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5집

  • 역주 오륜행실도 제5권
  • 오륜행실 붕우도
  • 오륜행실붕우도(五倫行實朋友圖)
  • 오곽상보(吳郭相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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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곽상보(吳郭相報)


오륜행실도 5:8ㄴ

吳郭相報【唐】

오륜행실도 5:9ㄱ

吳保安 魏州人 주001)
위주인(魏州人):
『오륜』의 ‘위주인(魏州人)’은 『이륜』에는 없음.
與郭仲翔居同里 주002)
여곽중상거동리(與郭仲翔居同里):
『오륜』의 이 문장이 『이륜』에는 ‘곽중상 리인야(郭仲翔里人也)’임.
仲翔 爲姚州都督李蒙判官 주003)
위요주도독이몽판관(爲姚州都督李蒙判官):
『오륜』의 이 문장이 『이륜』에는 없음.
哀其窮 力薦之 表爲掌書記 後仲翔被執於蠻 必求千縑乃肯贖 保安 營贖仲翔 苦無資 乃力居貨十年 得縑七百 妻子客遂州間關 求保安所在 困姚州不能進 都督楊安居知狀異其 故貲以行求保安 得之引與語 曰子棄家 急朋友之患至是乎 吾請貸爲貲 助子之乏 保安大喜 주004)
처자객수주간관(妻子客遂州間關)~보안대희(保安大喜):
『오륜』의 ‘妻子客遂州間關 求保安所在 因姚州不能進 都督楊安居知狀異其 故貨以行求保安 得之引與語 曰子棄家 急朋友之患至是乎 吾請貸爲貨 助子之乏 保安大喜’는 『이륜』에는 없음.
卽委縑于蠻 주005)
즉위겸우만(卽委縑于蠻):
『오륜』의 ‘즉위겸우만(卽委縑于蠻)’은 『이륜』에는 ‘즉위만(卽委蠻)’임.
得仲翔以歸 後仲翔居母喪 及服除 喟曰吾賴吳公生 今親歿 주006)
금친몰(今親歿):
이제는 어버이가 돌아가셨으니. 『오륜』의 ‘몰(歿)’은 『이륜』에는 ‘몰(沒)’임.
可行其志 時保安以彭山丞客死 주007)
시보안이팽산승객사(時保安以彭山丞客死):
『오륜』의 이 문장이 『이륜』에는 ‘시보안객사(時保安客死)’임.
妻亦歿 주008)
처역몰(妻亦歿):
아내도 역시 죽다. 『오륜』의 ‘몰(歿)’은 『이륜』에는 ‘몰(沒)’임.
喪不克歸 주009)
상불극귀(喪不克歸):
상을 당해 돌아오지 못하다. 『오륜』의 ‘귀(歸)’는 『이륜』에서는 ‘박(敀)’임.
仲翔爲服縗絰 囊其骨 주010)
낭기골(囊其骨):
죽엄을 거두어. 『오륜』의 ‘기골(其骨)’은 『이륜』에서는 ‘골(骨)’임.
徒跣負之歸葬 廬墓三年

오륜행실도 5:9ㄴ

乃去
주011)
여묘삼년내거(廬墓三年乃去):
여묘살이 3년을 하고 가서. 『오륜』의 ‘내거(乃去)’는 『이륜』에서는 없음.
迎保安子 爲娶妻 以讓以官
投蠻乞救恨家貧 力索千縑贖一身 負葬服縗 주012)
최(縗):
최복(衰服). 아들이 부모의 상중(喪中)에 입는 상복.(『표준』)
還守墓 感恩終報再生人
滔滔盡是飜雲 주013)
번운(飜雲):
번운복우(飜雲覆雨). 소인의 우정이 변덕스러움을 이름.
手 千古稀逢信義中 感激恩情期必報 兩人高操激婾風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오보안은 당나라 위쥬 사이니 곽듕샹으로 더브러  을에셔 사다가 듕샹이 요쥬 도독 니몽의 판관이 되여 보안의 궁박믈 불샹이 너겨 니몽의게 힘 쳔거여 댱셔긔 벼을 엿더니 주014)
엿더니:
시켰다. 『이륜』류에는 ‘이니’로 나타나, 이곳의 ‘엿더니’가 타동사 어간 ‘-’의 활용형이 아니라 ‘-’가 사동사 어간 ‘이-’의 활용형임을 말해 준다. 15세기 문헌에서는 ‘-’의 사동사가 주로 ‘-’나 ‘이-’로 나타났으나 16세기부터는 이 예와 같이 ‘이-’의 예가 보이기 시작한다. 피사동주 표시에 사용되는 ‘여곰’을 대신하여 ‘여곰’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도 16세기부터의 일이다.
후에 듕샹이 남방 오랑캐게 잡히여 깁 일쳔 필을

