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병을 고치는 응급 처방. 이와 관련한 정조대왕의 승하 과정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조가 몸에 난 종기 때문에 고생을 하기 시작한 것은 여드레 전부터였다. 여드레 전, 그러니까 6월 20일 신미(辛未)일에 정조는 종기가 부어올라 당기고 아파 고통스럽다고 말했고, 심인은 종기 치료를 위한 요법으로 연훈방(煙薰方)을 소개했다. 연훈방 치료법은 연기를 쏘이는 처방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에 대해 신료들은 반대했다. 이유는 치료 방법이나 결과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 그럼에도 정조는 종기가 심해지자 이 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6월 25일, 연훈방 치료를 받은 정조의 상태는 흐른 피고름이 요를 흠뻑 적실 정도로 좋아졌다. 그런데 하루 전인 어제, 정조의 증세는 다시 악화됐다. 이시수는 다시 연훈방 치료를 추천하지만 이번에는 심인이 반대했다. “오늘 아침 성상께 인삼차를 권한 이가 이시수라 했습니까?” “예, 마마. 하오나, 성상께서는 드시지 않으려 하셨사옵니다.” 일이 잘못된 뒤에는 모든 일들에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효의왕후가 다시 물었다. “대비전에 성상의 상황을 직접 달려가 알린 이도 이시수라 하였습니까?” “그러하옵니다, 마마.” 김조순은 정조가 위중해진 뒤, 인삼 5돈쭝과 좁쌀미음, 청심원 두 알, 소합원 다섯 알을 가져오라 명한 것 또한 이시수라 아뢰었다. “소합원은 생강을 끓인 물에 타서 들여오라 특별히 명했사옵니다. 마마.” 이는 승지가 된 김조순이 직접 받아쓴 내용이었다. “정순왕후가 내시를 보낸 건 이후였습니다, 마마.” 정순왕후가 전한 말은 이러하였다. “이번 주상의 병세를 선조 병술년(1766, 영조 42년)의 증세와 비슷하오. 그 당시 드셨던 탕약을 상고하여 써야 할 일이나 그 때 성향정기산을 복용하고 효과를 보았으니 의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올리도록 하시오.” 김조순은 이후, 정조가 승하할 때까지 대비 정순왕후가 지속적으로 간여했음을 말하였다. “강명길이 성상의 맥을 짚고 가망이 없다 한 뒤, 대비께서는 다시 주상의 병세는 풍 기운 같은데 대신이나 각신이 병세에 적절한 약을 의논하지 못하고 어찌할 줄 모르는 기색만 있으니 무슨 일인가, 채근하였사옵니다.” 김조순은 이어 이시수가 대비 정순왕후에게 달려간 것이 이 직후였다 아뢰었다. “허면, 대비께서 영춘헌에 나신 것은 그 직후란 말입니까?” 묻는 효의왕후의 말은 침착해져 있었다. “그러하옵니다, 마마. 대비께서는 내가 직접 받들어 올려드리고 싶으니 경들은 잠시 물러가라 명하였사옵니다.” 그러니까, 정조는 대비 정순왕후의 마지막 약을 먹고 승하한 것이다. 효의왕후의 두 손이 금박 박힌 대란치마 자락을 움켜쥐었다. 흰 무명베처럼 창백한 얼굴의 두 눈에 핏줄이 섰다. 효의왕후가 강희를 부른 건 김조순이 물러가고 난 뒤였다. “넌 지금 당장 궁 호위 상황을 알아보고 장용대장을 모셔오너라.” 강희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강희가 곧 명을 받아 통명전을 빠져나왔다.
을 비븨여 녀커나 혹 죠 심지를 기름 무텨 고자 두어 다시 아오디 아니케 라
Ⓒ 언해 | 허준 / 1608년 1월 일
아기 갓 나서 밑의 구멍이 없어 똥을 누지 못 하거든 빨리 금비녀이나 옥비녀 끝이나 가지고 바로 구멍이 있을 데를 보와 찔러 뚫고 그 구멍에 소합원을 비벼서 넣어라. 혹 종이 심지를 기름 묻혀 곶아 두어 다시는 합하지 않게 하라.
