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5집

  • 역주 오륜행실도 제5권
  • 오륜행실 붕우도
  • 오륜행실붕우도(五倫行實朋友圖)
  • 범장사우(范張死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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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장사우(范張死友)


오륜행실도 5:2ㄴ

范張死友【漢】

오륜행실도 5:3ㄱ

范式 주001)
범식(范式):
『오륜』의 첫 문장 ‘范式 金鄕人字巨卿 少遊太學 與汝南張劭爲友 劭字元伯 二人並告歸鄕里’는 『이륜』에는 ‘范式與張元伯 並告歸鄕里’로 되어 있음.
金鄕人字巨卿 少遊太學 與汝南張劭爲友 劭字元伯二人並告歸鄕里 式謂元伯 曰後二年 當過拜尊親 乃共尅期日 期將至 元伯請設饌以候之 母曰二年之別 千里結言 何相信之審耶 주002)
신지심야(信之審耶):
『오륜』의 ‘신지심야(信之審耶)’는 『이륜』에는 ‘信耶’임.
對曰巨卿 信士 决不乖違 母曰若然 當醞酒 至其日 巨卿果至 주003)
거경과지(巨卿果至):
『오륜』의 ‘거경과지(巨卿果至)’는 『이륜』에는 ‘巨卿果至 升堂拜飮 巨卿 式字也’로 되어 있음.
後元伯疾篤 歎曰恨不見吾死友范巨卿 尋卒 式忽夢見元伯 呼曰巨卿 吾以某日死 某時葬 子未我忘 豈能相及 式 便馳往赴之 喪已發引 旣至壙 而柩不肯進 其母撫之 曰元伯豈有望耶 주004)
왈원백기유망야(曰元伯豈有望耶):
『오륜』의 ‘왈원백기유망야(曰元伯豈有望耶)’는 『이륜』에는 없음.
遂停柩移時 乃見有素車白馬號哭而來 母曰是必巨卿也 巨卿旣至 叩

오륜행실도 5:3ㄴ

喪言曰行矣元伯 死生異路 永從此辭 式因引柩 於是乃前 式遂畱止冢次爲脩墳樹而去
千里相期二載餘 眼靑堂上見華裾 壽觴共進浮春色 始喜吾兒語不虛
白馬馳來是巨卿 夢中相感亦丁寧 攀號永訣柩還進 誠信應通地下靈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범식은 한나라 금향 사이니  거경이라 져머셔 태에 닐 댱원과 괴엿더니 원으로 더브러 고향으로 도라갈 식이 원려 닐오 훗 두  만에 그 모친을 가셔 뵈오리라

오륜행실도 5:4ㄱ

고 긔약엿더니 그 날이 갓가와 오거 원이 어미게 고여 음식을 초와디라 주005)
초와디라:
갖추고자(준비하고자) 한다. 만들었으면 한다. 원문의 (‘청설찬(請設饌)’에서) ‘청설(請設)’을 언해한 것으로, 『이륜』류에서는 ‘(/)라지라’로 번역되었다. ‘초-+-아지라’로 분석될 어형이나 ‘-아지라’의 ‘지’가 ‘디’로 나타난 것은 구개음화를 의식한 부정회귀가 표기에 관여한 결과이다.
 어미 닐오 두  니별에 쳔리에셔 닐은 말을 엇디 미드리오 원이 오 거경은 유신 사이라 반시 어긔디 주006)
어긔디:
어기지. 원문의 ‘괴위(乖違)’를 옮긴 것으로, 『이륜(초)』에는 (‘그릋-’을 이용하여) ‘그릇디’, 『이륜(중․영)』에는 (‘그릇#-’의 구성에서 어휘화한 ‘그릇-’를 이용하여) ‘그릇디’로 번역되었다.
아니리이다 어미 닐오 그러면 술을 비즈리라 더니 그 에 과연 거경이 와 당에 올라 절고 술 먹으니라 후에 원이 병이 듕니 탄식여 오 범거경을 못 보와 이로라 주007)
이로라:
한(恨)이다. ‘(恨)+이-[계사]+-로-+-라’로 분석될 어형으로, 이곳의 ‘-로-’는 계사 뒤에 나타나는 (“화자의 의도 표시” 선어말어미) ‘-오-’의 형태론적 교체형에 해당한다. 계사 뒤에 분포하는 ‘-로-’는 평서문에 등장하는 ‘-로다’에서도 볼 수 있으나(바로 뒤의 예 ‘이 반시 거경이로다’에 등장하는 ‘-로다’ 참조) 이는 (감동법 선어말어미) ‘-도-~-로-’의 형태론적 교체에 따른 것이므로 이곳의 ‘-로-’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이 예의 ‘-로라’에는 “화자의 의도 표시”의 ‘-오-’가 포함된만큼 현대어역에서는 ‘이로라’에 호응하는 주어로 ‘내’를 상정하여 번역하였다.
고 이윽고 죽으니 식이 에 원이 불러 닐오 거경아 내 아모 날 죽어 아모 날 장