오륜행실도 5:10ㄱ

밧고 노흐리라 거 보안이 쇽여 내고져 호 갑시 주015)
갑시:
돈이. ‘값+-이(주격)’로 분석될 어형으로, 중세어에서 ‘값’은 주로 “가격”을 뜻하면서 ‘갑새’의 꼴로 쓰여 “대가(代價)로, 대신(代身)하여”를 뜻하기도 하였다. ¶조 災變을 맛나 穀食 갑시 두 倍ㄹ〈내훈(1475) 2:50ㄱ〉 ; 다 사 갑새 보내니〈석보상절(1447) 24:51ㄱ〉. 내 獄애 드러 어믜 갑새 죄 니버지라〈월인석보(1459) 23:87ㄴ〉. 이곳에서는 원문의 ‘자(資)’를 언해한 데서 보듯이, “가격”이 아닌 “가격에 해당하는 돈”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중세어라면 ‘갑샛 돈’ 정도로 나타났을 표현이 이곳에서는 단순히 ‘값’으로 나타나 특이하다. ¶碑 지 갑샛 도 가 求索놋다〈두시언해(1481) 22:12ㄱ〉.
업니 힘 댱딜여 주016)
댱딜여:
장사하여. 원문의 ‘거화(居貨)’를 언해한 것으로 『이륜』류에는 ‘흥졍질여’로 번역되었다. 이곳의 ‘댱딜’은 ‘댱’에 “행위(일)”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질’이 결합한 어형이나, 구개음화에 대한 부정 회귀가 표기에 작용한 결과 ‘-질’이 ‘-딜’로 나타난 것이다. ‘댱’는 “상인” 및 “상행위”를 뜻하는 어사로 중세어부터 일찍 등장한다. ¶商估 댱오 賈客 흥졍바지라〈월인석보(1459) 13:8ㄱ주〉. 아 羅卜이 一千貫로 댱 나가더니〈월인석보 23:64ㄱ〉. 이 ‘댱’는 근대어 단계에 구개음화를 겪은 뒤 오늘날 ‘장사’로 남았다.
십 년 만에 깁 칠 필을 엇고 쳐 가지로 슈쥬  부티여 주017)
부티여:
부쳐. (남에게) 의지하여. ‘부티-+-어’로 분석될 어형으로, 이곳의 어간 ‘부티-’는 중세어 ‘브티-’로부터 순자음 /ㅂ/ 의 원순모음화를 겪은 어형이다. 중세어에서 ‘브티-’는 어간 ‘븥-’의 사동사로서 “부(附; 붙이다), 분(焚; 불붙이다)”의 의미와 함께, “기(寄; 부치다), 부(付; 맡기다)” 등 여러 의미로 폭넓게 쓰였다. 이곳에서는 원문의 ‘객(客)’을 언해한 데서 보듯이, 후자의 의미에서 진전된 “숙식을 남에게 의지하다”의 정도로 쓰였다고 볼 수 있는데, 현대어에서 이 같은 의미의 어형은 ‘부치-’로 적고, ‘붙-’(〈 ‘븥-’)과 짝을 이루어 전자의 의미로 쓰이는 어형은 ‘붙이-’로 적어 표기상 구별하고 있다.
이셔 두로 보안의 잇 곳을 다가 요쥬에셔 몸이 디쳐 주018)
디쳐:
지쳐. 원문의 ‘곤(困)’을 언해한 것으로, ‘지치-+-어’로 분석될 어형이나 구개음화를 의식한 부정 회귀로 말미암아 ‘디쳐’로 나타났다.
능히 나아가디 못더니 도독 양안게 그 일을 알고 긔이히 너겨 위여 보안을 자 어드니 안게 쳥여 닐러 오 그 집을 리고 벗의 환란을 급히 너기미 이대도록 주019)
이대도록:
이토록. 원문의 ‘지시(至是)’를 언해한 것으로, ‘이대’에 “도급(到及)”의 뜻을 더하는 보조사 ‘-도록’이 결합한 어형이다. ‘이대’는 ‘이(지시 관형사)#대(의존 명사)’의 통사 구성이 굳어진 존재로 추정되는데, ‘대’는 “곳” 정도를 의미하는 처소성 의존 명사로서, 중세어에서 그 존재가 분명히 확인되나(‘부톄 各各  대 조차 敎化샤’〈월인석보(1459) 13:51ㄱ〉), 『오륜』의 시기에는 이곳의 ‘이대도록’을 비롯하여 ‘그대도록, 뎌대도록’ 등에서 화석화된 존재로 발견될 뿐이다. 현대어에서는 일부 체언, 주로 한자어 뒤에만 나타나던 조사 ‘-토록/록’이 종래 ‘-도록’에 관여하던 어사에까지 분포를 확대하였고, 그 결과 ‘이대도록’은 현대어에 ‘이토록’으로 남게 되었다.
냐 청컨대 믈을 내여 그 부죡 거 도으리라 보안이 크게 깃거 깁을 가져 오랑캐 주고 듕샹을 어더 도

