부르나, 한문본과 구별하기 위해 우리말로 번역된 책은 일반적으로 『목우자수심결언해』라고 부르고 있다. (이 글의 예문 설명에서는 판심제에 따라 ‘수심결’로 줄여 부르기로 한다.)

한편 『사법어언해(四法語諺解)』는 환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晥山正凝禪師示蒙山法語),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등 4편의 법어에 한글로 구결을 달고 당시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다. 권수제는 ‘法語’이나 후대에 『몽산법어언해(蒙山法語諺解)』와 합철된 책에서 권말서명이 ‘四法語’로 나타나므로 학계에서는 흔히 ‘사법어(四法語)’라 부른다.

이 두 책은 1467년(세조 13년)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처음 간행되었으며, 합철되어 있어서 판식(板式)이나 체재 등에서 거의 같은 양상을 보인다. 그러한 형태적 유사성은 국어학적 특성의 유사성으로까지 이어진다. 『목우자수심결언해』와 『사법어언해』는 비슷한 시기에 간행된 다른 책들과 비교할 때 표기법이나 문법, 어휘 면에서 흥미로운 양상을 많이 보여준다.

이 책들보다 먼저 간행된 책에서는 이미 사라진 ‘ㅸ’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든가, 다른 문헌에 드물게 나타나는 문법적 특성이 보인다든가 하는 점 등이 그것이다. 특히 『사법어언해』는 총 9장밖에 되지 않는 적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문헌에 없는 희귀어가 여러 개 사용되어 어휘 면에서도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2. 서지 사항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는 내제(內題) 다음에 2행에 걸쳐 ‘丕顯閤訣 慧覺尊者譯’이라고 되어 있어서 동궁(東宮)의 편당(便堂)인 비현합(丕顯閤)에서 구결을 달고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가 번역했음을 알 수 있다. 언해본은 번역자의 이름을 책에 밝히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목우자수심결언해』는 번역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어 특이하다. 이는 뒤에서 살필 『사법어언해(四法語諺解)』도 마찬가지이다.

『목우자수심결언해』의 원간본에는 그 앞에 『사법어언해』가 합철되어 있다. 이 책의 끝에는 “成化三年丁亥歲朝鮮國刊經都監奉敎雕造 … 安惠柳睆朴耕書”라는 간기가 있으므로 1467년(세조13년)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간행되었다는 것과 판하본(板下本)의 글씨를 안혜(安惠)·유환(柳睆)·박경(朴耕)이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후에 경상도 합천(陜川) 봉서사(鳳栖寺)에서 복각되기도 하였는데, 1500년(연산군 6년)에 간행된 중간본은 간경도감판을 복각한 후 간기를 따로 붙인 것이다. 원간본인 간경도감판에 비해 판식과 판각, 인쇄가 매우 엉성하다. 봉서사 중간본은 『사법어언해(四法語諺解)』가 합철된 것과 『선종유심결(禪宗唯心訣)』이 합철된 것 두 가지가 있다. 두 책 모두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 권말에 나오는 간기가 ‘弘治十二年’으로 되어 있으나 『선종유심결(禪宗唯心訣)』과 합철된 책의 권말에 ‘弘治十三年’이라는 간기가 뚜렷이 보이는 점으로 보아 ‘十三’에서 탈획된 것으로 추정된다. 봉서사에서 간행된 중간본은 후쇄본까지 있어 꽤 널리 유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간경도감판인 원간본은 목판본으로서, 불분권(不分卷) 1책(冊)이며 크기는 23.1×17cm이다. 광곽(匡郭)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반곽(半郭)의 크기는 18.8×12.8㎝이며 유계(有界)에 9행 17자이다. 판심(版心)은 상하대흑구(上下大黑口), 내향흑어미(內向黑魚尾)이다. 권수제(卷首題), 권말제는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이고 판심제(版心題)는 ‘수심결(修心訣)’이다.

현재 원간본은 서울대 규장각 일사문고(一簑 古貴 294.315-J563ma, 보물 770호)와 일본 동경대 소창문고(목우자수심결 도서번호 : L174361)에 소장되어 있고, 봉서사에서 간행된 중간본과 그 후쇄본이 규장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1973년에는 일사문고본을 저본으로 한 영인본이 아세아문화사에서 출판되었다.

한편, 『사법어언해(四法語諺解)』는 10장 내외의 적은 분량이어서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 『몽산법어언해(蒙山法語諺解)』와 합철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중 원간본으로 추정되는 것은 『목우자수심결언해』와 합철되어 있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일사문고본이다. 소창문고본(사법어 도서번호 : L174529)도 일사문고본과 같은 책이지만 후대에 『사법어언해』 부분만 따로 제책한 것이다.

그런데 『사법어언해』는 간기가 따로 제시되어 있지 않아 합철된 『목우자수심결언해』, 『몽산법어언해』의 간기로 그 간행 연대를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일사문고본 『목우자수심결언해』 권말의 “成化三年丁亥歲 朝鮮國刊經都監奉敎雕造”라는 기록을 통해 『사법어언해』의 원간본도 1467년에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책은 각 법어(法語)에 구결을 달아 원문을 먼저 싣고 우리말 번역을 보이는 체재로 되어 있다.

이것은 이후에 지방의 사찰에서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1500년(연산군6년)에 경상도 합천(陜川) 봉서사(鳳栖寺)에서 간경도감판을 복각한 후 간기를 따로 붙여 간행하였고, 1517년(중종 12년)에 충청도 연산(連山) 고운사(孤雲寺)에서 체제를 바꾸어 『몽산법어언해(蒙山法語諺解)』와 합철하여 중간하였다. 고운사판은 합철된 『몽산법어언해』의 체재와 같이 법어를 대문으로 나누어 번역하였다는 점에서 간경도감 판본과 차이가 있다. 이후 1525년(중종20년) 황해도 황주(黃州) 심원사(深源寺), 1577년(선조 10) 전라도 순천(順天) 송광사(松廣寺), 1605년(선조38년)에 원적사(圓寂寺) 등에서 다시 간행된 『사법어언해』는 고운사판의 체재와 동일하다.

『사법어언해』 원간본의 판식(板式)은 『목우자수심결언해』 원간본의 그것과 거의 동일하다. 총 9장으로 크기는 23.1×17cm이다. 광곽(匡郭)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반곽(半郭)의 크기는 18.8×12.8㎝이며 유계(有界)에 9행 17자이다. 한글 구결과 언해는 쌍행으로 되어 있다. 판심(版心)은 대부분의 간경도감본과 마찬가지로 상하대흑구(上下大黑口), 내향흑어미(內向黑魚尾)이며, 권수제와 판심제는 ‘法語’로 되어 있다. 고운사 계통의 중간본은 총 13장이며, 사주단변(四周單邊)인 것이 많고 7행 18자이다. 그러나 송광사본은 총 27장에 7행 15자이다.

현재 원간본은 규장각 일사문고에 2부, 일본 동경대 소창문고에 1부가 전하며 중간본은 국립중앙도서관, 규장각 등을 비롯한 공사립 도서관과 개인소장으로 다수가 전한다. 1973년에 아세아문화사에서 일사문고본을 저본으로 한 영인본(『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와 합철)과 고운사판을 저본으로 한 영인본(『몽산법어언해(蒙山法語諺解)』와 합철)이 출판되었다. 또한 1979년에는 홍문각에서 『오대진언(五大眞言)』과 합본된 송광사판 영인본이 출판되었다.

3. 표기법 및 음운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와 『사법어언해(四法語諺解)』의 원간본인 간경도감판은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불경언해의 특징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주001)

여기에 제시하는 『목우자수심결언해』의 국어학적 특징은 이현희 외(1997)의 내용을 많이 참조하였다. 형태나 통사, 어휘의 특징 등은 이현희 외(2007)의 내용을 요약한 부분이 많다. 출처의 약호는 『목우자수심결언해』는 ‘수심결’로, 『사법어언해』는 ‘법어’로 하며, 해당 장의 앞·뒷면은 각각 ‘ㄱ·ㄴ’으로 구별 표기한다.

