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세는 창녕현 사람이다. ‘손귿셰’의 ‘귿셰’는 이두식 적기인 구결이라고 볼 수 있다. ‘말질(末叱)’은 ‘-맛-맏’을 적는 표기의 한 방편이었다. ‘말(末)’의 훈이 ‘귿’인데, 여기 ‘귿’의 받침 소리를 적기 위한 말음첨기와 같은 표기가 ‘질(叱)’의 훈 ‘짖(짇)’이라 할 수 있다. 경음화와 격음화를 거치면서 ‘귿〉끝’으로 되어 오늘날에 쓰인다. 군두목(群都目 群頭目)식 적기라고 할 수 있다.
나히 열네힌 제 임진왜난을 만나 아비 도적의게 자핀 배 되여 도적이 아비 주기고져 거 귿셰 크게 블러 닐오 하리 나 주길디언뎡 원컨대 아비란 주기디 말라 대 도적이 다 주기니라 금샹됴애 졍문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끝세동사 - 손끝세가 아버지와 함께 죽다
손끝세는 창녕현 사람이다. 나이 열네 살 때 임진왜란을 만나 아비가 왜적에게 잡혀서 도적이 아비를 죽이려고 하매, 끝세가 크게 부르짖어 말하기를, “차라리 나를 죽일지언정 원하건대, 아비를 죽이지 말라.” 하였는데, 도적이 다 죽였다. 금상 때 정문을 내렸다.
손귿셰 챵녕현 사이라:손끝세는 창녕현 사람이다. ‘손귿셰’의 ‘귿셰’는 이두식 적기인 구결이라고 볼 수 있다. ‘말질(末叱)’은 ‘-맛-맏’을 적는 표기의 한 방편이었다. ‘말(末)’의 훈이 ‘귿’인데, 여기 ‘귿’의 받침 소리를 적기 위한 말음첨기와 같은 표기가 ‘질(叱)’의 훈 ‘짖(짇)’이라 할 수 있다. 경음화와 격음화를 거치면서 ‘귿〉끝’으로 되어 오늘날에 쓰인다. 군두목(群都目 群頭目)식 적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