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5집

  • 역주 오륜행실도 제5권
  • 오륜행실 붕우도
  • 오륜행실붕우도(五倫行實朋友圖)
  • 양시입설(楊時立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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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시입설(楊時立雪)


오륜행실도 5:26ㄱ

楊時立雪【宋】

오륜행실도 5:26ㄴ

楊時 南劒人 得明道之傳而歸 及聞其卒 設位哭寢門 以書訃告同學者 後與游酢 同見伊川 伊川瞑目而坐 二子侍立 旣覺謂曰賢輩尙在此乎 今旣晩 且休矣 及出門外 雪深一尺矣
學道歸來道已東 山頹梁毁恨難窮 寢門慟擗知天喪 爲訃諸生共哭從
吾師之弟亦吾師 却與游君共事之 偶値先生瞑目坐 雪深一膝不知疲
Ⓒ 필자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양시 송나라 남검 사이니 명도 셩긔 도을 화 도라 왓다가 션의 부음을 듯고 침실

오륜행실도 5:27ㄱ

밧긔 허위 베프러 울고 가지로 호던 사의게 통부니라 후에 유작으로 더브러 이쳔 션을 뵈오니 이쳔 션이 눈을 으시고 안거 사이 뫼셔 셧더니 션이 치고 닐오시 그네 그저 잇던다 오이 이믜 져므러시니 쉬라 시거 밧긔 나니 눈이 혀 깁희 자히러라
Ⓒ 필자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15. 양시입설(楊時立雪)【송나라】- 양시가 눈 속에 서서 기다리다
양시(楊時)는 송(宋)나라 남검(南劒) 사람이다. 명도(明道) 선생께 도학(道學)을 배워 돌아왔다가 선생의 부음(訃音)을 들었다. 〈이에〉 침실 문 밖에 허위(虛位)를 베풀어(차려) 울고(곡하고), 함께 배우던 사람들에게 통부(通訃; 부고)하였다. 후배 유작(游酢)과 함께 이천(伊川) 선생을 뵈었는데, (당시) 이천 선생이 눈을 감으신 채 앉아 있거늘 두 사람이 〈선생을〉 모시고 서 있었다. 선생이 깨어나 말씀하시되, “그대들이 그저(그대로) 있었느냐? 오늘은 이미 저물었으니 가 쉬라.” 하셨다. 이에 문 밖으로 나가니(나서니) 〈문 밖은 이미〉 눈이 쌓여 깊이가 한 자였다(한 자나 되었다).
도를 배우고 돌아오니 도는 이미 동으로
산 무너지고 다리 무너지고 곤궁함 한탄해.
방문에서 가슴 치며 통곡하니 하늘 상을 알리
부음을 모든 제자들에게 알려 함께 울고 따라.
나의 스승의 아우 또한 나의 스승이거니
도리어 유작(游酢)과 함께 함께 섬기려 해.
때마침 선생님은 눈을 감고 앉아 있었는데
눈이 무릎까지 왔는데 피로한 것 알지 못하였네.
Ⓒ 역자 | 이광호 / 2016년 11월 일

〈이륜행실언해문〉
시 도 션의게 도글 화 갓다가 션이 죽닷 말 듣고 신위 라 노코 울오 듸 호던 사름믜게 유무여 알외니라 후에 유작기와  가 이쳔 션을 뵈더니 이쳔니 눈 고 안젓거 두울히 뫼셔 셧더니 여 닐우듸 그디내 그저 겨시더니 오늘리 졈그니 가 쉬어(?)샤 문 밧긔 나니 눈 기픠  자히러라

남검인(南劒人) : 『오륜』의 ‘남검인(南劒人)’은 『이륜』에는 없음.
베프러 : 베풀어. 원문의 ‘설(設)’을 언해한 것으로, 『이륜』류에는 ‘라 노코’로 번역되었다. 『오륜』의 다른 예에 보이는 ‘베풀고’〈1:39ㄴ, 4:13ㄴ〉를 참조할 때, 이곳의 ‘베프러’는 ‘베플-+-어’로 분석될 어형인데, 중세어의 ‘베프-’가 이 예와 같이 ‘베플-’로 나타나는 것은 『오륜전비언해』(1721)의 예 ‘믄득 俚句 베플어  歡聲 돕이다’〈4:17ㄱ〉를 위시하여 18세기에 와서의 일이다. ‘베프-〉베플-’의 변화는 ‘[斜]-〉빗글-’, ‘[牽]-〉잇글-’, ‘잊[虧]-〉이즐-’의 변화에서 보듯이 기존의 어간에 의미나 품사 범주를 바꾸지 않는 접미사 ‘-을-’이 결합하여 새로운 어간을 형성한 것이다. 중세어에서 ‘베플-’은 “설(設; 베풀다). 진(陣; 펴다), 부(敷; 부연하다)”를 뜻하는 타동사로서뿐 아니라 “발(發; 발생하다), 양(揚; 일어나다)”을 뜻하는 자동사로도 쓰였다. ¶겨지비 軍中에 이시면 兵馬ㅅ 氣運이 베프디 몯가 전노라[婦人在軍中 兵馬恐不揚]〈두시언해 8:68ㄱ〉. 그러나 근대어의 ‘베플-’을 비롯하여 현대어의 ‘베풀-’에서는 더 이상 자동사적 용법이 확인되지 않는다.
치고 : (잠을) 깨고 (나서). 원문의 ‘각(覺)’을 언해한 것으로, 『이륜』류에는 ‘여’로 나타난다. 『이륜』류와 비교할 때, 이곳의 ‘치-’가 ‘[覺]-’에 (“강세”를 더하는) 접미사 ‘-치-(〈-티-)’가 결합한 어형인 것과 “계기”의 뜻으로 쓰인 연결형 ‘-어’가 (현대어와 같이) ‘-고-’로 대치된 변화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져므러시니 : 저물었으니. 원문의 ‘만(晩)’을 언해한 것으로, 『이륜(초)』에는 ‘졈그니’, 『이륜(중․영)』에는 ‘졈그러시니’로 나타나 어간 ‘졈글-’을 보여 준다. 중세어에서 ‘졈글-’과 ‘져믈-’은 이른바 쌍형어로 존재하였으나(‘ 져믈어’〈두시언해(1481) 8:66ㄴ〉, ‘ 졈글어’〈두시언해 17:19ㄱ〉), 18세기 이후 이 예와 같이 ‘져믈-’로 단일화되어 현대어에는 ‘저물-’로 이어졌다. 중세어에는 ‘져믈-~졈글-’과 비슷한 유형으로 ‘버믈-~범글-’, ‘여믈-~염글-’ 등의 쌍형어가 더 있었다. 그러나 ‘버믈-~범글-’의 경우는 어간이 ‘버믈-’로 단일화된 점은 비슷하나 ‘버믈-’ 자체는 사어화하여 현대어에는 ‘버무리-, 버물리-’ 등 파생어의 어기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여믈-~염글-’의 경우는 사정이 더욱 달라, ‘며믈-’에 비해 근대어에는 ‘염글-’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사용되다가, 현대어에는 각각 ‘여물-, 영글-’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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