이 두 언해본의 표기법 및 음운의 특성은 거의 유사하다. 동국정운식 한자음이 쓰였고, 방점과 ‘ㆍ, ㆁ, ㆆ, ㅿ, ㅸ’ 등도 쓰였는데 ‘ㅿ’의 쓰임에는 혼란이 없다. ‘ 업순’〈수심결19ㄴ〉과 ‘이’〈수심결45ㄱ〉, ‘에’〈법어8ㄴ〉에서처럼 ‘ㅿ’이 종성에만 적히는 것과 ‘저’〈법어2ㄱ〉, ‘디녀’〈법어2ㄱ〉, ‘지’〈법어2ㄱ〉, ‘나믈릴’〈법어5ㄴ〉, ‘매’〈법어6ㄱ〉, ‘오’〈법어6ㄴ〉에서처럼 초성에 적힌 것이 모두 보인다. 한편, ‘ㆁ’은 ‘이’〈수심결19ㄱ〉〈법어2ㄱ,7ㄴ〉, ‘디니노다’〈법어2ㄱ〉, ‘스스’〈법어6ㄴ〉, ‘스이’〈수심결15ㄱ〉〈법어9ㄴ〉, ‘’〈법어6ㄱ〉, ‘’〈수심결19ㄴ〉에서처럼 초성과 종성에 모두 쓰였다. ‘ㆁ’의 연철 표기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서 가장 철저히 지켜졌는데 대개 『두시언해(杜詩諺解)』(1481)를 기점으로 ‘ㆁ’ 종성화 표기가 점차 증가하다가 『육조법보단경언해(六祖法寶壇經諺解)』에서는 정착 단계에 이른다.

국어 표기법에서 다소 특이한 것은 ‘ㅸ’인데, ‘ㅸ’은 부사 파생접미사 ‘-이’와 결합할 때에만 쓰였다. ‘수’〈법어2ㄱ〉, ‘가야’〈수심결9ㄱ〉, ‘어즈러’〈수심결7ㄱ〉〈법어5ㄱ〉, ‘조’〈수심결11ㄱ〉 등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15세기 관판 문헌에 반영된 표기법을 보면 ‘ㅸ’은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1461)부터 전격적으로 폐지되었다. 그리하여 이전에 ‘수’〈석상20:30ㄴ〉~‘쉬’〈월석13:12ㄴ〉와 같이 표기되던 것이 ‘수이’〈능엄1:34ㄴ〉~‘쉬이’〈능엄6:89ㄱ〉로 일사불란하게 적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와 『사법어언해(四法語諺解)』는 국어 표기법사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특이한 문헌이라 할 수 있다. ‘ㅸ’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 책의 원고는 1461년 이전에 언해되어 그 후 부분적으로 수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 책에서 ‘ㅸ’이 제한적 분포를 보이는 것은 두 가지 관점에서 달리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15세기에 실제 음소로서 존재했던 ‘ㅸ’이 당시에 이미 ‘ㅸ’이 음소로서의 기능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ㅸ’은 실제로 존재했던 음소가 아니었고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수이/쉬이’ 방언형과 ‘수비/쉬비’ 방언형을 절충적으로 표기하기 위한 문자였다고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ㅸ’의 음가를 [β]이었다고 볼 때 동남방언 등에서 ‘ㅸ〉ㅂ’으로 변화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실과 정음 초기문헌부터 1461년 이전 문헌에서 활발히 쓰이던 90여개 이상의 어휘에서 어느 문헌을 기점으로 일시에 소멸되었다는 사실을 음운사적, 음성학적 관점으로 얼마나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이다. 후자의 경우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1461) 이전 문헌들, 특히 방언이나 차자표기 자료들에서 그 같은 사실을 입증할 만한 자료들을 제시할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ㆆ’의 실현 양상은 두 문헌에서 조금 차이를 보인다. 『목우자수심결언해』에서는 ‘ㆆ’이 관형사형 어미 ‘ㄹ’과 병서되어 쓰인 것만 볼 수 있는데, 『사법어언해』에서는 ‘ㆆ’이 관형사형 어미 ‘ㄹ’과 병서되어 쓰인 것 외에 사이시옷으로 쓰인 예도 나타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차이가 이들 문헌의 표기법이 달랐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자료의 양이나 내용상의 차이로 인해 다르게 나타났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할 듯하다.

‘ㆆ’이 관형사형 어미 ‘ㄹ’과 병서되어 쓰인 예로는 ‘어루 마촤 디라’〈수심결45ㄱ〉, ‘求 사미’〈수심결45ㄴ〉, ‘디언뎡’〈법어2ㄴ〉, ‘마디니’〈법어5ㄴ〉, ‘니 時節’〈법어5ㄱ〉 등이 있으며, ‘ㆆ’이 사이시옷으로 쓰인 예로는 ‘無ㆆ字’〈법어2ㄴ〉가 있다. 이때 ‘ㆆ’이 사이시옷으로 쓰인 ‘無ㆆ字’는 『용비어천가』, 『훈민정음언해』,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1460년경) 등 훈민정음 창제 초기문헌의 표기법과 동일하다. ‘ㆆ’이 관형사형 어미 ‘ㄹ’과 병서되어 쓰인 예는 그리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앞에 언급한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볼디언’〈법어5ㄴ〉, ‘마롤디니라’〈법어5ㄱ〉, ‘드률 時節’〈법어5ㄴ〉 등과 같이 ‘ㆆ’이 폐지된 채 관형사형 어미 ‘ㄹ’만 쓰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에 비해 고유어의 각자병서 표기는 더 드문 편이다. 『목우자수심결언해』에서는 ‘ㅆ’만 쓰였는데, ‘말’〈36ㄱ〉, ‘아니’〈2ㄴ〉와 같은 예는 아주 드물고, 대부분이 ‘말로’〈19ㄴ〉, ‘아니’〈12ㄴ〉 등으로 쓰였다. 『사법어언해』에서는 ‘말’〈6ㄱ〉, ‘믜’〈2ㄴ〉 등 극소수에서 ‘ㅆ’과 ‘ㆀ’을 발견할 수 있을 뿐 대체로 폐지되었다. 이것은 15세기 국어 표기법의 역사로 볼 때 『원각경언해(圓覺經諺解)』(1465)에서부터 ‘ㆆ’과 각자병서가 전면적으로 폐지되어 ‘ㅭ→ㄹ’로, ‘각자병서→전청자(후음은 차청자)’로 적는 원칙을 따른 결과이다. 이들 문헌에 쓰인 ‘ㅆ’, ‘ㆀ’에 대해서는 문자의 보수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이들 문헌이 각자병서가 사용되던 시기에 언해되었으나 그 원고를 후대에 간행하면서(1467년) 제대로 수정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특히 ‘ㆀ’는 『법화경언해』(1463)부터 폐지되었는데 『사법어언해』에 보이는 것이어서 이 책의 원고 작성 시기가 그 이전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들 문헌에 사용된 합용병서는 정음창제 초기문헌의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로’〈수심결5ㄴ〉, ‘리오’〈수심결42ㄴ〉, ‘두’〈수심결25ㄱ〉, ‘’〈수심결10ㄱ〉와 ‘-’〈수심결2ㄴ〉, ‘’〈수심결3ㄱ〉, ‘’〈수심결2ㄴ〉, ‘’〈법어2ㄱ〉, ‘든’〈법어2ㄴ〉, ‘며’〈법어5ㄴ〉, ‘힘미’〈법어6ㄱ〉 ‘’〈법어2ㄴ,5ㄴ〉, ‘며’〈법어9ㄴ〉, ‘리고’〈법어6ㄱ〉, ‘해’〈법어5ㄴ〉, ‘븨니’〈법어6ㄴ〉, ‘리’〈법어9ㄴ〉 등이 그것이다.

자음동화(비음화)가 반영되지 않은 형태와 반영된 형태가 모두 보이기도 한다. ‘듣노라’〈수심결19ㄱ〉와 ‘든논’〈수심결19ㄱ〉의 공존, ‘니다가’〈수심결12ㄴ〉·‘뇨리니’〈법어5ㄴ〉에 대한 ‘녀’〈수심결24ㄴ〉 등이 그것이다. 그 외에 ‘믌결’〈수심결30ㄱ〉에 대한 ‘믓겨리’〈수심결24ㄴ〉처럼 사이시옷 앞에서 ‘ㄹ’이 탈락된 형태와 그렇지 않은 형태가 모두 발견되기도 하지만, 이런 것은 15세기의 다른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예이다.

