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1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1집(효자도 권1,2,3,4)
  • 동국신속삼강행실 효자도 제1권 주해
  • 효자도 제1권
  • 김천속모(金遷贖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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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속모(金遷贖母)


1:13ㄱ

金遷贖母

1:13ㄴ

鄕吏金遷江陵府人 高麗高宗末 蒙兵來侵 母與弟德麟被虜時 年十五 晝夜呼泣 聞被虜者多道死 服衰終制 後十四年 有百戶習成自元來傳母書 知母在北州天老寨尋訪見之以白金五十五兩贖之而還 後六年德麟亦來兄弟終身盡孝 鄕人立石刻曰 孝子里以㫌之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향니 김쳔은 강릉부 사이라 고려 고종 말애 몽고병이 와 침노 어미 아 덕린으로 더브러 주001)
어미 아 덕린으로 더브러:
어머니와 아우 덕린으로 더불어. ‘아〉아〉아 우’로 소리가 약화되었다가 떨어지는 과정을 거쳐 오늘의 ‘아우’로 굳어진 것이다. 아직도 일부 방언에서 동생을 ‘아수’라 함을 고려하면, ‘아우’의 기원형은 ‘*아수’였을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아爲弟〈훈민정음 해례 : 25〉. 弟아뎨〈석봉천자문 15〉.
사잡핌을 닙으니 시예 쳔이 나히 열다신 제로 자핌을 니븐 사이 길헤 주그리 만탄 말 듯고 몽상니버 복졔 찯더니 훗 열네 만애 호 습셩이 원으로브터 오리 이셔 쳔의 어미 유모 뎐여 쳔이 어믜 븍 텬로채예 읻 줄 알고 자 가보아 은 쉰단냥으로 사도라 오니라 훗 여 만애 아 덕린이  오나 형뎨 죵신토록 효도 다니 일향 사이 돌 셰워 사겨 닐오 효 히라 하여  포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김천속모 - 김천이 어머니를 사다
향리인 김천은 강릉부 사람이다. 고려 고종 말에 몽고병이 쳐들어 왔으므로 어미와 아우 덕린이 함께 사로잡혀 갔다. 이 때 의 나이 열다섯이었다. 포로가 된 사람들이 길에서 죽은 이가 많다는 말을 듣고 상복을 입고 장제를 마쳤다. 그 뒤로 열네 해만에 백호 습성(習成)이 원으로부터 와서 의 어미 안부를 전하였다. 김천 어머니가 북주 천로채에 살아 있음을 알고 찾아가 은 쉰닷 냥을 주고 사서 돌아왔다. 그 뒤 여섯 해만에 아우 덕린이 돌아 왔다. 형제가 평생 효도를 다하니 고장 사람들이 돌비를 세우고 새겨 이르되, ‘효자마을’이라 하니, 정표를 세웠다.
Ⓒ 역자 | 정호완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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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어미 아 덕린으로 더브러:어머니와 아우 덕린으로 더불어. ‘아〉아〉아 우’로 소리가 약화되었다가 떨어지는 과정을 거쳐 오늘의 ‘아우’로 굳어진 것이다. 아직도 일부 방언에서 동생을 ‘아수’라 함을 고려하면, ‘아우’의 기원형은 ‘*아수’였을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아爲弟〈훈민정음 해례 : 25〉. 弟아뎨〈석봉천자문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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