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5집

  • 역주 오륜행실도 제5권
  • 오륜행실 붕우도
  • 오륜행실붕우도(五倫行實朋友圖)
  • 후가구의(侯可求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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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가구의(侯可求醫)


오륜행실도 5:19ㄴ

侯可求醫【宋】

오륜행실도 5:20ㄱ

候可 華州人 爲華原主簿 少與田顔 爲友 顔病重 千里爲求醫 未歸而顔死 目不瞑 人曰其待侯君乎 주001)
기대후군호(其待侯君乎):
후가를 기다려 그러함이냐? 『오륜』의 ‘대후(待侯)’는 『이륜』에서는 ‘후(候)’임.
且斂而可至 拊之乃瞑 顔 無子不克葬 可 辛勤百營 鬻衣相役 卒葬之 方天寒單衣以居 有饋白金者 顧顔之妹處室 擧以佐其奩具 一日自遠歸家以寠告 適友人郭行 扣門曰吾父病 醫邀錢百千 賣吾廬 而不售 可惻然 計橐中裝 略當其數 盡與之 關中稱爲賢
辛勤千里遠求醫 生死那知隔此時 張目瞑時靈不昧 鬻衣空相送終儀
郭生罄橐還資急 顔妹遺金更顧窮 不負一心生死際 華原高義薄

오륜행실도 5:20ㄴ

주002)
층공(層空):
극히 높은 하늘.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후가 송나라 화쥬 사이라 화원 원을 니 져믄 제 뎐안과 사괴엿더니 뎐안이 주003)
뎐안이:
전안(田顔)이. 『이륜(초)』에는 ‘신안니’, 『이륜(중․영)』에는 ‘신안이’로 나타나, 이곳의 ‘뎐안’ 대신 ‘신안’이라는 인명을 보여 준다.
병이 듕거 쳔리에 주004)
쳔리에:
천리(千里)에. 『이륜(초)』에는 ‘쳘리예’, 『이륜(중․영)』에는 ‘쳘니예’로 나타나, 이곳의 ‘쳔리’가 /쳘리/로 발음되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이륜』류의 처격 ‘-예’를 대신하여 이곳에서는 ‘-에’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오륜』의 시기에 처격이 현대어 ‘-에’로 단일화되어 가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가 의원을 구여 도라 오디 못여셔 뎐안이 죽어 눈을 디 아니커 사이 닐오 후가 기려 그러미냐 쟝 념매 후개 니르러 손으로 만지니 눈을 으니라 뎐안이 식이 업서 장 못여 거 후개 신근히  가지로 경영여 오 라 역 도와 내 장엿더니 그  날이 치운디라 후개 홋옷 주005)
홋옷:
홑옷. 원문의 ‘단의(單衣)’를 언해한 것으로, 『이륜(초)』에는 ‘옷옷’으로 나타난다. 이곳의 ‘홋’은 중세어의 ‘옺’에 소급할 어형으로(『이륜(초)』의 ‘옷’ 참조), 17세기에 들어서는 ‘옻’과 공존하다가 『오륜』과 비슷한 시기(18세기)에는 ‘홏’으로 어형이 축약되기에 이른다. ¶그듸의 옷외 오진  아노라〈두시언해(중, 1632) 22:56ㄴ〉. 歲暮애 옷외 오치로다〈두시언해(중간본) 4:9ㄴ〉 ; 홋츠로 둘너  번만  거시 十字형 니〈중수무원록언해(1796) 2:8ㄴ주〉. 이곳의 ‘홋’은 (시기를 고려할 때) 바로 ‘홏’을 (『오륜』에서 철저히 지켜진) 칠종성법에 따라 표기한 결과로 판단된다. 이 ‘홏’은 현대어에 ‘홑’으로 이어졌는데, ‘홏〉홑’에서 관찰되는 어간 재구조화는 ‘〉팥’의 변화에서도 볼 수 있다.
닙고 잇