한편 이들 문헌에는 ‘ㅈ’ 구개음화로 해석될 수 있는 예가 발견되어 주목된다.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에는 ‘몬져’〈24ㄴ,29ㄱ〉에 대한 ‘몬저’〈10ㄱㄴ,25ㄱ,30ㄴ,35ㄱㄴ,37ㄱㄴ〉가, 『사법어언해(四法語諺解)』에는 ‘이제’〈6ㄱ〉에 대한 ‘이졔’〈6ㄴ〉 등이 보인다. 이 중 『목우자수심결언해』에는 ‘몬저’가 13회나 출현한 데 반해 ‘몬져’는 2회밖에 출현하지 않아 ‘몬저’를 단순한 오기로 처리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또한 후자 ‘이졔’를 ‘이제’의 과잉교정 표기로 본다면 ‘ㅈ’ 구개음화에 대한 역표기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로 ‘몬져’라는 단어에서 ‘ㅈ’구개음화가 시작되었는지, 또 왜 이 단어에서만 혼기가 나타나는지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주002)

안대현(2007)에서는 이들 문헌에 나타나는 예를 가지고 이 시기에 이미 ‘ㅈ’구개음화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들 문헌에 보이는 제한된 예를 가지고 15세기에 ‘ㅈ’구개음화 현상이 일어났다고 단정짓기는 곤란하다. 이와 같은 점은 이현희 외(2007: 36~37)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이들 문헌에서는 ‘ㆍ’의 비음운화 현상도 보인다. 『사법어언해』에서 ‘사’〈5ㄱ〉이 ‘사름’[人]〈5ㄴ〉으로 표기된 예는 비어두 위치에서 ‘ㆍ〉ㅡ’로의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특히 ‘져’[將·持]〈수심결11ㄱ〉, ‘져셔’〈수심결35ㄴ〉와 같이 어간의 제1음절에서 ‘ㅏ’를 가지고 있던 단어(가지다)가 ‘ㆍ’로 표기된 것은 ‘ㅏ〉ㆍ’로의 변화를 보여 일반적 변화 유형 ‘ㆍ〉ㅏ’와는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역자인 신미(信眉)의 글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색다르긴 하지만 어두 위치뿐 아니라 비어두 위치에서의 ‘ㆍ’의 변화와 관련 있는 사실이라 지적해둔다.

모음조화가 적용되지 않은 예들도 여럿 발견된다. 『목우자수심결언해』에서는 ‘보, 보믈’〈13ㄴ〉 등처럼 같이 형태소 경계에서 모음조화에 맞거나 맞지 않은 예가 정음 초기문헌에 비해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증가했다. ‘부텨’〈수심결12ㄴ〉, ‘더라’[←덜-+아]〈수심결24ㄴ〉, ‘어료’〈수심결2ㄴ〉 등은 음성모음 어간이 양성모음의 어미나 조사를 취한 예로, 같은 문헌에서 모음조화에 맞는 ‘부텨를’〈수심결2ㄴ〉, ‘더러’〈수심결24ㄴ〉, ‘어드리니’〈수심결3ㄱ, 25ㄱ〉 등과 대조적이다.

『사법어언해(四法語諺解)』에는 ‘오’ 모음동화 현상이 발견된다. ‘알포로’〈6ㄱ〉, ‘니로모로 브터’〈5ㄱ〉가 그것인데, 이들은 보통 ‘알로’〈석상3:19ㄴ〉, ‘니로로〈원각,하3-1:20ㄴ〉 브터’와 같이 표기될 만한 것이다. 그런데 부사격 조사 ‘로/으로’가 제2음절 ‘로’의 원순모음 ‘ㅗ’의 영향으로 제1음절 ‘/으’가 ‘오’로 역행동화되어 ‘오로’로 표기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수의적인 것으로 15세기의 문헌에는 보이기는 하지만 드문 편에 속한다. ‘밧고로’〈석상24:2ㄱ〉, ‘녀고로’〈월석8:93ㄱ〉 등.

지금까지 살펴본 표기법 및 음운 현상은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원간본에 관한 것이었다. 이후의 중간본은 앞의 원간본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우선 『목우자수심결언해』과 『사법어언해』의 경우, 봉서사판은 간경도감판의 복각본이므로 내용이나 체재에 있어 원간본인 간경도감판과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봉서사판 『목우자수심결언해』는 ‘드라가며’〈2ㄴ〉[cf. 도라가며], ‘브틀디니’〈3ㄴ〉[cf. 브툴디니]처럼 간경도감판과 다른 예가 보이는데 이는 복각 과정에서 오각(탈획)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법어언해』의 경우, 『목우자수심결언해』에 비해 중간본이 많은 편이라 좀 더 다양한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다. 봉서사판의 경우 탈자로 보이는 예가 몇 개 있으며, ‘彌勒’의 ‘彌’가 약자인 ‘弥勒’〈5ㄴ〉로 나타난다는 차이를 보인다. 고운사판, 심원사판, 원적사판은 원간본과 표기상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세 경우 모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가령 원간본의 ‘디녀’〈2ㄱ〉, ‘힐후미’〈2ㄴ〉, ‘잇거시니’〈2ㄴ〉로 쓰인 형태가 이 책들에서는 ‘디녀’〈1ㄱ〉, ‘힐호미’〈2ㄴ〉, ‘잇커시니’〈2ㄴ〉로 나타난다.

일부 예에서는 한자음 표기에서도 동국정운식을 벗어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표기 형태는 송광사판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송광사판은 체재나 표기에서 고운사판과 비슷하지만 한자음 표기가 동국정운음을 지양하고 현실한자음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구개음화를 반영한 표기도 ‘오직’〈3ㄱ〉, ‘오딕’〈13ㄴ〉, ‘中’〈7ㄱ〉, ‘中’〈15ㄱ〉, ‘兄셩弟뎨’〈15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간본의 ‘ㅸ’은 ‘수비’〈2ㄱ〉, ‘어즈러비’〈10ㄱ〉처럼 ‘ㅂ’으로 되어 있으며 ‘ᅙ’, ‘ㆀ’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ㅿ’과 관련해서는 간경도감판이나 다른 중간본에서는 ‘ㅅ’으로 쓰인 것이 이 책에서는 ‘ㅿ’으로 쓰였다는 것이 특이하다.

4. 형태 및 통사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의 형태적 특성은 크게 단어 형성과 굴절의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단어 형성과 관련해서는 ‘ㅎ’과 ‘나-’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합성어 ‘나-’가 있다. 15세기에 ‘나-’는 “날카롭다”와 “날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날카롭다”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往往애 根機 난 사미 한 히믈 虛費 아니야’〈24ㄴ〉에서 ‘나-’는 ‘根機’의 속성을 형용하고 있어 “예리하다”, “뛰어나다” 정도의 문맥 의미를 갖는다. ‘나-’는 비슷한 유형의 합성어인 ‘맛들다’, ‘맛보다’와는 달리 항상 형용사로만 사용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굴절의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가치’[鵲]의 속격형 ‘가’, 보조사 ‘곳’, 동사 ‘니-’ 등이 있다. ‘가치’의 속격형 ‘가’는 유정 체언인 ‘가치’ 뒤에 속격 조사 ‘-’가 결합하면서 어간의 말음 ‘이’가 탈락된 어형이다. ‘네  가마괴 울며 가 우룸 소릴 듣다’〈수심결19ㄱ〉. 마찬가지로 ‘아비’, ‘곳고리’, ‘가야미’, ‘져비’, ‘고기’, ‘아기’, ‘가히’ 뒤에 관형격 조사 ‘-/의’가 결합하면 어간의 말음 ‘이’가 탈락된다. ‘아 지븨’〈월석13:11ㄱ〉, ‘어믜 누니’〈월석11:96ㄱ〉, ‘곳고 놀애’〈두초8:46ㄴ〉, ‘져븨 삿기’〈두초10:7ㄴ〉, ‘가 머리’〈월석4:7ㄴ〉 등. 15~16세기 자료에서 ‘가’의 예는 드물기는 하지만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보다 앞선 문헌에서는 보이지 않으므로 기록할 만하다.

