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행실도 5:16ㄴ
韓億
雍丘人 주001) 옹구인(雍丘人): 『오륜』의 ‘옹구인(雍丘人)’은 『이륜』에서는 없음.
李若谷
徐州人 주002) 서주인(徐州人): 『오륜』의 ‘서주인(徐州人)’은 『이륜』에서는 없음.
未第時皆貧 同試京師 每出謁 更爲僕 李先登第 授長社縣主簿赴官 自控妻驢 億爲負一箱 將至縣三十里 李謂韓 曰恐縣吏來 箱中只有錢六百 以其半遺韓 相持
大哭別去 주003) 대곡별거(大哭別去): 크게 울고 떠났다(헤어졌다). 『오륜』의 ‘별(別)’은 『이륜』에서는 ‘이(而)’임.
後擧 韓亦登第 仕皆至參政 爲婚姻不絶
二子同時擧上都 何嫌出謁迭爲奴 由來貧賤交尤密 榮辱升沉兩不渝
自控妻驢赴縣時 韓生猶復負箱隨
分錢道上相持哭 주004) 분전도상상지곡(分錢道上相持哭): 길 위에서 돈을 나누고, 서로 부둥켜 안고 울다. 『오륜』의 ‘전(錢)’은 『이륜』에서는 ‘전(餞)’임.
從此連姻義莫虧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한억은 송나라 옹구 사이오 니약곡은 셔쥬 사
오륜행실도 5:17ㄱ
이니 급뎨 못야신 제 가난야 가지로 과거 보라 셔울 갈 서로 죵이 되더니 약곡이 몬져 급뎨여 쟝샤
에 주005) 에: 땅에. 『오륜』의 다른 곳에는 ‘’(간혹 ‘희’)로 나타나나, 이곳에서만 ‘에’로 나타났다. 이는 ‘ㅎ’의 ㅎ 종성이 소실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 주는 동시에, 처격이 ‘-에’로 단일화되어 가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원여 갈 제 그 안 나귀 견마 잡고 한억은 짐 지고 가더니
고을 삼십 리 못 밋쳐 가셔 주006) 고을 삼십 리 못 밋처 가서: 고을 삼십 리에 못 미쳐 가서. 고을까지 (채) 삼십 리를 못 남겨 두었을 때에. 원문의 ‘장지현삼십리(將至縣三十里)’를 언해한 것으로, 『이륜』류에는 ‘고 몯 미처 즘게 여셔’로 번역되었다(‘즘게’는 “삼십 리”를 뜻한다).『이륜』류의 번역에서 드러나듯이 이곳의 ‘밋처’는 (‘NP-에’나 ‘NP-’을 논항으로 취하여) “급(及), 지(至)”를 뜻하는 동사 어간 ‘및-’의 활용형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륜』에는 “제때에” 정도를 뜻하는 부사로 쓰여, 현대어의 부사 ‘미처’에 준하는 용법을 보이는 예도 등장한다. ¶사 죽이믈 밋처 못 시 니[殺人若不勝]〈오륜 2:2ㄱ〉. 내 가댱이 되어 아로 여곰 밋처 가디 못게 니[棘爲家長令弟不行]〈오륜 4:25ㄱ〉.
약곡이 한억려 닐오 고을 아젼이 올가
저헤라 주007) 저헤라: 두렵도다. 원문의 ‘공(恐)’을 언해한 것으로, 어간 ‘젛-’에 화자의 “감탄”을 표시하는 종결 어미 ‘-에라’가 결합된 어형이다. 『오륜』에서는 ‘젛-’을 사용한 반면, 『이륜(중․영)』에서는 ‘젛-’에서 파생된 형용사 ‘저프-’(←‘젛-+-브-’)를 사용하여 ‘저페라’로 번역되었다. ‘저훔’과 ‘저품’ 사이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전자가 능동적 차원의 심리 상태를 표현한 번역이라면, 후자는 피동적, 수동적 차원의 심리 상태를 표현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고 짐에 다만 돈 뉵이 잇거 반을 화 한억을 주고 서로 붓드러 크게 울고 가더니 훗 과거의 한억이 급뎨여 둘히 가지로 벼이 샹에 니르고 서로 혼인여
티 주008) 티: 끊지. 원문의 ‘절(絶)’을 언해한 것으로, 『이륜』류에는 ‘(혼인/혼인기) 그치디’로 번역되었다. 『이륜』류의 어간 ‘그치-’는 ‘긏-’에 의미와 품사 범주를 바꾸지 않는 접사 ‘-이-’가 결합한 어형인데, 중세어의 ‘긏-’ 내지 ‘그치-’의 후대형으로 『오륜』에는 이곳의 ‘-’ 외에 ‘-’, ‘-’ 등 여러 어형이 공존한다.
아니더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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