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수려 - 김시창이 여막을 지키다
김시창은 김산군 사람이다. 소학으로써 몸가짐을 예법에 맞게 하더니, 어버이 상을 당하매 시묘하여 지키고 슬퍼 울부짖었다. 문밖에 나들이를 하지 않았다. 제삿날이 되면 울면서 제 올리기를 초상같이 하기를 오래 했으나 멈추지 않았더라. 강정대왕 성종의 국상에 삼 년 동안 상복을 입고, 공희대왕 중종과 영정대왕 인종 국상 때 나이 칠십이 넘었음에도 또한 한결같이 예법에 맞게 하였더라. 벼슬길에 부름을 받았으나 나가지 않고 초야에서 늙어 죽었더라. 이름을 효절선생 혹은
남정처사 주002) 남정처사(嵐亭處士): 남정(嵐亭)은 김시창의 호다. 김시창(1472(성종 3)~1558(명종 13))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서, 자는 정양(廷揚)이다. 할아버지는 사직 김효신(金孝信)이고, 아버지는 김의(金顗)이며, 어머니는 하산 조씨(夏山曺氏)이다. 일찍이 김종직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고, 금산(金山)에 거주하면서 『주자가례』에 따라 상례를 철저히 지켰는데, 이것이 조정에 알려져 금산에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라 하였다. 공헌대왕 명종 때 정문을 내렸다.
Ⓒ 역자 | 정호완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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