보조사 ‘-곳/옷’의 결합 양상도 특이하다. ‘곳’이 모음으로 끝난 용언의 활용형 뒤에서 ‘ㄱ’ 약화 현상을 겪어 ‘옷’으로 실현된 예가 보인다. ‘이제 다가 닷디옷 아니면 萬劫을 어긔리니’〈수심결44ㄴ〉. 15세기에는 곡용의 경우 모음 또는 ‘ㄹ’로 끝나는 환경 뒤에서, 활용의 경우 반모음 ‘j’ 또는 ‘ㄹ’로 끝나는 환경 뒤에서 ‘ㄱ’ 약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목우자수심결언해』의 예는 예외가 되는 셈이다.

동사 ‘니-’의 경우 자음 어미와 결합할 때는 ‘니-’로, 모음 어미와 결합할 때는 ‘닐ㅇ-’으로 어간형의 교체를 보인다. 그런데 ‘-거-’가 통합된 어미와 결합하는 경우엔 ‘닐어늘’이 아닌 ‘니거늘’과 같이 나타나기도 한다. 15세기에는 선어말 어미 ‘-거/어/나-’가 자동사 뒤에서는 ‘-거-’로, 타동사 뒤에서는 ‘-어-’로 교체되기 때문이다. 이 문헌에는 ‘니-’의 일반적 교체가 나타나는 예와 그렇지 않은 예가 모두 발견된다. ‘漸漸 닷논 들 알 마 초 닐어’〈수심결24ㄱ〉, ‘믄득 니 實로 니건댄 …’〈수심결10ㄱ〉.

형태적 특성과 관련하여 ‘니르-’[至], ‘니를-’[至]의 활용도 주목된다. 이들은 상보적 분포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쌍형어의 어간으로 볼 수밖에 없다. 동일한 환경에서 두 가지 어형이 다 나타난다. 그러한 점은 『목우자수심결언해』에서도 마찬가지다. ‘妄念이 믄득 니로매 다 좃디 아니야 덜오  더라’〈24ㄴ〉, ‘아브터 나죄 니르며 十二時中에 시혹 드르며’〈18ㄴ〉, ‘漸漸 熏修야 와 今生애 니르러 듣고 곧 아라’〈10ㄱ〉, ‘이제 마 보 잇  니를란 손 뷔워 도라오미 몯리니’〈45ㄴ〉.

통사적 특성과 관련해서는 추측 표현의 ‘다’, ‘V홈 -’와 당위 표현의 ‘V호리라’, ‘V홀 디니라’를 지적할 수 있다. 이 중 ‘다’는 ‘如’ 또는 ‘似’에 해당하는 의미를 지니는 추측 표현이다. 현대국어의 ‘듯하-’ 구문과 마찬가지로 ‘-’이 어미로 사용되는 경우와 ‘-’가 일종의 보조용언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확인된다. ‘마치 가얍고 편안 리니’[恰似輕安리니]〈수심결37ㄴ〉, ‘머리옛 블 救 야 표 닛디 말라’[如救頭然야 不忘照顧라]〈수심결43ㄴ〉. 그 외에 ‘如’가 ‘V홈 -’로 언해된 예도 보인다. ‘돌히 플 지즈룸 티 야  닷고 삼니’[如石壓草야 以爲修心니]〈수심결25ㄴ〉.

당위 표현의 ‘V호리라’, ‘V홀 디니라’의 예로는 ‘一切 衆生 種種 幻化ㅣ 다 如來ㅅ 圓覺妙心에 나니라 시니 이 아롤 디니라’[一切衆生의 種種幻化ㅣ 皆生如來圓覺妙心이라 시니 是知]〈3ㄱ〉, ‘이 法 正히 랑야 어돈 功德 디 몯다 샴 니 이런  아로리라’[正思此法야 所獲功德니 是知]〈44ㄴ〉가 있다. 이 중 ‘이 아롤 디니라’는 한문 원문 ‘是知’에 대응되며 ‘이#알-+-오-+-ㄹ#+이-+-니라’로 분석되는데 ‘-ㄹ#+이-+-니라’ 부분이 당위의 의미를 나타낸다. ‘아로리라’ 역시 ‘是知’에 대한 언해로, ‘알-+-오-+-ㄹ#이+-이-+라’로 분석된다. 표면상으로는 선어말 어미 ‘-리-’가 결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관형사형 어미+의존명사’의 명사구 보문 구성인 셈이다. 이러한 당위의 의미는 명령형 어미를 통해 실현되기도 한다. ‘명령’의 언표내적 효력이 당위와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반기 알라 마 無量佛所애 한 善根을 시므니라 시며’[當知 己於無量無邊所애 種諸善根이라 시며]〈수심결45ㄱㄴ〉.

한문 원문 번역과 관련해서는 ‘是’, ‘此’, 부정 부사 ‘아니’의 쓰임의 주목된다. 한문의 ‘是’는 원래 지시어로 사용되었으나 白話文에서 점차 계사의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의 ‘是’에서는 지시어 및 계사의 기능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다가 부텨 求코져 홀 딘댄 부톄 곧 이 미니’[若欲求佛인댄 佛卽是心이니]〈2ㄴ〉, ‘모매 여희디 아니니 色身 이 거즛 거시라’[不離身中니 色身은 是假ㅣ라], 〈2ㄴ〉에서는 두 가지 기능이 모두 나타나 언해문에서도 지시어 ‘이’와 계사 ‘-이-’로 이중 번역된 듯하다. ‘一切 衆生 種種 幻化ㅣ 다 如來ㅅ 圓覺妙心에 나니라 시니 이 아롤 디니라[一切衆生의 種種幻化ㅣ 皆生如來圓覺妙心이라 시니 是知]’〈수심결3ㄱ〉에서는 지시어로만 사용되어 언해문에서도 ‘이’로만 번역되었다.

반면 ‘此’의 경우는 지시어로만 사용되었으며 언해문에서도 지시어 ‘이’로만 번역되었다. ‘이  여희오 밧긔 부텨 외요미 업순 디라’[離此心外예 無佛可成이라]〈수심결3ㄱ〉. 그런데 ‘是’와 ‘此’가 같이 나타날 경우는 이를 모두 언해에 반영하거나 둘 중 하나만 반영한 것을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하나는 지시어로, 하나는 서술격조사로 번역하였다. ‘達摩門下애 올마 서르 傳 거시 이 이 禪이니’[達摩門下애 轉展相傳者ㅣ 是此禪也ㅣ니]〈수심결2ㄱ〉, ‘이 觀音ㅅ 理예 드르샨 門이시니’[此ㅣ 是觀音ㅅ 入理之門이시니]〈수심결19ㄴ〉.

부정 부사 ‘아니’의 위치가 특이한 경우도 있다. ‘이런  當야 아니 이 虛空가’[當伊麽時야 莫是虛空麽아]〈19ㄴ〉는 “이런 때를 만나니 이것이 虛空이 아닌가” 정도로 해석되는데 여기서 ‘莫是虛空麽’의 ‘莫’은 ‘是虛空’을 부정하는 의미로 쓰였다. 한문(백화문) 원문을 축자역하면서 ‘아니 이 虛空가’로 언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녯 聖人ㅅ 道애 드르샨 因緣이 明白며 젹고 쉬워 힘 져고매 막디 아니니’[古聖入道因緣이 明白簡易야 不妨省力니]〈수심결7ㄴ〉에서 ‘不妨省力’의 언해 양상도 특이하다. 이는 “옛 성인이 道에 들어가신 因緣이 明白하고 簡易하여 노력이 적은 것에 막히지 아니하니(노력이 적어도 무방하니)” 정도로 해석된다. ‘省力’은 술목 구성으로 ‘힘 더롬(노력을 덞)’과 같이 목적어-서술어 구성으로 번역되어야 하지만 ‘힘 져곰’처럼 주술 구성으로 번역됐다. 이때 ‘不妨’은 현대국어의 ‘無妨’과 같은 뜻인데 ‘막디 아니-’로 언해되었다.

