尤더욱우 菴집암 先먼여션 生난 曰일늘월 出갈츌 遊놀유 數두어수 日날일 以써이 上위샹이면 夫외졍부 妻쳐ㅣ 相서루샹 拜졀 以써이 別리별별며 歸도올귀 亦또역 拜졀나니라
Ⓒ 필자 | 박문호 / 1882년(고종 19) 4월
우암 송션 주063) 우암 송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이. 우암(1607~1689)은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이다. 본관은 은진.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 우재(尤齋). 봉사(奉事) 송구수(宋龜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이고, 아버지는 사옹원봉사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선산 곽씨(善山郭氏)로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이 왈
수일 주064) 츌입만 여도 부부
서루 주065) 서루: 서로. ‘서로’라는 단어는 15세기에 ‘서르, 서’의 형태로 처음 나타난다. ‘서르〉 서’는 2음절에서의 ‘ㆍ〉 ㅡ’ 변화를 반영한 과도 표기이다. ‘서르〉 서로’는 유추에 말미암은 것으로 보인다. 중세국어 시기에는 ‘용언 어간 + -오/우(부사 파생 접미사)’의 파생부사화 규칙이 생산적이었다.( + -오 → 자조, 넘 + -우 → 너무, 비릇 + -오 → 비르소 등) 그런데 ‘바다’라는 형용사는 ‘바’가 그대로 부사로도 쓰였는데, 17세기에는 부사 파생 접미사 ‘오/우’의 형에 유추되어 ‘바로’라는 형태로 변하였다. 이처럼 ‘서르〉 서로’도 부사 파생 접미사 ‘오/우’의 형에 유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라’는 ‘서’로부터 ‘ㆍ〉 ㅏ’ 과정을 거친 것으로, ‘셔르/셔로/셔루/샬우’ 등은 치찰음 ‘ㅅ’ 다음의 ‘ㅑ, ㅕ, ㅛ, ㅠ’의 ‘ㅏ, ㅓ, ㅗ, ㅜ’ 변화 과정에서 일어난 과도 표기이다.
졀
2:8ㄱ
고
리별며 도와도 주066) 리별며 도와도: 이별(離別)하며 돌아와도. 멀리 떨어져 있다가 집에 돌아와서도.
서루 절니라
Ⓒ 언해 | 박문호 / 1882년(고종 19) 4월
우암 송선생이 말하기를, 며칠 출입만 하여도 부부가 서로 절하고, 이별하며 돌아와도 서로 절하느니라라고 하였다.
Ⓒ 역자 | 이상규 / 2014년 9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