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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류玭변(빈)曰왈 崔최山산南남의 昆곤弟뎨子孫손之지盛성을 鄕향族족이 罕한比비러니
번역소학 권9:29ㄱ
山산南남의 曾증祖조王왕母모
長장孫손夫부人이 年년高고無무齒치어늘 祖조母모 唐당夫부人인이 事姑고孝효야 每旦(朝)됴애 櫛즐縰쇄笄계야 拜於어階계下하고 卽즉升승堂당야 乳유其기姑고더니 長댱孫손夫부人인이 不블粒립食식數수年년而康강寧녕더니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柳류玭변(빈)이 닐오
山산南남節졀度도使얫던
崔최琯관의 형뎨와 자손의 셩호 그 고을 아매 니 젹더니
山산南남의
한 할번역소학 권9:29ㄴ
마님 주001) 長댱孫손夫부人이
하 늘거 주002) 니 업서 음식 몯 먹거늘 山산南남의 할마님 唐당夫부人이 싀어미 셤교 효도로이 야 일 아 머리 비서 오 빈혀 고자 섬 아래 가 절고 텽의 올아 싀어마니 졋 머기더니 長댱孫손夫부人이 밥 먹디 몯 호
두로 주003) 두로: 두어 해로되. ‘두’의 소리 변화는 ‘두서〉두〉두어’와 같다.
편안히 잇더니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유빈이 말하였다. 산남 절도사를 하였던 최관의 형제와 자손의 번성함이 그 고을의 친족 가운데서 비할 사람이 적었다. 산남의 증조할머니 장손 부인이 많이 늙어 이가 없어 음식을 못 먹었다. 산남의 할머니 당 부인이 시어미 섬김을 효성스럽게 하였다. 매일 아침에 머리 빗겨 드리고 비녀 꽂아드리고는 섬돌 아래 가 절을 하고서는 마루에 올라 시어머니에게 젖을 먹였다. 이로 하여 장손 부인이 밥을 먹지 못한 지가 두어 해가 되었으나 편안하게 지냈다.
Ⓒ 역자 | 정호완 / 2011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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