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번역소학 권6·7·8·9·10

  • 역주 번역소학 권6·7·8·9·10
  • 번역소학 제6권
  • 외편(外篇)○가언(嘉言)○광입교(廣立敎)
  • 마원(馬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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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원(馬援) 1


○馬마援완의 兄형子嚴엄敦돈이 並병喜희譏긔議의而通통輕경俠협客더니 援완이

번역소학 권6:12ㄴ

在交교趾지야 還환書셔誡계之지 曰왈 吾오欲욕汝여曹조로 聞문人過과失실고 如여聞문父부母모之지名명야 耳可가得득聞문이언 口구不블可가得득言언也야노라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馬마援완 주001)
마원(馬援):
중국 후한(後漢)의 장군(BC14~AD49). 태중대부(太中大夫), 농서태수를 지내며 외민족을 토벌하였다. 자는 문연(文淵). 산시성 싱핑현(興平縣) 북동지방의 유푸펑(右扶風) 마오링(茂陵) 출생. 전한(前漢) 이래 명문 출신으로, 처음에는 북방으로 피하여 목축을 하였다. 그 뒤 많은 인재를 사귀며 세력을 만들었다. 왕망(王莽)의 부름을 받고 한중랑태수가 되었고, 이어서 외요(隗浴) 밑에서 벼슬하다가, 다시 광무제(光武帝)의 신하로서 태중대부가 되었다. 이어서 농서태수가 되어 간쑤성(甘肅省) 방면의 강(羌) ·저(免) 등의 이민족을 토벌하였다. 이후 복파장군(伏波將軍)에 임명되어, 북베트남[交趾] 지방에서 봉기한 징칙(徵側)과 징이(徵貳) 자매의 반란을 평정하고, 하노이 부근의 낭박(浪泊)까지 들어가 점령하였다. 그 공로로 신식후(新息侯)가 되었다. 이후 북방의 흉노(匈奴)와 오환(烏丸)을 평정하였다. 이어서 노령에도 불구하고 남방의 무릉만(武陵蠻)을 토벌하러 갔으나, 병들어 죽었다.
주002)
마원(馬援):
마원(馬援)의.
兄형의 아 嚴엄과 敦돈이 다  긔며 주003)
긔며:
희롱하다. 단모음화에 따라서 ‘긔며〉기롱하며’로 소리가 바뀌었음.
의론기 즐겨 박고 호긔오  사 사괴더니 馬마援완이 交교趾지  가셔 유무 보내야 계야 로 나 너희 물로 사 허므를 듣고 부못 일

번역소학 권6:13ㄱ

훔 드른 야 귀예 드릀 분이언 이베 니디 몯과뎌 노라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마원이 듣건대 형의 아들 이 모두 다른 이를 희롱하며 이야기하기를 즐기고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사귀었더라. 마원이 교지
(월남)
땅에 가서 안부를 보내어 경계하여 이르기를, 나는 너희 무리가 남의 허물을 들을 때 부모의 이름을 들은 듯이 귀로만 들을망정 입에 올리지 말라고 하였다.
Ⓒ 역자 | 정호완 / 2011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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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마원(馬援):중국 후한(後漢)의 장군(BC14~AD49). 태중대부(太中大夫), 농서태수를 지내며 외민족을 토벌하였다. 자는 문연(文淵). 산시성 싱핑현(興平縣) 북동지방의 유푸펑(右扶風) 마오링(茂陵) 출생. 전한(前漢) 이래 명문 출신으로, 처음에는 북방으로 피하여 목축을 하였다. 그 뒤 많은 인재를 사귀며 세력을 만들었다. 왕망(王莽)의 부름을 받고 한중랑태수가 되었고, 이어서 외요(隗浴) 밑에서 벼슬하다가, 다시 광무제(光武帝)의 신하로서 태중대부가 되었다. 이어서 농서태수가 되어 간쑤성(甘肅省) 방면의 강(羌) ·저(免) 등의 이민족을 토벌하였다. 이후 복파장군(伏波將軍)에 임명되어, 북베트남[交趾] 지방에서 봉기한 징칙(徵側)과 징이(徵貳) 자매의 반란을 평정하고, 하노이 부근의 낭박(浪泊)까지 들어가 점령하였다. 그 공로로 신식후(新息侯)가 되었다. 이후 북방의 흉노(匈奴)와 오환(烏丸)을 평정하였다. 이어서 노령에도 불구하고 남방의 무릉만(武陵蠻)을 토벌하러 갔으나, 병들어 죽었다.
주002)
마원(馬援):마원(馬援)의.
주003)
긔며:희롱하다. 단모음화에 따라서 ‘긔며〉기롱하며’로 소리가 바뀌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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