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1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1집(효자도 권1,2,3,4)
  • 동국신속삼강행실 효자도 제4권 주해
  • 효자도 제4권
  • 불산여묘(佛山廬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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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산여묘(佛山廬墓)


4 : 28ㄱ

佛山廬墓

4 : 28ㄴ

全佛山密陽府人性至孝父歿廬墓夜有風雨則必號哭墳前以待朝服闋又居三年一不到家 恭僖大王朝 㫌閭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젼불산은 밀양부 사이라 셩이 지극 러니 아비 죽거 녀묘 밤의  비이시면 반시 무덤 알 가 울고  아젹을 기드리더라 주001)
아젹을 기드리더라:
아침을 기다렸더라. 지금도 단모음화를 거친 ‘아적’이 전라방언에 서는 쓰이고 있다. ‘기드리더라’의 기본형은 ‘기드리다’이며, 이형으로 ‘기리다’가 있다. 구개음화를 거쳐 ‘지두르다’가 강원도 등지에서 쓰이고 있다. ¶기릴 [待]〈신증유합 하 : 34〉.
복고  삼년 사로  적도 집의 가디 아니니라 공희대왕됴애 졍녀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불산여묘 - 전불산이 여묘를 지키다
전불산은 밀양부 사람이다. 성품이 지극한 효자이더니 아비 돌아가매 시묘할 때, 밤에 비와 바람이 있으면 반드시 무덤 앞에 가서 울고 아침을 기다리더라. 복을 마치고 또 삼 년을 하되 한 번도 집에 간 일이 없더라. 공희대왕 때 정려를 내렸다.
Ⓒ 역자 | 정호완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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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아젹을 기드리더라:아침을 기다렸더라. 지금도 단모음화를 거친 ‘아적’이 전라방언에 서는 쓰이고 있다. ‘기드리더라’의 기본형은 ‘기드리다’이며, 이형으로 ‘기리다’가 있다. 구개음화를 거쳐 ‘지두르다’가 강원도 등지에서 쓰이고 있다. ¶기릴 [待]〈신증유합 하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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