오륜행실도 5:10ㄴ

라오니 후에 듕샹이 모상을 만나 삼 년을 매 탄식여 오 내 오공을 힘닙어 사랏디라 이제 어버이 업니 가히 내 을 리라 고 이 에 보안이 산승 벼에셔 죽고 그 안도  죽어 능히 티상여 도라 오디 못니 듕샹이 위여 복을 닙고 죽엄을 거두어 지고 도라 와 장 매 삼 년을 슈묘고 보안의 아을 마와 댱가 드리고 벼을 양여 주니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5. 오곽상보(吳郭相報)【당나라】- 오보안과 곽중상이 서로 〈은혜에〉 보답하다
오보안(吳保安)은 당(唐)나라 위주(魏州) 사람이다. 곽중상(郭仲翔)과 함께 한 마을에서 살다가 곽중상이 요주(姚州) 도독(都督) 이몽(李蒙)의 판관(判官)이 되었다. 〈곽중상이〉 오보안의 궁박(窮迫)함을 불쌍히 여겨 이몽에게 힘써 천거(薦擧)하여 장서기(掌書記) 벼슬을 하게 하였다. 후에 곽중상이 남방(南方) 오랑캐에게 잡혔는데, 〈오랑캐가〉 “비단 일천 필을 받고 놓아 주겠다.” 하였다. 오보안이 속
(贖; 빚진 것 대신에 다른 물건이나 노력을 제공함)
하여 〈곽중상을 구해〉 내고자 하되 돈이 없으니, 힘써 장사하여 십 년 만에 비단 칠백 필을 구하였다. 〈그때〉 처자(妻子)는 함께 수주(遂州) 땅에 부쳐
(의지하여)
있으면서
(지내면서)
두루 오보안이 있는 곳을 찾다가, 요주에서 몸이 지쳐 능히 나아가지 못하였다. 도독 양안거(楊安居)가 그 일을 알고 기이하게 여겨 〈처자를〉 위하여 오보안을 찾아내었다. 양안거가 〈오보안에게〉 청하여 일러 말하기를, “그대가 집(가정)을 버리고, 벗의 환란을 급히 여기는 바가 이토록 〈지극〉한가? 청컨대 재물을 내어 그대의 부족한 것을 도와주겠다.”라고 하였다. 오보안이 크게 기뻐하여 비단을 〈가지고〉 오랑캐에게 주고 곽중상을 구하여 돌아왔다. 후에 곽중상이 모상(母喪)을 만나
(당하여)
〈시묘살이〉 삼 년을 마치고 나서,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오공(吳公)〈의 도움〉에 힘입어 〈이제껏〉 살았다. 이제는 어버이가 〈돌아가시고〉 없으니 가히 내 뜻을 행하겠다.” 하였다. 이때 오보안이 팽산승(彭山丞) 벼슬에 있다가 죽고, 그 아내도 또한 죽어, 능히 치상
(治喪; 초상을 치름)
하여 돌아오지 못하였다. 〈이에〉 곽중상이 〈오보안을〉 위하여 복
(服; 상복)
을 입고 주검
(시신)
을 거두어 〈등에〉 지고 돌아왔다. 장사(葬事)를 마치고 나서는, 삼 년을 수묘
(守墓; 묘를 지킴)
하고, 오보안의 아들을 맞아 와 장가(를) 들이고 〈그에게 자신의〉 벼슬을 사양
(辭讓; 양보)
하여 주었다.
오랑캐에 붙잡혀 구명을 하거니 가난을 한탄해
힘써 천 필의 비단을 구하니 한 몸을 구출함이라.
시신을 지고 돌아와 장례를 치루고 수묘를 하고
은혜에 감사하여 마침내 다시 살려준 은혜를 갚아.
넘치나니 모두가 의리 어기고 뒤엎는데
천고에 드물게 만나느니 신의를 지키는.
은정에 감격하여 반드시 보답을 약속해