『목우자수심결언해』와 『사법어언해』에 공통적으로 많이 쓰인 구문도 있다. ‘-오미 몯-’와 같은 형식의 구문으로, 이는 이지영(2008: 171-177)에서 “합당함 혹은 마땅함에 미치지 못함”, “불급(不及)”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논의된 바 있다. 이 구문은 『목우자수심결언해』에 6회, 『사법어언해』에 3회 보인다. ‘對答호 네 미친 마 가야 發야 邪正分揀 아니호미 몯리니 이 어린 갓 사미라’〈수심결9ㄴ〉, ‘이제 마 보 잇  니를란 손 뷔워 도라오미 몯리니  번 사 모 일흐면 萬劫에 다시 도라오미 어려우리니 請 모로매 삼갈디니라’〈수심결45ㄴ〉, ‘디 몯  반기 늘근 쥐 곽 글굼티 디언 옮기힐후미 몯리라’〈법어2ㄴ〉, ‘낫 세 와 밤 세  뎌와 볼디언뎡 일 업슨 匣 소배 안조미 몯리며 보단 우희 주거 안조 구틔디 마롤디니’〈법어5ㄴ〉, ‘大凡 디 行脚홀뎬 모로매 이 道로 져 뇨리니 現成 供養을 먹고 쇽졀업시 날 디내요미 몯리라’〈법어4ㄴ~5ㄱ〉.

‘-오미 몯-’ 구문에 대응되는 한자는 대개 ‘不, 未, 不可, 不得’이며 이는 ‘몯’의 의미와 연결된다. 또한 ‘몯-’ 뒤에는 항상 ‘-ㄹ(관형사형어미)#이(의존명사)+-이-(계사)’로 분석되는 ‘리’가 결합된다. 이 구문은 16세기 이후로는 보이지 않는데, 동일 원문을 달리 언해한 예를 보면 해당 부분이 ‘-디 몯-’와 같은 장형 부정문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傲慢 어루 길오미 몯리며 私慾 어루 노노하 호미 몯리며 든 어루 호미 몯리며 라온 이 어루 장호미 몯리라’〈내훈1:7ㄴ〉, ‘오만홈을 可히 길오디 못 거시며 욕심을 可히 방죵히 못 거시며 을 可히 게 못 거시며 즐기믈 可히 극히 못 거시니라’〈어내1:6ㄱ〉.

5. 어휘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의 어휘는 크게 특이하다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대개 다른 문헌에서도 볼 수 있는 어휘인데 이 문헌에 쓰인 용법이 다소 특이하거나, 다양한 의미 가운데 일부 의미만 발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자어 중에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行’, ‘一切’, ‘種種’, ‘後’, ‘비-’, ‘애’, ‘셜웝’, ‘불웝’, ‘태우’, ‘自己’ 등이 있다.

‘行’은 동사적 용법을 보일 때는 평성을, 명사적 용법을 보일 때는 거성의 성조를 보이는데 이 문헌에서도 그와 같은 특성이 잘 드러난다. 그 중에 명사적 용법의 경우 16세기의 다른 문헌에서 거성이 아닌 상성으로 실현되는 예조차 이 문헌에서는 거성으로만 실현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行’이 명사적 용법을 보이는 예로는 ‘苦行’〈RHH, 3ㄱ〉, ‘功行이’〈LHH, 26ㄱ,44ㄴ〉, ‘萬行’〈HHH, 25ㄱ〉, ‘行’〈H, 29ㄴ〉, ‘行이’〈HH, 24ㄴ,44ㄴ〉가 있으며, 동사적 용법을 보이는 예로는 ‘修行이’〈LLH, 24ㄴ〉, ‘修行호’〈LLHL, 29ㄴ〉, ‘行이라’〈LLH, 35ㄱ〉, ‘行’〈LH, 36ㄱ〉, ‘行커나’〈LLH, 30ㄱ〉, ‘行호미나’〈LHLH, 30ㄴ,38ㄱ〉, ‘行호미라’〈LHLH, 29ㄴ,35ㄱ〉, ‘行논’〈LHL, 36ㄱ〉, ‘行리오’〈LLHH, 35ㄴ〉가 있다.

‘一切’와 ‘種種’은 15세기에 명사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그 자체로 후행 명사구를 수식할 수도 있었다. 그러한 특성은 이 문헌에서도 발견된다. ‘一切’과 ‘種種’의 명사적 성격을 확인할 수 있는 예로는 ‘一切ㅅ 소리와’〈44ㄱ〉, ‘種種엣 일며 뇨미’〈18ㄴ〉, ‘種種앳 相皃와 種種앳 일훔 지허’〈20ㄱ〉가 있으며, 관형사적 용법을 확인할 수 있는 예로는 ‘一切 소리와 一切 分別’〈19ㄴ〉, ‘一切 衆生’〈44ㄱ〉, ‘一切 衆生 種種 幻化ㅣ’〈3ㄱ〉, ‘種種 苦 受호미’〈43ㄱ〉가 있다.

또한 15세기의 ‘後’는 공간적 개념으로의 ‘뒤’라는 의미를 가지지 않고 시간적 개념으로만 ‘뒤’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그와 같은 점은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實로 니건댄 이  몬져 알오 後에 닷논 根機니’〈10ㄱ〉, ‘그럴 圭峯이 몬저 알오 後에 낫논 들 기피 기샤’〈10ㄴ〉, ‘마 이 理 알면 다시 階級 업도소니 엇뎨 後에 닷고 브터 漸漸 熏修야 漸漸 일리오’〈23ㄴ-24ㄱ〉, ‘그러면 엇뎨  번 아로로 곧 後에 닷고 러 리리오〈24ㄴ〉’ 등에서 그러한 쓰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자어에 기원을 두는 어휘들이 한글로 적힌 예도 있다. ‘ 비야[亦乃謗讟야]’〈42ㄴ〉, ‘노 앳 想 지[作懸崖之想야]’〈11ㄱ〉에서의 ‘비-’, ‘애’가 그것이다. 그와 같은 쓰임은 다른 문헌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셜웝[說法]’〈번박.상:75ㄱ〉, ‘불웝[佛法]’〈번박.상:74ㄴ〉, ‘태우[大夫]’〈소언4:39ㄴ〉 등.

‘自己’의 경우 15세기에 “本人”, “자기의 몸”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는데 이 문헌에 보이는 ‘自己’는 모두 “本人”의 의미로 쓰였다. ‘四大로 몸 삼고 妄想으로  사마 自性이 이 眞實ㅅ 法身인  아디 몯며 自己 靈知ㅣ 이 眞實ㅅ 부톈  아디 몯야’〈수심결12ㄴ〉, ‘다시 보믈 求홀  업거니 엇뎨 몯 보논 디 이시리오 自己 靈知도  이러니 마 이 내 인댄 엇뎨 다시 아로 求며…’〈13ㄴ〉, ‘丈夫 디 자 無上 菩提 求린 이 리고 어딀 리오 모 文字 잡디 말오 바 모로매 들 아라 一一히 自己예 나가 本宗애 마면〈42ㄴ〉’.

고유어 어휘 중에는 ‘모’, ‘-’, ‘맛들-’, ‘맛보-’, ‘날혹기’ 등이 주목된다. ‘모’의 경우는 15세기에 동일 음상과 성조를 가지는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모든”의 의미를 가지는 관형사만 보인다(“모든”의 의미를 가지는 관형사, “모인”의 의미를 가지는 ‘몯-’의 활용형, “모인 사람(것)”의 의미를 가지는 ‘몯-’의 동명사형). ‘제 性이 이 眞實ㅅ 法인  아디 몯야 法을 求코져 호 머리 모 聖人 밀오 부텨를 求코져 호’〈2ㄴ〉, ‘過去엣 諸 如來도 오직 이  긴 사미시며 現在옛 모 賢聖도  이  닷신 사미시며 未來옛 學 닷 사도 반기 이런 法을 브툴 디니’〈3ㄱㄴ〉, ‘願 모 道 닷 사미 이 마 자 맛보아 다시 孤疑야 제 믈루믈 내디 마롤 디어다’〈42ㄱㄴ〉.

“製(제)”의 의미를 갖는 ‘-’은 15세기의 ‘-’과 16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의 혼효형이다. ‘마 無量劫中에 한 聖人을 셤기와 한 善根 심거 般若 正 因을 기피   上根性이니’〈45ㄱ〉의 예가 보인다. ‘-’은 대개 16세기 이후의 문헌에서나 보이는 것인데 15세기의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에 발견되는 것이어서 다소 특이하다.

