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번역소학 권6·7·8·9·10

  • 역주 번역소학 권6·7·8·9·10
  • 번역소학 제9권
  • 외편(外篇)○제6편 선행(善行)○실명륜(實明倫)
  • 급암(汲黯)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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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암(汲黯) 1


번역소학 권9:37ㄴ

○汲급黯암이 景경帝뎨時시예 爲위太태子洗셰馬마야 以이嚴엄으로 見견憚탄니 武무帝뎨卽즉位위샤 召쇼爲위主쥬爵쟉都도尉위대 以이數삭直딕諫간으로 不블得득久구居거位위라니 是시時시예 太태后후弟뎨武무安안侯후田뎐蚡분이 爲위丞승相샹이러니 中듕二이千쳔石셕이 拜謁알이어늘 蚡분不블爲위禮례더니 黯암이 見견蚡분야 未미嘗샹拜고 揖읍之지더라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汲급黯암 주001)
급암(汲黯):
중국 전한(前漢) 무제 때의 간신(諫臣). 자는 장유(長孺). 성정이 엄격하고 직간을 잘하여 무제로부터 ‘사직(社稷)의 신하’라는 말을 들었다. 무제 때 주작도위(主爵都尉)가 되었으며, 9경의 한 사람이 되었다. 승상 장탕(張湯)과 어사대부 공손 홍(公孫弘) 등을 법률 만능주의자요 천자에게 아첨하는 영교지도(令巧之徒)라 비난하고, 황로지도(黃老之道)·무위(無爲)의 정치를 주장하며 왕에게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양태수(淮陽太守)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 景경帝뎨 시졀의 太태子 洗셰

번역소학 권9:38ㄱ

馬마 슬야 엄졍호모로 님굼 리이더니 武무帝뎨 님굼 셔샤 블러 主쥬爵쟉都도尉위 슬 이신대 조 고 말 요모로 주002)
고말 요모로:
바른말 함으로써.
그 벼슬에 오래 잇디 몯니라 그 시졀의 太태后후의 아 오라비 武무安안侯후 田뎐蚡분丞승相샹 벼슬 엿더니 中듕二이千쳔石셕 슬 엿 사이 절여 뵈여도 蚡분이 례도를 아니더니 黯암蚡분을 보와 주003)
암(黯)은 분(蚡)을 보와:
암은 분을 보아.
절 아니고 읍만더라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급암경제태자 세마(洗馬)가 되었다. 그가 엄정하였으므로 때문에 임금이 꺼려하였다. 무제(武帝)가 임금이 되자 그를 불러서 주작도위(主爵都尉) 벼슬을 삼았다. 자주 바른 말을 함으로써 그 자리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이 때 태후(太后)의 아우 무안후(武安侯) 전분(田蚡)승상(丞相)이 되었다. 일 년에 녹봉을 이천 석이나 받는 관리들이 그에게 절하고 알현해도 전분은 답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급암전분을 볼 때도 절하지 않고 단지 손을 모아 읍만 하였다.
Ⓒ 역자 | 정호완 / 2011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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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급암(汲黯):중국 전한(前漢) 무제 때의 간신(諫臣). 자는 장유(長孺). 성정이 엄격하고 직간을 잘하여 무제로부터 ‘사직(社稷)의 신하’라는 말을 들었다. 무제 때 주작도위(主爵都尉)가 되었으며, 9경의 한 사람이 되었다. 승상 장탕(張湯)과 어사대부 공손 홍(公孫弘) 등을 법률 만능주의자요 천자에게 아첨하는 영교지도(令巧之徒)라 비난하고, 황로지도(黃老之道)·무위(無爲)의 정치를 주장하며 왕에게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양태수(淮陽太守)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주002)
고말 요모로:바른말 함으로써.
주003)
암(黯)은 분(蚡)을 보와:암은 분을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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