오륜행실도 5:4ㄴ

니 날을 닛디 아니커든 미처 주008)
미처:
미쳐(때맞춰). ‘ 및-+-어’로 분석될 어형으로, 『오륜』에서 “급(及), 지(至)”를 뜻하는 동사 ‘및-’은 논항인 ‘NP-에’나 ‘NP-’과 함께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나(‘드여 블에 밋처 죽으니라[遂逮於火而死]’〈3:2ㄱ〉, ‘고을 삼십 리 못 밋처 가셔[將至縣三十里]’〈5:17ㄱ〉), 여기서는 논항이 생략되었다. 『오륜』에는 ‘미처’가 “제때에” 정도를 뜻하는 부사로 쓰여 현대어의 부사 ‘미처’에 준하는 용법을 보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미처’가 부정어와 함께 쓰이지 않았으므로 부사로 쓰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내 가댱이 되어 아로 여곰 밋처 가디 못게 니[棘爲家長令弟不行]〈오륜 4:25ㄱ〉.
오라 식이 을 여 즉시 려가니 셔 발인여 무들 해 가시되 관이 아니 가거 그 어미 관을 어르만지며 오 원아 무 기라미 잇냐 더니 이윽고 흰 술위 흰 로 울며 오니 잇거 어미 닐오 이 반시 거경이로다 과연 거경이 와 상여 두드리며 오 디어다 원아 이 길이 다르니 일로 조 주009)
일로 조:
이로부터. 원문의 ‘종차(從此)’를 언해한 것으로, 『이륜』류에는 ‘이리셔’로 번역되었다. 중세어에서 ‘-로’는 주로 “지향점”을 표시하던 조사였지만, 드물게 “출발점” 내지 “유래”를 표시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鉤陳은 님 畿甸으로 나가놋다[…出畿甸]〈두시언해 10:10ㄴ〉. 이러한 의미로 사용된 ‘-로’는 그 의미를 강조하여, ‘(이)시-’에서 문법화한 ‘-셔’나 ‘븥-’의 활용형 ‘브터’, ‘좇-’의 활용형 ‘조차’가 더 통합되어 ‘-로셔, -로 조차, -로 브터’의 모습으로 탈격적 용법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곳의 ‘-로 조차’가 바로 그러한 탈격적 용법을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조차’가 ‘조’로 나타난 것은 ‘ㆍ〉ㅏ’ 변화를 의식한 일종의 부정회귀가 표기에 관여한 결과이다.
영결리라 식이 인여 관을 니 주010)
니:
당기니. 원문의 ‘인(引)’을 언해한 것으로, 『이륜(초)』에는 ‘니’, 『이륜(중․영)』에는 ‘의니’로 나타난다. 중세어에는 “인(引), 견(牽)”의 뜻으로 어간 ‘-’ 외에 ‘-’도 쓰였으나, 현대어에서 전자는 사어화하고 후자는 ‘당기-’로 이어졌다.
관이 이에 나아가거 식이 드여 머므러 이셔 무덤을 일우고 나모 시므고 가니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2. 범장사우(范張死友)【한나라】- 범식과 장소가 죽도록 벗으로 지내다
범식(范式)은 한(漢)나라 금향(金鄕) 사람이니, 자(字)는 거경(巨卿)이다. 어려서 태학(太學)에 다닐 때에 장원백
(張元伯; 장소(張劭))
과 사귀었다. 장원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때, 범식이 장원백에게 말하기를, “〈이후로〉 두 해 만에(지나서) 그대의 모친을 〈찾아〉가서 뵙겠다.” 하고 기약하였다. 〈기약한〉 그날이 가까워 오거늘, 장원백이 어머니에게 고하여, “음식을 준비하였으면 한다.” 하였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하기를, “두 해 이별(離別)에 〈헤어져 있는 동안에〉 천리 밖에서 이른 말을 어찌 믿겠느냐?” 하였다. 장원백이 말하기를, “거경은 유신