오륜행실도 5:21ㄱ

더니 흰 금을 주니 주006)
흰 금을 주니:
흰 금(金)을 주니. ‘흰 금’은 원문의 ‘백금(白金)’을 언해한 것인데, 『이륜』에서는 ‘은’이라고 언해하였다.
잇거 뎐안의 누의 쳐녀로 잇 줄 알고 그 금을 주어 혼구 도으니라  먼리 주007)
먼리:
멀리. 원문의 ‘원(遠)’에 대응되는 것으로, 『이륜(초)』에는 ‘머리’, 『이륜(중․영)』에는 ‘멀리’로 나타난다. 중세어에는 ‘머리’(←‘멀[遠]-+-이[부사화 접미사]’)로 나타나다가 『소학언해』(1586)에서 ‘멀이-’와 ‘멀리-’가 공존 양상을 보인 뒤, 근대어에서는 ‘멀리’ 일색으로 나타나 (『이륜』류에서 보듯이) ‘머리〉멀리’의 변화를 보여 준다. 이 예에서는 ‘먼리’로 나타났는데, 『오륜』의 다른 곳에는 ‘먼니’로 나타난 예도 보인다. 이곳의 ‘먼리’는 위에서 /쳘리/를 ‘쳔리’로 적은 것과 유사하게 어중 /ㄹㄹ/을 ‘ㄴㄹ’로 표기한 결과이다. 다만 어중 /ㄹㄹ/에 대한 ‘ㄴㄹ’ 표기는(‘쳔리’와 마찬가지로) 한자어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먼리’는 한자어가 아님에도 그러한 표기를 취하여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나갓다가 도라오니 집의셔 군핍믈 고더니 마초아 벗 곽이 와 문을 두려 닐오 내 아비 병드러 의원의게 쳥니 돈을 만히 달라 호 내 집을 라도 모라리로다 주008)
모라리로다:
모자라겠도다. 『이륜』류에서는 ‘몯(/못)라로다’로 나타나, 이곳의 ‘모라-’가 ‘몯#라-’의 통사 구성에서 기원하였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이때의 어간 ‘라-’는 “자라다, 성장(成長)하다”가 아니라 “(기대하는 정도에) 미치다, 이르다”를 의미하는 자동사로 쓰인 것이다. ‘몯라-〉모라-’에서 관찰되는 ‘몯’의 /ㄷ/ 탈락은 ‘몯#-’에서도 관찰되는 것인데(‘모’〈삼강행실도 2:32ㄱ〉), ‘모라-’와 관련한 /ㄷ/ 탈락은 일찍부터 이루어진 듯 이미 15세기 문헌에 ‘모라-’의 예가 등장한다. ¶잠도 모라며 나모미 업스리라[稍無欠剩]〈금강경삼가해 2:34ㄴ〉.
대 후개 불샹이 너겨 장에 남은 거 혜아리니 거의 그 수 당디라 주009)
당디라:
당(當)할지라. 상당(相當)할지라. 미칠지라. 원문의 ‘당(當)’을 언해한 것으로, 『이륜』류에는 ‘랄가 식(/시)브거늘’로 나타나 이곳의 ‘당-’가 “상당(相當)하다, 미치다”의 뜻으로 쓰였다.
다 주니 관듕 사이 다 그 어딜믈 일더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11. 후가구의(侯可求醫)【송나라】- 후가가 (친구를 위하여) 의원을 찾아다니다
후가(侯可)는 송(宋)나라 화주(華州) 사람이니, 화원(華原) 원(員)을 하였다. 어렸을 때 전안(田顔)과 사귀었는데, 전안이 병이 중하거늘 천리 〈밖〉에 가 의원을 구하였다. 〈후가가〉 미처 돌아오지 못하여서 전안이 죽어, 〈전안이〉 눈을 감지 아니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후가를 기다려 그러함이냐?” 하였다. 장차
(막)
염을 하려 할 때 후가가 이르러 손으로 어루만지니 〈전안이〉 눈을 감았다. 전안이 자식이 없어 장사를 치르지 못하거늘, 후가가 신근
(辛勤; 힘든 일을 맡아 애쓰며 부지런히 일함)
히 백 가지로
(온가지로)
경영
(經營; 궁리하여 일를 마련하여 나감)
하고, 옷을 팔아 역사(役事)를 도운 끝에 마침내 장사를 치렀다. 그때 날씨가 추운지라, 후가가 홑옷을 입고 있었는데, 〈후가에게〉 흰 금(金)을 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자 후가는〉 전안의 누이가 처녀로 있는 것을 알고 그 금을 〈전안의 누이에게〉 주어, 혼구
(婚具; 혼인 때에 쓰는 여러 가지 제구)
를 〈마련하는 데〉 도왔다. 하루는 멀리 나갔다가 돌아오니 집에서 군핍
(窘乏; 필요한 것이 없거나 모자라 군색하고 아쉬움)
함을 고(告)하였다. 〈그때〉 마침 벗 곽행(郭行)이 와 문을 두드려 말하기를, “내 아버지가 병들어 의원(醫員)을 청하니 〈의원이〉 돈을 많이 달라 하는데, 내가 집을 팔아도 모자라겠도다.” 하였다. 이에 후가가 불쌍히 여겨 행장
(行狀; 행리)
에 남은 것을 헤아리니, 거의 그 〈모자란〉 수
(數; 액수)
에 당
(當; 상당)
(미칠)
만하였다. 이에 〈그 돈을 친구에게〉 모두 주니, 관중(關中) 사람들이 모두 그 어짊을 칭송하였다.
애써 천리 길 멀리에 치료할 의원을 구하니
살고 죽는 것 어찌 이때를 사이 한 것 알까.
눈을 뜨고 죽었을 때에 영혼은 잠들지 못하니
옷을 팔아서 영혼의 송종(送終) 의식을 치러.