두 사람의 높은 지조 아름다운 기풍이네.
Ⓒ 역자 | 이광호 / 2016년 11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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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위주인(魏州人):『오륜』의 ‘위주인(魏州人)’은 『이륜』에는 없음.
주002)
여곽중상거동리(與郭仲翔居同里):『오륜』의 이 문장이 『이륜』에는 ‘곽중상 리인야(郭仲翔里人也)’임.
주003)
위요주도독이몽판관(爲姚州都督李蒙判官):『오륜』의 이 문장이 『이륜』에는 없음.
주004)
처자객수주간관(妻子客遂州間關)~보안대희(保安大喜):『오륜』의 ‘妻子客遂州間關 求保安所在 因姚州不能進 都督楊安居知狀異其 故貨以行求保安 得之引與語 曰子棄家 急朋友之患至是乎 吾請貸爲貨 助子之乏 保安大喜’는 『이륜』에는 없음.
주005)
즉위겸우만(卽委縑于蠻):『오륜』의 ‘즉위겸우만(卽委縑于蠻)’은 『이륜』에는 ‘즉위만(卽委蠻)’임.
주006)
금친몰(今親歿):이제는 어버이가 돌아가셨으니. 『오륜』의 ‘몰(歿)’은 『이륜』에는 ‘몰(沒)’임.
주007)
시보안이팽산승객사(時保安以彭山丞客死):『오륜』의 이 문장이 『이륜』에는 ‘시보안객사(時保安客死)’임.
주008)
처역몰(妻亦歿):아내도 역시 죽다. 『오륜』의 ‘몰(歿)’은 『이륜』에는 ‘몰(沒)’임.
주009)
상불극귀(喪不克歸):상을 당해 돌아오지 못하다. 『오륜』의 ‘귀(歸)’는 『이륜』에서는 ‘박(敀)’임.
주010)
낭기골(囊其骨):죽엄을 거두어. 『오륜』의 ‘기골(其骨)’은 『이륜』에서는 ‘골(骨)’임.
주011)
여묘삼년내거(廬墓三年乃去):여묘살이 3년을 하고 가서. 『오륜』의 ‘내거(乃去)’는 『이륜』에서는 없음.
주012)
최(縗):최복(衰服). 아들이 부모의 상중(喪中)에 입는 상복.(『표준』)
주013)
번운(飜雲):번운복우(飜雲覆雨). 소인의 우정이 변덕스러움을 이름.
주014)
엿더니:시켰다. 『이륜』류에는 ‘이니’로 나타나, 이곳의 ‘엿더니’가 타동사 어간 ‘-’의 활용형이 아니라 ‘-’가 사동사 어간 ‘이-’의 활용형임을 말해 준다. 15세기 문헌에서는 ‘-’의 사동사가 주로 ‘-’나 ‘이-’로 나타났으나 16세기부터는 이 예와 같이 ‘이-’의 예가 보이기 시작한다. 피사동주 표시에 사용되는 ‘여곰’을 대신하여 ‘여곰’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도 16세기부터의 일이다.
주015)
갑시:돈이. ‘값+-이(주격)’로 분석될 어형으로, 중세어에서 ‘값’은 주로 “가격”을 뜻하면서 ‘갑새’의 꼴로 쓰여 “대가(代價)로, 대신(代身)하여”를 뜻하기도 하였다. ¶조 災變을 맛나 穀食 갑시 두 倍ㄹ〈내훈(1475) 2:50ㄱ〉 ; 다 사 갑새 보내니〈석보상절(1447) 24:51ㄱ〉. 내 獄애 드러 어믜 갑새 죄 니버지라〈월인석보(1459) 23:87ㄴ〉. 이곳에서는 원문의 ‘자(資)’를 언해한 데서 보듯이, “가격”이 아닌 “가격에 해당하는 돈”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중세어라면 ‘갑샛 돈’ 정도로 나타났을 표현이 이곳에서는 단순히 ‘값’으로 나타나 특이하다. ¶碑 지 갑샛 도 가 求索놋다〈두시언해(1481) 22:12ㄱ〉.