(有信; 신의가 있음)
한 사람이라 반드시 〈약속을〉 어기지 아니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그러면 술을 빚겠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날에 과연 범거경(范巨卿)이 와 당
(堂; 마루)
에 올라 절하고 술을 먹었다. 후에 장원백이 병이 중하니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범거경을 못 보아 한(恨)이로다.”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범식의 꿈에 장원백이 〈범식을〉 불러 말하기를, “거경아, 내가 아무 날 죽어 아무 날 장사하는데, 나를 잊지 아니하였거든 미쳐(제때에) 오라.” 하였다. 범식이 꿈에서 깨어 즉시 달려가니 벌써 발인(發靷)하여 묻을 땅(곳)에 갔으되, 관(棺)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이에〉 그 어머니가 관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원백아, 무슨 기다림이(기다리는 바가) 있느냐?” 하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흰 수레와 흰말을 타고 울며 오는 사람이 있거늘, 어머니가 말하기를, “이(이 사람은) 반드시 거경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과연 범거경이 와 상여를 두드리며 말하기를, “행(行)할지어다(가거라) 원백아! 사생
(死生; 죽음과 삶)
이 〈서로〉 길이 다르니 이로써 영결(永訣)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범식이 〈그런 뒤에〉 관을 당기니 관이 이에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 범식이 끝내
(끝까지)
머물러 있어
(지내면서)
무덤을 만들고 나무를 심은 뒤 갔다
(떠났다)
.
천 리 먼 곳에서 약속하기 두 해가 넘었는데
마루위에서 바라보니 날리는 옷자락 보여라.
축수의 잔을 함께 드리니 봄빛이 떠올라라
비로소 내 아들의 말 헛되지 않으니 기뻐해.
흰말 타고 달려오다니 큰 벼슬아치이리라
꿈 가운데에서 교감하거니 정녕 범식이라.
울부짖어 영결하니 장소의 영구 움직이니
정성과 믿음 응당 지하의 영혼과 통함이지.
Ⓒ 역자 | 이광호 / 2016년 11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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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범식(范式):『오륜』의 첫 문장 ‘范式 金鄕人字巨卿 少遊太學 與汝南張劭爲友 劭字元伯 二人並告歸鄕里’는 『이륜』에는 ‘范式與張元伯 並告歸鄕里’로 되어 있음.
주002)
신지심야(信之審耶):『오륜』의 ‘신지심야(信之審耶)’는 『이륜』에는 ‘信耶’임.
주003)
거경과지(巨卿果至):『오륜』의 ‘거경과지(巨卿果至)’는 『이륜』에는 ‘巨卿果至 升堂拜飮 巨卿 式字也’로 되어 있음.
주004)
왈원백기유망야(曰元伯豈有望耶):『오륜』의 ‘왈원백기유망야(曰元伯豈有望耶)’는 『이륜』에는 없음.
주005)
초와디라:갖추고자(준비하고자) 한다. 만들었으면 한다. 원문의 (‘청설찬(請設饌)’에서) ‘청설(請設)’을 언해한 것으로, 『이륜』류에서는 ‘(/)라지라’로 번역되었다. ‘초-+-아지라’로 분석될 어형이나 ‘-아지라’의 ‘지’가 ‘디’로 나타난 것은 구개음화를 의식한 부정회귀가 표기에 관여한 결과이다.
