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여묘 - 박진이 여묘를 지키다
지군사
박진은 전주 사람이다. 아비가 병이 들거늘 벼슬을 버리고 돌아가서 모셔 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밤이 되어도 띠를 끄르지
(=풀지)
않고 약을 반드시 먼저 맛보더라. 아비가 위중하게 되어서 시를 지어 진에게 주며 말하기를, “여든 해를 반드시 의상에 누었으니 예순이 된 늙은 아들이 약을 먼저 맛보는구나. 죽고 사는 것이 다 하늘에 달렸으니 마침내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네 어미 무덤 가까이 장수한 집을 세우리라.” 하였더라. 아비가 돌아가매 이어 상례를 예도로써 잘 치러 드리고 삼 년 시묘를 하였다. 강헌대왕 때 정려를 받았다.
Ⓒ 역자 | 정호완 / 2015년 5월 15일
원본이미지
이 기사는 전체 2개의 원본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