주016)
댱딜여:장사하여. 원문의 ‘거화(居貨)’를 언해한 것으로 『이륜』류에는 ‘흥졍질여’로 번역되었다. 이곳의 ‘댱딜’은 ‘댱’에 “행위(일)”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질’이 결합한 어형이나, 구개음화에 대한 부정 회귀가 표기에 작용한 결과 ‘-질’이 ‘-딜’로 나타난 것이다. ‘댱’는 “상인” 및 “상행위”를 뜻하는 어사로 중세어부터 일찍 등장한다. ¶商估 댱오 賈客 흥졍바지라〈월인석보(1459) 13:8ㄱ주〉. 아 羅卜이 一千貫로 댱 나가더니〈월인석보 23:64ㄱ〉. 이 ‘댱’는 근대어 단계에 구개음화를 겪은 뒤 오늘날 ‘장사’로 남았다.
주017)
부티여:부쳐. (남에게) 의지하여. ‘부티-+-어’로 분석될 어형으로, 이곳의 어간 ‘부티-’는 중세어 ‘브티-’로부터 순자음 /ㅂ/ 의 원순모음화를 겪은 어형이다. 중세어에서 ‘브티-’는 어간 ‘븥-’의 사동사로서 “부(附; 붙이다), 분(焚; 불붙이다)”의 의미와 함께, “기(寄; 부치다), 부(付; 맡기다)” 등 여러 의미로 폭넓게 쓰였다. 이곳에서는 원문의 ‘객(客)’을 언해한 데서 보듯이, 후자의 의미에서 진전된 “숙식을 남에게 의지하다”의 정도로 쓰였다고 볼 수 있는데, 현대어에서 이 같은 의미의 어형은 ‘부치-’로 적고, ‘붙-’(〈 ‘븥-’)과 짝을 이루어 전자의 의미로 쓰이는 어형은 ‘붙이-’로 적어 표기상 구별하고 있다.
주018)
디쳐:지쳐. 원문의 ‘곤(困)’을 언해한 것으로, ‘지치-+-어’로 분석될 어형이나 구개음화를 의식한 부정 회귀로 말미암아 ‘디쳐’로 나타났다.
주019)
이대도록:이토록. 원문의 ‘지시(至是)’를 언해한 것으로, ‘이대’에 “도급(到及)”의 뜻을 더하는 보조사 ‘-도록’이 결합한 어형이다. ‘이대’는 ‘이(지시 관형사)#대(의존 명사)’의 통사 구성이 굳어진 존재로 추정되는데, ‘대’는 “곳” 정도를 의미하는 처소성 의존 명사로서, 중세어에서 그 존재가 분명히 확인되나(‘부톄 各各  대 조차 敎化샤’〈월인석보(1459) 13:51ㄱ〉), 『오륜』의 시기에는 이곳의 ‘이대도록’을 비롯하여 ‘그대도록, 뎌대도록’ 등에서 화석화된 존재로 발견될 뿐이다. 현대어에서는 일부 체언, 주로 한자어 뒤에만 나타나던 조사 ‘-토록/록’이 종래 ‘-도록’에 관여하던 어사에까지 분포를 확대하였고, 그 결과 ‘이대도록’은 현대어에 ‘이토록’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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