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1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1집(효자도 권1,2,3,4)
  • 동국신속삼강행실 효자도 제1권 주해
  • 효자도 제1권
  • 유손활부(愈愻活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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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손활부(愈愻活父)


1:50ㄱ

愈愻活父

1:50ㄴ

鄭愈鄭愻晉州人 知善州事任德之子也 恭愍朝從父戍河東郡 倭賊乘夜猝至 任德病不能騎馬兄弟扶擁而走賊追及之愈騎馬射殺數人賊不敢前有一賊刺任德頰愻自以身蔽之且斬四人任德得免愻竟歿於賊事聞授愈宗簿丞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뎡유 뎡손은 진 사이라 디션 임덕의 아이니라 공민됴애 아비 조차 하동고 슈자리 갇더니 예도적기 바 타 급피 니니 주001)
예도적기 바 타 급피 니니:
왜적이 밤을 이용하여 급하게 들어닥치니. ‘급피’는 ‘급히’에서 격음화를 거치고 혼철이 되어 ‘급히〉급피’가 되었다. 격음화 현상은 유기음화(有氣音化) 현상 또는 거센소리되기라고도 한다. 무기음 ㄱ, ㄷ, ㅂ, ㅈ 등이 앞뒤의 ㅎ을 만나서 ㅋ, ㅌ, ㅍ, ㅊ 등이 되는 현상이다. ‘자음+ㅎ’과 ‘ㅎ+자음’의 구조에서 모두 일어날 수 있다. 현대 국어에서는 ㅎ 받침의 명사가 사라졌으므로, 이 현상은 ㅎ으로 끝나는 어간이나 접미사 ‘하-’를 가진 어간과 ㄷ·ㅈ·ㄱ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통합되는 활용형에서만 나타난다[예 : 홀짝홀짝, 솔직히, 조코(좋+고), 조치(좋+지), 편코(편하+고) 등]. 그러나 중세국어 시기에는 곡용에서도 이 현상이 있었다[예 : 하콰(하+과), 하토(하+도)]. 중세국어 이전에는 ㅂ·ㄷ·ㅈ·ㄱ과 ㅎ이 통합할 때도 나타났다[예 : 자피다(잡-+히+다), 가티다(갇-+히+다), 마키다(막-+히+다) 등]. 유기음화 현상의 방언 분포를 보면 남부 방언에서 훨씬 활성화되었다. 가령 경상도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말이 거세게 들리는 까닭이 바로 이 유기음화에 따른 것이다. 예컨대, ‘-카다’의 경우가 그런데 행위를 이르는 ‘하다’와 통합되면서 소리가 유기음화로 변동한 것으로 보인다. 경음화와 더불어 유기음화는 소리를 강하게 만드는 그런 효과 있다. 이러한 현상이 심리적으로는 임진왜란 이후부터 영남 지방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힌바 그런 영향 관계로 풀이하는 이들이 있다.
임덕기 병드러 능히  디 몯거 형뎨 븓드러 니 도적기 와 믿다   고 두 사 아 주기니 도적기 감히 나아오디 몯더라  도적기 이셔 임덕긔 을 딜러 손이 스스로 모로 리오고  네 사을 버히니 임덕기 면호믈 얻다 손이 도적긔게 죽다 이리 들리오니 유 종부승을 이시다 주002)
유 종부승을 이시다:
정유를 종부승으로 삼았다. 종부승은 왕실의 종친 혹은 보첩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종부시(宗簿寺)의 하급 관리를 이른다. 고려 시대에 왕실·친족의 보첩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의 머리를 전중감이라고 하였다. 조선조로 들어와서 나중에는 종친부로 통합이 되었다. 때로는 왕실의 종친에 대한 잘못을 조사하기도 하고 탄핵하기도 하였다. 목종 때 설치되어 감(監)·소감(少監)·승(丞)·내급사(內給事) 등을 두었다. 문종 때 관제를 정비하여 판사(정3품) 1명, 감(종3품) 1명, 소감 1명, 승 2명, 내급사 1명과 이속으로 주사 4명, 영사 4명, 서령사 4명, 기관(記官) 4명, 산사(算士) 1명을 두었다. 뒤에 전중시(殿中寺)로 개칭하면서 감을 윤(尹), 소감을 소윤으로 고쳤다.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유손활부 - 정유와 정손이 아비를 살리다
