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2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2집(효자도 권5,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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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창수려(始昌守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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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수려(始昌守廬)


5 : 24ㄱ

始昌守廬

5 : 24ㄴ

金始昌金山郡人 以小學律身遭親喪守廬哀號迹不出門外每忌辰哭奠如初喪久而不衰服 康靖大王喪三年 恭僖大王 榮靖大王昇遐年踰七十而亦皆盡制徵辟不起老死林泉號孝節先生嵐亭處士 恭憲大王朝㫌門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김시챵은 김산군 사이라 쇼으로 몸을 법다이 주001)
쇼으로 몸을 법다이:
『소학(小學)』으로 법을 삼아 행동하며. 단모음화를 거치면서 ‘쇼〉소학’으로 소리가 단순화되었다. ‘법다이’의 ‘-다이’는 부사화 어미로서 ‘같다[如]’는 뜻이다. 『소학』은 조선조에서 가장 중하게 여기던 수신의 윤리 교과서였다.
가지더니 어버의 상 만나 녀묘 딕킈여 슬허 브르지지되 발자최 문밧긔 나디 아니더라 양 긔일날에 울며 졔기 초상티 여 오라되 쇠티 아니더라 강졍대왕 상의 삼년을 닙고 공희대왕 영졍대왕 업스실 제 나히 닐흔 나마시되  다 법졔 다 더라 쳔거여 브되 니디 아니고 님쳔의셔 늘거 주그니라 일호믈 효졀션 남뎡쳐라 다 공헌대왕됴의 졍문 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시창수려 - 김시창이 여막을 지키다
김시창은 김산군 사람이다. 소학으로써 몸가짐을 예법에 맞게 하더니, 어버이 상을 당하매 시묘하여 지키고 슬퍼 울부짖었다. 문밖에 나들이를 하지 않았다. 제삿날이 되면 울면서 제 올리기를 초상같이 하기를 오래 했으나 멈추지 않았더라. 강정대왕 성종의 국상에 삼 년 동안 상복을 입고, 공희대왕 중종과 영정대왕 인종 국상 때 나이 칠십이 넘었음에도 또한 한결같이 예법에 맞게 하였더라. 벼슬길에 부름을 받았으나 나가지 않고 초야에서 늙어 죽었더라. 이름을 효절선생 혹은 남정처사 주002)
남정처사(嵐亭處士):
남정(嵐亭)은 김시창의 호다. 김시창(1472(성종 3)~1558(명종 13))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서, 자는 정양(廷揚)이다. 할아버지는 사직 김효신(金孝信)이고, 아버지는 김의(金顗)이며, 어머니는 하산 조씨(夏山曺氏)이다. 일찍이 김종직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고, 금산(金山)에 거주하면서 『주자가례』에 따라 상례를 철저히 지켰는데, 이것이 조정에 알려져 금산에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라 하였다. 공헌대왕 명종 때 정문을 내렸다.
Ⓒ 역자 | 정호완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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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01)
쇼으로 몸을 법다이:『소학(小學)』으로 법을 삼아 행동하며. 단모음화를 거치면서 ‘쇼〉소학’으로 소리가 단순화되었다. ‘법다이’의 ‘-다이’는 부사화 어미로서 ‘같다[如]’는 뜻이다. 『소학』은 조선조에서 가장 중하게 여기던 수신의 윤리 교과서였다.
주002)
남정처사(嵐亭處士):남정(嵐亭)은 김시창의 호다. 김시창(1472(성종 3)~1558(명종 13))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서, 자는 정양(廷揚)이다. 할아버지는 사직 김효신(金孝信)이고, 아버지는 김의(金顗)이며, 어머니는 하산 조씨(夏山曺氏)이다. 일찍이 김종직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고, 금산(金山)에 거주하면서 『주자가례』에 따라 상례를 철저히 지켰는데, 이것이 조정에 알려져 금산에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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