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왕후와 의인왕후 국상에. 단모음화를 거치면서 ‘인셩〉인성’으로 소리가 단순화되었다. ‘상애’의 ‘-애’는 부사격 조사로 모음조화를 따라서 양성모음 계의 조사가 통합된 것이다. 인성왕후는 조선 인종의 왕비였다. 왕후의 시호는 효순 공의 인성왕후(孝順 恭懿 仁聖王后)이다. 본관은 반남, 금성부원군 박용의 딸이다. 중종 19년(1524) 세자빈에 책봉되고, 인종 즉위년(1544) 세자였던 인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다. 다음 해 인종 1년(1545)에 인종이 돌아가고 인종의 이복 아우인 명종이 즉위하면서 왕대비로 올라갔으며, 2년 뒤인 명종 2년(1547) 공의(恭懿)의 존호를 받아 왕대비로 승차하였다. 의인왕후는 조선 제14대 임금이던 선조의 정비다. 본관은 반남(潘南). 성은 박씨. 오위도총부의 도총관과 영돈녕부사 등을 거쳐 죽은 뒤 영의정이 된 반성부원군 박응순(朴應順)의 딸이다. 돌아간 뒤 그의 시호는 장성휘열정헌경목의인왕후(章聖徽烈貞憲敬穆懿仁王后)이다.
인셩 의인 상애:인성왕후와 의인왕후 국상에. 단모음화를 거치면서 ‘인셩〉인성’으로 소리가 단순화되었다. ‘상애’의 ‘-애’는 부사격 조사로 모음조화를 따라서 양성모음 계의 조사가 통합된 것이다. 인성왕후는 조선 인종의 왕비였다. 왕후의 시호는 효순 공의 인성왕후(孝順 恭懿 仁聖王后)이다. 본관은 반남, 금성부원군 박용의 딸이다. 중종 19년(1524) 세자빈에 책봉되고, 인종 즉위년(1544) 세자였던 인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다. 다음 해 인종 1년(1545)에 인종이 돌아가고 인종의 이복 아우인 명종이 즉위하면서 왕대비로 올라갔으며, 2년 뒤인 명종 2년(1547) 공의(恭懿)의 존호를 받아 왕대비로 승차하였다. 의인왕후는 조선 제14대 임금이던 선조의 정비다. 본관은 반남(潘南). 성은 박씨. 오위도총부의 도총관과 영돈녕부사 등을 거쳐 죽은 뒤 영의정이 된 반성부원군 박응순(朴應順)의 딸이다. 돌아간 뒤 그의 시호는 장성휘열정헌경목의인왕후(章聖徽烈貞憲敬穆懿仁王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