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1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1집(효자도 권1,2,3,4)
  • 동국신속삼강행실 효자도 제1권 주해
  • 효자도 제1권
  • 지은효양(知恩孝養)
메뉴닫기 메뉴열기

지은효양(知恩孝養)


1:4ㄱ

知恩孝養

1:4ㄴ

知恩慶州府人 少孤養母 傭作行乞以飼之 日久困憊 就富家賣身 得米十石 窮日供役 暮則作食 歸養母曰 向食雖麤而甘 今食雖好肝心若刺何也 女以實告母曰 使爾爲婢 不如速死 乃大哭 女亦哭 新羅王聞之 賜租五百石家一區 牓其里曰孝養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디은은 경부 사이라 어려셔 아비 업고 주001)
아비 업고:
아버지가 없고. ‘업고〉없고’는 자음 첨가 현상으로 굳어지면서 ‘업다’와 동음충돌현상을 피해 나간 것이다. 이 밖에도 동음충돌을 피하려는 현상을 보면, 어느 한쪽에 음운 변동에 따라서 형태를 달리함으로써 동음이의 관계를 해소하는 방법이 있다. 중세국어에서 ‘바회’는 ‘바위[巖]’라는 의미의 단어와, ‘바퀴’라는 의미의 단어로 쓰이었는데, 뒤로 오면서 각각 ‘바위’와 ‘바퀴’로 분화되어 충돌을 피하였다. 둘째, 어느 한쪽에 접사나 다른 단어가 덧붙음으로써 동음이의 관계를 피하는 방법이 있다. 중세국어에서 ‘’은 ‘바람’과 ‘벽’의 의미로 쓰이는 동음이의어였다. 벽이라는 의미를 가진 ‘’에는 벽이라는 말이 덧붙어 ‘바람벽’이 됨으로써 ‘바람’으로 남은 단어와 동음이의 관계를 피하였다. 셋째, 어느 한쪽이 다른 단어로 바뀜으로써 동음충돌을 피하는 방법이 있다. 중세국어에서 ‘부체’는 ‘문’과 ‘부채’라는 의미의 단어로 쓰이는 동음이의어였다. ‘문’이라는 의미의 ‘부체’는 후대에 오면서 사라지고, 대신 ‘문’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이에 따라 ‘부채’만 남게 되어 동음이의를 피하였다.
어미 치  일고 비러다가  머기더니 날이 오라 곤븨하야 가음연 지븨 나아 주002)
날이 오라 곤븨하야 가음연 지븨 나아:
날이 오래되자 몸이 가진 것이 떨어지고 어려워서 부잣집에 가서. ‘가음연’의 기본형은 ‘가음열다’인데, ‘잘살다, 부유하다’라는 뜻이다. ¶가음여다[富了]〈한청문감 159ㄴ〉. 가음열믈 미더 궁곤 이 업수이 넉이지 말며〈경신록언석 10〉.
가 몸을 라  열 셤 어더 주003)
 열 셤 어더:
쌀 열 섬을 얻어. ‘〉〉쌀’은 ㅂ계 합용병서가 각자 병서로 바뀌면서 단일화 된 결과다. 15세기 국어 ㅂ-계 합용병서의 그 본질을 밝히고자 그 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 마침내 철자대로 모두 발음되었다고 보는 자음군설과 된소리 표기로 보는 된소리설, 그리고 의도적인 발음을 지시하는 상징표기설, 순화음 w설, 삽입자음설, 장음 표기설 등 다양하게 개진되었다.
날로 일고 져믈면 밥 지어 도라와 치더니 어미 오 녜 음식은 비록 추나 더니 이제 밥은 비록 됴나 주004)
이제 밥은 비록 됴나:
이제 먹는 밥은 비록 좋으나. ‘됴나’의 기본형은 ‘둏다’인데, 연결형 어미 ‘-나’가 통합하여 쓰인 형태다. 단모음화와 구개음화를 겪으면서 ‘둏다〉죻다〉좋다’로 변동되어 오늘에 쓰이고 있다.
간과 미 디   엇디오 리 실로고대 어미 오 널로 여곰  죵사니 수이 주금만 디 몯다 코 크게 운대 도  우더라 신나왕이 드시고  우케 오 셕 주005)
우케 오 셕:
벼 오백 석. ‘우케’는 벼를 가리킨다. ¶우케 爲未舂稻(우케란 아직 찧지 않은 벼를 이른다.)〈훈민정음 해례 : 24〉.
과 집  곧을 주시고 그 흘 방야 오 효양이라 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지은효양 - 지은이 효로써 봉양하다
지은(知恩)은 경주부 사람으로 어려서 아버지가 없고 어머니를 모시되 남의 일을 해주고 빌어다가 이바지를 하였다. 가난을 견디다 못해 부잣집에 들어가 몸을 팔아 쌀 열 섬을 얻어 날마다 일을 하고 저물면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모셨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옛날 음식은 비록 추하나 입맛에 달더니 지금 먹는 음식은 비록 좋으나 간과 심장을 찌르는 듯하니 어찌된 일이냐? 지은이 사실대로 말을 하니 어미가 말하기를 너로 하여금 남의 종살이를 하게 하니 내가 빨리 죽음만 같지 못하다고 하며 크게 울었다. 지은도 또 울었다. 신라 임금이 이 소문을 듣고 또 벼 오백 석과 집 한 채를 주시고, 그 마을을 이름하여 ‘효양’이라 하였다.
Ⓒ 역자 | 정호완 / 2015년 5월 15일

