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속모 - 김천이 어머니를 사다
향리인 김천은 강릉부 사람이다. 고려 고종 말에 몽고병이 쳐들어 왔으므로 어미와 아우 덕린이 함께 사로잡혀 갔다. 이 때 천의 나이 열다섯이었다. 포로가 된 사람들이 길에서 죽은 이가 많다는 말을 듣고 상복을 입고 장제를 마쳤다. 그 뒤로 열네 해만에 백호 습성(習成)이 원으로부터 와서 천의 어미 안부를 전하였다. 김천 어머니가 북주 천로채에 살아 있음을 알고 찾아가 은 쉰닷 냥을 주고 사서 돌아왔다. 그 뒤 여섯 해만에 아우 덕린이 돌아 왔다. 형제가 평생 효도를 다하니 고장 사람들이 돌비를 세우고 새겨 이르되, ‘효자마을’이라 하니, 정표를 세웠다.
Ⓒ 역자 | 정호완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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