정유정손은 진주 사람이다. 지선주사 임덕의 아들이다. 공민왕 때 아비를 좇아 하동 고을을 지키는 군대를 갔다. 왜적이 밤을 타서 급히 쳐들어오니 임덕이 병들어 말을 타지 못하매 형제가 〈아버지를〉 붙들어 도망을 하니 왜적이 따라왔다. 정유가 말을 타고 두 사람을 쏴 죽이니 왜적이 가히 나오지 못하더라. 한 도적이 있어 임덕의 뺨을 찌르거늘, 정손이 스스로 몸을 던져 가리고 또 네 사람을 베니 임덕이 목숨을 건졌다. 정손은 왜적에게 죽었다. 이 소식이 조정에 알려져 정유를 종부승으로 삼았다.
Ⓒ 역자 | 정호완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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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예도적기 바 타 급피 니니:왜적이 밤을 이용하여 급하게 들어닥치니. ‘급피’는 ‘급히’에서 격음화를 거치고 혼철이 되어 ‘급히〉급피’가 되었다. 격음화 현상은 유기음화(有氣音化) 현상 또는 거센소리되기라고도 한다. 무기음 ㄱ, ㄷ, ㅂ, ㅈ 등이 앞뒤의 ㅎ을 만나서 ㅋ, ㅌ, ㅍ, ㅊ 등이 되는 현상이다. ‘자음+ㅎ’과 ‘ㅎ+자음’의 구조에서 모두 일어날 수 있다. 현대 국어에서는 ㅎ 받침의 명사가 사라졌으므로, 이 현상은 ㅎ으로 끝나는 어간이나 접미사 ‘하-’를 가진 어간과 ㄷ·ㅈ·ㄱ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통합되는 활용형에서만 나타난다[예 : 홀짝홀짝, 솔직히, 조코(좋+고), 조치(좋+지), 편코(편하+고) 등]. 그러나 중세국어 시기에는 곡용에서도 이 현상이 있었다[예 : 하콰(하+과), 하토(하+도)]. 중세국어 이전에는 ㅂ·ㄷ·ㅈ·ㄱ과 ㅎ이 통합할 때도 나타났다[예 : 자피다(잡-+히+다), 가티다(갇-+히+다), 마키다(막-+히+다) 등]. 유기음화 현상의 방언 분포를 보면 남부 방언에서 훨씬 활성화되었다. 가령 경상도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말이 거세게 들리는 까닭이 바로 이 유기음화에 따른 것이다. 예컨대, ‘-카다’의 경우가 그런데 행위를 이르는 ‘하다’와 통합되면서 소리가 유기음화로 변동한 것으로 보인다. 경음화와 더불어 유기음화는 소리를 강하게 만드는 그런 효과 있다. 이러한 현상이 심리적으로는 임진왜란 이후부터 영남 지방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힌바 그런 영향 관계로 풀이하는 이들이 있다.
주002)
유 종부승을 이시다:정유를 종부승으로 삼았다. 종부승은 왕실의 종친 혹은 보첩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종부시(宗簿寺)의 하급 관리를 이른다. 고려 시대에 왕실·친족의 보첩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의 머리를 전중감이라고 하였다. 조선조로 들어와서 나중에는 종친부로 통합이 되었다. 때로는 왕실의 종친에 대한 잘못을 조사하기도 하고 탄핵하기도 하였다. 목종 때 설치되어 감(監)·소감(少監)·승(丞)·내급사(內給事) 등을 두었다. 문종 때 관제를 정비하여 판사(정3품) 1명, 감(종3품) 1명, 소감 1명, 승 2명, 내급사 1명과 이속으로 주사 4명, 영사 4명, 서령사 4명, 기관(記官) 4명, 산사(算士) 1명을 두었다. 뒤에 전중시(殿中寺)로 개칭하면서 감을 윤(尹), 소감을 소윤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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