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2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2집(효자도 권5,6,7,8)
  • 동국신속삼강행실 효자도 제6권 주해
  • 효자도 제6권
  • 원록화상(元祿畵像)
메뉴닫기 메뉴열기

원록화상(元祿畵像)


6 : 27ㄱ

元祿畵像

6 : 27ㄴ

訓導申元祿義城縣人高麗孝子申佑之後也十歲父病手自湯藥衣不解帶至八年不怠遭憂廬墓養偏母四十年務悅其心作宴親曲八闋歌以壽之母病嘗糞及歿哀慟無節日三上墓畵像揭于几筵之上嘗曰我死後母遺像藏于棺裏我當奉侍于泉下其師周世鵬卒心喪三年 今上朝 㫌門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훈도 신원녹은 의셩현 사이라 고려 효 신우의 훋손이라 주001)
효 신우의 훋손이라:
효자 신우의 훗자손이다. ‘훋손’은 후손(後孫), 후예(後裔)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훋손〉훗자손(後子孫)’. 현대국어 맞춤법으로는 사이시옷 없이 ‘후자손’이라야 맞지만 당시에는 자주 썼던 말인 듯하다.
열 설에 아비 병들거 손소 스스로 약 달히며 옫싀  아니 그기 여  지이 게을리 아니더라 주002)
여 지이 게을리 아니더라:
여덟 해가 되도록 게을리 아니하더라. ‘지(至)이’는 ‘-도록’과 같은 도급의 연결형 어미의 구실을 한 형이다.
믿 주그매 분묘애 녀막 사니라 편모 봉양호믈 마  호 힘써 그 믈 깃케 고 어버잇 잔  곡됴 여  지어 놀내 블러 헌슈더니 어미 병들거 을 맏보고 믿 주그매 슬허 울기 무졀히 고 날로 세 번 무덤믜 오고 샹을 그려 졔텽 우희 걸고 일즉 로 내 주근 후의 어믜 기틴 샹을 관 안희 장라 내 당당히 디하의 뫼셔시리라 그 스승 쥬셰븡이 죽거 심상 삼년 니라 금상됴애 졍문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원록화상 - 신원록이 어머니 얼굴을 그리다
훈도 신원록은 의성현 사람이다. 고려 때 효자 신우의 훗자손이다. 열 살에 아비 병들거늘 손수 스스로 약을 달이며 옷과 띠를 그르지 않기를 여덟 해에 이르도록 게을리 아니하였더라. 이어 돌아가매 무덤에 시묘를 살았다. 편모 모심을 마흔 해 동안 하되 힘써 그 마음을 기쁘게 하고, 어버이께 잔치하는 노래 여덟 곡을 지어 노래 불러서 만수하심을 빌었다. 어미 병들거늘 똥을 맛보고, 이어 돌아가매 슬피 울기를 절제 없이 하고, 날마다 세 번 무덤에 오르고, 상을 그려 제청 위에 걸고, 일찍이 말하기를, 내 죽은 후에 어미 남기신 상을 관 안에 넣어라. 내 당당히 지하에서 모시리라. 그 스승 주세붕이 돌아가거늘 상복은 입지 않으나 마음으로 보상하기를 삼 년을 하였다. 금상 때 정문을 내렸다.
Ⓒ 역자 | 정호완 / 2015년 5월 15일

원본이미지
이 기사는 전체 2개의 원본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석
주001)
효 신우의 훋손이라:효자 신우의 훗자손이다. ‘훋손’은 후손(後孫), 후예(後裔)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훋손〉훗자손(後子孫)’. 현대국어 맞춤법으로는 사이시옷 없이 ‘후자손’이라야 맞지만 당시에는 자주 썼던 말인 듯하다.
주002)
여 지이 게을리 아니더라:여덟 해가 되도록 게을리 아니하더라. ‘지(至)이’는 ‘-도록’과 같은 도급의 연결형 어미의 구실을 한 형이다.
책목차이전페이지다음페이지페이지상단이동글자확대글자축소다운로드의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