원본이미지
이 기사는 전체 2개의 원본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석
주001)
아비 업고:아버지가 없고. ‘업고〉없고’는 자음 첨가 현상으로 굳어지면서 ‘업다’와 동음충돌현상을 피해 나간 것이다. 이 밖에도 동음충돌을 피하려는 현상을 보면, 어느 한쪽에 음운 변동에 따라서 형태를 달리함으로써 동음이의 관계를 해소하는 방법이 있다. 중세국어에서 ‘바회’는 ‘바위[巖]’라는 의미의 단어와, ‘바퀴’라는 의미의 단어로 쓰이었는데, 뒤로 오면서 각각 ‘바위’와 ‘바퀴’로 분화되어 충돌을 피하였다. 둘째, 어느 한쪽에 접사나 다른 단어가 덧붙음으로써 동음이의 관계를 피하는 방법이 있다. 중세국어에서 ‘’은 ‘바람’과 ‘벽’의 의미로 쓰이는 동음이의어였다. 벽이라는 의미를 가진 ‘’에는 벽이라는 말이 덧붙어 ‘바람벽’이 됨으로써 ‘바람’으로 남은 단어와 동음이의 관계를 피하였다. 셋째, 어느 한쪽이 다른 단어로 바뀜으로써 동음충돌을 피하는 방법이 있다. 중세국어에서 ‘부체’는 ‘문’과 ‘부채’라는 의미의 단어로 쓰이는 동음이의어였다. ‘문’이라는 의미의 ‘부체’는 후대에 오면서 사라지고, 대신 ‘문’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이에 따라 ‘부채’만 남게 되어 동음이의를 피하였다.
주002)
날이 오라 곤븨하야 가음연 지븨 나아:날이 오래되자 몸이 가진 것이 떨어지고 어려워서 부잣집에 가서. ‘가음연’의 기본형은 ‘가음열다’인데, ‘잘살다, 부유하다’라는 뜻이다. ¶가음여다[富了]〈한청문감 159ㄴ〉. 가음열믈 미더 궁곤 이 업수이 넉이지 말며〈경신록언석 10〉.
주003)
 열 셤 어더:쌀 열 섬을 얻어. ‘〉〉쌀’은 ㅂ계 합용병서가 각자 병서로 바뀌면서 단일화 된 결과다. 15세기 국어 ㅂ-계 합용병서의 그 본질을 밝히고자 그 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 마침내 철자대로 모두 발음되었다고 보는 자음군설과 된소리 표기로 보는 된소리설, 그리고 의도적인 발음을 지시하는 상징표기설, 순화음 w설, 삽입자음설, 장음 표기설 등 다양하게 개진되었다.
주004)
이제 밥은 비록 됴나:이제 먹는 밥은 비록 좋으나. ‘됴나’의 기본형은 ‘둏다’인데, 연결형 어미 ‘-나’가 통합하여 쓰인 형태다. 단모음화와 구개음화를 겪으면서 ‘둏다〉죻다〉좋다’로 변동되어 오늘에 쓰이고 있다.
주005)
우케 오 셕:벼 오백 석. ‘우케’는 벼를 가리킨다. ¶우케 爲未舂稻(우케란 아직 찧지 않은 벼를 이른다.)〈훈민정음 해례 : 24〉.
책목차이전페이지다음페이지페이지상단이동글자확대글자축소다운로드의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