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사섬시(司贍寺) 등 중앙의 각 시(寺)에 둔 사내종. ‘사노(寺奴)’라고 발음할 때는, 고려와 조선 때에 사찰에 딸린 노비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시노’라고 발음하여 ‘시노비(寺奴婢)’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편 뒤에는 ‘시비(寺婢)’가 나오는데, 이들 ‘시노’와 ‘시비’를 아울러 ‘시노비’라 하는 것이다.
나무로 얼굴을 만들어. ‘남그로’의 단독형은 ‘나모’다. 기역종성체언으로 조격의 조사가 통합된 경우다. 주장에 따라서는 ㄱ종성체언은 체언의 곡용어간이 아니고 조사의 머리소리라는 풀이도 있다(강길운, 비교언어학적인 어원사전 2010 참조). 서울 남산의 옛 이름이 목멱산(木覓山)이다. 이두식으로 읽으면 ‘목멱’은 ‘나막’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방언에 따라서는 지금도 ‘나막’이라는 말이 있다(〉나막신). ‘얼굴’이라 함은 ‘모습’을 뜻한다. 현대어로 오면서 의미가 축소되어 ‘얼굴[顔]’을 가리키게 되었다. 일종의 의미축소라 할 수 있다.
시노 조어정이는 서울 사람이다. 그 누이 막금이와 함께 어버이 섬김을 효도하였다. 부모가 잇달아 돌아가매 삼년 동안 소금과 장, 그리고 나물과 과일을 먹지 않았다. 나무로 부모의 얼굴을 만들어 조석으로 제사하고 드나들 때 반드시 고하고 새로운 것이 생기면 반드시 제상에 올리고 초하루 보름에 무덤을 찾았더라. 공희대왕 중종 때 두 사람 모두에게 정려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