곽행(郭行)에게 돈자루 풀어 돈 급히 돌려주니
전안(田顔) 누이에게 돈을 주어 다시 곤궁을 돌보아.
한마음 저버리지 않고 살아 있고 죽을 때까지 불변해
화원(華原)의 높은 의리는 저 하늘 보다 높고 또 높아.
Ⓒ 역자 | 이광호 / 2016년 11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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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기대후군호(其待侯君乎):후가를 기다려 그러함이냐? 『오륜』의 ‘대후(待侯)’는 『이륜』에서는 ‘후(候)’임.
주002)
층공(層空):극히 높은 하늘.
주003)
뎐안이:전안(田顔)이. 『이륜(초)』에는 ‘신안니’, 『이륜(중․영)』에는 ‘신안이’로 나타나, 이곳의 ‘뎐안’ 대신 ‘신안’이라는 인명을 보여 준다.
주004)
쳔리에:천리(千里)에. 『이륜(초)』에는 ‘쳘리예’, 『이륜(중․영)』에는 ‘쳘니예’로 나타나, 이곳의 ‘쳔리’가 /쳘리/로 발음되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이륜』류의 처격 ‘-예’를 대신하여 이곳에서는 ‘-에’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오륜』의 시기에 처격이 현대어 ‘-에’로 단일화되어 가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주005)
홋옷:홑옷. 원문의 ‘단의(單衣)’를 언해한 것으로, 『이륜(초)』에는 ‘옷옷’으로 나타난다. 이곳의 ‘홋’은 중세어의 ‘옺’에 소급할 어형으로(『이륜(초)』의 ‘옷’ 참조), 17세기에 들어서는 ‘옻’과 공존하다가 『오륜』과 비슷한 시기(18세기)에는 ‘홏’으로 어형이 축약되기에 이른다. ¶그듸의 옷외 오진  아노라〈두시언해(중, 1632) 22:56ㄴ〉. 歲暮애 옷외 오치로다〈두시언해(중간본) 4:9ㄴ〉 ; 홋츠로 둘너  번만  거시 十字형 니〈중수무원록언해(1796) 2:8ㄴ주〉. 이곳의 ‘홋’은 (시기를 고려할 때) 바로 ‘홏’을 (『오륜』에서 철저히 지켜진) 칠종성법에 따라 표기한 결과로 판단된다. 이 ‘홏’은 현대어에 ‘홑’으로 이어졌는데, ‘홏〉홑’에서 관찰되는 어간 재구조화는 ‘〉팥’의 변화에서도 볼 수 있다.
주006)
흰 금을 주니:흰 금(金)을 주니. ‘흰 금’은 원문의 ‘백금(白金)’을 언해한 것인데, 『이륜』에서는 ‘은’이라고 언해하였다.
주007)
먼리:멀리. 원문의 ‘원(遠)’에 대응되는 것으로, 『이륜(초)』에는 ‘머리’, 『이륜(중․영)』에는 ‘멀리’로 나타난다. 중세어에는 ‘머리’(←‘멀[遠]-+-이[부사화 접미사]’)로 나타나다가 『소학언해』(1586)에서 ‘멀이-’와 ‘멀리-’가 공존 양상을 보인 뒤, 근대어에서는 ‘멀리’ 일색으로 나타나 (『이륜』류에서 보듯이) ‘머리〉멀리’의 변화를 보여 준다. 이 예에서는 ‘먼리’로 나타났는데, 『오륜』의 다른 곳에는 ‘먼니’로 나타난 예도 보인다. 이곳의 ‘먼리’는 위에서 /쳘리/를 ‘쳔리’로 적은 것과 유사하게 어중 /ㄹㄹ/을 ‘ㄴㄹ’로 표기한 결과이다. 다만 어중 /ㄹㄹ/에 대한 ‘ㄴㄹ’ 표기는(‘쳔리’와 마찬가지로) 한자어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먼리’는 한자어가 아님에도 그러한 표기를 취하여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주008)
모라리로다:모자라겠도다. 『이륜』류에서는 ‘몯(/못)라로다’로 나타나, 이곳의 ‘모라-’가 ‘몯#라-’의 통사 구성에서 기원하였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이때의 어간 ‘라-’는 “자라다, 성장(成長)하다”가 아니라 “(기대하는 정도에) 미치다, 이르다”를 의미하는 자동사로 쓰인 것이다. ‘몯라-〉모라-’에서 관찰되는 ‘몯’의 /ㄷ/ 탈락은 ‘몯#-’에서도 관찰되는 것인데(‘모’〈삼강행실도 2:32ㄱ〉), ‘모라-’와 관련한 /ㄷ/ 탈락은 일찍부터 이루어진 듯 이미 15세기 문헌에 ‘모라-’의 예가 등장한다. ¶잠도 모라며 나모미 업스리라[稍無欠剩]〈금강경삼가해 2:34ㄴ〉.
주009)
당디라:당(當)할지라. 상당(相當)할지라. 미칠지라. 원문의 ‘당(當)’을 언해한 것으로, 『이륜』류에는 ‘랄가 식(/시)브거늘’로 나타나 이곳의 ‘당-’가 “상당(相當)하다, 미치다”의 뜻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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