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댱湛담이 矜긍嚴엄好호禮례야 動동止지有유則측야 居거處쳐 幽유室실호 必필自修슈整졍며 雖슈遇우妻쳐子도 야 若약嚴엄君군焉언더니 及급在鄕향黨당야 詳샹言언正정色대 三삼輔보ㅣ 以이爲위儀의表표라 니라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張댱湛담이 엄졍고 례도 려 거동이 법
번역소학 권10:3ㄴ
다와
기픈 지븨 이실 제도 주001) 기픈 지븨 이실 제도: 깊숙한 방에 있을 때도.
반시 스싀로 모믈 닷가 졍졔히 며 비록 쳐ㅣ라도 졉호믈 존엄
얼운티 주002) 더라 이실 제도 말미
셔 고 주003) 양 졍다이 니 주004) 三삼輔보 닷 사히 버블 삼더라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장담(張湛)은 근엄하고 예를 좋아했으며 행동에 법도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있을 때도 반드시 스스로 몸가짐을 반듯하게 가졌고 비록 처자를 만날 때라도 존엄한 어른처럼 행동하였다. 마을에 있을 때는 자상하게 말을 건네고 얼굴빛을 바르게 가졌기에 삼보(三輔)도 다른 사람들도 그를 본으로 삼았다.
Ⓒ 역자 | 정호완 / 2011년 3월 20일
建건武무初초애 爲위
左좌馮풍翊익이러니 告고歸귀平평陵룽야 望망寺시門문而步보대 主쥬簿부ㅣ 進진曰왈 明명府부 位위尊존悳덕重듕니 不블宜의 自輕경니이다 湛담이 曰왈 禮
번역소학 권10:4ㄱ
례예 下하公공門문고 軾식路로馬마며 孔공子ㅣ 於어鄕향黨당애 恂슌恂슌如여也야시니 父부母모之지國국에 所소宜의盡진禮례니 何하謂위輕경哉오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建건武무 시져레
左좌馮풍翊익이란 벼슬여 잇더니 말믜야 본향 平평陵릉이랏 가셔
구읫문을 라보고 걷거 주005) 구읫문을 라보고 걷거: 관아문을 바라보고 걷거늘.
主쥬簿부ㅣ 낫라 닐오
明명府부 벼스리 놉고 주006) 명부(明府) 벼스리 놉고: 사또께서는 벼슬이 높고. 명부는 지방관을 통칭하여 부르는 호칭. ‘놉고’의 기본형은 ‘높다’이고 팔종성 가족용의 표기를 따랐고 부사형 어미 ‘-고’가 통합된 형임.
덕이 시니 모 가여이 몯 실 거시다
번역소학 권10:4ㄴ
여 湛담이 닐오 禮례예 구읫문의 디나갈 제
브리며 주007) 브리며: 내리며. ‘브리며’의 기본형은 ‘브리다’이고 설명형 어미 ‘-며’가 통합된 형임.
님금 보고 구버 디내라 엿고 孔공子ㅣ 겨셔
고디식고 온공히 주008) 고디식고 온공히: 진실하고 공손히. 구개음화를 거치면서 ‘고디식〉고지식’으로 굳어짐. 예) 老實 고지식(동문유해 상 21).
더시니 父부母모 사시던 나라 례도 장 호미 맛니 엇디 가여이 다 니뇨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건무(建武) 시절에 장담은 좌풍익(左馮翊)이란 벼슬에 있었다. 휴가를 얻어 고향인 평릉(平陵) 땅에 가서 관부의 문을 보고 걸어갔다. 주부(主簿)가 나아와 말하였다. 사또께서는 벼슬이 높고 덕망이 크신 분이시니, 몸을 가벼이 해서는 안 됩니다. 장담이 말했다. 예(禮)에서 이르기를, 관부문을 지나갈 때 수레나 말에서 내리고, 임금의 말을 보면 굽혀 지내라 했다. 공자께서도 고향에서는 삼가고 겸손한 모습이었다 한다. 부모의 나라에서는 예를 다해야 함이 마땅하다. 어찌 가벼이 한다고 이르겠는가.
Ⓒ 역자 | 정호완 / 2011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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