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2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2집(효자도 권5,6,7,8)
  • 동국신속삼강행실 효자도 제6권 주해
  • 효자도 제6권
  • 이자피해(二子被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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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피해(二子被害)


6 : 8ㄱ

二子被害

6 : 8ㄴ

幼學李文蓍文芝京都人參議李蘧之子也與其弟文蘅隨父西行至伊川道中文衡爲倭賊所害蘧亦逢刃戒二子遠避文蓍文芝曰父不離祖母子何忍舍父但當同死而已賊果大至欲害其父母二人相持號泣乞以身代終始不變卒被害 昭敬大王朝㫌門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유 니문시와 문지 셔울 사이니 참의 니거의 아리라 그 아 문형으로 더브러 아비 조차 셔녁흐로 가다가 이쳔 길 가온대 니러 문형이 왜적의게 해 배 되고 게  칼 만나 주001)
게 또 칼 만나:
거기에 또 칼날을 만나.
두 아을 경계야 멀리 피라 대 문시와 문지 오 아바님이 할마님 나기 몯시니 주002)
할마님 나기 몯시니:
할머님 떠나기를 못하시니. 할머니를 두고 집을 떠나지 못하시니. 『선조실록』에 따르면, 할머니 곧 이거(李蘧)의 어머니는 103세까지 살아서 임금이 자주 음식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국조인물고』 권55에 따르면, 이거의 아내 이씨(李氏)의 외사촌 동생이었던 허균(許筠)이 쓴 이문봉(李文葑)의 묘지(墓誌)를 보면, 이문형(李文蘅)이 아니라 이문봉으로 적고 있다. 그러나 『국조인물고』 권51에서는, 나급(羅級)의 외동딸이 ‘이문형’에게 시집을 갔다고 하였다.
식이 엇디 아 아바님을 리링잇가 다만 맛당히 가지로 주글 이로송이다 도적이 과연히 크게 니러 그 부모 해코져 거늘 둘히 서 븓잡고 브며 우러 몸으로 홈을 비러 죵시예 변티 아니야 애 해홈을 니브니라 쇼경대왕됴애 졍문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이자피해 - 두 아들이 해를 입다
유학 이문시와 이문지는 서울 사람으로 참의 이거의 아들이다. 그 아우 이문형과 함께 아비를 따라서 서녘으로 가다가 이천으로 가는 길 가운데 이르러 문형이 왜적에게 해침을 당하고, 거기에 또 칼날을 만나 두 아들을 경계하여 멀리 피하라고 하니 문시와 문지가 말하기를, 아버님이 할머님 떠나기를 못하시는데 자식이 어찌 차마 아버님을 버리오리까. 다만 마땅히 한가지로 죽을 따름입니다. 도적이 정말로 크게 이르러 그 부모를 해치고자 하거늘 둘이 서로 붙잡고 부르며 울어 몸으로 대신함을 빌어 한결같이 변치 아니하여 마침내 해침을 입었다. 소경대왕 선조 때 정문을 내렸다.
Ⓒ 역자 | 정호완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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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게 또 칼 만나:거기에 또 칼날을 만나.
주002)
할마님 나기 몯시니:할머님 떠나기를 못하시니. 할머니를 두고 집을 떠나지 못하시니. 『선조실록』에 따르면, 할머니 곧 이거(李蘧)의 어머니는 103세까지 살아서 임금이 자주 음식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국조인물고』 권55에 따르면, 이거의 아내 이씨(李氏)의 외사촌 동생이었던 허균(許筠)이 쓴 이문봉(李文葑)의 묘지(墓誌)를 보면, 이문형(李文蘅)이 아니라 이문봉으로 적고 있다. 그러나 『국조인물고』 권51에서는, 나급(羅級)의 외동딸이 ‘이문형’에게 시집을 갔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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