“好(호)”의 의미를 가지는 ‘맛들-’은 [[맛+-이]+들-]과 같은 주어-서술어의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럼에도 이 문헌에는 ‘맛들-’이 타동사적 용법을 가지는 예가 존재한다. ‘다가 殊勝 고 信티 아니코 사오나 외요 맛드러 어려 너교 내야’〈45ㄴ〉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맛들-’은 ‘사오나 외요’을 목적어로 취함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맛보-’의 경우 [[맛+-]+보-]와 같이 목적어-서술어의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파악되므로 자동사적 용법을 갖지 않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疑心논 디 믄득 그처 丈夫 들 내야 眞實 正 보와 아로 發야 親히 그 마 맛보아 제 제 즐기논 해 니르면’〈21ㄱ〉에서 ‘그 마’을 목적어로 취해 타동사적 용법을 갖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느리고 느직하게”의 의미를 갖는 어휘 ‘날혹기’도 있다. ‘시혹  디위 컨댄 不覺애 한 디흐리로소니 노하 날혹기 야 아 殃孽 다시 受야려’〈43ㄱ〉. 이는 “조심조심하다”라는 의미를 갖는 동사 ‘날혹-’에서 온 부사인데 주로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 『구급간이방언해(救急簡易方諺解)』, 『두시언해(杜詩諺解)』 등의 문헌에 나타난다. ‘날혹기’는 “천천히 한다”는 의미의 ‘날회-’(‘날호-’로도 나타남)와 조심성 있게 행동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가 결합한 합성어로 보인다.

『목우자수심결언해』에는 지금까지 살핀 것 외에 ‘가야’, ‘구여’, ‘외야’, ‘도’, ‘비르서’, ‘버거’, ‘眞實로’, ‘恒常애’, ‘往往애’ 등의 어휘화한 부사도 나타난다. 이 중 ‘가야’, ‘구여’, ‘외야’, ‘도’, ‘비르서’, ‘버거’ 등은 용언 어간에 어미가 결합한 형태가 어휘화한 것이며 ‘眞實로’, ‘恒常애’, ‘往往애’ 등은 명사에 조사가 결합한 형태가 어휘화한 것이다. ‘이 모 今生 向야 濟度티 몯면 가야 어느 生 기드려 이 모 濟度리오’〈44ㄴ〉, ‘내 이제 다가 믈루믈 내어니 시혹 게을우믈 내야 恒常애 後 라다가 … 비록  句ㅅ 佛法을 드러 信解受持야 셜우믈 免코져  엇뎨 외야 得료’〈43ㄴ〉, ‘엇뎨 智慧왼 사미 보 잇  알오 도 求티 아니야 艱難호 기리 怨歎리오’〈45ㄴ〉, ‘다가 昏沉이 더욱 하거든 버거 慧門으로 法 야 …’〈30ㄴ〉, ‘…  닷가 비르서 일 업슨 사미 외리니 다가 이러면 眞實로 이로 닐오 定慧 平等히 디녀 佛性 기 본 사미리라’〈30ㄴ-31ㄱ〉, ‘往往애 根機 난 사미 한 히믈 虛費 아니야 …’〈24ㄴ〉

『사법어언해』는 매우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만한 어휘들이 많다. 이 문헌에만 보이는 것도 있고, 다른 문헌에도 보이지만 예가 매우 드문 것도 있다. 먼저 한자어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보단(蒲團)’, ‘공부(工夫)’ 등이다. ‘보단(蒲團)’은 여름에 부들의 잎을 채취해 말렸다가 틀어 만든, 스님이 앉는 방석이다. ‘蒲團’의 음역어인데 현대국어로 오면서는 ‘포단’으로 굳어졌다. ‘ 가짓 道 일울 사미…  보단애 올아 곧 오다가’[有一般辨道之人이…才上蒲團야 便打瞌睡다가]〈5ㄱ〉. 18세기 자료인 『을병연행록(乙丙燕行錄)』에는 한글로 ‘포단’이라고 적혀 있다. ‘그 안희 포단을 둣거이 라 아 올녀 안치고’〈을병3:27〉.

‘공부(工夫)’는 총 7회 등장하는데 일상에서 쓰는 것과 의미 차이를 보인다. 불가(佛家)에서의 ‘공부’는 대개 “불도(佛道)를 열심히 닦는 일, 참선(參禪)에 진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외에 “여러 모로 생각한다.”는 의미도 있었는데 그것은 “정신의 수양과 의지의 단련을 위하여 힘쓰는 일”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일상에서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라는 의미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고유어 중에서는 ‘다다’, ‘너운너우니’, ‘올’, ‘옮기힐호-’, ‘재’, ‘노구’, ‘쟈’, ‘ㅎ’, ‘’, ‘븨-’, ‘나믈리’ 등이 주목된다. 이 중 ‘다다’, ‘너운너우니’, ‘올’, ‘옮기힐호-’는 『사법어언해(四法語諺解)』에만 보이는 것들이다. 먼저 ‘다다’은 “다만”[單]의 의미를 지니는 어휘이다. 15세기엔 “다만”의 의미를 가진 어휘로는 ‘다’이 두루 쓰였고 간혹 ‘다믄’이나 ‘다’도 쓰였다. ‘다’이 중복된 형태의 ‘다다’은 이 문헌에만 보인다. ‘오직 다다 無ㆆ字 드러 十二時中 四威儀內예 모로매 야’〈법어2ㄱ〉. ‘내 다  아 甚히 거니’〈월석22:28ㄱ〉. ‘王이 다 돈 나로 供養대’〈석상24:39ㄴ〉. ‘이 高麗ㅅ 말소믄 다믄 高麗ㅅ 해만  거시오’〈번노.상:5〉.

‘너운너우니’는 “너울너울, 유유히”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관련 어형으로 『남명집(南明集)』에 ‘너운너운’, 『두시언해(杜詩諺解)』에 ‘너운너운’과 ‘너운너운히’가 있다. ‘보단 우희 주거 안조 구틔디 마롤디니 모로매 너운너우니 뇨리니’[又不可執在蒲團上死坐ㅣ니 須要活弄호리니]〈법어5ㄴ〉. ‘소내   갓신 잡고 너운너운 오 가시거늘’〈남명.상:52ㄱ〉. ‘너운너운 오 구 氣運이 둗겁고’〈두시9:37ㄴ〉, ‘너운너운히 새 니 길로 드러가 업드롤 厄 거 免호리라’〈두시19:30ㄱ〉.

‘올’는 “올가미”를 의미하는 희귀어이다. ‘모 부텨와 祖師와의 사게 믜 고 올 자보리니’〈2ㄴ〉. 한글학회 사전에서는 ‘올’를 ‘올가미’로 풀이하였으나 다른 고어사전류에서는 합성어 ‘올잡-’으로 파악하여 “옭아잡다”로 풀이하기도 했다. ‘올’는 한문 “要捉敗佛祖의 得人憎處호리니”의 ‘捉敗’에 대한 번역 ‘올 잡-’의 일부로서, 신미(信眉)가 언해한 『몽산화상법어약록(蒙山和尙法語略錄)』(1460년경)에서는 이 구절을 ‘올긔 잡-’으로 번역하였다. ‘ 난 사 바 드위텨 趙州의 올긔 자바 내 마 도로 가져 오라’〈몽법12ㄱ〉. 이를 고려할 때 ‘올’는 ‘올잡-’의 일부가 아닌, “올가미”를 뜻하는 독립된 어휘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옮기힐호-’는 “함부로 옮기다”의 뜻을 지닌 어휘이다. ‘디 몯  반기 늘근 쥐 곽 글굼티 디언뎡 옮기힐호미 몯리라’[未得透徹時옌 當如老鼠ㅣ 咬棺材相似ㅣ언 不可改移니라]〈법어2ㄴ〉. 여기에서는 ‘不可改移’에서 ‘改移’에 대한 번역어로 쓰였다. ‘옮기힐호-’는 ‘옮기-’와 ‘힐호-’가 결합한 어휘인데 ‘힐호-’의 실사적 의미가 약해 합성어가 아닌 파생어로 볼 가능성도 있다. ‘힐호-’는 단독으로 쓰인 예가 없고, ‘누위힐호-’〈두시19:25ㄱ〉, ‘두위힐호-’〈두시25:10ㄱ〉, ‘입힐호-’〈정속13ㄱ〉와 같이 합성어의 후행 어근으로 쓰인 예만 발견된다. 그에 반해 ‘힐후-’는 “힘들이다”, “다투다”의 의미를 지니고 독립적으로 쓰일 뿐 아니라, 합성어의 후행 어근으로 쓰인 예도 ‘힐호-’에 비해 훨씬 많다. ‘難은 힐훌 씨라’〈법화1:32〉, ‘世間과 힐후디 아니디 아니 씨라’〈월석7:5〉, ‘가도힐후-’〈두시14:2〉, ‘갑힐후-’〈정속26〉, ‘고티힐후-’〈번소10:25〉, ‘두르힐후-’〈능엄3:67〉, ‘밀힐후-’[推激]〈두초16:2〉, ‘입힐후-’〈노번.상:65〉 등. 그와 같은 합성어 중에 일부는 ‘힐호-’형과 ‘힐후-’형이 모두 보이는 것도 있다. ‘두위힐호-’〈두시25:10ㄱ〉, ‘드위힐후다’〈능엄7:82〉 등. ‘옮기힐호-’의 경우도 ‘옮기-’ 뒤에 ‘힐후-’가 결합된 ‘옴기힐후-’형이 16세기의 『소학언해(小學諺解)』에 나타난다. ‘옷과 니블와 삳과 돗과 벼개와 几 옴기힐후디 아니며[衣衾簞席枕几 不傳며]’〈소언2:6ㄱ〉.

