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2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2집(효자도 권5,6,7,8)
  • 동국신속삼강행실 효자도 제6권 주해
  • 효자도 제6권
  • 홍적청사(弘績請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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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적청사(弘績請死)


6 : 30ㄱ

弘績請死

6 : 30ㄴ

正字禹弘績京都人有學行壬辰倭亂陪其祖母避賊祖母年八十老病不能運步弘績終始抱持賊至欲加刃祖母弘績請以身代竟被害 今上朝 㫌門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졍 우홍적은 주001)
졍 우홍적은:
정자 우홍적은. 단모음화를 거치면서 ‘졍〉정자(正字)’로 소리가 단순화되었다. 정자는 전적이나 문장의 교정을 맡아보던 하급 관리였다. 정원은 각 관청에 2명씩으로, 모두 문관이었다. 결원이 있으면 근무일수를 계산하지 않고 차례대로 전임시켰다. 초기에는 서연관을 겸임했다. 뒤에 정9품직으로 홍문관·승문원·교서관에 배치되고 『경국대전』에 올라있다. 홍문관정자는 세조 9년)1463)에 홍문관을 신설할 때 두었다.
셔울 사미라 문과 실이 읻더니 임진왜난의 그 조모늘 뫼셔 도적을 피엿더니 조뫼 나히 팔십이라 고 병드러 능히 운동여 거름 걷디 몯더니 주002)
운동여 거름 걷디 몯더니:
운동하여 걸음을 걷지 못하더니. 여기서 ‘운동(運動)’이란 현대국어에서 뜻하는 건강을 위하여 움직이는 행동이 아니라, 단순히 ‘몸을 움직임’으로 쓰고 있다.
홍젹이 죵시예 안고 간딕여 도적이 니느러 조모 흘 더어고져 거 주003)
흘 더어고져 거:
칼날을 더하고자 하거늘. 칼로 치고자 하거늘. 중세국어에서는 ‘더으다[加]’로 쓰이다가 언제부턴가 ‘더-’에 ‘다[動]’가 붙어 뜻을 확실하게 하려는 의식이 생겼다. 부사로 쓰일 때처럼 ‘더’란 ‘계속하여. 또는 그 위에 보태어. 어떤 기준보다 정도가 심하게. 또는 그 이상으로’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홍젹이 쳥여 몸으로 여지라 다가 애 해을 니브니라 금샹됴애 졍문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홍적청사 - 우홍적이 대신 죽음을 청하다
정자 우홍적은 서울 사람이다. 학문과 행실이 있더라. 임진왜란에 그 조모를 모셔 왜적을 피하였더라. 조모의 나이 팔십이라 늙고 병들어 능히 운동하여 걸음걸이를 못하더니 홍적이 언제나 안고 모시니 왜적이 이르러 조모를 칼로 치고자 하매 홍적이 청하였다. 자신이 대신 죽겠노라고. 마침내 해침을 당하였더라. 금상 때 정문을 내렸다.
Ⓒ 역자 | 정호완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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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졍 우홍적은:정자 우홍적은. 단모음화를 거치면서 ‘졍〉정자(正字)’로 소리가 단순화되었다. 정자는 전적이나 문장의 교정을 맡아보던 하급 관리였다. 정원은 각 관청에 2명씩으로, 모두 문관이었다. 결원이 있으면 근무일수를 계산하지 않고 차례대로 전임시켰다. 초기에는 서연관을 겸임했다. 뒤에 정9품직으로 홍문관·승문원·교서관에 배치되고 『경국대전』에 올라있다. 홍문관정자는 세조 9년)1463)에 홍문관을 신설할 때 두었다.
주002)
운동여 거름 걷디 몯더니:운동하여 걸음을 걷지 못하더니. 여기서 ‘운동(運動)’이란 현대국어에서 뜻하는 건강을 위하여 움직이는 행동이 아니라, 단순히 ‘몸을 움직임’으로 쓰고 있다.
주003)
흘 더어고져 거:칼날을 더하고자 하거늘. 칼로 치고자 하거늘. 중세국어에서는 ‘더으다[加]’로 쓰이다가 언제부턴가 ‘더-’에 ‘다[動]’가 붙어 뜻을 확실하게 하려는 의식이 생겼다. 부사로 쓰일 때처럼 ‘더’란 ‘계속하여. 또는 그 위에 보태어. 어떤 기준보다 정도가 심하게. 또는 그 이상으로’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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