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듕門문東동애 有유小쇼齋니 自非비朝됴謁알之지日일인댄 每平평旦됴[단]애 輒텹出츌至지小쇼齋더니 諸졔子 仲듕郢녕이 皆
번역소학 권9:101ㄴ
束속帶야 晨신省셩於어中듕門문之지北븍더라 公공綽쟉이 決결私事며 接졉賓빈客고 與여弟뎨公공權권及급群군從죵弟뎨로 再會회食식야 自旦됴[단]至지莫[暮]모히 不블離리小쇼齋더니 觸쵹至지則즉命명一일人인子弟뎨야 執집經경史야 躬궁讀독一일過일訖흘고 乃내講강議의居거官관治티官관之지法법며 或혹論론文문며 或혹 聽텽琴금다가 至지人이定뎡鐘죵然연後후에 歸귀寢침이어든
번역소학 권9:102ㄱ
諸졔子ㅣ 復부昏혼定뎡於어中듕門문之지北븍더니 凡범二이十십餘여年년이로 未미嘗상一일日일變변易역더라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듕문 동녀긔
져근 별실이 이시니 주001) 져근 별실이 이시니: 작은 서재가 있으니. ‘져근’은 기본형이 ‘젹다’인데 매개모음 ‘-으-’와 관형형 어미 ‘-ㄴ’이 통합된 형임.
됴회 아닌 나리어 일 아마다 믄득 별실에 가더니 아
仲듕郢녕히
다 여 새배 듕문 뒤희 가 주002) 다 여 새배 듕문 뒤희 가: 다 관대를 하고 새벽에 중문 뒤에 가서. 자음 첨가를 거치면서 ‘새배〉새벽’으로 굳어졌다. ‘듕문’은 구개음화와 단모음화를 거치면서 ‘듕문〉즁문〉중문’이 되었다.
문안더라
公공綽쟉이 지븨 일 분간며 손 졉고 아
公공權권과 모 촌 아려 다시 모다 음식 머거 아브터 나죄 니
번역소학 권9:102ㄴ
히 그 별실의 나디 아니 더니 블혀 오나 뎨 시켜 잡펴 친히 번 내 닑고 공홀 일와 집 다릴 법을 이론며 혹 글 의론며 혹 거믄고 듣다가 인뎡 붑 틴 후에 잘 니거 모 아히 듕문 뒤희 가 자실 이를 올히 야 펴난히 자시게 더니 믈읫 그리 호믈 스므 나믄 로 도 고티디 아니 더라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중문(中門) 동쪽에 작은 서재가 있었다. 조회가 없는 날이면 매일 아침마다 문득 별실로 나갔다. 여러 자식들과 중영(仲郢)이 모두 의관을 차려입고 중문 북쪽에서 문안 인사를 올렸다. 유공작이 집안일을 처리하고, 손님을 접대하고, 아우 공권(公權)과 모든 사촌 아우들과 함께 다시 모여 식사를 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재를 떠나지 않았다. 저녁 때 촛불을 가져오면 한 아들을 시켜 책을 잡게 하며 몸소 한번 읽고 나서 공직의 일과 집안 다스리는 도리를 말했다. 어떤 때는 글을 논하고 혹 거문고를 듣다가 인정의 북소리가 들린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면 자식들은 중문 북쪽에서 다시 밤 문안 인사를 드렸다. 이렇게 이십여 년을 했지만, 하루도 바뀌는 적이 없었다.
Ⓒ 역자 | 정호완 / 2011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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