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감 직장 조경희는 서울 사람이다. 단모음화를 거치면서 ‘관샹감〉관상감(觀象監)’이 되었다. 관상감은 조선 시대 천문·지리·기후·책력·각루 등을 맡아 보던 관청이다. 세종 때 서운관(書雲觀)으로, 연산군 때에는 사력서로 고쳤다가 중종 때 다시 관상감이라 하였다. 직장의 품계와 정원은 설치 시기와 소속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었으나, 대개 정7품이나 종7품으로서 한두 사람씩 두었다. 구개음화와 단모음화를 거치면서 ‘딕댱〉직쟝〉직장’으로 소리가 단순화하였다.
임진왜란에 그 아비 도적의 자핀 배 되거 경희 몸으로 덥허 칼을 당여 죽으니 아비 살오믈 어드니라 금샹됴애 졍문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경희활부 - 조경희가 아버지를 살리다
관상감 직장 조경희는 서울 사람이다. 임진왜란에 그 아비가 왜적에게 잡힌바 되었거늘, 경희가 몸으로 덮어 칼날에 맞서 죽으니 아비는 살아났더라. 금상 때 정문을 내렸다.
관샹감 딕댱 됴경희 셔울 사이라:관상감 직장 조경희는 서울 사람이다. 단모음화를 거치면서 ‘관샹감〉관상감(觀象監)’이 되었다. 관상감은 조선 시대 천문·지리·기후·책력·각루 등을 맡아 보던 관청이다. 세종 때 서운관(書雲觀)으로, 연산군 때에는 사력서로 고쳤다가 중종 때 다시 관상감이라 하였다. 직장의 품계와 정원은 설치 시기와 소속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었으나, 대개 정7품이나 종7품으로서 한두 사람씩 두었다. 구개음화와 단모음화를 거치면서 ‘딕댱〉직쟝〉직장’으로 소리가 단순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