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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44ㄱ

金稱廬墓

3 : 44ㄴ

訓導金稱錦山郡人有學行年二十遭母喪六十丁父憂皆廬墓啜粥一不到家朝夕祭饌躬自炊 爨寢不解衣哀毁逾禮服闋晨昏謁廟一如生時 㫌門
훈도 김칭은 금산군 사이니 이 잇니 주001)
이 잇니:
학문과 덕행이 있더니. ‘ㆍ’의 변동으로 근대국어로 오면 ‘〉학행(學行)’이 된다. 이 ‘ㆍ’는 15세기 훈민정음 창제 당시부터 쓰이던 모음의 기본자이다.
나히 스믈헤 모상 만나고 여슌에 부상 만나 다 시묘 사라 쥭을 먹고 번도 지븨 니디 아니고 됴셕 졔예 찬믈을 친히 니기고 잘 제 오 벗디 아니야 슬허 파려기 녜예 넘게 고 탈상 후에 당의 새배 어을믜 뵈기 티 사라겨신 적티 더라 졍문시니라
김칭여묘 - 김칭이 여묘를 지키다
훈도 김칭은 금산군 사람이다. 학문과 행실이 반듯하였다. 나이 스물에 어미 상을 당하고 예순에 아비 상을 당하여, 모두 시묘를 하였다. 이 때 죽을 먹고 한번도 집에 오가지 않았다. 조석 제사에 찬거리를 손수 마련하고 잘 때 옷을 벗지 않고 슬퍼하기를 예에 넘치게 하였다. 탈상한 뒤에도 아침저녁으로 사당에 뵈옵고 한결같이 살아계실 때와 같이 하였다. 정문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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