소합원(蘇合元):피부병을 고치는 응급 처방. 이와 관련한 정조대왕의 승하 과정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조가 몸에 난 종기 때문에 고생을 하기 시작한 것은 여드레 전부터였다. 여드레 전, 그러니까 6월 20일 신미(辛未)일에 정조는 종기가 부어올라 당기고 아파 고통스럽다고 말했고, 심인은 종기 치료를 위한 요법으로 연훈방(煙薰方)을 소개했다. 연훈방 치료법은 연기를 쏘이는 처방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에 대해 신료들은 반대했다. 이유는 치료 방법이나 결과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 그럼에도 정조는 종기가 심해지자 이 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6월 25일, 연훈방 치료를 받은 정조의 상태는 흐른 피고름이 요를 흠뻑 적실 정도로 좋아졌다. 그런데 하루 전인 어제, 정조의 증세는 다시 악화됐다. 이시수는 다시 연훈방 치료를 추천하지만 이번에는 심인이 반대했다. “오늘 아침 성상께 인삼차를 권한 이가 이시수라 했습니까?” “예, 마마. 하오나, 성상께서는 드시지 않으려 하셨사옵니다.” 일이 잘못된 뒤에는 모든 일들에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효의왕후가 다시 물었다. “대비전에 성상의 상황을 직접 달려가 알린 이도 이시수라 하였습니까?” “그러하옵니다, 마마.” 김조순은 정조가 위중해진 뒤, 인삼 5돈쭝과 좁쌀미음, 청심원 두 알, 소합원 다섯 알을 가져오라 명한 것 또한 이시수라 아뢰었다. “소합원은 생강을 끓인 물에 타서 들여오라 특별히 명했사옵니다. 마마.” 이는 승지가 된 김조순이 직접 받아쓴 내용이었다. “정순왕후가 내시를 보낸 건 이후였습니다, 마마.” 정순왕후가 전한 말은 이러하였다. “이번 주상의 병세를 선조 병술년(1766, 영조 42년)의 증세와 비슷하오. 그 당시 드셨던 탕약을 상고하여 써야 할 일이나 그 때 성향정기산을 복용하고 효과를 보았으니 의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올리도록 하시오.” 김조순은 이후, 정조가 승하할 때까지 대비 정순왕후가 지속적으로 간여했음을 말하였다. “강명길이 성상의 맥을 짚고 가망이 없다 한 뒤, 대비께서는 다시 주상의 병세는 풍 기운 같은데 대신이나 각신이 병세에 적절한 약을 의논하지 못하고 어찌할 줄 모르는 기색만 있으니 무슨 일인가, 채근하였사옵니다.” 김조순은 이어 이시수가 대비 정순왕후에게 달려간 것이 이 직후였다 아뢰었다. “허면, 대비께서 영춘헌에 나신 것은 그 직후란 말입니까?” 묻는 효의왕후의 말은 침착해져 있었다. “그러하옵니다, 마마. 대비께서는 내가 직접 받들어 올려드리고 싶으니 경들은 잠시 물러가라 명하였사옵니다.” 그러니까, 정조는 대비 정순왕후의 마지막 약을 먹고 승하한 것이다. 효의왕후의 두 손이 금박 박힌 대란치마 자락을 움켜쥐었다. 흰 무명베처럼 창백한 얼굴의 두 눈에 핏줄이 섰다. 효의왕후가 강희를 부른 건 김조순이 물러가고 난 뒤였다. “넌 지금 당장 궁 호위 상황을 알아보고 장용대장을 모셔오너라.” 강희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강희가 곧 명을 받아 통명전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