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옆에 집을 지어. 이런 집을 여막이라고도 한다. 단모음화를 거쳐서 ‘여막〉오막’이 되었다. ‘무덤의’는 ‘무덤’과 ‘의’ 합성어로 사이시옷이 들어가 ‘’가 되었다. ‘-의’는 장소를 드러내는 부사격 조사로 통합된 것이다. 무덤을 일명 유택(幽宅)이라고 이른다. 영혼불멸의 사상에 근거한 것이다.
젼후의 여 소금쟝을 아니 먹그니라 공희대왕됴애 졍녀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극통여묘 - 오극통이 여묘를 지키다
오극통은 함종현 사람이다. 부모 돌아가시매 무덤가에 집을 짓고 전후하여 여섯 해를 소금과 장을 먹지 않았더라. 공희대왕(중종) 때 정려를 내렸다.
무덤의 집지어:무덤 옆에 집을 지어. 이런 집을 여막이라고도 한다. 단모음화를 거쳐서 ‘여막〉오막’이 되었다. ‘무덤의’는 ‘무덤’과 ‘의’ 합성어로 사이시옷이 들어가 ‘’가 되었다. ‘-의’는 장소를 드러내는 부사격 조사로 통합된 것이다. 무덤을 일명 유택(幽宅)이라고 이른다. 영혼불멸의 사상에 근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