‘재’는 “가장”, “극도로”의 의미를 가지는데, 15세기에 빈번하게 쓰였던 ‘’과 의미 면에서 거의 유사하다. 15세기에는 『사법어언해(四法語諺解)』와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에만 보인다. ‘昏沈과 散亂애 재 힘 더야 장 며 장 다면 더욱 더욱 새외오’〈법어8ㄴ〉, ‘이 淸淨 空寂 미 이 三世 諸佛ㅅ 재 조  미시며’〈수심결20ㄱ〉, ‘다가 妄念이 재 盛커든 몬저 定門으로 理예 마초 흐로 자바’〈수심결30ㄴ〉, ‘極 재 극’〈훈몽-초.하:15〉.

‘노구’와 ‘쟈’는 이 문헌에서 처음 등장한다. ‘… 곧 淸凉호 아로미  노굿 더운 므레  쟛 믈  브 니라’[便覺淸凉호미 如一鍋湯애 才下一杓冷水相似ㅣ니라]〈5ㄴ~6ㄱ〉. 이들은 각각 ‘鍋’, ‘杓’에 대한 번역어로서 여기에서는 단위성 의존명사로 쓰였다. ‘노구’는 이후에 『훈몽자회(訓蒙字會)』와 『번역노걸대(飜譯老乞大)』, 『왜어유해(倭語類解)』 등의 문헌에서 ‘노고’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鏊 노고 오’〈훈몽초,중:6〉〈왜어.하:14〉, ‘우리 손조 바 지 머그면 가마와 노곳 자리와 사발와 뎝시왜 다 잇녀’〈노번.상:68〉.

한자 ‘杓’에 대응하는 ‘쟈’는 16세기의 『훈몽자회(訓蒙字會)』(1527)를 비롯하여 근대국어 문헌에서 몇 예를 찾을 수 있다. 『훈몽자회(訓蒙字會)』의 ‘杓 나므쥭 쟉’〈훈몽.중:9ㄴ〉을 제외하면 다른 문헌에서는 모두 ‘쟈’로 나타난다. ‘漏杓 섯쟈’〈역어.하:13ㄴ〉, ‘처음브터 나죵지 시러곰  쟈 흐린 믈을 디 못고 처음 달힐 ’〈자초17ㄴ〉. ‘쟈’의 한자 대응어 ‘杓’은 『역어유해(譯語類解)』(1690)에서 현대국어의 ‘주걱’에 해당하는 ‘주게’로 언해되기도 한다. ‘榪杓 나모쥬게. 銅杓 놋쥬게’〈역어.하:13ㄴ〉. 이들 용례를 종합할 때 ‘쟈’는 “주걱, 국자, 그릇” 정도에 해당하는 단위명사로 볼 수 있다. 한편 ‘杓’ 자는 중세국어에는 [쟉]이었는데현재음은 [표]가 되었다. 변화의 원인이나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국한회어』(1895)와 『경향신문』(1906) 등을 보면 19세기 말 이후 ‘杓[표]’로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근원(根源)”의 의미를 갖는 ‘ㅎ’는 15세기에 드물게 나타나는 어휘인데 이 문헌에 보인다. ‘어린 구루미 다 흐르면 萬里靑天에 보옛 리  해 리니’〈법어9ㄱ〉, ‘모 會中을 爲샤 기픈  펴 뵈신대’[宣示深奧신대]〈능엄1:29ㄴ〉, ‘堂 오리 次第 어둠 야 반기 그 해 다리라’〈법화1:16ㄴ〉, ‘源 믈불휘 원’〈신유,하50ㄱ〉, ‘奧 기픈 오’〈신유,하38ㄱ〉. “여아(女兒)”의 의미를 갖는 ‘’과는 기저형의 종성 ‘ㅎ(/h/)’의 유무로 구별할 수 있다. 이렇게 한 부분만 음상의 차이를 보이는 ‘ㅎ’과 ‘’은 최소대립쌍을 이루는 최소대립어라 할 수 있다.

‘’의 예도 흥미롭다. ‘두 주머귈 쥐며  니르와다’[捍双拳며 竪起脊梁야], 〈5ㄴ〉. ‘등’는 ‘+’의 합성어로, “등마루” 즉 “척추(脊椎)”를 의미한다. ‘’는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통합하면 어간의 끝음절 모음 ‘ㆍ’가 탈락 ‘’형으로 바뀌지만 그 명사 뒤에 휴지나 공동격 ‘와’, 그리고 자음 조사가 오면 ‘’형을 유지하는 특수한 곡용을 한다. 『법화경언해(法華經諺解)』, 『구급방언해(救急方諺解)』, 『구급간이방언해(救急簡易方諺解)』, 『훈몽자회(訓蒙字會)』 등의 일부 문헌에서 예를 확인할 수 있다. ‘로셔 各 寸 百 壯 ’[去脊各一寸灸之百壯]〈구방.상:36〉, ‘와 보콰 셔와 긷괘 기 소리 나’〈법화2:124ㄴ〉, ‘몬져  둘챗  아랫 오목 로’〈구간3:48ㄱ〉, ‘脊  쳑’〈자회.상:14ㄱ〉.

‘븨-’는 현대국어의 ‘비비-’[擦]에 해당하는 어휘이다. ‘百年을 녯 죠 븨니 어느 나래 머리 내와료’〈법어6ㄴ〉. 15세기에 ‘비븨-’는 비교적 빈번하게 쓰였지만 ‘븨-’와 ‘비-’는 드물게 보인다. ‘븨-’는 『사법어언해』를 비롯하여 『능엄경언해』와 『구급방언해』, 『구급간이방언해』에서 예를 확인할 수 있다. ‘둘찻 리 實로  體어늘 눈 비븨유믈 因야 달이 외니’〈능엄2:27ㄴ〉, ‘모 智慧 잇닌 븨논 根源이 이 얼굴와 얼굴 아니왜며 봄과 봄 아뇸과 여희요 닐오미 몯리라’〈능엄2:83ㄱ〉, ‘지네와 蝎의 헐인  胡椒와 마와 生薑과 다 라 아 븨라’〈구방.하:80ㄴ〉, ‘마리어나 이어나 라  븨요미 다 됴니라’〈구간6:63ㄱ〉, ‘모롭 불휘 더운 므레 닐굽 번 시서 라 만 케 비야 곳굼긔 부러 들에 라’〈구간1:41ㄴ〉. 그 중 『능엄경언해』에서는 ‘비븨-’와 ‘븨-’가 모두 발견되고 『구급간이방언해』에서는 ‘비-’와 ‘븨-’가 모두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나믈릴’이다. 『사법어언해』에 보이는 ‘나믈릴’은 예가 드물 뿐 아니라 분석하기도 쉽지 않다. ‘해 사미 이 이셔 나믈릴 아디 몯야’[多有人이 在這裏야 不識進退야 解免不下야]〈5ㄴ〉에서 ‘나믈릴’은 구결문 “不識進退야”에서 ‘進退’에 대한 번역으로서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을” 정도의 의미로 해석된다. ‘나믈리’라는 명사가 있다면 뒤에 목적격 조사 ‘ㄹ’이 결합된 것으로 보면 되지만, 15세기 다른 문헌에서 ‘나믈리’라는 명사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오히려 합성동사인 ‘나믈리-’와 합성명사인 ‘나믈림’은 발견된다. ‘阿難아 내 이제 너 爲야 이 두 일로 나믈려 마초아 교리라’〈능엄2:87ㄴ〉, ‘두 이 別業엣 眚 봄과 모 分엣 祥瑞 아니라 法과 가뵤 서르 나토실 니샤 나믈려 마초아 교리라 시니라’〈능엄2:88ㄱ〉, ‘權은 저욼 림쇠니  고대 固執디 아니야 나믈림 야 맛긔 씨오’〈석상13:38ㄱ〉.

