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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73ㄱ

朴連寫影

4 : 73ㄴ

私奴朴連京都人 父母嘗酷信佛敎及歿族黨燒化之朴連早年遭喪旣長哀慕不已寫影掛壁日上食仍以遺服合葬于燒化之處廬墓六年一不到家不食鹽醬菜果 恭僖大王朝 㫌閭
노 박년은 셔울 사이니 부뫼 일즉 불교 혹히 믿더니 주그매 미처 권당리 블에 라 박년이 져머셔 상 만난 디라 이믜 라셔 셜워 모 마디 아니야 샹을 그려 의 걸고 주001)
의 걸고:
벽에 걸고. 방언에 따라서는 지금도 ‘바람벽’이라고 한다. 동음이의어로서 ‘’과 ‘바람’이 충돌하였는데 ‘’은 ‘벽’이 더 붙어 ‘바람벽’으로 굳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날로 졔며 인야 기틴 의복으로 쇼화 뎐 고 합장고 뉵년을 녀묘야  적도 지븨 가디 아니코 소금 쟝  실과 아니 먹으니라 공희대왕됴애 졍녀시니라
박연사영 - 박연이 부모상을 그리다
사노 박연은 서울 사람이다. 부모가 일찍 불교를 깊이 믿었다. 죽으매 이어 신도들이 불에 사르거늘 박연이 어려서 상을 당한지라. 이미 자라서 서러워 사모함을 견딜 수 없어 상을 그려 벽에 걸고 날마다 제사를 하며, 이로 하여 남긴 옷을 태운 곳에 합장하고 육 년을 시묘하였다. 한 번도 집에 가지 않고 소금과 장이며 나물과 과일을 먹지 않더라. 공희대왕 중종 때 정려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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