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행실도 5:1ㄴ
樓護
齊郡人 주001) 제군인(齊郡人): 『오륜』의 ‘제군인(齊郡人)’은 『이륜』에는 없음.
有故人呂公 無所歸 護身與呂公 妻與呂嫗 同食 後護妻子 頗厭呂公 護流涕責妻子 曰呂公故舊 窮老託身於我 義所當奉 遂養呂公以終身
故人投我爲無歸 義所當爲不敢辭 身勸呂公妻勸嫗
一盤麤糲當甘肥 주002) 일반추려당감비(一盤麤糲當甘肥): 한 소반의 거친 조밥이라도 달고 맛있게 먹다. 『오륜』의 ‘추(麤)’는 『이륜』에는 ‘추(蔍)’임.
久寓人情生厭斁 樓公垂涕責妻孥 慇懃奉養終身世
舊誼從前誓不孤 주003) 구의종전서부고(舊誼從前誓不孤): 옛정 전과 같아 맹서하여 외롭지 않다. 『오륜』의 ‘의(誼)’는 『이륜』에는 ‘의(意)’임.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누호 나라 졔군 사이니 벗 녀공이 갈 업거 누회 녀공과 밥 먹으며 누호의 안 녀공의 안와 밥 먹더니 오랜 후 쳐 장
슬오륜행실도 5:2ㄱ
희여 니 주004) 슬희여 니: 싫어하니. 일종의 강세 표현으로 ‘-어 -’가 통합되어 타동사 구성이 된 것이다. 일단 ‘슬희-’를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중세어 이래 어간 ‘슬희-’는 모음 어미 앞에만 출현하여 ‘슬희여’, ‘슬희욤’〈원각경언해(1465) 상1-2:10ㄴ〉 정도의 활용형만 보이고, 거기다가 ‘슬희여’는 문헌에 따라, ‘슬흐여’〈소학언해 5:9ㄴ〉로 나타난 예도 보이기 때문에 이곳의 ‘슬희여’는 (‘슬희-’가 아니라) ‘슬흐-’의 활용형일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때의 ‘슬흐-’는 ‘슬-’의 변화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슬흐-+-어’가 (‘*슬허’ 아니라) ‘슬흐여’ 내지 ‘슬희여’로 나타나는 것은 ‘슬흐-’가 ‘슬-’와 마찬가지로 ‘-’와 관련된 어형이라는 점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어에서 ‘슬-’는 (‘-’와 ‘-’, ‘많-’와 ‘많-’이 공존한 것과 마찬가지로) /ㆍ/가 탈락한 ‘슳-’과 공존하다가 후자의 어형이 현대어의 ‘싫-’로 이어졌다.
누회 울며 쳐 지저 닐오 녀공은 녯
벗이라 주005) 벗이라: 벗이다. 『이륜(초)』에는 ‘버디니’, 『이륜(중․영)』은 ‘벗디니’로 등장한다. ‘버디니’가 ‘벋[友]’의 연철 표기라면 ‘벗디니’는 일종의 중철 표기로서 어간을 고정시키려는 노력과 음성 실현형을 그대로 표기하려는 노력이 절충된 결과이다. 이곳의 ‘벗이라’는 분철 표기가 일반화된 속에서 어간 말 /ㄷ/을 ‘ㅅ’으로 분철 표기하는 『오륜』을 비롯한 근대 문헌의 표기 방식에 따른 것이다. 『이륜』류와 비교할 때 ‘연철〉중철〉분철’로 변화하는 표기 경향을 그대로 보여 준다. 현대어의 ‘벗’은 ‘벋’에서 어간 말음이 /ㅅ/으로 재구조화된 결과라 하겠는데, 18-9세기 문헌에 어간 말 /ㅅ/을 반영한다고밖에 볼 수 없는 ‘버시’, ‘벗시’, ‘벗’ 등의 예가 보이기 시작한다. ¶偶然이 사괸 버시 自然히 有情다〈고금가곡(1764)〉. 먼 디셔 벗시 온다〈가곡원류(1876)〉. 빈쳔 적의 사괸 벗〈경신록언석(1796) 82ㄴ〉. 그런데 이들 예와 비슷한 시기에 ‘벗즐’, ‘벗지’와 같은 ㅅ 중철 표기의 예가 공존하는 것으로 보아, 현대어의 ‘벗’은 ‘’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벋〉벚〉벗’의 변화를 거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진 스과 벗즐 구득야〈경신록언석(1796) 80ㄴ〉. 烟霞로 집을 고 風月로 벗즐 삼아〈가곡원류(1876)〉 ; 맛 챡 벗지 잇셔〈조군영적지(1881) 2ㄱ〉.
늙고 궁박여 내게 와 의탁니 졉여야 올흐니라 고 녀공을 죽기지
졉니라 주006) 졉니라: 대접(待接)하였다. 보살폈다. 원문의 ‘양(養)’을 옮긴 것으로 『이륜』류에는 ‘이바니라’로 번역되었다. 『오륜』에서 ‘졉-’는 현대어의 ‘대접하-’와 달리 단순히 “대(待), 우(遇)”의 뜻을 넘어 “봉(奉), 양(養)”을 뜻하기도 하는데, 바로 이곳의 예가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원본이미지
이 기사는 전체 4개의 원본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