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1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1집(효자도 권1,2,3,4)
  • 동국신속삼강행실 효자도 제2권 주해
  • 효자도 제2권
  • 박선부석(朴善負石)
메뉴닫기 메뉴열기

박선부석(朴善負石)


2 : 26ㄱ

朴善負石

2 : 26ㄴ

幼學朴善安岳郡人年十三父歿居廬祭祀盡誠負石築墻于墓 㫌門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유 박션은 안악군 사이라 주001)
유 박션은 안악군 사이라:
유학(幼學) 박선은 안악군 사람이다.
나히 열세희 아비 죽거 시묘야 졔 졍셩을 다고 돌 져셔 주002)
돌 져셔:
돌을 져서. 돌은 히읗종성체언 ‘돌ㅎ’에 목적격 조사 ‘-’이 통합된 형이다. 15세기에 쓰이던 중세국어 가운데 체언(명사, 수사, 대명사)과 조사가 통합될 때, 언어적인 조건 없이 ㅎ이나 ㄱ이 덧붙는 낱말들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ㅎ의 경우, ‘하늘, 바다, 나라, 안’ 따위가 있다. 예를 들어 ‘바다’란 명사에 조사 '-이’가 붙는 경우 ‘바다이’가 되어야 마땅하다. ‘바다’는 ㅎ종성체언이므로 ‘바다+ㅎ+이’가 되어 ‘바다히’라고 썼다. 이런 영향이 현재 쓰이는 말에도 나타나고 있는데 ‘안, 암/수, 머리, 살’이 바로 그런 낱말들이다.
담을 무덤의 더라 주003)
무덤의 더라:
무덤에 쌓더라. ‘더라’의 기본형은 ‘다’인데, 여기에 과거회상의 선어말 어미 ‘-더-’와 설명의 종결어미 ‘-라’가 통합된 형이다. 근대국어로 오면서 합용병서의 각자병서로 변동된다. 합용병서의 각자병서가 됨에 따라서 ‘다〉다’로 되어 경음화현상을 겪어서 굳어진 소리다. ㅂ-계 합용병서의 소리값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학술적인 풀이가 다양하다.
졍문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박선부석 - 박선이 무덤에 돌을 쌓다
유학 주004)
유학(幼學):
조선 시대 아직 벼슬을 얻지 못한 선비를 이르는 말. 유생과 혼용되어 사용했으나 과거를 응시할 때, 또는 호적에 올릴 때에도 유학을 사용했다. 유학은 단순히 유생이란 뜻뿐만 아니라 신분이 양반이라는 제도적인 의미도 품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원칙적으로 관직이 없는 사람이면 다 부역을 해야 옳으나 양반 자제들이나 학교에 적을 둔 학생들은 유학이라 하여 역을 면제받았다. 이들은 형사상 일반 평민과는 다른 대우를 받았으며, 향교에서 거행하는 석존제에 참여하는 등 일정한 신분적인 보장을 받았다. 17세기 이후 신분제가 동요하면서 많은 평민·천민들이 족보를 위조하거나 관직 매득·사칭 등의 방법을 통해 신분 상승을 꾀했다. 이 때 가장 많이 따서 쓴 것이 유학인데, 조선 후기로 가면 호적에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박선은 안악군 사람이다. 나이 열세 살에 아비 돌아가매 시묘하고 제사를 정성껏 모셨다. 돌을 져다가 무덤에 담을 쌓았더라. 정문을 내렸다.
Ⓒ 역자 | 정호완 / 2015년 5월 15일

원본이미지
이 기사는 전체 2개의 원본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석
주001)
유 박션은 안악군 사이라:유학(幼學) 박선은 안악군 사람이다.
주002)
돌 져셔:돌을 져서. 돌은 히읗종성체언 ‘돌ㅎ’에 목적격 조사 ‘-’이 통합된 형이다. 15세기에 쓰이던 중세국어 가운데 체언(명사, 수사, 대명사)과 조사가 통합될 때, 언어적인 조건 없이 ㅎ이나 ㄱ이 덧붙는 낱말들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ㅎ의 경우, ‘하늘, 바다, 나라, 안’ 따위가 있다. 예를 들어 ‘바다’란 명사에 조사 '-이’가 붙는 경우 ‘바다이’가 되어야 마땅하다. ‘바다’는 ㅎ종성체언이므로 ‘바다+ㅎ+이’가 되어 ‘바다히’라고 썼다. 이런 영향이 현재 쓰이는 말에도 나타나고 있는데 ‘안, 암/수, 머리, 살’이 바로 그런 낱말들이다.
주003)
무덤의 더라:무덤에 쌓더라. ‘더라’의 기본형은 ‘다’인데, 여기에 과거회상의 선어말 어미 ‘-더-’와 설명의 종결어미 ‘-라’가 통합된 형이다. 근대국어로 오면서 합용병서의 각자병서로 변동된다. 합용병서의 각자병서가 됨에 따라서 ‘다〉다’로 되어 경음화현상을 겪어서 굳어진 소리다. ㅂ-계 합용병서의 소리값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학술적인 풀이가 다양하다.
주004)
유학(幼學):조선 시대 아직 벼슬을 얻지 못한 선비를 이르는 말. 유생과 혼용되어 사용했으나 과거를 응시할 때, 또는 호적에 올릴 때에도 유학을 사용했다. 유학은 단순히 유생이란 뜻뿐만 아니라 신분이 양반이라는 제도적인 의미도 품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원칙적으로 관직이 없는 사람이면 다 부역을 해야 옳으나 양반 자제들이나 학교에 적을 둔 학생들은 유학이라 하여 역을 면제받았다. 이들은 형사상 일반 평민과는 다른 대우를 받았으며, 향교에서 거행하는 석존제에 참여하는 등 일정한 신분적인 보장을 받았다. 17세기 이후 신분제가 동요하면서 많은 평민·천민들이 족보를 위조하거나 관직 매득·사칭 등의 방법을 통해 신분 상승을 꾀했다. 이 때 가장 많이 따서 쓴 것이 유학인데, 조선 후기로 가면 호적에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책목차이전페이지다음페이지페이지상단이동글자확대글자축소다운로드의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