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번역소학 권6·7·8·9·10

  • 역주 번역소학 권6·7·8·9·10
  • 번역소학 제6권
  • 외편(外篇)○가언(嘉言)○광입교(廣立敎)
  • 진관(陳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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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陳瓘) 2


顔안子 孟子 亞아聖也야ㅣ니 學之지雖슈未미至지나 亦역可가爲위賢현人이니 今금學者쟈ㅣ 若약能知디此則즉顔안

번역소학 권6:9ㄱ

孟之지事를 我아亦역可가學이니라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顔안子 주001)
안자(顔子):
안회(顔回, BC521~BC490). 중국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현인. 공자가 가장 믿었던 제자였다. 자는 연(淵). 공자보다 30세 젊으나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학문과 덕이 특히 높아서, 공자도 그를 가리켜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칭송하였고, 또 가난한 생활을 이겨내고 도(道)를 즐긴 것을 칭찬하였다. 그는 “자기를 누르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곧 인(仁)이다”라든가,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행동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지킨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장자(莊子)와 같은 도가(道家)에게서도 높이 평가되었다. 젊어서 죽었기 때문에 저술이나 업적은 남기지 못했으나 ≪논어(論語)≫에 안연편(顔淵篇)이 있고, 그 외에 몇몇 서적에도 그를 현자(賢者)와 학자로서 덕행이 뛰어난 사람이라 하였다.
孟子 주002)
맹자(孟子):
맹자(孟子, BC372~BC289). 중국 전국시대의 유교 사상가. 전국시대에 배출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이다. 이름은 가(軻). 자는 자여(子輿) 또는 자거(子車). 지금의 산둥성 쪼우셴현(鄒縣)에 있었던 추(鄒)에서 출생하였다. 공자의 유교사상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생에게서 배웠다. 어릴 때 슬기로운 어머니의 손에서 자라났으며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유명한 이야기다. 제후가 유능한 인재들을 찾는 전국시대에 배출된 제자백가의 한 사람으로서 맹자도 기원전 320년경부터 약 15년 동안 각국을 유세하고 돌아다녔으나, 자기의 주장이 채택되지 않자 고향에 은거하였다. 제후가 찾는 것은 부국강병이나 외교적 책모(策謀)였다. 맹자가 내세우는 것은 도덕정치인 왕도(王道)였으며, 따라서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이었다. 만년에는 제자교육에 전념하였고, 저술도 하였다. ≪맹자≫ 7편은 맹자의 말을 모은 후세의 편찬물이지만, 내용은 맹자의 사상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주자학(朱子學) 이후로 ≪맹자≫는 ≪논어≫, ≪대학≫, ≪중용≫과 더불어 사서(四書)의 하나로서 유교의 주요한 경전이 되었다. 맹자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이며, 또 전국시대의 양상을 전하는 흥미로운 내용으로 차 있다. 문장은 변론조이며, 예부터 명문으로 여겨진다. 논리학의 교재로도 쓰인다.
 버근 이시니 호다가 주003)
호다가:
배우다가. 기본형은 ‘호다’인데 중단형 어미가 통합되어 쓰인 것임. 소리의 탈락과 함께 ‘호다〉배우다’로 굳어졌다.
비록 다 디 몯야도 주004)
몯야도:
도달하지 못하여도. ‘디’의 기본형은 ‘다’인데 도달하다의 뜻임.
 가히 賢현人이 외리니 이제 홀 사미 만이레 히 이리  주 알면 顔안子 孟子ㅅ 이 주005)
이:
일을. 여기서는 ‘안자와 맹자의 속내를’의 뜻이다.
나도  가히 호리라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안자맹자공자 다음 가는 성인이니, 배우다가 비록 〈그 경지에〉 다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또 가히 현인은 될 것이다. 이제 배우는 사람이 만일 능히 이렇게 할 줄을 알면 안자와 맹자의 일을 나도 또 배울 수 있으리라.
Ⓒ 역자 | 정호완 / 2011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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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안자(顔子):안회(顔回, BC521~BC490). 중국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현인. 공자가 가장 믿었던 제자였다. 자는 연(淵). 공자보다 30세 젊으나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학문과 덕이 특히 높아서, 공자도 그를 가리켜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칭송하였고, 또 가난한 생활을 이겨내고 도(道)를 즐긴 것을 칭찬하였다. 그는 “자기를 누르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곧 인(仁)이다”라든가,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행동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지킨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장자(莊子)와 같은 도가(道家)에게서도 높이 평가되었다. 젊어서 죽었기 때문에 저술이나 업적은 남기지 못했으나 ≪논어(論語)≫에 안연편(顔淵篇)이 있고, 그 외에 몇몇 서적에도 그를 현자(賢者)와 학자로서 덕행이 뛰어난 사람이라 하였다.
주002)
맹자(孟子):맹자(孟子, BC372~BC289). 중국 전국시대의 유교 사상가. 전국시대에 배출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이다. 이름은 가(軻). 자는 자여(子輿) 또는 자거(子車). 지금의 산둥성 쪼우셴현(鄒縣)에 있었던 추(鄒)에서 출생하였다. 공자의 유교사상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생에게서 배웠다. 어릴 때 슬기로운 어머니의 손에서 자라났으며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유명한 이야기다. 제후가 유능한 인재들을 찾는 전국시대에 배출된 제자백가의 한 사람으로서 맹자도 기원전 320년경부터 약 15년 동안 각국을 유세하고 돌아다녔으나, 자기의 주장이 채택되지 않자 고향에 은거하였다. 제후가 찾는 것은 부국강병이나 외교적 책모(策謀)였다. 맹자가 내세우는 것은 도덕정치인 왕도(王道)였으며, 따라서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이었다. 만년에는 제자교육에 전념하였고, 저술도 하였다. ≪맹자≫ 7편은 맹자의 말을 모은 후세의 편찬물이지만, 내용은 맹자의 사상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주자학(朱子學) 이후로 ≪맹자≫는 ≪논어≫, ≪대학≫, ≪중용≫과 더불어 사서(四書)의 하나로서 유교의 주요한 경전이 되었다. 맹자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이며, 또 전국시대의 양상을 전하는 흥미로운 내용으로 차 있다. 문장은 변론조이며, 예부터 명문으로 여겨진다. 논리학의 교재로도 쓰인다.
주003)
호다가:배우다가. 기본형은 ‘호다’인데 중단형 어미가 통합되어 쓰인 것임. 소리의 탈락과 함께 ‘호다〉배우다’로 굳어졌다.
주004)
몯야도:도달하지 못하여도. ‘디’의 기본형은 ‘다’인데 도달하다의 뜻임.
주005)
이:일을. 여기서는 ‘안자와 맹자의 속내를’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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