주006)
어긔디:어기지. 원문의 ‘괴위(乖違)’를 옮긴 것으로, 『이륜(초)』에는 (‘그릋-’을 이용하여) ‘그릇디’, 『이륜(중․영)』에는 (‘그릇#-’의 구성에서 어휘화한 ‘그릇-’를 이용하여) ‘그릇디’로 번역되었다.
주007)
이로라:한(恨)이다. ‘(恨)+이-[계사]+-로-+-라’로 분석될 어형으로, 이곳의 ‘-로-’는 계사 뒤에 나타나는 (“화자의 의도 표시” 선어말어미) ‘-오-’의 형태론적 교체형에 해당한다. 계사 뒤에 분포하는 ‘-로-’는 평서문에 등장하는 ‘-로다’에서도 볼 수 있으나(바로 뒤의 예 ‘이 반시 거경이로다’에 등장하는 ‘-로다’ 참조) 이는 (감동법 선어말어미) ‘-도-~-로-’의 형태론적 교체에 따른 것이므로 이곳의 ‘-로-’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이 예의 ‘-로라’에는 “화자의 의도 표시”의 ‘-오-’가 포함된만큼 현대어역에서는 ‘이로라’에 호응하는 주어로 ‘내’를 상정하여 번역하였다.
주008)
미처:미쳐(때맞춰). ‘ 및-+-어’로 분석될 어형으로, 『오륜』에서 “급(及), 지(至)”를 뜻하는 동사 ‘및-’은 논항인 ‘NP-에’나 ‘NP-’과 함께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나(‘드여 블에 밋처 죽으니라[遂逮於火而死]’〈3:2ㄱ〉, ‘고을 삼십 리 못 밋처 가셔[將至縣三十里]’〈5:17ㄱ〉), 여기서는 논항이 생략되었다. 『오륜』에는 ‘미처’가 “제때에” 정도를 뜻하는 부사로 쓰여 현대어의 부사 ‘미처’에 준하는 용법을 보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미처’가 부정어와 함께 쓰이지 않았으므로 부사로 쓰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내 가댱이 되어 아로 여곰 밋처 가디 못게 니[棘爲家長令弟不行]〈오륜 4:25ㄱ〉.
주009)
일로 조:이로부터. 원문의 ‘종차(從此)’를 언해한 것으로, 『이륜』류에는 ‘이리셔’로 번역되었다. 중세어에서 ‘-로’는 주로 “지향점”을 표시하던 조사였지만, 드물게 “출발점” 내지 “유래”를 표시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鉤陳은 님 畿甸으로 나가놋다[…出畿甸]〈두시언해 10:10ㄴ〉. 이러한 의미로 사용된 ‘-로’는 그 의미를 강조하여, ‘(이)시-’에서 문법화한 ‘-셔’나 ‘븥-’의 활용형 ‘브터’, ‘좇-’의 활용형 ‘조차’가 더 통합되어 ‘-로셔, -로 조차, -로 브터’의 모습으로 탈격적 용법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곳의 ‘-로 조차’가 바로 그러한 탈격적 용법을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조차’가 ‘조’로 나타난 것은 ‘ㆍ〉ㅏ’ 변화를 의식한 일종의 부정회귀가 표기에 관여한 결과이다.
주010)
니:당기니. 원문의 ‘인(引)’을 언해한 것으로, 『이륜(초)』에는 ‘니’, 『이륜(중․영)』에는 ‘의니’로 나타난다. 중세어에는 “인(引), 견(牽)”의 뜻으로 어간 ‘-’ 외에 ‘-’도 쓰였으나, 현대어에서 전자는 사어화하고 후자는 ‘당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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