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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효자도 1:71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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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ㄱ

思誠孝感

1:71ㄴ

左議政孟思誠溫陽郡人 誠孝出天十歲能盡子職母喪水漿不入口者七日及葬廬墓啜粥泣血三年階草爲之不生植栢于墓前有豕觸而枯思誠痛哭翌日豕爲虎所殺人爲孝感 恭靖朝 㫌門
좌의졍 셩은 주001)
좌의졍 셩은:
좌의정 맹사성은. 단모음화를 거치면서 ‘좌의정 맹사성’으로 소리가 단순화되었다.
온양군 사이라 졍셩과 효되 하 나 열설의 능히 식의 직임을 다 더라 어 상의 믈과 쟝을 입의 드리디 아년 디 일웨오 영장호애 미처 시묘고 쥭 마시고 피나시 울기 삼년을 니 계졀의 플이 위여 나디 아니더라 잣슬 무덤압픠 심걷더니 돋티 이셔 다 딜러 이우니 셩이 통곡더니 돋티 범의게 주긴 배 되다 사이  호 효도의 감동호미라 더라 공졍됴의 졍문시니라
사성효감 - 맹사성이 효로서 감동시키다
좌의정 맹사성 주002)
맹사성(孟思誠):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정치인, 유학자. 본관은 신창이다. 자는 자명(自明)이고, 호는 고불(古佛) 혹은 동포(東浦)이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며, 고려 수문전제학 맹희도(孟希道)의 아들이며, 고려말의 명장인 최영의 손녀 사위다. 황희, 윤회, 권진과 함께 세종 대에 재상을 지냈으며 세종의 측근 중의 한 사람이었다. 맹사성은 충청도 아산 출신으로 어머니를 여읜 뒤 어린 나이에 3년간 시묘를 하여 훗날 그의 이야기가 이 책에 실리게 된 것이다.
은 온양군 사람이다. 정성과 효성은 하늘이 낸바, 열 살에 자식 된 구실을 다하였다. 어머니 상례에 물과 장을 입에 대지 않은 지 이레가 되고 장례를 치르고 이어 시묘하며 죽을 마시고 피가 나듯이 울기를 삼 년 동안 하였으니, 계단의 풀이 나지 않았다. 잣나무를 무덤 앞에 심으니 돼지가 해코지를 하여 말랐고 맹사성이 통곡하였는데, 돼지가 범에게 잡혀 먹혔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효성에 감동된 결과라고 하였다. 공정대왕 때 정문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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