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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댱公공藝예ㅣ 九구世셰를 同동居거더니 北븍齊졔隋슈唐당이 皆旌졍表표其기門문니라 麟린德덕中즁애 高고宗종이 封봉泰태山산시고 行其기宅샤 召소見견公공藝예야 問문其기所소以이能릉睦목族족之지道도신대 公공藝예請청紙지筆필야 以이對호 乃내
번역소학 권9:96ㄴ
書셔忍인字 百餘여야 以이進진니 其기意의옌 以이爲위宗종族족所소以이不블協협 由유尊존長댱衣의食식이 或혹有유不블均균며 卑비幼유禮례節졀이 或혹有유不블備비어든 更相샹責望망야 遂슈爲위乖괴爭니 苟구能릉相샹與여忍인之지則즉家가道도ㅣ 雍옹睦목矣의리라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張댱公공藝예ㅣ 아홉 사더니 北븍齊졔와 隋슈와 唐당 시저리 다 그 무 旌졍表
번역소학 권9:97ㄱ
표니라 麟린德덕 시절에 高고宗종이 泰태山산의 가 졔시고 그 집의 가샤 公공藝예를 블러보샤 잘 권당 도리 무대 公공藝예
죠와 붇과 주슈 셔야 주001) 죠와 붇과 주슈 셔야: 종이와 붓을 달라고 하여 붉은 글씨로 써서.
답호 인를 일 마 서 드리오니
제 덴 호 주002) 제 덴 호: 제 생각으로 말씀하자면. ‘덴’의 단독형은 ‘’인데 부사격 조사 ‘-에’와 절대격 조사 ‘-ㄴ’이 통합된 형임. 어두자음군의 회피로 하여 ‘〉뜻’으로 굳어졌다.
권당이 화동티 몯호믄 얼우니 옷바블 고로 아니 주리 이시며 져믄 사이 례졀이 디 아니니 잇거 서 외다 야 인여 거슯저 토게 도니 진실로 서르 면 집
번역소학 권9:97ㄴ
안히 화동리라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장공예(張公藝) 집안은 9대가 한 집에 살았다. 북제(北齊)와 수(隋), 당(唐) 시대 모두 그의 집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했다. 당나라 인덕(隣德) 시절 고종(高宗)이 태산(泰山)에 제를 올리고 그의 집에 들렀다. 장공예를 불러서 친척들을 잘 지내는 방법을 물었다. 장공예는 대답 대신 붓과 종이를 달라고 주서(朱書)로 써서 대답하였다. 참을 인(忍) 자를 100자를 써서 올렸다. 저의 생각으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친족이 화목하지 못함은 어른이 옷과 밥을 고르게 나누어 주지 않아서입니다. 젊은 사람이 예절을 갖추지 못하면 서로가 잘못이라고 하여 거슬려 다투게 됩니다. 진실로 서로 참으면 집안이 화목하게 될 것이다.
Ⓒ 역자 | 정호완 / 2011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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