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씨절행 - 유씨가 절개를 행하다
유씨는
서울 사람이니, 정
유대수(俞大脩)의 딸이고, 찰방
김선여(金善餘) 주006) 김선여: 1567(명종 2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백후(伯後), 호는 백천(柏川).
의 아내다. 지아비가 죽자 슬퍼하며, 서러워하기를 예에 넘치게 하여, 기절하였다가 다시 살고, 큰 추위에 홑옷을 입고, 반드시 죽음을 기약하여, 조로 만든 죽을 하루에 네다섯 숟가락씩 마시고, 초하루 보름에 분묘에 가서 울고, 밤낮으로 제물을 손수 장만하였다. 거상을 마치고도 상복을 벗지 않고, 나물과 장을 먹지 않았다. 집에 저축한 것이 없어도, 반드시 성한 차반을 장만하여 날로 세 번씩 울며 버리고, 다음 날에 반드시 손수 분묘에 버렸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맛보는 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의 조정에서 정문을 세웠다.
Ⓒ 역자 | 이상규 / 2015년 10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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