따라서 이때의 ‘나믈릴’은 몇 가지 분석이 가능하다. 첫째, ‘나믈리’를 부사로 보는 것이다. ‘나’와 ‘믈리’를 각각 어간 ‘-+-오(접미사)’, ‘므르-+-이(접미사)’가 결합한 파생부사로 보면 합성부사 ‘나믈리’가 체언 자격으로 목적격조사 ‘ㄹ’을 취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례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둘째, 합성동사 ‘나믈리-’ 뒤에 동명사형 어미 ‘-ㄹ’이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경우 ‘아디 몯야’의 목적어에 해당하는 ‘나믈릴’에는 목적격조사가 결합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석보상절에서 ‘進退’에 대한 ‘나믈림’과 사법어의 ‘나믈릴’에서 대비되는 동명사 어미 ‘-ㅁ’과 ‘-ㄹ’이 오늘날의 관점으로는 다르지만, 기원적으로는 동일한 기능을 가졌으며, 형태 결합도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후자를 수용한다. 비록 후기 중세국어에서 동명사형 어미 ‘-ㄹ’이 생산적이지 않은 점은 있지만, 그런 예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므로 크게 문제라 할 것은 아니다. 고립적인 용례이므로 앞으로 더 숙고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6. 결론

이 글에서는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과 『사법어언해(四法語諺解)』의 특성을 크게 서지 사항, 표기법 및 음운, 형태 및 통사, 어휘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결론은 앞서 살펴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 두 책은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가 번역하였다는 점과 1467년(세조13년)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처음 간행되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이들은 간경도감에서 합철되어 간행되었기 때문에 판식이나 체제에서 유사할 뿐 아니라 어학적 특성까지도 거의 유사하다. 또한 원간본 『사법어언해』는 간기가 따로 없어 합철된 『목우자수심결언해』의 간기를 통해 그 간행 시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간경도감에서 합철되어 간행된 이후 지방의 사찰에서도 간행되었는데, 특히 『사법어언해』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지역에서 수차례 간행되었다. 『사법어언해』는 경상도 합천 봉서사, 충청도 연산 고운사, 황해도 황주 심원사, 전라도 순천 송광사, 원적사에서 중간본이 간행되었는데 책의 분량이 너무 적어 『목우자수심결언해』, 『선종유심결(禪宗唯心訣)』, 『몽산법어언해(蒙山法語諺解)』, 『오대진언(五大眞言)』과 합철되어 간행되었다.

표기법 및 음운과 관련해서는 동국정운식 한자음이 쓰였고 방점과 ‘ㆍ, ㆁ, ㆆ, ㅿ, ㅸ’이 쓰였다는 점 등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ㅸ’은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1461)부터 대체로 폐지되었는데 더 후대 자료인 이 문헌에 쓰인 점이 특이하다. 이를 볼 때 이 책의 원고는 1461년 이전에 언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1467년에 간행될 때 부분적으로만 수정되어 간행됨으로써 이전 시기의 표기의 흔적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이들 문헌에는 고유어 표기에서 합용병서의 예가 정음 창제 초기문헌과 다를 바 없이 발견되지만, 각자병서는 ‘ㅆ’, ‘ㆀ’의 경우에 극소수의 예만 발견된다. 『원각경언해(圓覺經諺解)』(1465)의 고유어 표기에서 일괄 폐지된 각자병서와 ‘ㆆ’의 예가 일부 남아 있는 것도 이 문헌이 그보다는 이른 시기에 언해되었다가 부분 수정되어 간행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이들 문헌에는 ‘ㅈ’구개음화로 볼 수 있는 ‘몬저’가 발견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 중 『목우자수심결언해』에 보이는 ‘몬저’는 ‘몬져’에 비해 출현 빈도가 훨씬 높기 때문에 오기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15세기에 유독 ‘몬저’와 같은 예에서만 보이는 현상이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당시에 ‘ㅈ’구개음화 현상이 존재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 외에도 이들 문헌에서는 ‘ㆍ’의 비음운화, 모음조화의 혼란, ‘오’ 모음동화와 자음동화 등을 반영한 표기도 발견된다.

형태 및 통사, 어휘와 관련해서는 비슷한 시기의 다른 문헌에서 볼 수 있는 특성도 있었지만 드물게 보이는 특성도 있었다. 『목우자수심결언해』에서는 ‘가치’의 관형격형 ‘가’가 발견되고, 보조사 ‘-곳/옷’의 실현 양상이 다른 문헌과 차이를 보인다. 대개 16세기 이후에 보이는 ‘-’[製]이 이 문헌에 보인다는 점도 특이하다. 그 외에 15세기에 드물게 보이는 ‘날혹기’[徐]가 이 문헌에 발견되기도 한다.

통사적 특성과 관련해서는 추측 표현의 ‘다’, ‘V홈 -’와 당위 표현의 ‘V호리라’, ‘V홀 디니라’가 다른 문헌에 비해 자주 보인다. 이때 ‘V호리라’는 계사 구문에 쓰인 것이어서 선어말 어미 ‘-리-’가 아닌 ‘관형사형 어미+의존명사’ 구성이라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또 한문 번역과 관련해서는 ‘是’, ‘此’가 문맥에 따라 지시어와 계사 둘 중 하나로 번역되기도 하고 둘 다로 번역되기도 했다. 부정 부사 ‘아니’가 한문 원문을 축자역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언해문과 다른 위치에 놓이게 된 경우도 있었다.

『목우자수심결언해』과 『사법어언해』에서 공통적으로 많이 보이는 구문도 있었다. “불급(不及)”의 의미를 지니는 ‘-오미 몯-’와 같은 형식을 포함한 구문이다. 이 구문에서는 ‘몯-’ 뒤에 항상 ‘관형사형 어미+의존명사+계사’로 분석되는 ‘리’가 결합되는 특성이 있다. ‘-오미 몯-’ 구문은 후대에 ‘-디 몯-’와 같은 장형 부정문으로 바뀌면서 사라진다.

한편 『사법어언해』에는 적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문헌에는 없거나 드물게 보이는 어휘가 여러 개 발견된다. 한자어 중에서는 ‘보단(蒲團)’, ‘공부(工夫)’, 고유어 중에서는 ‘다다’[單], ‘너운너우니’[弄/蹁], ‘올’[陷穽], ‘옮기힐호-’[改移], ‘재’[極], ‘노구’[鍋], ‘에’[連], ‘쟈’[杓], ‘ㅎ[根源]’, ‘’[脊椎], ‘븨-’[擦], ‘나믈릴’[進退] 등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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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01)
:여기에 제시하는 『목우자수심결언해』의 국어학적 특징은 이현희 외(1997)의 내용을 많이 참조하였다. 형태나 통사, 어휘의 특징 등은 이현희 외(2007)의 내용을 요약한 부분이 많다. 출처의 약호는 『목우자수심결언해』는 ‘수심결’로, 『사법어언해』는 ‘법어’로 하며, 해당 장의 앞·뒷면은 각각 ‘ㄱ·ㄴ’으로 구별 표기한다.
주002)
:안대현(2007)에서는 이들 문헌에 나타나는 예를 가지고 이 시기에 이미 ‘ㅈ’구개음화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들 문헌에 보이는 제한된 예를 가지고 15세기에 ‘ㅈ’구개음화 현상이 일어났다고 단정짓기는 곤란하다. 이와 같은 점은 이현희 외(2007: 36~37)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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