又曰 當結膿窠而不結由血熱相薄[搏]毒氣內外灌注必復入心 宜用猪尾膏【方見黑陷】
Ⓒ 저자 | 임원준 / 1446년(세종 28) 월 일
오 맛당이 고롬이
칠주001) 칠:맺힐. 기본형은 ‘치다’이고, 형태분석은 ‘치-(어간)+-ㄹ(관형형어미)’이 된다.
거시로 아니
언해두창집요 상31ㄴ
치 이 피과 열이 서로 이운[틷]시니 독긔 안팟그로 두루 흘러 반시 심장의 들기[거]시니
데[뎌미]고주002) 뎨미고(猪尾膏):구슬이 도엽(倒靨)과 함복(陷伏)이 되어 부풀어 오르지 않는 것과 혹은 독기가 숨어들어 흑함(黑陷)이 되어 위험한 것을 치료한다. 용뇌(龍腦) 4그램을 돼지의 꼬리에서 뽑은 피로 반죽을 한 다음 팥알만 하게 알약을 만든다. 이것을 도수가 약한 술이나 자초음에 풀어먹인다. 그래도 열이 심할 경우, 새로 길어 온 물에 풀어먹인다. 본디 돼지 꼬리는 끊임없이 흔들기 때문에 그 흔들어 대는 강하게 들어 올리는 힘을 따온 것이다. 허준(許浚)이 마마의 치료를 위하여 새로 만든 신약이 저미고다. 〈청구야담〉에는 한 가지 얘기가 더 있다. 유상이 입궐하여 진찰을 하고 저미고(猪尾膏)란 약재를 쓰기로 하자, 숙종의 어머니 명성대비(明聖大妃)가 약성이 아주 강한 준제(峻劑)라며 쓸 수 없다고 펄쩍 뛰었다. 아무리 청해도 허락이 떨어지지 않자 유상은 소매 속에 몰래 약을 넣고 들어가 쓰니, 병세가 누그러졌고 이내 회복되었다고 한다. 어느 쪽이 맞는 이야기인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후자가 좀 더 사실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한다. 전염병에 관한 의원 이야기는 제법 여럿 남아 전한다. 정조대의 문인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은 ‘예의홍익만전(㾐醫洪翼曼傳)’이란 글을 남겼다. 여기 예의(㾐醫)란 전염병을 잘 고치는 의원을 이른다. 주인공 홍익만은 특별하게도 전염병 전문의인데 그의 인간됨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그는 가슴 속에 경계를 두지 않아 성품이 툭 트였고 사람의 위급함을 보면 비록 평소 모르는 사이라도 오직 그 급한 처지를 구원하려는 인물이었다. 이런 인품이었기에 그는 임술년(1742, 영조18)과 계해년(1743, 영조19) 전염병이 돌았을 때 치료하여 살린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홍익만이 어느 날 밤길을 가다가 길을 잃었는데 일흔쯤 된 노인이 나타나 자신이 이 고장 사람이라 소개했다. 그러고는 추운 날에 피곤하실 터이니 자신의 집으로 가서 박주(薄酒)일망정 한 잔 마시지 않겠느냐고 말을 건넸다. 익만이 노인을 따라 한참을 갔더니 노인은 홀연 보이지 않고, 움집에 시신 네댓이 가로 세로로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그중 한 사람이 바로 그를 인도했던 노인이었다. 그리고 노인이 말했던 것처럼 술 한 병이 시렁 위에 있었다. 그는 술을 마신 뒤 시신을 거두어 묻어주고 떠났다. 이 이야기도 전염병이 돌던 상황을 배경으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전염병으로 죽은 노인이 술을 미끼로 자신을 묻어줄 사람을 이끈다는 비합리적인 설정이지만, 전염병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홍익만이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을 두려움 없이 묻어주었다는 것은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홍익만이 민중을 위한 의원이었음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미 맛당니라
Ⓒ 언해 | 허준 / 1608년(선조 41) 월 일
또 일렀으되, 마땅히 고름이 맺힐 것이로되 아니 맺힘은 이는 피와 열이 서로가 서로 약해지듯이 독기가 안팎으로 두루 흘러 반드시 심장에 들 것이다. 이 때 저미고를 씀이 좋다.
Ⓒ 역자 | 정호완 / 2009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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