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2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2집(효자도 권5,6,7,8)
  • 동국신속삼강행실 효자도 제5권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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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수효우(德粹孝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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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효우(德粹孝友)


5 : 4ㄱ

德粹孝友

5 : 4ㄴ

監察文德粹陜川郡人 性本孝友父母歿廬墓三年啜粥終喪兄德純死亦心喪三年 恭憲大王朝㫌門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감찰 문덕슈 합쳔군 사이라 셩이 본 효도롭고 동 랑더니 부뫼 주금애 슈묘 삼년을 고 쥭만 마시고 상 니라 그 형 덕슌이 죽거  심상 주001)
심상(心喪):
상복(喪服)을 입지는 아니하지만 상제와 같은 마음으로 상중(喪中)같이 처신하는 일. 죽은 자와 혈연 관계는 아니지만 슬퍼하는 마음이 친자손에 못지 않은 경우 심상(心喪)을 입을 수 있다. 제자가 스승을 위하여 심상을 입을 수 있으며, 그 거상 기간은 3년이다. 또한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계모(繼母), 자모(慈母), 출모(出母), 가모(嫁母) 등을 위하여 1년간 심상을 입는다. 심상의 복제(服制)는 일반적으로 흰옷을 입지만, 처음 상고(喪故)를 당하였을 때는 조복(弔服)에 가마(加麻)한 백포도포(白布道袍)를 입고 백포건(白布巾)을 쓰며 백포대(白布帶)를 두르고, 단고환질(單股環絰)로 백포삼(白布衫)을 입는다. 부모에게 성정(省定)을 할 때와 강석(講席)에 들어갈 때는 건질(巾絰)을 벗으며, 거처는 초상집 근처에 정하여 묘소에 참배하고 상가 부근에 있을 때는 아침저녁으로 신혼곡(晨昏哭)을 행하고 조석상식(朝夕上食)에 참례한다. 술과 고기는 먹지 아니하나 병이나 허약해지면 먹을 수 있고, 임금의 하사품과 아버지의 친구가 권하는 것은 먹어도 된다. 집에 돌아와서는 친상과 같이 부부동침을 금한다.〈한국고전용어사전(세종대왕기념사업회)〉.
삼년을 니라 공헌대왕됴애 졍문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덕수효우 - 문덕수가 효도하고 우애하다
감찰 문덕수 주002)
문덕수(文德粹):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1516~1595). 자는 경윤(景潤)이고 호는 고사(孤査)이며,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그는 1516년(중종 11년)에 아버지 은(垠)의 아들로 태어나 삼가(三嘉)에 거주하였다. 그는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면서 자신의 효심이 미흡함을 한탄하는 시 몇 수가 전한다.〈고사실기(孤査實紀)(한국학중앙연구원)〉.
는 합천군 사람이다. 성품이 본디 효성스럽고 동생을 사랑하더니 부모가 돌아가매 시묘 삼년을 하고 죽만 마시고 상례를 마쳤더라. 그 형 덕순이 죽거늘 또 심상 삼년을 지냈다. 공헌대왕 명종 때 정문을 내렸다.
Ⓒ 역자 | 정호완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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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심상(心喪):상복(喪服)을 입지는 아니하지만 상제와 같은 마음으로 상중(喪中)같이 처신하는 일. 죽은 자와 혈연 관계는 아니지만 슬퍼하는 마음이 친자손에 못지 않은 경우 심상(心喪)을 입을 수 있다. 제자가 스승을 위하여 심상을 입을 수 있으며, 그 거상 기간은 3년이다. 또한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계모(繼母), 자모(慈母), 출모(出母), 가모(嫁母) 등을 위하여 1년간 심상을 입는다. 심상의 복제(服制)는 일반적으로 흰옷을 입지만, 처음 상고(喪故)를 당하였을 때는 조복(弔服)에 가마(加麻)한 백포도포(白布道袍)를 입고 백포건(白布巾)을 쓰며 백포대(白布帶)를 두르고, 단고환질(單股環絰)로 백포삼(白布衫)을 입는다. 부모에게 성정(省定)을 할 때와 강석(講席)에 들어갈 때는 건질(巾絰)을 벗으며, 거처는 초상집 근처에 정하여 묘소에 참배하고 상가 부근에 있을 때는 아침저녁으로 신혼곡(晨昏哭)을 행하고 조석상식(朝夕上食)에 참례한다. 술과 고기는 먹지 아니하나 병이나 허약해지면 먹을 수 있고, 임금의 하사품과 아버지의 친구가 권하는 것은 먹어도 된다. 집에 돌아와서는 친상과 같이 부부동침을 금한다.〈한국고전용어사전(세종대왕기념사업회)〉.
주002)
문덕수(文德粹):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1516~1595). 자는 경윤(景潤)이고 호는 고사(孤査)이며,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그는 1516년(중종 11년)에 아버지 은(垠)의 아들로 태어나 삼가(三嘉)에 거주하였다. 그는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면서 자신의 효심이 미흡함을 한탄하는 시 몇 수가 전한다.〈고사실기(孤査實紀)(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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