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 김인원은 영흥부 사람이다. 자음동화를 거치면서 ‘영리〉영니’로 소리가 변동하였다. 각 감영에는 종5품의 도사와 종6품의 판관·교수 및 종9품의 훈도·심약·검률이 각 1명씩 있었다.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영리(營吏)와 천역을 지는 영노비가 있었다. 대개 크지 않은 도에는 관찰사가 종2품 이하였다. 그러나 경기도는 달랐다.
부모 셤기기 셩효 극진히 더니 아비 병이 극호매 인원이 밤나즐 울고 다리예 버혀 약애 받고 이튼날 러 피내여 받오니 병이 됴흐니라 금샹됴애 졍문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인원할고 - 김인원이 다릿살을 베다
영리 김인원은 영흥부 사람이다. 부모 섬기기를 지성으로 하더니, 아비의 병이 위독하여 김인원이 밤낮으로 울고 다리의 살을 베어 약에 타서 드리고 이튿날 또 찔러 피를 내어 드리니 병이 좋아졌다. 금상 때 정문을 내렸다.
영니 김인원은 영흥부 사이라:영리 김인원은 영흥부 사람이다. 자음동화를 거치면서 ‘영리〉영니’로 소리가 변동하였다. 각 감영에는 종5품의 도사와 종6품의 판관·교수 및 종9품의 훈도·심약·검률이 각 1명씩 있었다.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영리(營吏)와 천역을 지는 영노비가 있었다. 대개 크지 않은 도에는 관찰사가 종2품 이하였다. 그러나 경기도는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